영조실록95권, 영조 36년 1월 15일 신유 1/1 기사 / 1760년 청 건륭(乾隆) 25년
모화관에 거둥하여 호칙을 맞이하고 돌아와 인정전에서 반포한 칙서
국역
임금이 모화관에 거둥하여 호칙(胡勅)008) 을 맞이하고 돌아와 인정전에서 칙서를 선포하였다. 당초 회부(回部) 소속의 추장 대화탁목(大和卓木) 파라니도(波羅泥都)와 소화탁목(小和卓木) 곽집점(霍集占)이 준이(準夷)에게 붙잡혀 있었는데, 청(淸)나라에서 구제해 주어 제 소굴에서 추장 노릇을 그대로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 도리어 청나라를 침략하므로, 청나라에서 장수를 보내어 토벌하여 섭이기목(葉爾奇木)과 합십합(哈什哈) 같은 등지에까지 추격하였다. 이에 별부(別部) 발달산(拔達山) 등은 모두 항복을 하고, 마침 곽집점은 상처를 입고 죽었으며, 파라니도는 그 부하들에게 살해되어 서변(西邊)이 모두 평정되었다. 이에 천하에 대사령을 내리고 보국 장군(輔國將軍) 종실(宗室) 종복(鍾福)과 내각 학사(內閣學士) 부덕(富德)을 보내와 칙서를 반포(頒布)하였는데, 말하기를, ‘거리를 따져 본즉 변경에서 다시 2만여 리나 더 개척하였고 시일을 꼽아 본즉 군사를 일으킨 이래 5년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 그 대략이었다.
- [註 008] 호칙(胡勅) : 청나라 칙사(勅使).
원문
영조 36년 (1760) 1월 15일
영조실록95권, 영조 36년 1월 15일 신유 1/1 기사 / 1760년 청 건륭(乾隆) 25년
모화관에 거둥하여 호칙을 맞이하고 돌아와 인정전에서 반포한 칙서
국역
임금이 모화관에 거둥하여 호칙(胡勅)008) 을 맞이하고 돌아와 인정전에서 칙서를 선포하였다. 당초 회부(回部) 소속의 추장 대화탁목(大和卓木) 파라니도(波羅泥都)와 소화탁목(小和卓木) 곽집점(霍集占)이 준이(準夷)에게 붙잡혀 있었는데, 청(淸)나라에서 구제해 주어 제 소굴에서 추장 노릇을 그대로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 도리어 청나라를 침략하므로, 청나라에서 장수를 보내어 토벌하여 섭이기목(葉爾奇木)과 합십합(哈什哈) 같은 등지에까지 추격하였다. 이에 별부(別部) 발달산(拔達山) 등은 모두 항복을 하고, 마침 곽집점은 상처를 입고 죽었으며, 파라니도는 그 부하들에게 살해되어 서변(西邊)이 모두 평정되었다. 이에 천하에 대사령을 내리고 보국 장군(輔國將軍) 종실(宗室) 종복(鍾福)과 내각 학사(內閣學士) 부덕(富德)을 보내와 칙서를 반포(頒布)하였는데, 말하기를, ‘거리를 따져 본즉 변경에서 다시 2만여 리나 더 개척하였고 시일을 꼽아 본즉 군사를 일으킨 이래 5년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 그 대략이었다.
- [註 008] 호칙(胡勅) : 청나라 칙사(勅使).
원문
원본
영조 36년 (1760)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