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을 시좌하게 하고 유신을 불러 《자성편》을 읽게 하고 제왕의 덕을 말하다
임금이 동궁을 시좌(侍坐)하게 하고 유신을 불러 《자성편(自省編)》을 읽으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동궁에게 이르기를,
"너는 안락한 데서 태어나서 안락하게 자라났다. 대리 청정한 후에 만약 의심스럽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에게 물어 시행하라. 동해왕(東海王) 유강(劉彊)은 능히 광무제(光武帝)에게 경계하는 말을 올렸으니, 내가 잘못한 것을 네가 만약 경계하는 말로 아뢴다면 세상 사는 즐거움이 어찌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느냐?"
하였다. 이어서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차례로 《자성편》을 읽게 하고 장구(章句)마다 동궁에게 훈계하기를,
"천리(天理)는 멀리 있지 않고 다만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천리가 비록 높고 멀리 있는 것 같으나 힘써 실천하면 합치할 수 있을 것이요, 힘써 실천하지 않으면 물욕(物欲)에 가리는 것이다. 용군(庸君)과 명주(明主)의 판별은 오로지 천리냐 물욕이냐, 공(公)이냐 사(私)냐로 구분되는 것을 너 역시 어찌 모르겠느냐?"
하고, 또 말하기를,
"‘생각없이 미친 짓을 한다.[罔念作狂]’의 ‘광(狂)’ 자는 광분하여 질주(疾走)하는 것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천리에 위배되면 그 모두가 광(狂)이다. 또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거나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이 광이 아니겠느냐?"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나는 13세에 비로소 사부(師傅)를 만나 늦게 배운 까닭에 몸소 행하고 실천하지 못하였고, 또 나의 기품이 심하게 용렬하고, 저급하지는 않아 자신을 믿는 병폐가 있기 때문에 너는 나보다 낫다. 그러나 학문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초목에 물을 주는 것과 같으니 지금 연소할 때에 힘쓰지 않을 수 있느냐? 진실로 이 시기를 잃으면 비록 후회한다 하더라도 어찌 미칠 수 있겠느냐?"
하고, 또 말하기를,
"방벽 사치(放僻奢侈)는 모두 쾌심(快心)에서 연유한 것으로 임금이 착한 일을 하면 백성들이 칭송하고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모두 비웃으니, 이른바 ‘종로(鐘路) 거리의 사람이 그 임금을 꾸짖는다.’는 말이 그것이다. ‘쾌(快)’ 자 한 자가 너에게는 병통이니 경계하고 경계하라."
하고, 또 말하기를,
"천명(天命)의 거취는 단지 임금이 착하냐, 악하냐를 보는 것이요, 수많은 백성은 바로 상천(上天)의 적자(赤子)이다. 하늘이 임금의 자리를 백성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겠느냐,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주겠느냐? 걸(桀)·주(紂)가 망한 것과 탕(湯)·무(武)가 흥한 것은 모두 공경하느냐, 불경하느냐에 연유한 것이다. 곤충·초목도 모두 나의 물건이니 네가 만약 뽑거나 밟는다면 그것은 나를 망각한 것이다. 미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우리 세록(世祿)을 받는 신하이겠느냐?"
하였다. 세기무형제장(世豈無兄弟章)에 이르러서 임금이 또 말하기를,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현명함으로도 소년 천자(少年天子)라 일컫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짐(朕)은 어느 곳에 있는가?’라고 말하였고, 증자(曾子) 어머니의 현명함으로도 오히려 투저(投杼)039) 하는 일이 있었다. 임금은 지극히 어려운 자리에 처해 있어 심각한 참소가 많은 것이니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황형(皇兄)께서 만약 증자의 어머니가 투저하듯 하셨다면 내게 어찌 오늘날이 있겠느냐? 너는 반드시 나를 섬기는 마음으로 나의 황형을 섬겨 신축년040) 겨울 이후의 일은 넓은 안목으로 보는 것이 옳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내가 태묘(太廟)에 들어갈 때는 번번이 송구스러운 듯 ‘몸을 굽힌다.[鞠躬如也]’라는 구절을 외우는데 기(氣)를 펴고도 피곤함을 모르니 성인의 교훈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전(慈殿)에 입시할 때는 너 역시 이 구절을 외우는 것이 좋겠다."
하고, 또 말하기를,
"문 밖에 삼신 두 켤레가 있을 때 소리가 들리면 들어가고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들어가지 말 것이니 이것은 범절에 관한 하찮은 일이지만 이러한 것들에서 성찰하여 미루어 나가면 역시 큰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음식은 한때의 영양과 맛이요, 학문은 일생의 영양과 맛인데, 배부르고도 체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학문이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나는 보통 때 반드시 꿇어앉아 감히 다리를 쭉 펴고 앉지 않는다. 이는 비단 학문을 해서가 아니라 곧 우리의 가법(家法)이 그러한 까닭이다. 네가 바야흐로 대리 청정하여 팔도의 백성으로 하여금 춘대(春臺) 위의 동산에서 모두 놀게 한다면 풍우(風雩)의 기상이라 할만 하지만, 만약 내시와 더불어 후원에서 노닐면서 욕기(欲沂)라고 한다면 이는 걸주(桀紂)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041) ."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과거 공물로 바친 것 가운데 산 것은 번번이 후원에 놓아 주었더니 지금 춘당대의 못 속에는 한 자 넘는 잉어가 많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나는 개미가 줄지어 가는 것을 보면 차마 밟지 못하고 파리나 모기가 장 단지에 빠져 있으면 모두 건져 날려 보냈다. 비록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사람이랴? 만약 형옥(刑獄)을 경솔하고 안이하게 처리한다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를 것이니 신중히 하고 신중히 하라."
하고, 또 말하기를,
"나는 불나방이 날아와 등불에 부딪치는 것을 보면 도랑과 골짜기에서 이리저리 뒨구는 백성을 생각하여 구휼하는 정사를 베풀었다. 너는 비록 한참 즐겁게 놀 때라도 항상 오막살이의 미천한 백성과 더불어 그 즐거움을 함께할 마음을 가져라. 사람이 자식 하나를 남에게 맡겨도 사랑하기를 힘써 당부하거늘 하물며 억만 백성을 너에게 맡김이겠느냐?"
하였다. 또 말하기를,
"사치를 몰아내는 한 가지 절목은 곧 임금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나도 즉위초에 역시 사치를 금한 일이 있으니, 먼저 농사의 어려움을 알고 난 뒤라야 물자를 아껴쓰고 백성을 사랑할 수 있다. 네가 만약 양 한 마리를 삶으라고 한다면 피해가 백성에게 미치는 것 역시 크다."
하고, 또 말하기를,
"임금이 젊고 예쁜 여자를 사랑하면 신민에게 베푸는 은혜가 시들해지는 것이 니, 주(紂)의 신민들이 임금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것은 주색에 빠진 데 연유한 것이다. 내가 오늘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모두 너를 위해서이다. 한(漢)나라 성제(成帝)는 조정에 나아가서는 신(神)과 같았으나 한가하게 있을 때는 비연(飛燕)과 더불어 황음하였으니 너는 모름지기 이 점을 깊이 경계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말하기를,
"성문을 닫으면 언로(言路)가 열리고 성문을 열면 언로가 닫힌다고 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말이다. 언로를 열어 놓은 것은 바로 우리 조종조의 아름다운 일이니 너는 모름지기 공경하게 본받으라. 네가 엄숙하고 굳세기가 남보다 지나치므로 신하들이 감히 비위를 거스르지 못하니 너는 마땅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고, 또 말하기를,
"만 가지 정무의 번거로움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리한 뒤라야 실수가 없을 것이니, 어느 날 어떤 일을 어느 신하가 어떤 계(啓)를 올렸는지 반드시 기록하여 곁에 두고 의심스러우면 뒷날 다시 물어 보는 것이 좋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창업(創業)은 쉽고 수성(守成)은 어렵다. 처음에 비록 온갖 고생을 겪었더라도 끝에 가서는 오히려 태만해지는 한탄이 있는데, 수성하여 편안을 누리는 임금이야 어떻게 처음과 끝이 같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느냐?"
하고, 또 말하기를,
"섭이중(攝夷中)의 춘종시(春種詩)는 실로 간절하니, 저들 농사짓는 사내와 양잠하는 부녀의 노력과 고생이 이와 같지만 그들 자신은 입거나 먹지 못하고 이를 나와 너에게 바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다면 어찌 차마 호의호식하여 오막살이에 사는 백성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내가 조제에 고심한 것은 붕당은 반드시 나라를 망치게 되리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어진 사람과 간사한 사람의 진퇴 역시 흥망에 관계되는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이 뜻을 본받아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강(講)을 마친 뒤에 또 말하기를,
"내가 훈계하고 신칙한 것은 바로 나라를 위한 고뇌에서이다. 너는 대리 청정 초에 ‘입기강(立紀綱)’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역시 쉽게 생각하여 나온 것이다. 시 한 수를 짓고 갑자기 기강을 세우고자 한다면 그것이 쉬운 일이겠느냐? 대리한 뒤부터는 체모가 전과 다르니 역시 글을 많이 지을 필요가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30면
- 【분류】왕실(王室) / 역사(歷史) / 정론(政論) / 농업(農業) / 윤리(倫理)
- [註 039]투저(投杼) : 남의 말을 듣고 의심을 품는다는 말로, 옛날 공자의 제자인 증삼(曾參)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람을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베를 짜고 있던 증 삼의 어머니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고 하니, 증삼의 어머니가 처음에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다가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사람을 죽였다고 하자, 결국 베 짜던 북을 내던지고 달아났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 [註 040]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註 041]
풍우(風雩)의 기상이라 할만 하지만, 만약 내시와 더불어 후원에서 노닐면서 욕기(欲沂)라고 한다면 이는 걸주(桀紂)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 풍우(風雩)·욕기(浴沂)는 모두 은자(隱子)의 유유 자적(悠悠自適)하는 모양을 말하는 것으로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에 공자가 증석(曾晳)의 희망을 묻자 증석이 "늦은 봄에 봄옷을 만들어 입고 관을 쓴 벗 5, 6명과 동자 6, 7명과 같이 기수에서 목욕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나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데서 나온 말.○乙未/上命東宮侍坐, 召儒臣讀《自省編》。 上謂東宮曰: "汝生於安樂, 長於安樂。 代理之後, 若有疑難之事, 須稟於予而爲之也。 東海王 陽, 能獻戒於光武, 予之所失, 汝若陳戒, 則世間樂事, 豈有愈於此者乎?" 仍命諸臣以次讀《自省編》, 逐章敎諭東宮曰: "天理不遠, 只在吾心。 天理雖若高遠, 而力行則可以合, 不力行則物欲蔽之矣。 庸君、明主之判, 只在理欲公私之分, 汝亦豈不知耶?" 又曰: "罔念作狂之狂字, 非謂狂奔疾走也。 違於天理, 則皆是狂矣。 且不爲所當爲之事與爲所不當爲之事, 非狂乎?" 又曰: "予十三始就傅, 以晩學之故, 不能躬行而實踐, 且予之氣稟不甚庸下, 故有自信之病, 汝則勝於予。 然爲學之工, 如草木之稱水, 其可不及今年少時懋之乎? 苟失此時, 雖悔曷及?" 又曰: "放僻奢侈, 皆由於快心, 人君之事善則百姓稱之, 不善則皆笑之, 所謂鐘街人之罵其君者, 是也。 一快字於汝爲病, 戒之戒之。" 又曰: "天命去就, 只視人君之善惡, 億萬蒼生, 乃上天之赤子也。 天以君長之位, 當畀之愛蒼生者耶, 不愛蒼生者耶? 桀ㆍ紂之亡, 湯ㆍ武之興, 皆由於敬與不敬。 昆蟲、草木, 皆吾之物, 汝若拔之踏之, 是忘予也。 微物猶然, 況吾世祿之臣乎?" 至《世豈無兄弟章》, 上又曰: "以宋 太宗之賢, 不豫於少年天子之稱, 有置朕何地之語, 以曾母之賢, 猶有投杼之事。 人君處至難之地, 多膚受之讒, 能脫於此者鮮矣。 皇兄若如曾母之投杼, 予豈有今日乎? 汝必以事予之心, 事我皇兄, 辛丑冬以後事, 活看可也。" 又曰: "予入太廟, 輒誦鞠躬如也之句, 氣舒而不知憊, 可見聖人之訓有助於人。 慈殿入侍之時, 汝亦宜誦此句也。" 又曰: "戶外有二屨, 聲聞則入, 聲不聞則不入, 此不過節目間小事, 此等處省察推去, 亦可以做大事矣。" 又曰: "飮食, 一時之滋味, 學問, 一生之滋味, 飽而無滯者, 惟學爲然也。" 又曰: "予於常時, 必跪坐不敢箕踞。 非但學問之工, 卽我家法然也。 汝方代理, 能使八域蒼生, 咸囿於春臺之上, 則可謂風雩之氣象, 若與中官遊於後苑, 謂之浴沂, 是無異桀、紂也。" 又曰: "昔年貢獻中, 有生物則輒放後苑, 今春塘臺池中, 多尺餘之鯉矣。" 又曰: "予見蟻陣, 不忍踐踏, 且蠅蚋之沈於醬甕者, 皆拯而放之。 雖螻蟻之微猶然, 況人乎? 若於刑獄之政, 輕易處之, 則必誤矣, 愼之愼之。" 又曰: "予見飛蛾撲燈, 則思顚連溝壑之民, 施周恤之政。 汝雖遊衍之時, 常懷與蔀屋小民, 同此樂之心也。 人有以一子托之人, 猶眷眷勉飭, 況以億萬生靈, 付托於汝?" 又曰: "祛奢一節, 卽人君之先務。 予於卽位初, 亦有禁奢侈之事, 先知稼穡之艱, 然後可以節用而愛民。 汝若命烹一羊, 則弊之及於民者亦大矣。" 又曰: "人君慕少艾, 則恩衰於臣民, 紂之臣民離心, 由於耽于酒色。 予之講此於今日, 皆爲汝也。 漢 成帝臨朝如神, 而燕處與飛燕荒淫, 汝須深戒於此。" 又曰: "城門閉則言路開, 城門開則言路閉云者, 誠切當也。 開言路, 卽我祖宗朝美事, 汝須敬體。 汝過於嚴毅, 故臣下不敢批鱗, 汝宜念之。" 又曰: "萬機之煩, 潛心整理, 然後可無失着, 某日某事, 某臣某啓, 必記而置之座右, 有疑則更問於後日可也。" 又曰: "創業易, 守成難。 初雖備嘗艱難, 猶有終怠之歎, 守成便安之君, 安保其終始如一乎?" 又曰: "聶夷中春種詩, 實爲懇切, 惟彼耕夫、蠶婦之勤苦如是, 而渠不得自衣自食, 乃以奉予及汝。 思之及此, 豈忍好衣而好食, 不念蔀屋之民乎?" 又曰: "予苦心調劑, 慮朋黨之必至亡人國。 而賢邪進退, 亦關興亡, 汝須體此意而勉之。" 講訖, 又曰: "予之所以誨飭者, 卽爲國苦心。 汝於代理之初, 以立紀綱作詩, 亦出於容易之意。 作一詩而猝欲立紀綱, 其易乎? 代理後則體貌自別, 亦不必多作文字也。"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30면
- 【분류】왕실(王室) / 역사(歷史) / 정론(政論) / 농업(農業) / 윤리(倫理)
- [註 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