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41권, 영조 12년 2월 29일 계사 4/4 기사 / 1736년 청 건륭(乾隆) 1년
야대에서 윤용이 그 아버지 윤지만큼 청백리가 아니며 세도에 구애됨을 탄식하다
국역
임금이 야대(夜對)를 행하기를 마치고 선온(宣醞)하였다. 임금이 참찬관(參贊官) 윤용(尹容)의 아버지 고(故) 판서(判書) 윤지인(尹趾仁)의 청백(淸白)함이 남보다 뛰어났다 하여 칭송하고 장려하기를 그만두지 않았으며, 인해서 윤용은 사람됨이 쓸만하지만 세도(世道)에 구애되어 쓸 수 없다고 탄식하였다. 대체로 윤용의 종형(從兄) 윤연(尹筵)이 일찍이 무신년072) 역적의 초사(招辭)에 나왔으므로 세상에서 막힌 바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하교가 있었다. 이날 밤에 ‘야대가 주방보다 낫다.’는 칠언 율시(七言律詩)를 어제(御題)로 내려 입시(入侍)한 여러 신하 및 춘방(春坊)에 입직(入直)한 기성관(騎省官)에게 지어서 올리도록 명하였다.
- [註 072] 무신년 : 1728 영조 4년.
원문
영조실록41권, 영조 12년 2월 29일 계사 4/4 기사 / 1736년 청 건륭(乾隆) 1년
야대에서 윤용이 그 아버지 윤지만큼 청백리가 아니며 세도에 구애됨을 탄식하다
국역
임금이 야대(夜對)를 행하기를 마치고 선온(宣醞)하였다. 임금이 참찬관(參贊官) 윤용(尹容)의 아버지 고(故) 판서(判書) 윤지인(尹趾仁)의 청백(淸白)함이 남보다 뛰어났다 하여 칭송하고 장려하기를 그만두지 않았으며, 인해서 윤용은 사람됨이 쓸만하지만 세도(世道)에 구애되어 쓸 수 없다고 탄식하였다. 대체로 윤용의 종형(從兄) 윤연(尹筵)이 일찍이 무신년072) 역적의 초사(招辭)에 나왔으므로 세상에서 막힌 바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하교가 있었다. 이날 밤에 ‘야대가 주방보다 낫다.’는 칠언 율시(七言律詩)를 어제(御題)로 내려 입시(入侍)한 여러 신하 및 춘방(春坊)에 입직(入直)한 기성관(騎省官)에게 지어서 올리도록 명하였다.
- [註 072] 무신년 : 1728 영조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