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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33권, 영조 9년 2월 25일 정축 1번째기사 1733년 청 옹정(雍正) 11년

영남 사람인 정랑 김오응 등이 상소하여 영남의 인재등용에 편견없기를 청하다

영남 사람인 정랑(正郞) 김오응(金五應)·감찰(監察) 장위항(張緯恒)·전적(典籍) 이세후(李世垕)·훈도(訓導) 박시태(朴時泰)·직장(直長) 정중기(鄭重器)·저작(著作) 김극령(金極齡)·사록(司錄) 정권(鄭權)·학정(學正) 성헌조(成憲祖)·부정자(副正字) 이권(李權) 등이 연명(聯名)하여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삼가 듣건대, 연신(筵臣)들이 영남(嶺南)의 일을 진달했다 하는데, 이는 대개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는 대처(對處)하기 어렵다고 하고, 풍원군(豐原君) 조현명(趙顯命)은 천하의 일에 사변(事變)은 알기가 어려우니, 마땅히 진정시킬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영남이 어찌하여 대처하기가 어려우며 또한 어떤 모양의 사변(事變)이 알기 어려운 것이 있기에 진정시키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는 아마도 흉역(凶逆)의 무리인 정희량(鄭希亮)·조성좌(曹聖佐)가 출생하였기 때문에 영남 사람을 다 의심하는 것이 아닌지요? 역적 정희량안음(安陰)에 살았고 역적 조성좌합천(陜川)에서 출생하였는데, 여기는 곧 낙동강의 오른쪽 궁벽한 고을로서 정인홍(鄭仁弘)이 악취(惡臭)를 남긴 곳입니다. 대개 일종(一種)의 잘못된 기운이 그 중간에 뭉쳐서 이렇게 흉악한 무리를 출생시켰던 것입니다. 그 변란이 처음 발생했을 적에 여러 고을의 인사(人士)들이 앞을 다투어 의병(義兵)을 일으켜 종이로 만든 기(旗)와 나무 장대를 가지고 곳곳에서 단속을 하였으니, 또한 그 일도(一道)의 충의(忠義)로운 기개(氣槪)가 일찍이 없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희량조성좌가 흉역 행위를 한 것은 한줄기의 맥(脈)이 이어져 온 곳은 따로 있으나 영남 지역의 인심(人心)은 진실로 변함이 없었으니, 무슨 처치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며 무슨 사변이 알기 어려운 것이 있기에 나라의 진정시키는 대책을 허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번의 선발하여 등용하겠다는 청은 사실상 영남 사람을 돌보아 아낀 것도 아니며 또한 나라에 수용(需用)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다만 인심이 안정되지 못함을 염려하여 얽매어두는 방법을 베풀기 위한 것뿐이니, 다만 이적(夷狄)을 대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영남 사람들이 비록 다른 장점은 없으나 그래도 염치와 의리의 귀중한 것을 대략은 알고 있으므로 백의(白衣)로 조령(鳥嶺)을 넘어가는 것을 예로부터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115) 그런데 어찌 부질없이 의도적인 미끼를 던져서 도리어 무심(無心)한 물고기를 유혹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속히 두 신하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것과 알기가 어렵다고 한 원인을 자세히 진달하게 하고, 인하여 엄중하게 사실을 규명하게 해서 충신(忠信)과 역적(逆賊)을 명백히 분변해서 온 도(道)의 사람으로 하여금 남이 모르는 죄과(罪科)에 모두 돌아가지 않도록 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지난번 두 재신(宰臣)이 진달한 것 중에 이른바 대처하기 어렵다고 한 것은 그 지역 사람의 성품이 고집스러움을 가리킨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이른바 알기가 어렵다는 것은 세상의 일을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영남은 나라의 근본이 되는 지역이므로 평소의 생각에도 늘 잊지 않고 있는데,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대들의 견해는 어찌 그렇게 지나친가? 그대들의 이번 일은 내가 영남 사람을 대우한 것이 성의가 얕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세도(世道)가 시끄러운 때여서 자세히 효유(曉諭)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대들이 지나치게 의심하는 마음을 시원스럽게 열어주는 것이니, 굳이 번거롭게 따지다가 도리어 스스로 임금과 사이가 막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33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3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변란-정변(政變) / 인사(人事)

  • [註 115]
    백의(白衣)로 조령(鳥嶺)을 넘어가는 것을 예로부터 부끄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 영남(嶺南)의 사람들이 서울에 과거보러 갔다가 합격하지 못하고 그냥 조령을 넘어오는 것을 수치로 여겨 학문을 열심히 하였다는 데서 온 말. 백의(白衣)는 벼슬하지 못한 사람.

○丁丑/嶺南人正郞金五應、監察張緯恒、典籍李世垕、訓導朴時泰、直長鄭重器、著作金極齡、司錄鄭權、學正成憲祖、副正字李權等聯名上疏, 略曰:

伏聞筵臣以嶺南事陳達, 蓋甄拔調用之意, 而靈城君 朴文秀以爲難處, 豐原君 趙顯命以爲天下之事變難知, 當爲鎭定之道。 未知吾嶺何如而難處, 亦有何樣事變之難知, 而乃欲鎭定之耶? 無乃以凶逆希亮聖佐之出, 而盡疑嶺南人耶? 賊安陰, 賊陜川, 卽江右之僻邑, 而仁弘遺臭之地也。 蓋有一種盭氣, 停蓄其間, 生出此梟獍之徒。 當其變生之初, 列郡人士, 爭先倡義, 紙旗木竿, 在在團束, 亦可見一路忠義之氣, 未嘗亡也。 然則之爲逆爲凶, 自有一脈帶來處, 而南土人心, 固自若也。 有何難處, 有何事變之難知, 而可以費國家鎭定之策耶? 是甄拔調用之請, 非爲顧藉於嶺人也, 非欲需用於國家也。 特慮人心之靡定, 欲施羈縻之術而已, 直與待夷狄者奚擇焉? 嶺人雖無他長, 粗識廉義之可䙡, 白衣踰嶺, 從古爲恥。 豈可謾投有心之餌, 反誘無心之魚耶? 伏乞亟命兩臣, 詳陳某難處難知之端, 仍令嚴加究覈, 夬辨忠逆, 無使一道之人, 盡歸暗昧之科。

批曰: "頃者兩宰臣所達中, 所謂難處, 不過鄕性之固執, 所謂難知, 天下之事, 未可預料。 嶺南則根本之地, 勿忘于恒時之意, 豈有他意, 而爾等之看得, 何其過也? 爾等此擧, 無乃由於予待嶺南誠淺之致? 世道嘵嘵之時, 不可不詳曉, 故快開爾等過疑之心, 須勿煩辨, 反自阻於君父。"


  • 【태백산사고본】 25책 33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3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변란-정변(政變)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