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중추부사 문순공 권상하의 졸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권상하(權尙夏)가 청풍(淸風)의 시골 집에서 졸(卒)하였다. 부음(訃音)이 들리니 임금이 애도의 윤음(綸音)을 내리고 해조(該曹)로 하여금 예장(禮葬)케 하였으며, 또 관판(棺板)과 제수(祭需)도 지급케 하고 본도(本道)로 하여금 3년을 한하여 그대로 월름(月廩)을 지급케 하였다. 권상하는 어려서부터 명유(名儒)인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의 문하에 출입하였는데, 풍의(風儀)가 아름답고 언론이 좋아 성균관(成均館)에 유학할 때부터 이름이 있었다. 송시열이 윤증(尹拯)과 서로 절교하게 되자 문인 중에 후사(後事)를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급속하게 추허(推許)하여 송시열이 별세할 때에는 매우 은근한 부탁을 받았었다. 갑술년397) 이후에는 그 문도(門徒)들이 더욱 서로 추중(推重)하였고 조정에서도 유현(儒賢)으로 대접하였으며, 여러 번 징초(徵招)에 응하여 마침내 대배(大拜)398) 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권상하는 학문이 정심(精深)하지 못하고 주워모아 외고 말하는 것이 다만 송시열의 여서(餘緖) 뿐이어서 이 때문에 김창협(金昌協) 형제(兄弟)가 매우 경멸하였다. 숙종(肅宗)이 온천(溫泉)에 거동할 때에 권상하는 좌찬성(左贊成)으로 조정에 나왔는데, 임금에게 말한 바가 성학(聖學)을 권면하고 치도(治道)를 도울 만한 것이 없고 다만 송시열이 항상 말한 바 ‘천지간(天地間)에는 오직 「직(直)」자 한 글자만이 있을 뿐이다.’와 ‘대의(大義)를 위하여 설치(雪耻)를 하여야 한다.’는 것뿐이어서 사람들이 모두 듣고 비웃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72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庚寅/判中樞府事權尙夏卒于淸風之里居。 訃聞, 上下隱綸, 令該曹禮葬, 且給棺板、祭需, 令本道, 限三年仍致月廩。 尙夏少出入名儒宋時烈、宋浚吉之門, 美風儀好言論, 遊庠學有名。 及時烈與尹拯相絶, 患門人無堪托後事者, 亟推許之, 臨歿, 付授甚勤。 甲戌以後, 其徒益相推重, 朝廷亦待以儒賢, 遂屢膺徵招, 卒至大拜。 然尙夏學術不精深, 所掇拾誦說者, 特時烈之緖餘。 以是金昌協兄弟, 甚輕之。 肅宗幸溫泉, 尙夏以左贊成造朝, 所言於上者, 無可以勉聖學輔治道, 只是時烈所恒言, ‘天地間惟一直字。’ 及 ‘復雪大義而已。’ 人皆聞而笑之。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72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