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부사 유상운의 졸기
판부사(判府事) 유상운(柳尙雲)이 졸(卒)하였다. 유상운은 한미(寒微)한 처지에서 스스로 분발하여 문학(文學)과 재주로 경상(卿相)에까지 이르렀다. 국계(國計)를 주관함에 있어서는 사정에 곡진(曲盡)하여 사람들이 참다운 탁지(度支)라고 일컬었고, 청간(淸簡)한 한 절조(節操)는 비록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한 모두 탄복하였다. 갑술년012) 에 이르러 남구만(南九萬)을 도와 깊이 먼 앞날을 염려하였는데, 마침내 당인(黨人)들이 원수처럼 미워하는 바 되어 여러 차례 해독(害毒)을 입었고, 무함하고 헐뜯는 말이 죽은 뒤에까지 미치며 오원(奧援)이 있었다는 설이 터무니 없이 나타나니, 식자들이 세도(世道)를 위해 개탄하였다. 그러나 경화(更化)하던 처음에 전조(銓曹)의 장관(長官)이 되어 능히 공도(公道)를 넓혀 퇴폐한 습속을 바로잡지 못하였으므로, 사류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사신은 말한다. "유상운은 조정에서는 강명(剛明)하고 과감한 조행(操行)이 있었고, 집에서는 청백(淸白)한 지절(志節)이 있었다. 국면(局面)이 여러 차례 바뀌어 몸은 여러 사람의 미움을 받았으나, 일을 맡아서는 용감하게 결정하여 지론(持論)이 구차스럽지 아니하였으므로, 스스로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나가서는 큰 도(道)를 안찰(按察)하고 들어와서는 중요한 자리에 있었지만, 집안 사람들의 생활을 돌보지 않았고 자신이 죽은 뒤에는 상자 속에 남은 옷가지가 없었으니, 이 또한 남보다 뛰어나 미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다만 갑술년의 처음에 남구만과 더불어 같이 나랏일을 하며 깊이 먼 앞날을 염려한 것이 도리어 식자들이 비난하는 바 되어 이로써 자못 사류의 마음을 잃었다. 더욱이 신사년013) 의 한 상소는 시기(時期)에 뒤짐을 모면하지 못하여 마침내 좋아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구실로 삼는 자료가 되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생각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286면
- 【분류】인물(人物)
○壬午/判府事柳尙運卒。 尙運, 奮身寒遠, 以文學、才諝, 自致卿相。 主國計, 曲盡事情, 人稱眞度支, 淸簡一節, 雖異己者, 亦皆歎服。 至甲戌右南九萬深長慮, 遂爲黨人所仇嫉, 屢中毒螫, 誣詆之言, 至及身後, 奧援之說, 創出白地, 識者爲世道嘅然。 然長銓於更化之初, 不能大恢公道, 以矯弊俗, 士流惜之。
【史臣曰: "尙運, 立朝多剛果之操, 居家有淸白之節。 局面屢變, 身居睢盱, 而當事勇決, 持論不苟, 自有不可奪者。 出按雄藩, 入處要津, 而不爲家人産業, 身歿之後, 篋無餘衣, 斯亦卓乎難及, 而第當甲戌初, 與南九萬, 共爲國事, 深長之慮, 乃反爲識者之所非, 以此頗失士流之心。 況辛巳一疏, 未免後時, 終爲不悅者藉口之資, 人咸惜之。"】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286면
- 【분류】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