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대왕 시책문(諡冊文)
시책문(諡冊文)에 이르기를,
"삼가 생각건대, 외롭고 걱정하며 상중에 있으니, 애통을 극진히 하는 정성이 바야흐로 깊습니다. 광대하여 형용하기 어려우나 절혜(節惠)092) 의 전장(典章)을 이에 거행하나이다. 어찌 능히 태양을 그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스스로 하늘에 부르짖을 뿐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는 덕(德)은 백왕(百王)에 뛰어나시고 도(道)는 천성(千聖)에 전하셨습니다. 광휘는 사방에 미치어 해와 달처럼 환하게 비치시고, 은택은 군생(群生)에 흡족하시어 하늘과 땅처럼 주었습니다. 대개 이처럼 공렬(功烈)이 높고 빛남은 존양(存養)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생각건대, 한가롭고 물러가 쉬는 가운데서도 신명(神明)을 공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고 조처를 할 때는 강물이 터져 쏟아지듯 하였습니다. 예(禮)를 다하고 정성[誠]을 다하여 천승(千乘)의 제후(諸侯)로서 증자(曾子)·민자건(閔字騫)의 행실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가정을 화목하게 하신, 이남(二南)093) 이 바로 풍화(風化)의 근원이었습니다. 약(禴)094) ·사(祠)095) ·증(烝)096) ·상(嘗)097) 을 경건히 지내 선조(先祖)를 받들매 효도를 생각하셨고, 환(鱞)·과(寡)·고(孤)·독(獨)을 구휼하여 인정(仁政)을 베푸셨습니다. 폐백을 갖추어서 구원(丘園)의 어진이를 초치(招致)하셨고, 경연(經筵)을 열어서 성리(性理)의 학문을 강론하셨습니다. 배와 물의 좋은 비유를 걸어 놓으니, 왕(王)의 말씀이 빛나기가 단청(丹靑) 같았으며, 농사짓는 일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옛적의 가르침을 병장(屛障)에 나열하셨습니다. 요역(徭役)을 가볍게 하고 부세(賦稅)을 박하게 하며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백성의 식생활(食生活)이었습니다. 상선(常膳)을 줄이고 음악을 중지하며 천재(天災)에 대해 아주 근신하셨습니다. 검소함은 이미 궁실(宮室)을 낮게 짓는 데서 나타났으니, 우왕(禹王)은 무어라 나무랄 것이 없었으며, 덕은 남의 선(善)을 도와주는 것보다 더 거룩함이 없으니, 순제(舜帝)는 위대함이 있습니다. 어찌 다만 다스림이 일시(一時)에 이룩되었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도(道)를 삼대(三代)에 비할 수 있겠습니다. 돌아보건대, 우리 동방(東邦)에 6, 7인의 성인(聖人)이 태어나셨지만 아직도 제도에 미비한 점이 많았었는데, 보위(寶位)에 계신 지 50년 동안 이에 의문(儀文)이 크게 구비됨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태조(太祖)의 휘칭(徽稱)을 추가로 올리니 존주(尊周)의 의리가 밝아졌으며, 조주(祧主)098) 의 묘호(廟號)를 처음으로 올리니 먼 조상을 추존하는 덕(德)이 두터웠습니다. 건단(乾斷)을 넓혀서 장릉(莊陵)의 지위를 회복하고, 여러 사람의 의논을 모아 신비(愼妃)의 사당을 세웠습니다. 적위(翟禕)099) 가 다시 복위된 것이야말로 실로 간책(簡策)에서 드물게 보는 바입니다. 이륜(彝倫)이 다시 바로잡히니 성인(聖人)의 행하시는 바가 보통보다 뛰어난 것이었으며, 경명(景命)100) 이 유신(維新)되니 사직(社稷)의 영장(靈長)함이 힘입게 되었습니다. 어진이를 높이고 도(道)를 보위하니 시비(是非)가 사문(斯文)에 정해졌으며, 절의를 표창하고 충절에 정려(旌閭)하니, 풍교(風敎)가 말속(末俗)에 우뚝하셨습니다. 성대한 법도는 이미 고금에 높았고 대의(大義)는 다시 《춘추(春秋)》의 의리에 떨쳐졌습니다. 한 언덕의 황단(皇壇)에 규벽(圭璧)101) 을 몸소 올리시니 만세(萬世)에 동국(東國)이 강상(綱常)을 홀로 부지(扶持)하였습니다. 쉬지 않는 건강함은 건도(乾道)를 본받아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사에 부지런히 노고하셨는데, 뜻밖에 병이 빌미가 되어 오랜 세월 동안 침면(沈綿)하셨습니다. 말년(末年)의 조장(調將)하실 때에 미쳐서도 오히려 대무(大務)를 관리하셨습니다.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어 지극한 덕화를 제봉(提封)102) 에 펼치셨고, 남극(南極)103) 이 상서를 나타내어 선대(先代)의 아름다움을 기사(耆社)에서 이으셨습니다. 태산(泰山)이 허물어지고 북극성이 자리를 옮길 때까지 수를 만년(萬年)토록 누리시기를 기원하였는데,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져 큰 슬픔을 갑자기 오늘 입었습니다. 어찌하여 하늘은 슬픔을 이다지도 참혹하게 내리십니까? 원통하게도 대덕(大德)은 반드시 수한다는 것이 증험이 없습니다. 오른쪽을 비워두라는 치명(治命)이 정녕하였으니, 주공(周公)의 부장(祔葬)의 제도를 따르신 것이며, 최복을 입는 신하의 복제(服制)를 단정(斷定)하셨으니 한 문제(漢文帝)의 단상(短喪)의 잘못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禮)의 지극함이며 정(情)의 합당한 것이니, 아! 앞에도 짝할 이 없고, 뒤에도 이을 이 없겠습니다. 생각건대, 보잘것없는 제가 이런 임금의 상(喪)을 만났습니다. 천안(天顔)과 영원히 이별하게 되니 궁검(弓劍)을 안은 채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했는데, 홍렬(鴻烈)을 받들어 드날리는 것을 어찌 문자(文字)로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아름다움을 돌려드리는 정성을 받들어 이에 이름을 높이는 전례를 올리나이다. 삼가 신(臣) 영의정(領議政) 김창집(金昌集)을 보내어 시호(諡號)를 올리기를, ‘장문 헌무 경명 원효(章文憲武敬明元孝)’라 하고, 묘호(廟號)를 숙종(肅宗)이라 하나이다. 우러러 바라건대, 충감(冲鑑)은 굽어 흠향하시어 종덕(宗德)·조공(祖功)은 경광(耿光)을 전성(前聖)에 짝하시고, 문소(文昭)·무목(武穆)은 큰 덕을 후손에게 끼쳐주소서. 아! 슬픕니다. 삼가 말씀드리나이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이관명(李觀命)이 짓고, 우의정(右議政) 조태구(趙泰耉)가 썼다.
- 【태백산사고본】 73책 65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0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註 092]절혜(節惠) : 시호(諡號)를 올리는 일.
- [註 093]
이남(二南) :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두 편명. 주남은 주나라 문왕의 후비가 수신 제가(修身齊家)한 일을 노래한 것이고, 소남은 남국(南國)의 제후(諸侯)가 후비의 덕화(德化)를 입은 것은 읊은 것임.- [註 094]
약(禴) : 여름 제사.- [註 095]
사(祠) : 봄 제사.- [註 096]
증(烝) : 겨울 제사.- [註 097]
상(嘗) : 가을 제사.- [註 098]
조주(祧主) : 먼 조상의 신주(神主).- [註 099]
적위(翟禕) : 중전.- [註 100]
경명(景命) : 하늘의 큰 명.- [註 101]
규벽(圭璧) : 제사지낼 때 신(神)에게 바치는 구슬.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의 운한장(雲漢章)에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가뭄을 걱정하여 천지와 산천에 자주 제사를 지내다 보니 구슬이 다 없어졌다는 데서 비롯된 말임.- [註 102]
제봉(提封) : 제후(諸侯)의 봉지(封地).- [註 103]
남극(南極) : 하늘의 남극(南極) 가까이에 있는 남극 노인성(南極老人星)을 말함. 사람의 수명을 맡은 별이라 함.○諡冊文曰:
竊以, 煢煢在疚, 致哀之誠方深; 蕩蕩難名, 節惠之章斯擧。 曷能盡日? 只自號天。 恭惟大行大王, 德冠百王, 道傳千聖。 光被四表, 如日月之昭臨; 澤洽群生, 若天地之覆燾。 蓋此功烈之嵬煥, 罔非存養之做成。 惟燕(間)〔閒〕蠖濩之中, 神明對越, 故事爲施措之際, 江河沛然。 盡禮盡誠, 千乘躬曾、閔之行; 宜家宜室, 二南正風化之原。 虔禴、祠、蒸、嘗, 奉先思孝; 恤鰥、寡、孤、獨, 發政施仁。 束帛起丘園之賢, 開筵講性理之學。 獨舟水之善喩, 王言炳若丹靑; 念稼穡之惟艱, 古訓列諸屛障。 輕傜薄賦, 而所重者民食; 減膳撤樂, 而克謹乎天災。 儉已著於卑宮, 禹無間矣; 德莫盛於與善, 舜有大焉。 奚但治成於一時? 抑可道此於三代。 顧我東六七聖作, 尙多制度之未遑; 臨寶位五十年間, 聿覩儀文之大備。 太祖之徽稱加上, 尊周義明; 祧主之廟號肇成, 追遠德厚。 廓乾斷而復莊陵之位, 集衆議而立愼妃之祠。 至若翟禕之重光, 實是簡策之罕覯。 彝倫再正, 聖人作爲之出常; 景命維新, 社稷靈長之有賴。 崇賢衛道, 是非定於斯文; 表節旌忠, 風敎聳於末俗。 盛範旣卓於今古, 大義更闡於《春秋》。 一丘皇壇, 圭璧躬薦; 萬世東國, 綱常獨扶。 不息之健體乾, 幾宵旰之勤苦; 無妄之疾爲祟, 經歲月之沈綿。 逮末年之調將, 猶大務之管攝。 北辰居所, 覃至化於提封; 南極呈祥, 繼先美於耆社。 山摧斗捩, 睿算方祝於萬年; 地拆天崩, 巨創遽罹於今日。 胡皇穹降割之斯酷? 痛大德必壽之無徵。 虛右之治命丁寧, 遵周公祔葬之制; 受縗之臣服斷定, 斥漢 文短喪之非。 斯乃禮之至而情之宜, 猗歟前無偶而後無繼。 念予眇末, 遭玆閔凶。 永隔天顔, 抱弓劍而踊擗; 奉揚鴻烈, 豈文字之形容? 敢將歸美之忱, 式薦尊名之典。 謹遣臣領議政金昌集, 上謚曰, 章文憲武敬明元孝, 廟號肅宗。 仰冀沖鑑, 俯垂明歆。 宗德、祖功, 配耿光於前聖; 文昭、武穆, 申景鑠於後昆。 嗚呼哀哉! 謹言。
- 【태백산사고본】 73책 65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0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註 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