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대왕 애책문(哀冊文)
애책문(哀冊文)에 이르기를,
"유세차(維歲次) 경자년 6월(六月) 병신(丙申) 삭(朔) 초8일 계묘(癸卯)에, 숙종 현의 광륜 예성 영렬 장문 헌무 경명 원효 대왕(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께서 경덕궁(慶德宮)의 정침(正寢)에서 훙(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해 겨울 10월 20일 계축(癸丑)에 능소(陵所)로 천좌(遷座)065) 하여 21일 갑인(甲寅)에 명릉(明陵)에 영천(永遷)하니, 예(禮)에 따른 것입니다.
좋은 시일의 기일(期日)이 당도하매 청루(淸漏)는 새벽을 알리고 용황(龍㡛)066) 을 막 걷으니 흰 말[驄馭]이 길을 경계합니다. 신위(蜃衞)067) 는 삼엄하게 대열을 이루었고 운정(雲旌)068) 은 나부끼며 앞을 인도합니다. 보연(黼筵)069) 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주구(珠丘)070) 의 높은 산을 향합니다. 많은 백성들이 너무나 슬퍼 비오듯 눈물을 흘리고 모든 신령들은 엄숙하게 바람처럼 울부짖습니다. 다만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마음이 무너지고 간장이 끊어져 하늘에 부르짖고 손으로 땅을 칩니다. 일월(日月)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지만, 위안(威顔)을 아득히 뫼시는 듯합니다. 이에 난대(蘭臺)071) 에 윤음(綸音)을 내려 옥자(玉字)072) 에 양휘(揚徽)하게 하나이다. 그 사(辭)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 위대하신 우리 임금이시여 하늘이 내신 예지(睿智)였습니다. 동방에서 태어나 보위에 오르시어 하늘을 받들고 강기(綱紀)에 따르셨습니다. 문(文)을 날줄로 무(武)를 씨줄로 하였으며, 옥(玉)으로 펼치시고 금(金)으로 거두시었습니다. 덕은 융성하고 다스림은 극진하였으나 스스로 자만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지런히 불러 물으시고, 날 새기 전에 일어나 옷 입고 해진 후에 늦게 저녁을 드셨습니다. 정성을 다해 어진이를 예우(禮遇)하시고, 크게 유교(儒敎)를 천명(闡明)하셨습니다. 사(邪)·정(正)의 분변이 밝기가 촛불로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정사는 외로운 사람을 돌보기를 먼저하고 효도로 늙은이를 공경하셨습니다. 교화는 조정에서 근본하여 모두가 사양하는 마음을 일으키셨습니다. 나라를 함께 다스릴 사람은 오직 현량(賢良)뿐이니, 번번이 권장(勸奬)을 더하셨습니다. 농사일을 밝혀 재앙을 막고, 재물을 저축하여 흉년을 구휼하셨습니다. 간(諫)하는 이에게 상(賞)을 내리고 직언하는 이에겐 정려(旌閭)하셨으며, 사치를 제거하고 검소함을 밝히셨습니다. 허물을 고치고 폐해를 개혁하기를 우레나 번개처럼 빠르게 하셨습니다. 나라 안이 다스려져 편안한 지가 거의 50년이나 되었습니다. 교화가 행해지고 풍속이 아름다와 거의 예악(禮樂)의 다스림을 이룩하셨습니다. 계책은 이연(貽燕)을 생각하고, 뜻은 계술(繼述)을 우선으로 하셨습니다. 조종(祖宗)께서도 미처 하지 못하신 것을 차례대로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건원릉(健元陵)073) 에 시호(諡號)를 추가하신 것은 왕(王)을 높이는 홍규(弘規)였습니다. 단종(端宗)을 추복(追復)하신 것은 전열(前烈)에 빛이 있습니다. 곤의(壼儀)를 다시 바로잡고 황단(皇壇)을 창설하셨습니다. 건(乾)·곤(坤)의 위치가 바로잡히고 춘추(春秋)의 의리가 밝아졌습니다. 휘호(徽號)를 올리자 진심으로 겸양(謙讓)하셨습니다. 기사(耆社)에 임하신 것은 바로 조무(祖武)074) 에 따르신 것입니다. 소대(昭代)의 아름다운 전례이고 태평(太平)의 거룩한 행사였습니다. 선정(先正)을 표장(表奬)하여 성무(聖廡)에 철식(腏食)케 하였습니다. 송조(宋朝)의 6현(六賢)을 10철(十哲)과 반열이 비등(比等)하게 하셨습니다. 이 도(道)는 빛을 더하여 지난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바였습니다. 요(堯)의 인자함으로 정사에 수고로움을 느끼시어 세자에게 감무(監撫)075) 를 명하셨습니다. 거듭거듭 경계하심이 있으시어 시비(是非)가 결정이 되었습니다. 공통적으로 3년복을 입는 것을 고례(古禮)로 회복하신 것은 실로 치명(治命)076) 이 있었습니다. 한(漢)·당(唐)의 비루한 제도를 깨끗이 씻어버려 올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무릇 그 시행하고 조처하신 것들이 지난 역사에서 누가 짝할 수 있겠습니까? 어진이는 반드시 장수를 누리는 것이니 만년(萬年)이나 사시기를 이에 기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 병에 걸려 오랫동안 차도를 보지 못하신 것입니까? 종사(宗社)와 산천(山川)에 기도를 올리지 않은 신(神)이 없었습니다.
아! 원귀(元龜)077) 는 효험이 없고, 어느새 말음(末音)078) 이 이미 선포되었습니다. 우연(虞淵)079) 에서 해가 지는 것에 놀라고 용염(龍髥)080) 을 붙잡지 못하는 것이 원통합니다. 아! 슬픕니다. 대자리를 거듭 두르고 철의(綴衣)를 이에 진열합니다. 금해(金薤)081) 에는 이슬이 차갑고, 옥좌(玉座)에는 먼지가 끼었습니다. 주류(珠旒)082) 를 우러러 바라보니 어디에 계십니까? 자기(紫氣)를 타고서 멀리 떠나셨습니다. 오월(五月)083) 이란 정해진 제도가 서글프고 삼조(三朝)084) 의 남은 사모가 애닯습니다. 아! 슬픕니다. 수원(壽原)085) 을 미리 골랐으니, 선천(先天)이 어기지 않았습니다. 용부(龍阜)086) 는 길지(吉地)에 부합되고 상설(象設)087) 은 의식에 따랐습니다. 옥(玉) 술잔 들어서 천이(遷移)를 고하고, 도문(都門)을 나서매 길이 멉니다. 선장(仙仗)088) 은 담담하게 빛이 나지 않은 채 대수(大隧)089) 를 향해 갑니다. 해와 달과 별은 어둡고, 하늘과 땅은 처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짙은 구름은 막막(漠漠)하고 깊은 밤은 길고 깁니다. 갑자기 칼과 신[劍舃]090) 을 끝내 묻으니, 한스럽게 깃발만 공연히 돌아옵니다. 아! 슬픕니다. 형체가 있으면 반드시 죽은 것은 성인(聖人)이나 범인(凡人)이나 똑같습니다. 구령(九齡)091) 을 꿈꾼 것이 효험이 없고, 아득한 천도(天道)는 믿을 것이 못됩니다. 비록 대모(大暮)와 함께 잠들지만 진실로 영원한 세대에 불후(不朽)할 것입니다. 대덕(大德)은 광대하여 형용하기 어렵고 대업(大業)은 드높아 서술하기 어렵습니다. 유범(遺範)은 청사[靑編]에서 징험할 수 있고 영원토록 하늘에 짝하실 것입니다. 아! 슬픕니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 정호(鄭澔)가 짓고 공조 판서 유명웅(兪命雄)이 썼다.
- 【태백산사고본】 73책 65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0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註 065]천좌(遷座) : 임금의 자리니 신불(神佛)의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김.
- [註 066]
용황(龍㡛) : 용(龍)을 그려넣은 관(棺)을 덮는 장식. 황(㡛)은 덮는다는 뜻으로 곁에 있으면 유(帷)라 하고 위에 덮으면 황(㡛)이라 함.- [註 067]
신위(蜃衞) : 상여.- [註 068]
운정(雲旌) : 구름 무늬가 있는 기(旗).- [註 069]
보연(黼筵) : 흑색(黑色)과 백색(白色)으로 선을 둘러 장식하여 만든 좌구(坐具)로 임금이 사용하였음.- [註 070]
주구(珠丘) : 주옥(珠玉)을 쌓아서 만든 언덕. 순제(舜帝)를 창오(蒼梧)의 들녁에 장사지냈는데 그 뒤에 어떤 새가 거기 와서 청사주(靑砂珠)를 물어다가 쌓아서 언덕을 만들었으므로, 그 이름을 주구(珠丘)라 하였다 함.- [註 071]
난대(蘭臺) : 한(漢)나라 때 궁중(宮中)의 장서(藏書)하던 곳. 어사 중승(御史中丞)으로 하여금 관장토록 하였는데 뒤에 다시 난대 영사(蘭臺令史)를 두어 도적(圖籍)을 전교(典校)하고 문서(文書)를 다스리게 하였음. 곧 문장을 관장하는 곳.- [註 072]
옥자(玉字) : 아름다운 문자(文字).- [註 073]
건원릉(健元陵) : 태조(太祖)의 능.- [註 074]
조무(祖武) : 선인(先人)의 유적(遺蹟).- [註 075]
감무(監撫) : 국사를 감독하고 군사(軍事)를 돌봄.- [註 076]
치명(治命) : 병이 들지 않았을 때의 명령.- [註 077]
원귀(元龜) : 옛날에 점치는 데 사용하던 큰 거북.- [註 078]
말음(末音) : 임종(臨終)의 유언(遺言).- [註 079]
우연(虞淵) : 해지는 곳.- [註 080]
용염(龍髥) : 황제(黃帝)가 수산(首山)의 동(銅)을 채취하여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을 주조하였는데, 솥이 완성되자 용(龍)이 긴 수염을 드리워 내려와 황제를 영접하였음. 황제가 올라타고 가자 소신(小臣)들이 모두 용의 수염을 붙잡았으나 수염이 빠져 떨어졌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임금의 죽음에 따르고자 하나, 따르지 못함을 뜻함.- [註 081]
금해(金薤) : 서체(書體)의 이름.- [註 082]
주류(珠旒) : 면류관의 드리운 구슬.- [註 083]
오월(五月) : 제후(諸侯)가 죽은 지 5개월이 되면 장사지내는 것을 가리킴.- [註 084]
삼조(三朝) : 하루 세 번 문안 드리는 것.- [註 085]
수원(壽原) : 임금의 장지(葬地).- [註 086]
용부(龍阜) : 임금의 무덤.- [註 087]
상설(象設) : 무덤 앞에 있는 설비.- [註 088]
선장(仙仗) : 임금의 의장(儀仗).- [註 089]
대수(大隧) : 무덤으로 가는 길.- [註 090]
칼과 신[劍舃] : 황제(黃帝)가 스스로 죽을 날을 택하고 여러 신하들과 헤어지자, 교산(橋山)에 장사지냈는데, 산이 무너지면서 텅빈 관(棺)이 나타났고 그 속에는 오로지 황제의 칼과 신만 남아 있었다는 고사. 곧 사람의 죽음을 뜻함.- [註 091]
구령(九齡) : 90세를 말함. 옛적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제(上帝)가 이빨 아홉 개를 주는 꿈을 꾸었는데, 문왕(文王)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너의 수명(壽命)이 90세임을 나타낸 것이다.’고 하였음.○哀冊文曰:
維歲次庚子六日丙申朔, 初八日癸卯, 肅宗 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 薨于慶德宮之正寢。 是年冬十月二十日癸丑, 遷座于陵所, 二十一日甲寅, 永遷于明陵, 禮也。 靈辰告期, 淸漏報曉。 龍㡛乍褰, 騩馭戒道。 蜃衛森其成列, 雲旌飄以前導。 背黼筵之靚穆, 指珠丘之岧嶢。 慘萬姓之雨泣, 儼百靈之風號。 惟我主上殿下, 崩心摧肝, 叫天擗地。 款日月之不居, 緬威顔之若侍。 爰降綸於蘭臺, 俾揚徽於玉字。 其辭曰: "於赫我后, 天錫睿智。 出震正位, 承乾順紀。 文經武緯, 玉聲金振。 德盛治臻, 不自暇滿。 孜孜延訪, 衣宵食旰。 推誠禮賢, 大闡儒敎。 邪正之辨, 皎若燭照。 政先恤孤, 孝推敬老。 化本朝廷, 濟濟興讓。 共理惟良, 輒加勸奬。 明農扞災, 儲財恤歉。 賞諫旌直, 去奢昭儉。 改過革弊, 雷厲電掣。 邦內乂安, 年乖五十。 化行俗美, 庶幾禮樂。 謨思貽燕, 志先繼述。 祖宗未遑, 次第行之。 元陵加諡, 尊王弘規。 端廟追復, 有光前烈。 壼儀復正, 皇壇創設。 乾坤位正, 春秋義明。 徽號之上, 謙讓以誠。 耆社之臨, 寔循祖武。 昭代美典, 太平盛擧。 表奬先正, 聖廡腏食。 宋朝六賢, 班視十哲。 斯道增光, 前史罕覯。 堯仁倦勤, 命嗣監撫。 申申有戒, 是非曰定。 通喪復古, 誕有治命。 漢、唐陋制, 一洗歸正。 凡厥施措, 踔古誰倂? 仁者必壽, 萬年斯祝。 云胡一疾, 久靳勿藥? 宗社、山川, 靡神不虔。 嗟元龜之罔效, 奄末音之已宣。 驚虞淵之日沈, 痛龍髯之莫攀。 嗚呼哀哉! 筍席重遶, 綴衣肆陳。 金薤露冷, 玉座塵昏。 仰珠旒兮安在? 乘紫氣兮遐擧。 嘅五月之定制, 怛三朝之餘慕。 嗚呼哀哉! 壽原前卜, 先天不違。 龍阜協吉, 象設準儀。 㪺玉斝而告遷, 出都門兮威遲。 澹仙仗之寡色, 傃大隧之幽闇。 三精兮黯黯, 二儀兮慘慘。 重雲兮漠漠, 厚夜兮曼曼。 倐劍舃之終悶, 悵旟旐之空還。 嗚呼哀哉! 有形必化, 聖凡一致。 夢九齡之無驗, 邈天道之靡恃。 雖大暮之同寐, 允不朽於永世。 蕩乎其大德之難名, 巍乎其大德之難敍。 徵靑編亏遺範, 配穹昊兮終古。 嗚呼哀哉!
- 【태백산사고본】 73책 65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0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註 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