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청 죄인 장천한·조시경 등의 공초 내용
국청 죄인 장천한(張天漢)이 다시 공초하기를,
"정빈(鄭彬)이 숙정(淑正)의 집에 가 있었을 때, 제가 과연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매우 이상하게 여겨서 정빈에게 묻기를,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가?’라고 하였더니, 정빈이 대답하기를, ‘장희재와 더불어 서로 알기 때문에 와서 숙정을 만나는 것이다.’라고 하기에, 저는 즉시 곧 일어나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추수(秋收)하는 일 때문에 농장으로 내려가 반은 서울에서 반은 시골에서 있었는데, 서울에 있을 때 가서 숙정을 만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언문(諺文) 서찰에서 ‘칭예(稱譽)했다.’라고 한 일은, 저는 전혀 그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의심스러운 단서가 있다면, 지난날 친국(親鞫)할 때에 어찌 묻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죄인 안세정(安世禎)이 다시 공초하기를,
"작은아기[者斤阿只]가 저와 숙정이 모여서 모의하였다고 하였는데, 설령 숙정과 제가 한 집에 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안팎이 이미 다르니, 자질구레한 일은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습니다. 숙정이 출가(出嫁)한 뒤에 그 남편의 집 친족들과 더불어 저주(詛呪)한 일은 오히려 혹 했을지 몰라도 작은아기가 사는 곳은 또 숙정의 집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제가 왕래한 여부를 그가 어떻게 능히 알겠습니까? 작은아기가 숙정을 투기(妬忌)하기를 마치 원수처럼 하였기 때문에, 또한 저를 미워하여 망측(罔測)한 곳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이만(金以萬) 등과 모였던 일에 있어서 김 정승의 손자와 이의징(李義徵)의 아들은 모두 반면(半面)의 친분도 없습니다. 정 내승(鄭內乘)은 비단 한 동네에 같이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민암(閔黯)의 집에 늘 있었기 때문에 민암의 집에 왕래할 때에 언제나 그와 더불어 서로 만났습니다. 그러나 김이만(金以萬)은 상놈이었으니, 제가 어찌 얼굴을 알겠습니까? 박씨 성을 가진 사람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이며, 그 사이에 모였던 사람들이 비록 많았었다고 하나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제가 숙정의 집에 갔을 때에 장희천(張熙川)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와 더불어 같이 가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기 때문에 도로 일어나 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숙정이 굳이 만류하고 저는 안정(顔情)에 구애된 데다가 또 장희천이 노여워할까 봐 염려하여, 그대로 대청으로 들어가 술 석 잔을 마시고 물러나 돌아왔습니다. 또 민장도(閔章道)가 가서 숙정을 만났던 것은 장희재와 더불어 결탁하려는 뜻이었는데, 그 뜻은 국모(國母)를 모해하는 것과 기사환국(己巳換局)의 일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숙정의 집에 모였던 일이 있은 뒤 숙정에게 뒤미처 묻기를, ‘내가 일어나 나온 뒤 너희들이 꾸민 이야기는 알지 못하겠다만 어떤 일이냐?’고 하였더니, 숙정이 ‘이것은 환국(換局)하는 일이다.’고 하기에, 제가 ‘너희들이 하는 일이 만약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화가 장차 나에게도 미칠 것이니 나는 서울에 있지 않으려고 한다.’ 하였습니다. 이어서 가족을 거두어 하향(下鄕)하였는데, 무진년377) 9월 13일에 즉시 출발하였던 것은 대개 이 말을 들은 뒤에 황공하고 불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였다. 죄인 정빈(鄭彬)과 윤순명(尹順命)은 각각 두 차례 형추(刑推)하고 신장(訊杖)이 30도(度)에 이르렀으나, 모두 전의 공초한 내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죄인 조시경(趙時炅)을 두 차례 형추하였는데, 다섯 번째의 신장에 이르자 바로 공초하기를,
"제가 곡반(哭班)에 왕래할 때 판서 오시복(吳始復)을 의막(依幕)378) 에서 만나 뵈었으나, 별달리 주고받는 말은 없었습니다. 성복(成服)하던 날 오 판서가 일을 파하고 수각교(水閣橋) 본집으로 돌아왔는데, 저도 또한 가서 뵈었더니, 저녁때라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 판서가 저에게 ‘희빈(禧嬪)이 여러 후궁들과 매한가지로 상복을 입을지의 여부를 들어서 알 수가 없다. 너는 모름지기 자세히 탐문하라.’고 하였으므로, 제가 윤보명(尹甫命)을 만났을 적에, ‘오 판서가 희빈이 상복을 입을지의 여부를 알고자 하여 나를 시켜 탐지하게 하였기 때문에 너에게 묻는 것이다. 너는 그것을 아는가?’라고 하였더니, 윤보명이 대답하기를, ‘나도 알지를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너는 모름지기 그 상복을 입을지의 여부를 자세히 탐문하라.’라고 하였더니, 윤보명이 ‘마땅히 탐지한 뒤에 너에게 가서 회보(回報)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또 윤보명에게 ‘곡반(哭班)에서 장두유(張斗維)를 만나 들으니, 「장 대장(張大將)의 집안에서 생활이 매우 곤란하여 심지어 밥그릇 따위를 내다 판다」고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오 판서의 뜻이 아니고 제가 스스로 제 뜻으로 물었던 것입니다. 또 작은아기의 집에 가서 물어본 일은 실상이 아니나, 윤보명에게 오 판서가 말한 바 ‘희빈이 상복을 입을지의 여부’를 탐문한 일은 과연 확실한 일입니다."
하였다. 국청(鞫廳)에서 아뢰기를,
"죄인 정빈과 윤순명을 재차 심문하였는데, 줄곧 형장을 참으면서 자복하지 아니하니, 청컨대 형문을 더하게 하소서. 죄인 조시경에게 재차 형문을 더하였을 때 오시복이 복제(服制)의 일을 그에게 탐문하도록 하였던 한 가지 사실을, 이미 바로 공초하였으니, 지금 우선 형문을 정지하게 하소서. 그리고 오시복을 청컨대 잡아와서 추문(推問)하게 하소서. 죄인 장천한과 안세정 등의 경우 숙정의 집에 왕래할 때에 일을 꾸민 정적(情迹)을 모두 숨기기 어려운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세정은 흉역(凶逆)의 말을 또한 그가 들은 바에 의해 그 단서를 약간 드러내고 실토하지 아니하니, 청컨대 모두 형추(刑推)하게 하소서. 죄인 애정(愛正)은 일찍이 그대로 가두어 두고 형세를 보자는 뜻으로서 계달하였는데, 당초에 비록 말한 바가 있었지만 이미 13세의 어린아이이고 이후로 다시 심문할 일도 없을 것이니, 방송(放送)함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청컨대 성상께서 재량(載量)하소서."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하고, 전교하기를,
"추국하는 것을 우선 파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35권 65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37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
○鞫廳罪人張天漢更招曰: "鄭彬之往在淑正家時, 身果爲逢着。 心甚怪之, 問於鄭彬曰: ‘汝何故來此乎?’ 彬答曰: ‘與希載相知, 故來見淑正’ 云。 身旋卽起去, 而身以秋收事, 下往二農庄, 半京半鄕, 其在京時, 往見淑正, 不是異事。 諺書稱譽事, 身全不曉其所以然。 如有一毫可疑之端, 則頃日親鞫之時, 豈有不問之理乎?" 罪人安世禎更招曰: "者斤阿只以身與淑正, 聚會謀議云, 而設令淑正與身, 同居一室, 表裏旣異, 則細瑣之事, 亦有所不知。 淑正出嫁之後, 與其夫家親屬詛呪之事, 猶或爲之, 而況者斤阿只所居, 又與淑正家相遠, 則身之往來與否, 渠何能知乎? 者斤阿只妬忌淑正, 如仇讎故, 亦嫉身驅入於罔測之地, 而與金以萬等聚會事, 金政丞孫、李義徵子, 俱無半面之分。 鄭內乘不但同居一洞, 渠長在閔黯家, 故往來閔黯家時, 每與相逢, 而以萬渠是常漢, 則身何以識面乎? 朴姓人, 亦所不知, 其間聚會者雖多, 身何以知之乎? 身往淑正家時, 逢着張熙川, 而與渠竝往, 甚爲羞恥, 故旋欲起來, 而淑正固爲挽留, 身拘於顔情, 且慮熙川之生怒, 仍入大廳, 飮三杯酒而退歸。 且閔章道之往見淑正者, 欲與希載締結之意, 而其意似在於謀害國母及己巳換局之事。 淑正家聚會之後, 追問於淑正曰: ‘吾起來之後, 汝等之綢繆說話者, 未知何事乎?’ 淑正曰: ‘此是換局事也。’ 身曰: ‘汝等所爲之事, 若不成, 則禍將及我, 我不欲在京’, 仍撤家下鄕。 戊辰九月十三日, 卽爲發行者, 蓋聞此語之後, 惶恐不安之故也。"罪人鄭彬、尹順命, 各刑推二次, 訊杖三十度, 竝前招內無加減。 罪人趙時炅刑推二次, 訊杖第五度, 直招曰: "身往來哭班之時, 進現吳判書始復於依幕, 而無他酬酢矣。 成服日, 吳判書罷歸水閣橋本家, 身又爲往見, 則夕時無人。 吳判書謂身曰: ‘禧嬪與諸後宮一體服喪與否, 不得聞知。 汝須詳探’ 云, 身逢着尹甫命, 以爲吳判書欲知禧嬪服喪與否, 使我探知, 故問於汝。 汝其知之乎?’ 甫命答曰: ‘吾未知之。’ 身曰: ‘汝必須詳問其服喪與否。’ 甫命曰: ‘當於探知後, 往汝家回報’ 云。 身又言於甫命曰: ‘哭班見張斗維聞之, 則張大將家生理艱甚, 至於賣食筒介’ 云云, 此則非吳判書之意也, 身自以己意問之。 且者斤阿只家往問事, 非實狀, 而尹甫命處, 以吳判書所言禧嬪服喪與否探問事, 果爲的實。" 鞫廳啓曰: "罪人鄭彬、尹順命, 再次訊問, 一向忍杖不服, 請加刑。 罪人趙時炅再次加刑之時, 吳始復以服制事, 使渠探問一款, 旣已直招, 今姑停刑。 吳始復請拿來推問。 罪人張天漢、安世禎等, 淑正家往來時, 綢繆情迹, 皆有所難掩, 而世禎則凶逆之言, 亦以其所聞, 微發其端, 不爲吐實, 請竝刑推。 罪人愛正, 曾以仍囚觀勢之意啓達矣, 當初雖有所言, 旣是十三歲之兒, 此後更無可問之事, 似當放送。 請上裁。" 答曰: "依啓。" 傳曰: "推鞫姑罷。"
- 【태백산사고본】 40책 35권 65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37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