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25권, 숙종 19년 4월 17일 경인 2/2 기사 / 1693년 청 강희(康熙) 32년
청백리에 기록된 고 대제학 정척의 후손들에게 급복하는 은전을 거행하게 하다
국역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부제학(副提學) 민창도(閔昌道)가 아뢰기를,
"고(故) 대제학(大提學) 정척(鄭陟)은 몸소 여섯 조정을 섬겨 청백리(淸白吏)에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자손(子孫)이 7대(代)에 걸쳐 청백리에 기록된 자가 세 사람이며 효성으로 정려(旌閭)된 자가 여섯이며, 충절(忠節)로 정려된 자가 하나이며, 열녀(烈女)로 정려된 자가 한 사람이니, 모두 11사람입니다. 그들의 구묘(丘墓)는 모두 광주(廣州) 일산(一山)의 국내(局內)에 있으니, 급복(給復)하는 은전(恩典)을 거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원문
숙종 19년 (1693) 4월 17일
숙종실록25권, 숙종 19년 4월 17일 경인 2/2 기사 / 1693년 청 강희(康熙) 32년
청백리에 기록된 고 대제학 정척의 후손들에게 급복하는 은전을 거행하게 하다
국역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부제학(副提學) 민창도(閔昌道)가 아뢰기를,
"고(故) 대제학(大提學) 정척(鄭陟)은 몸소 여섯 조정을 섬겨 청백리(淸白吏)에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자손(子孫)이 7대(代)에 걸쳐 청백리에 기록된 자가 세 사람이며 효성으로 정려(旌閭)된 자가 여섯이며, 충절(忠節)로 정려된 자가 하나이며, 열녀(烈女)로 정려된 자가 한 사람이니, 모두 11사람입니다. 그들의 구묘(丘墓)는 모두 광주(廣州) 일산(一山)의 국내(局內)에 있으니, 급복(給復)하는 은전(恩典)을 거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원문
원본
숙종 19년 (1693) 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