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 박세당이 공조 판서 김좌명을 개정할 일과 대사성 이은상의 체직을 청하는 것에 대해 인피하다
정언 박세당(朴世堂)이 인피하였는데 그 대략에,
"국가에서 인재를 가려 임용할 때에는 지극히 공정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지금 육경(六卿)에 결원이 생겨 이열(貳列)031) 에서 선발하는 때에, 아래에서 추천한 것이나 위에서 제수한 것을 보면 왕실의 지친(至親)을 대상으로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공정함을 먼저 보여 주는 도리라 하겠습니까. 신임 판서 김좌명(金佐明)은 일찍부터 재망(才望)이 있었고 오래도록 청현직(淸顯職)을 역임하였으니 품계(品階)만 걸맞는다면 이 직책에 제수한다 하더라도 안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다만 아래에서 선발해 놓으라는 명에 대해 사람들 모두가 기대하며 조정의 행동을 지켜보면서도 그중에는 경솔하게 사태를 짐작하고는 미리서부터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까지도 나왔었는데, 제목(除目)이 일단 나오고 보니 대부분이 그런 이야기들과 부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원근에서 듣고는 어찌 ‘아래에서는 위의 뜻을 맞추는 방향으로 천거했고 위에서도 치우치게 사정(私情)을 두어 임명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또 대사성의 임무야말로 지극히 중요한 관련이 있는 만큼, 학식이 있고 통명하며 단아하고 정중한 인물이 아니면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은상(李殷相)은 문재(文才)는 있지만 선비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일을 거론하여 동료에게 통지하면서 재삼 왕복했으나 끝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무기력한 탓으로 경시를 당했으니 어떻게 감히 그대로 있겠습니까. 신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고, 사간 정계주(鄭繼胄)는 아뢰기를,
"김좌명은 재주나 명망이 평소에 드러난데다 대신이 의논해 천거했으니 논할 만한 일은 없을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귀척(貴戚)을 논한 그 풍채가 가상했기 때문에 신이 ‘표현을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는 뜻으로 답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은상이 국자(國子)의 임무를 담당한 데 있어서는 그가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논할 필요는 없겠기에, 또한 이런 뜻으로 답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동료가 경시당했다는 이유로 인혐하였으니, 어찌 감히 그대로 있겠습니까."
하며 인피하고, 헌납 김만기(金萬基)는 아뢰기를,
"삼가 여러 승지의 소에 대한 비답을 보건대 ‘앞뒤의 계사가 이미 다르다.’고 분부하셨으므로 신은 실로 두렵기만 합니다. 전일 계사 가운데 ‘사관(四館)의 일차(日次), 회자(回刺), 면신(免新)’이라고 한 것은 특별히 심한 것만을 거론한 것이고 ‘통렬히 개혁하라.’고 결론을 지었으니, 신래(新來)들에게 모욕을 가하는 일도 그대로 금령(禁令) 속에 포함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일차(日次)하는 것이 아니라고 핑계대고서 제멋대로 모욕을 가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속물근성으로 인해 이렇듯 폐습으로 굳어지고 말았으니, 어떻게 폐단들을 바로잡아 서정(庶政)을 개혁하는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제 동료가 공조 판서 김좌명을 개정할 일과 대사성 이은상의 체직을 청하는 일로 간통(簡通)을 보내 왔는데, 신의 생각에는 ‘좌명은 개정하는 것이 마땅하나 은상은 체직시키도록 논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의논의 일치를 미처 보지 못했는데, 동료가 먼저 피혐했으니, 어떻게 태연히 그대로 있겠습니까."
하고, 인피하며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옥당이 처치하여 계주와 만기는 체직시키고 세당은 출사시킬 것을 청하였다. 이튿날 경연 석상에서 대사간 서필원(徐必遠)이 좌명의 판서직을 개정할 것과 은상을 체직시킬 것을 청하니, 모두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32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풍속-풍속(風俗)
- [註 031]이열(貳列) : 참판의 서열.
○辛未/正言朴世堂引避略曰: "國家擇任人才, 當先示至公。 今六卿有缺, 選於貳列, 下之所推, 上之所授, 出於肺腑之至親, 此豈先示以公之道乎? 新判書金佐明, 早有才望, 久歷淸顯, 若其品階相當, 雖拜是職, 亦何不可。 第自下選置之命, 人皆傾望, 以瞻朝廷之擧措, 而輕於測料, 預有云云, 及除目一出, 擧皆相符。 遠近聽聞, 豈不以爲下之所擧, 卽爲希旨, 上之所授, 或係偏私耶? 又以大司成之任, 所係極重, 如非學識通明、端重雅正之士, 莫宜居之。 李殷相雖有文才, 未允士望。 擧此兩事, 通于同僚, 往復再三, 終未歸一。 疲劣見輕, 何敢晏然, 請遞臣職。" 司諫鄭繼冑以爲: "金佐明才望素着, 大臣議薦, 則似無可論之事。 而論及貴戚, 風采可尙, 故臣以措語詳愼之意答送。 至於李殷相國子之任, 雖曰不能翕然, 不必爲過當之論, 故亦以此意答送。 同僚以見輕引嫌, 何敢晏然。" 引避。 獻納金萬基以爲: "伏見諸承旨之疏批, 以前後之啓, 旣已異焉爲敎, 臣實瞿然。 前日啓辭中所謂四館日次回刺免新云者, 特擧甚者, 而結語以痛革, 侵辱新來之事, 因竝入於禁令中矣。 豈可諉以非日次, 而任其侵辱乎? 俗情之膠於弊習如此, 其何望釐革衆弊, 更張庶政乎? 且昨者, 同僚以工曹判書金佐明改正, 大司成李殷相請遞事發簡, 臣意則佐明合於改正, 殷相不可論遞, 議未歸一, 同僚先避, 何可晏然仍冒。" 引避退待, 玉堂處置, 請遞繼冑、萬基, 而出世堂。 翌日筵中, 大司諫徐必遠請改正佐明, 遞差殷相, 竝從之。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32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