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수찬한 실록의 보관·호서 지방 봉진물을 쌀로 하는 것 등을 논의하다
상이 지평 허목(許穆)을 불러 보고 하문하기를,
"그대가 새로 아래 지방에서 올라왔으니, 무어 들은 바가 있는가?"
하니, 허목이 대답하기를,
"신은 시골 구석에서 살고 있었으니 어찌 조정의 잘잘못을 알겠습니까만, 시험삼아 귀와 눈으로 보고 들은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골에는 아름다운 풍속이 없고 백성들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식자들이 한심하게 여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성상께서 만약 부지런히 덕을 닦으시고 몸소 먼저 인도하여 이끄신다면 안으로는 궁금(宮禁)이 엄해지고 밖으로는 조정이 바르게 될 것이니, 사방에서도 보고 느끼는 효과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임금 혼자서 세상을 다스릴 수 없으니, 반드시 어진이와 함께 해야 한다. 그러므로 초야에 있는 어진 선비를 거두어 들여 마음을 합해서 서로 세상을 구제하려고 할 따름이다."
하였다. 상이 또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정태화가 아뢰기를,
"사신과 대군(大君)의 행차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아 한창 근심을 하던 참인데, 지금 소식을 듣고 나니 매우 다행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신의 행차에 매번 무역하는 일로 말썽을 빚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통렬히 금지시켜 지난날처럼 범람하고 난잡한 일이 없도록 하라."
하자, 태화가 아뢰기를,
"관향(管餉)의 무역은 그래도 금지시킬 수 있지만, 의주(義州)는 금지시킬 수 없습니다. 만약 이 길을 막아버린다면 결코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새로 수찬한 실록을 각처의 사고(史庫)에 나누어 보관해야 하는데 사관이 세 명뿐이어서 한꺼번에 아울러 시행할 수가 없습니다. 강도(江都)와 태백산(太白山)의 사고에 우선 먼저 나누어 보관해 두고, 오대산(五臺山)과 적상산(赤裳山)의 사고에는 그 뒤에 보내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그리고 인하여 하문하기를,
"실록의 권수가 모두 얼마나 되는가?"
하니, 대제학 채유후(蔡𥙿後)가 대답하기를,
"이식(李植) 등이 수찬한 30년 분이 6권이고, 지금 수찬한 11년 분은 단지 2권으로 모두 8권입니다. 수찬한 실록은 신·구본(新舊本)을 모두 보존하여 송(宋)나라의 주묵사(朱墨史)104) 처럼 참고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정치화(鄭致和)에게 이르기를,
"풍정(豊呈)의 예를 행하려고 하다가 곧 그만둔 것이 여러 번 된다. 이제 다시 거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 자전께서 신궁(新宮)으로 옮기셨고 탄신일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궁중에서 간략하게 연례(宴禮)를 행하고 싶다. 쓸데없는 형식은 가능한 한 생략하도록 하고, 서울의 기녀(妓女)들 또한 소수만 정선하도록 하라. 해조의 절목은 풍정 의주(豊呈儀註)를 따라서 하되 번잡한 형식은 빼버리는 것이 좋겠다."
하고, 또 이르기를,
"호서 지방에서 올리는 것을 일시에 변통할 수는 없지만 자전께는 쌀로 봉진하여 필요한 것을 사서 쓰시도록 하고 싶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태화는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됩니다."
하고, 병조 판서 허적(許積)은 아뢰기를,
"어떤 이는 궁시(宮市)의 폐단을 염려합니다만, 신은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하고, 유후는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당 순종(唐順宗) 때에 궁시의 폐단이 있었으니, 지금 또한 그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삼사(三司)가 모두 여기 있으니, 각각 자기 소견을 아뢰도록 하라."
하니, 응교 민정중(閔鼎重)이 아뢰기를,
"유독 자전에게만 가미(價米)로 올리는 것이, 일의 체모로 헤아려 보건대 합당한 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상이 정중에게 이르기를,
"전날 상소에서 진술한 일에 대해 내가 가상하게 여겼다만, 마지막에 아뢴 말은 모가 난 듯하였으므로 비답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옛일을 써서 올리는 것은 부제학이 차출되기를 기다려 서로 의논해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11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무역(貿易) / 외교-야(野) / 역사-편사(編史) / 재정-상공(上供)
- [註 104]주묵사(朱墨史) : 송(宋)나라 범충(范沖)이 신종 실록(神宗實錄)을 편찬하면서 구문(舊文)은 검은색으로, 산거(刪去)한 것은 노란색으로, 새로 지은 것은 붉은색으로 써서 구분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를 주묵사라고 하였다. 《송사(宋史)》 권435.
○上召見持平許穆問曰: "爾新從下土來, 有何所聞。" 穆對曰: "臣跧伏鄕閭, 安知朝政得失, 試以耳目所逮者言之。 鄕無善俗, 民不畏法, 識者之寒心久矣。 聖上若懋修厥德, 身先導率, 則內而宮禁嚴, 外而朝廷正, 四方亦必有觀感之效矣。" 上曰: "君不能獨運, 必須與賢共之。 是以欲收草野之士, 協心交濟耳。" 上又引見大臣及備局諸臣。 領議政鄭太和曰: "使臣及大君之行, 久不出來, 方切憂慮, 今得聲息, 良幸。" 上曰: "使价之行, 每以貿販生事, 自今痛加禁斷, 無如前日之濫雜也。" 太和曰: "管餉貿販, 猶可禁也, 義州則不可禁也。 若塞此路, 決難支矣。" 太和曰: "新修實錄, 當分藏於諸處史庫, 而史官只有三員, 不可一時竝行。 請江都、太白, 姑先分藏, 五臺、赤裳, 隨後發遣。" 上從之。 仍問曰: "實錄卷數凡幾何?" 大提學蔡𥙿後對曰: "李植等三十年所撰六卷, 今者十一年所撰只二卷, 合八卷矣。 所修實錄, 俱存新舊本, 以爲參考之地, 若宋之朱墨史也。" 上謂鄭致和曰: "豊呈之禮, 欲行而旋止者屢矣。 今難更擧, 而卽今慈殿移御新宮, 誕日亦近, 欲於宮中, 略行宴禮。 凡諸浮文, 務從省約, 京上妓亦從略精選。 該曹節目, 雖倣《豐呈儀註》, 刪去繁文可也。" 又曰: "湖西進供, 雖不可一時變通, 欲於慈殿, 以米封進, 以爲貿用之地。 卿等之意如何?" 太和曰: "臣意竊以爲便。" 兵曹判書許積曰, "或慮宮市之弊, 而臣則必知其無是也。" 𥙿後曰: "臣愚以爲: 唐 順宗時, 有宮市之弊, 今亦不可不慮也。" 上曰: "三司皆在此, 各陳所見。" 應敎閔鼎重曰: "獨於慈殿, 以價米進供, 揆諸事體, 未知其恰當也。" 上謂鼎重曰: "前日疏中所陳之事, 予用嘉尙, 末端所云, 似有圭角, 故不爲批下矣。 以此爲未安耶? 古事書進, 待副提學差出, 相議爲之。"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11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무역(貿易) / 외교-야(野) / 역사-편사(編史) / 재정-상공(上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