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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3권, 효종 1년 4월 4일 정해 7번째기사 1650년 청 순치(順治) 7년

영의정 이경여가 유배의 명을 거둘 것을 간하였으나 듣지 않다

영의정 이경여가 상차하기를,

"어제 탑전에서 삼가 보니, 진노한 기색이 목소리와 용안에 너무 현저하여 성인의 중화(中和)의 기상을 크게 상실하였으므로, 신은 황공하고 의혹스러웠습니다. 신은 성상의 덕이 관대하며 인자하고 성상의 학문이 고명하시니, 궂은 것 미운 것 모두 포용하여 사물에 순응하심에 있어서 필시 생각하지 않더라도 잘 하시고 굳이 힘쓰지 않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모르는 사이에 천지의 큰 도량에 유감됨이 있었습니다. 의리를 강명(講明)할 적에 혹시라도 성찰하고 보존하는 공력이 부족해서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탕(成湯)과 같이 큰 성인도 과실이 없을 수 없어, 허물 고치는 것을 꺼리지 않은 것으로 후세에 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명(聖明)께서 아무리 좌우의 실대(失對)에 격분하였다 하더라도 깊은 밤 생각하시고 맑은 새벽 한가하실 적에 필시 확연히 깨달으심이 있어 흔쾌히 후회하는 단서를 보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삼가 유계심대부 등을 유배하라는 명이 내렸다는 말을 듣고, 신은 놀라고 실망하였습니다. 성명께서 이런 거조를 하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인정(人情)이란 그다지 서로 멀지 않은 것입니다. 유계 등도 미쳐서 실성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조(先朝)를 내리 섬겨 시종(侍從)으로 출입하였으니 후한 은혜와 예우가 소원(疎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 선왕(先王)께서 위에 계신 지 30년에 가까워 깊고 후한 인덕이 사람들의 살과 뼈에 깊이 스몄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승하하시자 궁벽한 산골의 백성들까지도 애통해 하였습니다. 유계 등이 유독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승하하신 초상에 차마 폄하하는 마음을 내어 애통하고 망극한 중에 함부로 말하기까지 하였겠습니까. 생각건대 필시 묘호(廟號)에 ‘조(祖)’ 자를 거듭 사용하는 것을 혐의롭게 여겨서일 것입니다. 그리고 심대부는 필시 선조조(宣祖朝)의 윤근수(尹根壽)윤효전(尹孝全)의 일016) 을 본받은 것이니, 어찌 그 사이에 다른 의도가 있었겠습니까.

삼가 성자(聖慈)께서는 위엄을 조금 거두시고 슬기로운 성찰을 더 깊이 하시어 내리신 명을 우선 중지하소서. 그리고 정신(廷臣)에게 물으시고 여론을 따르심으로써 중외(中外)의 신하들로 하여금 성상의 새로운 모습을 모두 우러르게 하소서. 신은 편벽되이 뼈에 사무치는 은혜를 입었기에 분골쇄신하여 큰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 조정의 서로 아는 한두 사람을 위하여 쓸데없는 말을 하여 우리 임금을 속이겠습니까."

하였는데, 상이 듣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2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왕실-궁관(宮官)

  • [註 016]
    윤근수(尹根壽)와 윤효전(尹孝全)의 일 : 선조(宣祖)의 묘호를 논의할 때, 모두 종계(宗系)를 개정하고 왜구를 물리친 공이 크다는 이유로 ‘조(祖)’로 칭호할 것을 주장하자 윤근수가 차자를 올려 창업한 임금을 ‘조’로 칭호하고 계통을 이은 임금은 ‘종(宗)’으로 하는 고례를 들어 반대한 일을 말한다. 이로 인하여 당시 묘호를 선종(宣宗)으로 정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別集) 권1 국조전고(國朝典故).

○領議政李敬輿上箚曰:

昨日榻前伏見, 風霆一震, 聲色太露, 大失聖人中和底氣象, 臣竊惶惑。 仍念, 聖德寬仁, 聖學高明, 其於納汚藏疾, 物來順應, 必能不思而得, 不勉而中, 而以今觀之, 未覺有憾於天地之大。 無乃講明義理之際, 或欠省察操存之功耶? 然而成湯大聖, 不能無過, 而以改過不憚, 爲法於後世。 意, 聖明雖有激於左右之失對, 而乙丙之枕, 淸燕之暇, 則必翻然覺悟, 快示悔端, 而伏聞有兪棨沈大孚等流竄之命, 臣心驚氣短。 不圖聖明, 有此擧措也。 人情不甚相遠, 等亦非病風喪心之人, 歷事先朝, 出入侍從, 恩禮之厚, 不比踈遠。 噫! 先王臨御, 近三十年, 深仁厚德, 浹人肌骨。 一朝登遐, 深山窮谷編氓僻戶, 莫不奔走悲號。 等獨何心也, 而當宮車晏出之時, 値滕廬亮陰之初, 忍生貶薄之心, 至溷於哀疚罔極之中也? 意者, 其必以重用祖廟號爲嫌, 而大孚則必祖述宣祖尹根壽尹孝全之餘論也, 何嘗有他意於其間哉, 伏乞聖慈, 少霽天威, 深加睿省, 姑寢成命。 俯詢廷臣, 一循輿論, 使中外臣庶, 咸仰日月之更。 臣偏蒙肉骨之恩, 思答鴻造, 期以粉糜。 豈爲朝行間一二相識, 曲費辭說, 而欺吾君乎?

上不聽。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2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왕실-궁관(宮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