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육이 사직을 간하였으나 허락치 않다
우의정 김육(金堉)이 선조의 묘를 성묘하기 위하여 양주(楊州)로 물러갔다. 이보다 앞서 김육이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할 것을 청하자, 상이 이조 판서 김집(金集)에게 물으니, 김집은 시행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하고, 또 건의하여 원로 대신에게 인재를 물어 차례에 구애받지 말고 등용하기를 청하였는데, 이에 김육이 상소하기를,
"인재를 등용하는 권한은 인주(人主)의 대병(大柄)이므로 아래에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이로 인해서 두 사람이 화협하지 못했는데, 그 뒤로 여러번 상소하여 치사를 청하면서 아뢰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진퇴가 분명하고 그 마음에 변함이 없어야 할 뿐입니다. 나아가야 할 때에 물러나는 것은 잘못이며, 물러가야 할 때 나아가는 것도 잘못입니다. 미관 말직에 있는 자도 오히려 그러해야 하는데, 더구나 대신의 반열에 있는 자이겠습니까. 대체로 물러가서는 안 되는 경우가 셋이며, 물러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셋입니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국가의 안위가 걸려 있어 국가의 존망에 관계된 자가 첫째요, 산림(山林)에서 와서 덕망이 세상을 덮는 자가 둘째요, 나이가 젊고 근력이 있어 국사를 담당할 만한 자가 셋째이니, 이상은 물러가서는 안 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분명히 알 만큼 재덕(才德)이 부족한 경우가 첫째요, 나이가 이미 많고 노쇠하여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지닌 자가 둘째며, 남의 비웃음이나 당하며 쓰여지기에는 부적합한 말을 하는 자가 셋째이니, 이는 물러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입니다.
이제 신은 분에 넘치는 은총으로 치사(致仕)할 나이가 넘었으니 물러가야 하겠습니까, 물러가지 않아야 하겠습니까. 옛사람을 들어 말하건대 자신에게 국가의 존망이 걸린 한(漢)의 제갈량(諸葛亮)이나 백성들의 인망이 간절했던 진(晋)의 사안석(謝安石)이나 나이가 노쇠하지 않았던 송(宋)의 문천상(文天祥)의 경우와, 참람되지만 비교해 본다면, 하늘을 나는 붕새와 땅속 벌레의 차이 정도일 뿐만이 아니며, 시세의 어려움도 한(漢)이나 진(晋)·송(宋)의 경우와도 다릅니다. 조금이라도 그대로 나아가야 할 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속히 치사를 허락하여 주소서."
하니, 상이 위로하는 하유(下諭)를 하고 윤허하지 않았다. 김육이 마침내 떠나게 해 줄 것을 바라면서 또 상소하기를,
"신의 고조(高祖) 신(臣) 김식(金湜)은 기묘(己卯)의 화에 걸렸고, 족조(族祖) 신(臣) 김권(金權)은 광해(光海) 때에 귀양지에서 죽어, 이미 쓸쓸한 한족(寒族)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변변치 못한 신이 외람되어 태사(台司)에 오르고, 불초한 자식 하나가 또 경악에 들었으므로 남들은 영예롭게 여겼으나, 신은 근심과 두려움이 더하였습니다. 한 번 화를 당한 가문의 신으로서는 활에 다친 새가 굽은 나무만 보아도 지레 놀라듯 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은 감히 다른 사람과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또 상소하기를,
"신이 시기(時忌)를 범한 것은 참으로 스스로 취한 짓이니, 이는 목숨을 보존하려 해도 오히려 어려울 일인데, 어찌 감히 어진이의 길을 오래도록 방해하겠습니까. 신이 ‘한 번 화를 당한 가문’이라고 상소한 것도 실로 이러한 근심에서입니다. 전하께서 신을 불쌍히 여기시어 놓아주지 않으심이 마침 화근이 되었습니다."
하였는데, 모두 우대하는 비답을 내리고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0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人事) / 재정(財政)
○丁卯/右議政金堉乞掃先壠, 退歸楊州。 先是, 堉請行大同之法, 上問於吏曹判書金集, 集以爲不可, 又建議, 請詢訪人才於元老大臣, 不次用之。 堉上疏以爲:
"用人之權, 人主之大柄, 下不可專擅。" 由是, 二人不協, 其後累上疏乞致仕曰: "人臣事君之道, 明於進退, 不變其心而已。 可進而退非也, 可退而進, 亦非也。 微官尙然, 況忝於大臣之列者乎? 蓋不可退者三, 不可不退者三。 身佩安危, 係國存亡者一也; 來自山林, 德望蓋世者二也; 年富力强, 擔當國事者三也, 此則不可退者也。 才德不足, 自知甚明者一也; 年已衰老, 病有難醫者二也; 受人嗤點, 言不合用者三也, 此則不可不退者也。 今臣寵逾涯分, 年過致仕, 在所當退乎, 在所不退乎? 以古人言之, 諸葛亮之於漢, 身係存亡; 謝安石之於晋, 望切蒼生; 文天祥之於宋, 年未及衰, 僭而方之, 不翅若霄鵬之與壤蟲, 而時勢之難, 不至於漢、晋、宋, 有何一分冒進之道乎? 伏乞聖明, 亟許致仕。
上慰諭不許。 堉遂求去, 又上疏曰:
臣高祖臣湜, 罹於己卯之禍; 族祖臣權, 謫死於光海之時, 門戶凋零, 已爲寒族。 臣之無狀, 濫登台司, 一子不肖, 又玷經幄, 人以爲榮, 臣增憂懼。 以臣傷弓之族, 常存曲木之驚, 不敢與他人比。
又上疏曰:
臣之觸犯時忌, 固所自取, 此猶救死而恐不贍, 何敢久妨於賢路乎? 臣疏陳傷弓之言, 實亦有慮乎此也。 殿下之憐臣不舍, 適所以禍之也。
竝優批, 不許。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0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人事)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