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이 경기의 도둑을 잡는 방법에 대해 아뢰다
상이 이조 판서 최명길(崔鳴吉)을 불러 보니, 명길이 아뢰기를,
"전에 도적이 횡행하기 때문에 기전(畿甸)에 특별히 토포사(討捕使)를 설치하여 적발하고 잡아들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심상하게 보아 넘기고 제대로 거행하지 않아 오늘날에 와서는 무리가 불어 패거리를 모으며 거리낌 없이 횡행하는데도 감히 막는 자가 없으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승지 서경우(徐景雨)가 들은 것도 신이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찮은 조무라기 도둑들일 뿐입니다.
이것을 다스리는 방책은 적격자인 수령을 구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지난번 남원(南原)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박정(朴炡)이 부사가 되어 70∼80인을 적발하여 죽인 덕택에 남원은 지금까지 무사합니다. 지금에 있어서는 별도의 조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수령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그로 하여금 임기응변으로 힘껏 잡아들이게 할 뿐입니다. 그러니 광주(廣州)·이천(利川)·충원(忠原)·여주(驪州) 같은 곳의 수령을 우선 가려 보내는 것이 급무일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지는 어디에서 들었는가?"
하였다. 서경우(徐景雨)가 아뢰기를,
"어떤 사람이 와서 전하기를, 충원에 사는 전 인의(引儀) 박홍업(朴弘業)의 사위가 우연히 기마적(騎馬賊) 수십 명을 보았는데 이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자 며칠 안되어 적도들이 그 집을 쳐들어가 홍업의 사위를 난자하였으며, 같은 마을의 5∼6가구 사람들은 이로 인해 성안으로 철수해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거리낌 없는 방자한 행동을 이에 의거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매우 놀랍다. 그런데 수령들은 무엇 때문에 잡아들이지 않아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는가?"
하였다. 경우가 아뢰기를,
"그때에 홍업이 관가에 고발해서 몇 사람을 잡아 죽였으나, 끝내 정범(正犯)은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고, 명길은 아뢰기를,
"도적들은 본래 근거지가 없고 조금이라도 혐의하거나 원망하면 반드시 바로 복수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후환이 있을까 염려하여 감히 말을 하지 않습니다. 수령도 태연스레 세월만 보내며 구차하게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붙잡더라도 곧바로 석방해 줍니다. 지금 시기를 놓치고 다스리지 않으면 더욱 만연되어 도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중에는 반드시 위협 때문에 따른 자도 있을 것이다. 만약 풀을 베고 사냥하듯 잡아들이면 피해가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미칠 것이고, 반대로 그냥 놔둬 버리고 다스리지 않는다면 양민에게 해를 끼칠 것이니, 참으로 작은 근심거리가 아니다."
하니, 명길이 아뢰기를,
"이천 부사 허휘(許徽)는 성심껏 기찰(譏察)했기 때문에 도적이 있을 경우 모두 적발하였습니다. 만일 허휘 같은 자 몇 명을 구해 잡아들이게 한다면 기전(畿甸)은 근심할 것 없이 보전될 것입니다."
하고, 경우는 아뢰기를,
"허휘의 외모나 행동은 보통 사람만도 못한데 도적을 잡는 데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허휘는 도적 잡는 일 뿐만 아니라 국사에도 마음을 다하고 있다."
하니, 명길이 아뢰기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여주·이천·충원 세 고을입니다. 전 목사 송흥주(宋興周)는 전에 충원 목사로 있었는데 그가 백성들에게 베푼 사랑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가 비록 식견은 없으나 재주와 국량은 취할 만합니다. 그리고 원주 목사(原州牧使) 이배원(李培元)은 재주와 기량이 모두 넉넉하니, 흥주를 충원에 있게 하고 배원을 여주로 옮겨 보낸다면 적임자를 얻게 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흥주는 전에 죄를 받은 자가 아닌가? 비록 재간과 국량이 있더라도 재주만을 믿고 법령을 잘 받들지 않는다면 신중히 도모하여 일을 이루는 자가 절대로 아닐 것이다. 지금 만약 이렇게 전에 없던 규례를 열어 놓는다면 죄 있는 자가 요행히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밖에 어찌 합당한 사람이 없겠는가. 대신과 의논하여 정하도록 하라."
하니, 명길이 아뢰기를,
"부묘(祔廟)에 대한 계사를 오랫동안 내려보내지 않으시므로 중외의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명이 이미 내렸고 묘호(廟號)도 정해졌는데 단지 희로(喜怒)의 감정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모름지기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속히 거행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답하지 않았다. 명길이 또 아뢰기를,
"처벌된 사람들이 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중외에서는 모두 임금이 잘못한 탓이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심이 흩어지고 재이가 계속 나타나니 속히 방환하여 찰방이나 수령으로 있게 하다가 점차 거두어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또 답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81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종사(宗社)
○上召見吏曹判書崔鳴吉。 鳴吉曰: "前者盜賊橫行, 畿甸特設討捕使, 使之摘發搜捕, 而視爲尋常, 恬不擧行, 至于今日, 寔繁有徒, 嘯聚黨類, 縱恣無忌, 而人莫敢誰何, 誠極寒心。 承旨徐景雨之所聞, 亦如臣言。 然此乃鼠竊狗偸之類耳。 治之之策, 只在守令之得人。 向者南原亦有此患, 朴炡爲府使, 摘發勦殺七八十人, 南原至今賴以無事。 今亦不須別設擧措, 惟當愼擇守令, 使之臨機應變, 盡心搜捕而已。 如廣州、利川、忠原、驪州之守令, 爲先擇送, 似是急務。" 上曰: "承旨於何得聞?" 徐景雨曰: "有人來傳: ‘忠原人前引儀朴弘業之子壻, 偶見騎馬賊數十輩, 言及於人, 不數日, 賊徒突入其家, 亂斫弘業之子壻, 村人五六家, 因此撤入城中’ 云。 其恣行無忌, 據此可知。" 上曰: "殊極駭愕。 守令何不搜捕, 使至於此耶?" 景雨曰: "其時弘業告于官家, 捕殺數人, 而終不得其正犯者云耳。" 鳴吉曰: "盜賊素無根着, 少有嫌怨, 必卽報復, 故齊民恐有後患, 莫敢發言, 爲守令者, 亦且悠泛度日, 苟冀無事, 雖或捕得, 而旋卽放釋。 失今不治, 蔓難圖矣。" 上曰: "其中必有脅從之人。 若草薙而禽獮之, 則延及於無辜; 置之而不治, 則貽害於良民, 誠非細憂也。" 鳴吉曰: "利川府使許徽, 盡心譏察, 故凡有盜賊, 無不摘發。 如得許徽者數人, 使之搜捕, 則畿甸可保無患矣。" 景雨曰: "許徽之形貌、擧措, 不及中人, 而至於捕賊, 過人遠甚。" 上曰: "許徽非但捕賊, 於國事亦且盡心矣。" 鳴吉曰: "今之最重者, 莫先於驪、利、忠三邑, 而前牧使宋興周, 曾宰忠原, 遺愛至今。 雖無識見, 而才局可取也。 原州牧使李培元, 才器俱優。 若以興周居忠原, 而移培元於驪州, 則似爲得人矣。" 上曰: "興周是曾被罪過者耶? 雖有幹局, 徒恃其才, 而不奉法令, 則殊非好謀而成者也。 今若開此無前之規, 則有罪者得以幸免。 此外豈無可合之人乎? 議於大臣以定。" 鳴吉曰: "祔廟啓辭, 久而不下, 中外之人, 無不疑訝。 皇命旣降, 廟號已定, 而秪以喜怒, 有所低昻, 殊甚未安。 須待日候稍暖, 從速停當。" 上不答。 鳴吉曰: "至於被罪諸人, 雖不能無罪, 而中外皆以爲, 君上之過擧。 目今人心渙散, 災異疊見, 須速放還, 或署於馬官, 或置於守令, 漸次收用可矣。" 上又不答。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81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