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와 대신이 양호(兩湖)의 공물을 견감하는 것에 대해 진달하다
호조가 아뢰기를,
"반정(反正)한 초기에 재성청(裁省廳)과 대동청(大同廳) 등을 설치하고 전후의 공안(貢案)을 가져다 상고해 보니 갑진년116) 에 상정(詳定)한 것이 가장 적었기 때문에 계해년117) 이후로는 갑진년의 공안대로 시행할 것으로 결정해서 각 도에 알렸었는데, 임술년118) 조의 미수된 공물 등은 경술년119) 의 공안에 의하여 그대로 바치도록 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 각 해사(該司)의 비용이 부족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년120) 환도(還都)한 뒤에 호조와 예조가 함께 의논하여 대신(大臣)에게 결재를 받고, 또 양사(兩司)의 장관에게 물어서 견감할 만한 것은 견감하고 아래에서 감히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은 부표(付標)하여 입계(入啓)해서 성상의 재가를 받았으므로 견감한 것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따라서 지방의 공물(貢物)도 의당 줄여서 백성들로 하여금 실제의 해택을 골고루 받도록 해야 하겠기에 갑진년의 공안에 따라 약간의 견감하는 공물이 있었고, 경기와 양호(兩湖) 및 강원도는 선혜청(宣惠廳)에 값을 치루기 때문에 알리지 않고, 다만 본색(本色)으로 공물을 바치는 경상도와 함경도 등의 도에만 견감하는 수효를 알려서 지금까지 그대로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동법이 폐지되었으니 양호에서 본색으로 바치는 공물의 수효도 의당 경상도와 함경도의 예와 같이 견감하여 바치도록 하는데도 갑진년의 공안의 원래 수효를 그대로 바치도록 하고 있으니, 이는 고르지 못한 처사인 듯합니다.
대체로 제향(祭享)이나 어공(御供) 및 기타 각처에서 사용하는 횡간(橫看)이 정식(定式) 이외에도 별례(別例)가 많은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이 갑진년의 공안인데다 갑진년의 공안에서도 양도(兩道)에 견감해 준 공물이 있으므로, 1년에 들어올 수효와 1년에 나가야 할 수효를 비교해 보면 정식의 횡간도 부족할 염려가 있는데, 별례로 인한 뜻밖의 수요는 어디서 마련해 내겠습니까. 이 점이 바로 해사(該司)가 형편없이 탕진되어 구차스럽기 짝이 없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봉상시(奉常寺)에 바치는 것은 조금은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혼궁(魂宮)과 원(園)의 제사에 사용할 것은 별도로 분정(分定)하지 않았고, 다만 기름과 청밀(淸密) 등 약간의 물건만 명년을 기한으로 각 도에 분정하였습니다.
엊그제 탑전에서 신 김신국(金藎國)이 삼가 제향과 어공을 줄이라는 성상의 하교를 받았으니 실제의 혜택이 의당 백성들에게 미쳐야 하는데, 만일 중간에서 써버리는 폐단이 있게 된다면 줄이라고 하신 본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대동법이 혁파된 뒤에 본색으로 공물을 바치는 일에 대해서 아직 자세하고 곡진하게 정해지지 않았으니, 자세히 살펴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명을 받들고 조심스럽고 황송하여 물러나와 상고할 만한 문서를 찾아보니, 재생청과 대동청 등의 각종 문서가 모두 이괄의 변란 때 분실되어 입계했던 바 재생청이 지방에 지시한 일에 대해서는 의거할 데가 없어 다만 그 당시의 담당 관리를 찾아가 묻고 본조(本曹)에 남아있는 문서를 상고해 보니, 대체로 위에 아뢴 것과 같았습니다.
제향과 어공은 국가의 막중한 일인데도 위에서 민력(民力)이 곤궁함을 염려하시어 갑자년 봄에 3년을 기한으로 줄이라는 하교가 계셨으니, 성상의 덕이 하늘과 같아 더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민력이 아직 소생되지 못하였음을 염려하시어 또 1년을 더 줄이라는 명을 내리셨으니, 보고 듣는 자치고 누군들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생각건대 제향과 어공을 줄인 지가 오래인데도 양호의 백성들만은 유독 갑진년 공안대로 견감해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미안한 듯합니다. 마땅히 갑진년의 공안대로 양호의 각 고을에서 바치고 있는 잡물들을 적당히 줄여주어 경상도와 함경도의 백성들과 같이 균등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후일 제향과 어공을 예전대로 환원할 때는 갑진년에 상정한 원래 수효에 의해 다른 도와 똑같이 바치도록 할 것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그리고 대동청을 혁파한 뒤로 양호의 공부(貢賦)만 줄여 주지 않아 양도(兩道)의 백성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였다니, 그 당시 해당 관청의 소행이 놀랍다. 당해 당상관은 먼저 파직하고 나서 추고하고, 색낭청(色郞廳)은 적발해서 나추(拿推)하도록 하라."
하였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좌의정 윤방(尹昉)은 아뢰기를,
"전일 등대(登對)하였을 때 3년 내에는 백성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대략 언급하였는데, 그때는 대동청이 혁파된 뒤에 양호의 출역(出役)은 그대로 받아 줄여 주지 않은 일을 모르고 경솔하게 앙달(仰達)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1년을 기한으로 더 줄일 것을 쾌히 허락하신 성지(聖旨)를 받으니, 보고 듣는 자치고 누군들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해조가 아뢴 대로 양호의 공안도 줄여 주어 시종 백성을 구휼하는 지극한 뜻을 보임으로써 균등하지 못하다는 한탄이 없도록 하고, 후일 원래대로 환원할 적에는 상정한 원수(元數)대로 하는 것이 실로 사리에 합당하겠습니다."
하고, 우의정 오윤겸(吳允謙)은 아뢰기를,
"이제 호조의 계사를 보니 양호의 백성들만이 줄여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하니, 적당히 줄여 주어서 경상도와 함경도의 백성들 처럼 고루 혜택을 받도록 하고, 후일 환원할 때에도 같이 시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였는데,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46면
- 【분류】재정-공물(貢物)
- [註 116]갑진년 : 1604 선조 37년.
- [註 117]
계해년 : 1623 인조 1년.- [註 118]
○辛酉/戶曹啓曰: "反正初, 設裁省、大同等廳, 取考前後貢案, 則甲辰詳定, 最爲略少, 故自癸亥以後, 行用甲辰貢案事定奪, 知會于各道, 而壬戌條貢物未收等, 依庚戌貢案, 仍爲上納, 故其時各該司所用, 不至缺乏矣。 甲子還都之後, 戶、禮曹同議, 裁決于大臣, 又問于兩司長官, 可減者減, 自下不敢擅便者, 則付標入啓, 旣蒙睿裁, 減省者頗多, 外方貢物, 亦當裁減, 俾民均蒙實惠, 故就甲辰貢案, 略有減損之物。 京畿及兩湖、江原道, 則自宣惠廳給價, 故不爲行會, 只慶尙、咸鏡等本色貢物上納之道, 行會減損之數, 至今依此來納矣。 大同旣罷, 則兩湖本色上納之數, 亦當依慶尙、咸鏡道例, 有所減損, 而仍以甲辰貢案元數上納, 此則似爲不均矣。 大槪祭享、御供及其他各處用下, 橫看定式之外, 別例居多。 方今行用者, 乃是甲辰貢案, 而甲辰貢案之內, 又有兩道裁損之物, 以一年應入之數, 較一年應出之數, 則橫看定式, 尙有不足之患, 別例意外之需, 從何辦出乎? 此該司之所以蕩盡無形, 苟且莫甚者也。 如奉常寺所納, 則稍有餘裕, 故今此魂宮、園所各祭所用, 不爲別分定, 只油、淸等若干物種, 限明年, 定於各道矣。 再昨榻前, 臣藎國伏承聖敎, 祭享、御供, 至於裁減, 則實惠當及於民, 而若有中間花消之弊, 安有裁減之意乎? 大同革罷後, 本色貢物上納之事, 未能詳盡, 不可不詳察爲之也。 臣承命袛慄, 退而尋討可考文書, 則裁省、大同等廳各樣文書, 盡爲散失於适變, 其所入啓裁省, 行會外方之事, 無從依據, 只得訪問其時色吏及傍考本曹遺在文書, 則大都如上所陳而已。 祭享、御供, 乃是國家莫重之事, 而自上軫念民力之困, 甲子之春, 旣有限三年裁損之敎。 聖德如天, 無以加矣。 及今猶慮民力未蘇, 又下一年仍減之命, 凡在瞻聆, 孰不感激? 臣等仍念, 祭享、御供, 裁減已久, 而兩湖之民, 獨未蒙甲辰貢案內裁減之惠, 似爲未安。 合無就將甲辰貢案中, 兩湖各官所納雜物, 量宜裁減, 俾與慶尙、咸鏡之民, 均蒙德澤, 而他日祭享、御供復舊之時, 依甲辰詳定元數, 他道一樣上納之意, 議大臣定奪施行何如?" 答曰: "依啓。 且大同廳革罷之後, 兩湖貢賦獨不減損, 使兩道之民, 不得蒙惠, 其時該官之所爲駭愕。 當該堂上先罷後推, 色郞廳摘發拿推。" 議于大臣, 則左議政尹昉以爲: "前日登對時, 略及三年內, 民未蒙惠之意, 而不知大同罷後, 兩湖出役, 仍舊未減之事, 率爾仰達。 旣蒙聖旨, 快許一年展限, 則凡在瞻聆, 孰不感激? 依該曹之啓, 兩湖貢案, 亦爲裁損, 以示終始勤恤之至意, 俾無不均之歎, 而他日覆審時, 依詳定元數爲之, 實合事宜。" 右議政吳允謙以爲: "今見戶曹之啓, 兩湖之民, 獨不蒙裁損之德。 量宜裁減, 俾與慶尙、咸鏡之民, 均蒙惠澤, 他日復舊時, 亦當一體施行云。" 從之。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46면
- 【분류】재정-공물(貢物)
- [註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