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노추를 잘 미봉하고 명에 대한 의리로 국방의 계책을 삼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적신 강홍립 등이 명을 받고 싸움터로 나갔다면 오직 적만을 쫓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도중에서 먼저 통역을 보내어 미리 출병하는 까닭을 통지하는 등 마치 당초에 싸울 뜻이 없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이어, 도망쳐 돌아온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반신반의하였다가 그들의 장계를 보니, 힘이 모자라 함락을 당하였다는 정상은 조금도 없고 또한 구차하게 살아난 것을 부끄러워하는 뜻도 없이 가는 길의 행군한 절차를 차례로 서술하고 감히 미리 통지하여 낭패하였다는 등의 말을 버젓이 아뢰면서 스스로 그들이 한 일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으며, 끝에 가서는 다시 회답할 말을 지시해 주어 살아서 돌아오기를 꾀하고 있습니다.
신하로서 적에게 항복하는 것은 천하에 가장 나쁜 행실입니다. 이것을 범하였을 경우 그 처자를 감금하여 법으로 처치하는 것이 국가의 일상적인 형법인데 더구나 자신이 이미 노적에게 항복하고 노추의 서신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역마(驛馬)를 타고 도성의 문으로 곧장 들어온 자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장관의 가속을 도리어 무휼하고 정응정의 무리는 버젓이 집에서 쉬고 있으니, 이것은 명나라가 들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또한 교 유격(喬遊擊)을 비록 포박하여 넘긴 것은 아니라고 하나, 죽음을 피해 도망쳐 중영(中營)에 온 자를 구별하여 축출하여 그들이 도륙하게 놔두었으니 비록 포박하여 넘겨주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대체로 변명할 때는 빈 말만으로 〈의심을 풀 수〉 없는 것이고 반드시 명백한 실제의 일이 있어야만 근거를 삼아 변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들이 그들의 처자를 감금하고 정응정 등을 나포하여 문초하는 일에 대해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고 누누이 청한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 계사를 보니, 뜻은 좋다. 그러나 내 비록 혼미하고 병들어 맑은 정신은 아니지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경들은 이 적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 나라의 병력을 가지고 추호라도 막을 형세가 있다고 여기는가? 지난해 격문이 왔을 때부터 내가 우려하던 것은 징발한 병사를 보내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본래 견고하지 못하고 군병은 평소에 교련되지 않아서 하루아침에 몰고 들어가면 전쟁에 도움이 못 된다는 것을 진달하되, 서둘러 경략이 나오기 전에 주달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 비록 오늘날에 패배를 당하더라도 지난해에 주달한 것과 서로 부합되었을 것이니 어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경들은 나의 뜻은 헤아리지 않고 막으려고만 하고 있는데 단지 사정을 주달하는 것이 무슨 사리에 어긋난 점이 있다고 끝내 내 말을 이행하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이것이 통탄스럽다.
지난해 군병을 들여보낼 때 경들은 마치 일거에 탕평할 것처럼 여겼는데, 병가(兵家)의 일은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옛사람들이 감히 가벼이 사용하지 아니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명나라에 서 만약 군병을 진열하여 무력을 과시하고 중국의 국경을 굳게 지킨다면 마치 호랑이나 표범이 산 속에 있는 형세와 같아 적이 비록 날뛴다고 하더라도 감이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생각지 않고 가벼이 깊이 들어갔으니 반드시 패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었다.
내가 이 점을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우려하고 답답해 하다보니 마음의 병이 더욱 심해져 마치 미친병을 앓는 형상과 같았는데 좌우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가 모르겠는가. 이제 우려하던 것과 같이 되었으니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적의 용병(用兵)하는 지혜와 계략을 실로 당해내기 어려우니 앞으로의 화환을 예측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나라를 위한 계책으로는 군신 상하가 마땅히 잡다한 일은 버리고 오로지 부강에만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군병을 양성하고 장수를 뽑고 인재를 등용하며, 백성의 폐막을 풀어주어 인심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며 둔전(屯田)을 크게 개척하며 무기를 만들고 익히며 성지(城池)와 척후 등을 모두 정비해야만 믿을 곳이 있어서 위급할 때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혹 태만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큰 화가 즉시 닥칠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강홍립 등의 사건에 있어서도 비록 적에게 항복하였다고 하나 이처럼 급하게 다스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 강홍립 등이 불행히 적진 중에 함몰되었으나 보고 들은 것들을 밀서로 계문하는 것이 무엇이 안 될 것이 있는가. 진실로 본사의 계문과 같이 한다면 비록 노중(虜中)에 함락되었더라도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하여 보내지 않아야 옳다는 말인가. 아, 묘당에 사려 깊은 노성(老成)한 인재는 거의 죄다 내쫓아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젊고 일에 서투른 사람이 비국에 많이 들어갔으니 국가 운영을 잘 못하는 것은 이상하게 여길 것조차도 없다.
대국 섬기는 성의를 더욱 다하여 붙들어 잡는 계책을 조금도 해이하게 하지 말고 한창 기세가 왕성한 적을 잘 미봉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국가를 보전할 수 있는 좋은 계책이다. 그런데 이것을 버려두고 생각지 않은 채 번번이 강홍립 등의 처자를 구금하는 일만 가지고 줄곧 계문하여 번거롭히고 있으니, 나는 마음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본사에서 누차 청하는 뜻을 나 또한 어찌 모르겠는가. 천천히 선처하여도 진실로 늦지 않다. 오직 국가의 다급한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추의 서신이 들어온 지 이미 7일이 되었는데 아직도 처결하지 못하였다. 국가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하늘의 운수이니 더욱 통탄스럽기만 하다."
하였다. 당초에 강홍립 등이 압록강을 건너게 된 것은, 상이 명나라 조정의 징병 독촉을 어기기 어려워 억지로 출사(出師)시킨 것이었지, 우리 나라는 애초부터 그들을 원수로 적대하지 않아 실로 상대하여 싸울 뜻이 없었다. 그래서 강홍립에게 비밀리에 하유하여 노혈(虜穴)과 몰래 통하게 하였던 것인데 이 때문에 심하(深河)의 싸움에서 오랑캐의 진중에서 먼저 통사를 부르자 강홍립이 때를 맞추어 투항한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구금되어 있으면서 장계를 써서 종이 노끈을 만들어 보냈는데, 화친을 맺어 병화를 늦추자는 뜻을 자세히 언급하였다. 정응정 등은 도망쳐 온 것이 아니고 오랑캐가 풀어 보낸 것인데, 보는 이들은 모두 노추(奴酋)가 전쟁을 늦추려는 계획이라고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07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2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軍事) / 사법-탄핵(彈劾) / 가족-친족(親族)
○己未四月初八日辛酉備邊司啓曰: "賊臣弘立等, 奉命從征, 唯敵是求, 而乃於中路, 先遣小譯, 預通出兵之由, 有若初無戰意者然。 續因走回者之言, 疑信居半, 及見渠輩狀啓, 小無力屈被陷之狀, 又無偸生羞愧之意, 歷敘道途間行師節次, 敢以預通狼狽等語, 偃然上聞, 自以爲渠輩使事之當然, 末復指揮回答之辭, 以圖生還。 臣而降賊, 天下之極惡。 有犯乎此, 則拘囚(其)妻孥, 按法處置者, 國家之常刑, 況身旣降虜, 捧持胡書, 揚揚乘傳, 直入都門者乎? 將官家屬, 反加撫恤, 應井之徒, 息偃在家, 此不可使聞於上國(者也)。 且喬遊擊, 雖不縛給, 而逃死唐兵之在中營者, 區別逐出, 任其屠戮, 則雖謂之縛給可也。 大槪辨明之際, 徒言無益(於解惑), 必有明白實事, 然後可據而爲之辭。 此臣等所以拘囚各人妻子及拿問應井等事, 不避煩瀆, 縷縷陳請者也。" 傳曰: "今見啓辭, 意則好矣。 予雖昏病不淑, 自初知之久矣。 卿等以此賊爲何如也? 其以我國兵力, 有一毫可防之勢乎? 自上年咨檄之來, 予所憂慮者, 非欲防徵兵之送, 必先陳我國人心本來不固, 軍兵素未敎鍊, 一朝驅入無補於助戰之用, 急急敷奏於經略未出來之前。 則雖致今日之敗衄, 上年之奏, 已與相符, 豈非幸乎? 卿等不諒予意, 徒爲防塞, 只陳奏事情, 有何悖理, 竟不行予言乎? 予竊痛焉。 自上年軍兵之入送, 卿等有若可以一鼓蕩平者然, 兵家之事, 豈不懼哉? 古人之不敢輕用者此也。 天朝若陳兵耀武, 嚴守華夏之境, 有如虎豹在山之勢, 賊雖猖獗, 必不敢侮予矣。 不此之思, 輕進深入, 則必敗無疑。 予爲是懼, 日夜憂悶, 心恙尤劇, 若發狂疾之狀, 左右之人, 孰不知之? 今果然矣, 謂之何哉? 伊賊用兵智計, 實難抵當, 則前頭禍患, 將不可測。 爲今日我國之計, 君臣上下, 所當務袪雜事, 一意征繕。 養兵選將, 收用人材, 寬紓民瘼, 慰悅人心, 大開屯田, 造練器械, 城池瞭候, 無不整理, 然後庶可有恃, 以保緩急矣。 不然而或爲怠忽, 則大禍立至, 寧不惕然乎? 至如弘立等事, 雖曰降賊, 何必治之若是其急也? 弘立等不幸陷於賊中, 凡所見聞, 密書以啓, 有何不可? 苟如本司之啓, 則雖陷虜中, 不爲書送其聞見可乎? 嗟嗟! 廟堂訏謨老成之才, 則斥逐殆盡, 使不得預聞, 年少生踈之人, 多入於備局, 謀國不臧, 無足怪也。 益殫事大之誠, 勿爲小弛, 羈縻方張之賊, 善爲彌縫, 乃今日保國之長策, 而舍是罔念, 每以弘立等妻孥囚繫事, 煩啓不已, 予竊哂之。 本司屢請之意, 予亦豈不知乎? 徐爲善處, 固非晩也。 惟以先國家之急, 爲務可矣。 胡書入來, 今已七日, 至今未決。 國事之至此, 無非天數, 尤可痛也。" 當初弘立之渡江也, 王以重爲 違 天朝督發, 黽勉出師, 而我國初非讎敵, 實無戰意 攻之意。 密諭弘立, 遣人潛通于虜, 故深河之役, 虜中先呼通事, 弘立應時投附。 至是在拘囚中, 書狀啓裁作紙繩以送, 備及結好緩禍之意, 而鄭應井等, 旣非逃來, 自胡中解送, 見者皆以爲奴酋款兵之計云。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07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22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軍事) / 사법-탄핵(彈劾) / 가족-친족(親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