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111권, 광해 9년 1월 3일 기사 6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호조에서 재정이 탕진되 선혜청의 방법으로 운영하기를 청하다
호조가 아뢰기를, 【호조 참의 장세철(張世哲)의 상소를 지난 병진년 4월 4일에 특별 전교를 인하여 입계하였었는데, 정사년 1월 3일에 비로소 내리면서 점련(粘連)하여 비변사에 계하해서 대신에게 의논하라고 판하(判下)하였다. 】
"영의정은 의논드리기를 ‘나라의 재정이 이때보다 더 심하게 탕진된 적이 없는데, 선혜청이 이미 성과가 있었으니, 이 상소의 내용 역시 선혜청과 마찬가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만약 혹시라도 자질구레하게 방해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그때 가서 처리해도 됩니다. 다만 지금은 대신이 혹 외방에 있기도 하고 혹 정고(呈告) 중에 있기도 한데, 이와 같이 크게 경장(更張)하는 일은 수의(收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널리 조정의 의견을 거두어서 결정하소서. 삼가 상께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였습니다. 〈우의정 정창연은 병으로 인해 수의하지 못하였습니다. 상께서 결정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우선은 대신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서 널리 의논을 모아 처리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76장 B면【국편영인본】 32책 543면
- 【분류】재정(財政)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