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판서 황신이 재정의 고갈을 아뢰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대비할 것을 청하다
호조 판서 황신(黃愼)이 아뢰기를,
"신이 얼마 전의 계사에서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어 보니 ‘구임(久任)시켜 성취를 책임지운다.’는 뜻으로 유시하셨기에, 신은 진실로 황공하고 감격스러워 죽을 곳을 모르겠습니다. 신이 삼가 나름대로 생각건대, 임명을 받은 이래 벌써 3년이 되었는데도 재주와 국량이 부족하고 일을 처리함이 생소한 까닭에 제대로 조획(措劃)하여 구원(久遠)한 규모를 마련해내지 못하고, 전후로 힘을 들인 바라고는 소소하게 보철(補綴)하여 목전의 급한 상황을 구제하는 정도에 불과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는 국가의 재정이 점차 탕갈되어 관아에 저축해 둔 것이 없고 해관(該官)은 실직(失職)한 채 단지 허명(虛名)만 남았습니다. 이미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지 못한 데다, 또 지출을 헤아려 거둬들이지도 못하므로, 비유하자면 원천이 없는 물이 당장 말라 버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물며 이미 말라 버린 것이야 어련하겠습니까. 진실로 지금 당장 변통을 하여 국가의 큰 규모를 세우지 아니하면, 몇 년 가지 않아서 공사(公私)간에 모두 바닥이 나서 제아무리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또한 능히 그 뒤를 선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신은 삼가 우려하는 마음을 누를 수 없어, 감히 구구한 견해를 하나하나 별지에 적어 아룁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특별히 묘당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만일 가능하다고 하거든, 근거없는 논의에 흔들리지 마시고 착실하게 시행하소서. 그렇게 해주시면 신이 비록 재직하다가 말라 죽더라도 조금도 한스러워하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니하고서 신으로 하여금 그저 남의 뒤만 따라 오락가락하면서 의례적으로 책임만 때우도록 하신다면, 이는 실로 신이 평소 원하던 바가 아니고, 후일에 누적된 폐단이 더욱 고질화되어 대세가 지탱하기 어렵게 될 경우, 하는 일 없이 벼슬에 있으면서 일을 그르친 죄가 반드시 돌아갈 데가 있을 것이니 신은 삼가 안타깝습니다."
하니 왕이 따랐다. 【황신은 대체로 양전제(量田制)의 운용을 변통하고자 한 것인데, 후에 끝내 시행되지 않았다. 】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100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64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財政) / 농업(農業)
○辛亥八月初八日乙亥戶曹判書黃愼啓曰: "臣於頃日啓辭, 伏承聖批, 論諭以‘久任責成’之意, 臣誠惶恐感激, 不知死所。 臣仍竊自念, 受任以來, 已涉三年, 而才疏局淺, 處事生疎, 不能有所措劃以爲久遠之規, 前後所致力者, 不過小少補綴, 以救目前之急而已。 到今國計漸竭, 官無宿儲, 該官失職, 但存虛名。 旣不量入而爲出, 又不量出而爲入, 譬如無源之水, 立待其涸。 況其已涸者乎? 苟不及今變通以立國家大規模, 則不出數年, 公私困竭, 而雖有智者, 亦不能善其後矣。 臣竊不勝私憂過慮, 敢以區區愚見, 條列別紙以啓。 懇乞聖明特令廟堂覆議。 儻以爲可, 則勿撓浮議, 着實施行。 臣雖枯死官守, 少無所恨。 不然而使臣旅進旅退, 循例塞責而已, 則實非臣之素願, 而他日積弊益痼, 大勢難支, 則尸居誤事之罪, 必有所歸, 臣竊悶焉。" 王從之。 【愼, 蓋欲變通量田制用, 後竟不行。】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100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64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財政) /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