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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13권, 광해 1년 2월 28일 경진 3번째기사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사간원이 변방의 대비책으로 본도 장정을 군대로 뽑아 훈련시킬 것 등을 아뢰다

사간원이 〈연계하여 의관(醫官)을 잡아다가 국문하기를 청하고, 또〉 아뢰기를,

"지금 서북 두 변방의 일은 예측할 수 없는 근심이 조석에 닥쳤는데도 병력이 고단(孤單)하고 약하여 진보(鎭堡)의 관원만이 앉아서 빈 성을 지키면서 구차하게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니, 만일 급한 경보가 있을 경우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듯이 여지없이 무너져 수습할 수 없는 형세가 될 것이니 진실로 한심합니다. 비록 남방에서 조달해 보내는 군대가 있고 신출신(新出身)들이 입방(入防)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얼마되지 않는 수인데다가 또 수토(水土)에 익숙하지 못하므로 실용에 도움이 없고 다만 소요스런 폐단만이 있을 뿐이니, 본도(本道)의 장정을 다 군대로 뽑아 대오(隊伍)를 만들고 이어 전투를 익히도록 하여 반드시 지킬 계획을 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것이 옛사람이 이른바 1만 명의 군대를 징집(徵集)하는 것이 수천 명의 군대를 소모(召募)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함경도에는 이미 어사(御史)를 보내어 사천(私賤)을 찾아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수사의 노비가 가장 많고 실한데도 국가에서는 사인(私人)으로 취급하여 조용(調用)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평안도에는 토착 세력을 조금 가진 사람들로 직접 감영(監營)이나 병영(兵營)에 투속한 자들을 수영패(隨營牌)라 하는데, 그 수가 매우 많으니, 북도의 내수사 노비와 관서(關西)의 수영패를 모두 찾아내어 정규군(正規軍)으로 편성해서 방어와 수비의 계획을 세운다면 변방을 거의 믿을 수 있고, 남방에서 군대를 조발(調發)하는 폐해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상의해서 시행하게 하소서.

조정에서 건의해 선혜청(宣惠廳)을 설치한 것은 백성들의 피해를 제거하는 데 힘써서 백성을 안스럽게 여기시는 성상의 인자함을 몸받고자 함이었습니다. 오늘날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방납(防納)하고서 교활한 방법으로 대가(代價)를 곱절로 징수하는 폐단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경기도의 1년 공부(貢賦) 및 온갖 응역(應役)의 대가를 절감해 헤아려서 결수(結數)를 계산하여 쌀로 거두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대개 백성들이 무거운 짐을 벗고 편히 쉴 수 있는 것이 전일 방납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함부로 징수하던 수에 비교하면 몇 갑절이 덜한 정도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일이 시행되기도 전에 논의가 분분하고, 방납하는 사람들은 그 이익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따라서 교란시키니, 일이 장차 중도에 폐해지게 될 형편인지라 진실로 한심합니다.

대체로 일의 이해와 편부는 반드시 1년을 통하여 시험해본 뒤에야 징험해 알 수 있습니다. 단지 반년 동안만 시행하고 그만둔다면 각사에서 공물(貢物)에 대한 값을 줄 때 방애되는 일이 많아 이해의 소재를 미처 알 수 없을 것이니, 금년을 한정하여 선혜청의 사목(事目)에 따라 시행해서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시험해 알아보고 나서 다시 의논해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감인관(監印官)은 이미 추고하였으니 잡아다가 국문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선혜청의 일은〉 서서히 결정하겠다. 내수사 노비는 군대로 편성한다 해도 별로 할 만한 일이 없다. 수영패는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107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398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신분-천인(賤人) / 호구-이동(移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재정-공물(貢物)

○司諫院(連啓拿鞫醫官, 且)啓曰: "目今西北兩邊之事, 朝夕可 , 而兵力單弱, 鎭堡之坐守空城, 苟冀無事, 脫有警急, 土崩瓦解之勢, 誠可寒心。 雖有南方調送之軍, 新出身入防之事, 終是零星, 且不習水土, 無補於實用, 只有騷擾之弊。 莫若悉簽本道丁壯, 作爲隊伍, 仍加陣習, 以爲必守之計。 此古人所謂徵兵滿萬, 不如召募數千。 咸鏡道則私賤已遣, 御史刷出矣。 內需奴婢, 最爲富實, 而國家視爲私人, 不許調用。 平安道則稍有根着勢力之人, 直爲投屬於監兵兩營, 謂之隨營牌, 其數甚多。 北道之內奴、關西之隨營牌, 悉加刷出, 編作正軍, 以爲防守之計, 則邊圉庶有可恃, 而南方調發之弊, 亦可矣。 請令廟堂商議施行。 朝廷建議設宣惠廳, 務祛民瘼, 以體聖上如傷之仁。 而目今病民之事, 莫甚於防納、刁蹬之弊。 故節量京畿一年貢賦及凡百應役之價, 計結收米。 蓋其輕歇比之於向日防納人輩濫觴之數, 不啻倍蓰。 而事未及施, 論議紛紜, 防納人輩恐其失利, 又從以撓之, 勢將中廢, 誠可寒心。 大槪利害便否, 必通試一年, 然後可以驗知。 若只行於半年而止, 則各司貢物給價之時, 事多妨礙, 而利害所在, 有未及知。 請限今年依宣惠廳事目施行, 驗知利害之歸, 更議定奪何如?" 答曰: "(監印官已爲推考, 何必拿鞫? 宣惠廳事)徐當發落。 內奴作隊, 別無可爲之事。 隨營牌事依啓。"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107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398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신분-천인(賤人) / 호구-이동(移動)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재정-공물(貢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