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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12권, 선조 11년 5월 1일 신해 1번째기사 1578년 명 만력(萬曆) 6년

다시 대사간으로 이이를 부르자 사직 상소를 올리고 또 치도에 대해서 아뢰다

다시 대사간으로 이이를 부르자 이이가 상소하여 사직하고 또 아뢰기를,

"전하께서 만약 신이 쓸 만한가의 여부를 아시고 싶으시다면 마땅히 시사(時事)에 대하여 물어 보소서. 그리하여 신의 말이 쓸 수가 없다면 다시 부르지 마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그대의 사직 상소를 보았다. 간장(諫長)006) 의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어서 이에 본직을 체직한다. 그대에게 좋은 의견이 있으면 사실대로 봉서하여 아뢰라."

하자, 이이가 드디어 상소하기를,

"성비(聖批)에 ‘그대에게 좋은 의견이 있으면 사실대로 봉서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신이 삼가 받들어 보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신은 성은을 받고 감격하여 순국(徇國)할 뜻을 갖고 있었으므로 보잘것없는 저의 충심을 다 바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어떠한 형벌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신은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성상께서 넓으신 도량으로 후하게 용서하시어 신으로 하여금 말을 올리게 하시는 데이겠습니까. 신은 이제 간담에 쌓인 회포를 모두 짜내어 성상의 뜻에 저촉된다 하더라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도(道)에서 찾아보소서.

아, 지금 건도(乾道)가 떳떳함을 잃고 칠정(七政)007) 이 궤도에 어긋나며, 요성(妖星)이 하늘을 뒤덮고 흰 무지개가 해를 가로지르며, 때 아닌 바람이 부는가 하면 우박이 내리고 수해와 한재가 극도로 기승을 부리며 나쁜 기운이 공중에 가득하여 여역(癘疫)을 빚어내고 있는 것을 전하께서 이미 우러러 관찰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축(地軸)이 안정을 잃어 때 아닌 지진이 일어나고 큰 냇물이 마르며 명산이 소울음 소리를 내는가 하면 새와 짐승이 괴상한 형상을 나타내며 나무와 돌이 괴이한 형태를 드러내고 토기(土氣)가 산만하여 오곡이 성장하지 않는 것도 전하께서 이미 굽어 살피셨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습이 투박해져서 말만 앞세우며, 의(義)를 뒤로 돌리고 이(利)만 앞세우며 공(公)을 병들게 하고 사(私)를 살찌우며 지저분한 사람은 날로 성하고 충직한 사람은 날로 고립되며 기강이 문란하고 어긋나서 온갖 공이 모두 무너져 버리는 것을 전하께서 이미 직접 보신 일입니다. 백성이 도탄에 빠져 허덕이며 사람의 상도(常道)가 모두 없어져서 부자 형제가 서로 해치고 있으며 강상이 없어지고 도적이 횡행하여 그 재해가 홍수(洪水)보다 참혹하고 풍속이 오랑캐보다도 심한 것을 전하께서 역시 들으셨을 것입니다. 하늘이 노여워하고 백성은 곤궁하여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와진 것을 모두 전하께서 스스로 아시는 일인데 신이 감히 장황하게 진달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그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은 들으니, 천하의 모든 일에는 본(本)과 말(末)이 있어서 본을 잘 다스리면 말은 자연히 다스려지기 마련이지만 본을 버리고 말을 우선하다 보면 한갓 수고롭기만 할 뿐, 이익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은 바로 한 나라의 근본이 되므로 치란(治亂)이 임금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할 도리를 다했는데도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인심과 세도(世道)가 한결같이 이 지경이 된 것을 보면 전하의 정치와 교화가 훌륭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치와 교화는 임금의 마음과 관계되는 것이고 보면 전하께서 자신을 반성하는 학문과 성의(誠意)·정심(正心)의 공부가 미진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 이 점에 근본을 추구하여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 도가 밝아지지 않고 행해지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성인의 경(經)과 현인의 전(傳)이 다만 미담거리가 되었는가 하면, 명예를 구하는 자가 이것을 빌어 영예를 얻고 작록을 구하는 자가 이것을 계제로 하여 벼슬을 얻고 있을 뿐, 그 말을 실천하고 그 몸을 닦는 자는 극히 적으니 진실로 호걸스런 인재가 아니면 누가 백세(百世) 뒤에 분발하여 일어나서 한때의 누습을 씻어줄 수 있겠습니까.

아, 전하의 영특하신 자질은 대단히 탁월하신 데다가 명세(命世)의 재질까지 소유하시고서 군사(君師)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계시니 치세의 형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윤덕(允德)과 선치(善治)를 이루지 못하고 계시니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예로부터 신하된 자로서 선(善)을 실천하는 자가 적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이(利)를 좋아하는 데다가 쇠세(衰世)에는 선을 실행하더라도 이로움을 받지 못합니다. 예컨대 자신이 정직하면 남들이 시기하고 정도를 밟아가면 벼슬을 잃게 되고 직책을 잘 이수하면 질투하는 자가 생기고 충성을 다하여 말하면 임금의 은혜가 바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으로 도에 뜻을 두고 자기를 위하여 학문을 하는 선비가 아니면 선을 실천하지 못하고 대부분 유행되는 풍속에 빠져들곤 합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렇지 않아서 도가 자신으로부터 행해지고 정치도 자신이 실시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면 하늘이 상서를 내려주고 악을 행하면 재앙을 내려 주며, 백성들은 자신을 보살펴주면 임금으로 여기지만 포악하게 하면 원수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을 환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임금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선을 행하는 경우가 적은 것은 욕심에 가로막혀 자기의 본심을 잃은 때문입니다.

대체로 성색(聲色)을 좋아하다 보면 황음(荒淫)만을 즐기게 되어 그것이 짐독(鴆毒)보다 나쁜 것인 줄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재화를 좋아하다 보면 거두어 들이는 것만을 일삼게 되어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을 알지 못하며, 놀기만을 좋아하다 보면 절도 없는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잘못된 정치가 해됨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용병하기를 좋아하다 보면 그칠 줄 모르고 무력을 남용하게 되어 백성들이 앙화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게 됩니다. 임금이 도를 잃게 되는 것은 대개 이 네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밝고 순수한 기질을 받으신 데다가 몸가짐을 검소하게 하고 계시니 어찌 여색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는 병폐가 있다고 하겠습니까. 성상께서 12년 동안 임어하시면서 일찍이 유람하고 관광한 적이 없으셨으니 정사를 게을리하며 놀기만하는 병폐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비만 철저하게 하고 함부로 군대를 출동하지 않으셨으니 역시 용맹을 좋아하는 병폐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무슨 병폐가 있어서 학문에 종사하여 몸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십니까.

도는 높거나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사용하는 가운데 있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지극히 어려운 것으로 여기고 어떤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것을 우려하여 아예 시도하려 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전하께서도 지극히 어렵다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십니까? 전하께서 이미 분발하여 성인(聖人)이 되시려는 뜻이 없으셨기 때문에 여러 신하들이 모두 그럴 것으로 보고 정심(正心)·성의(誠意)에 대한 말을 듣기 싫은 진부한 말이라 하고 책난(責難)·진선(陳善)하는 것을 어리석은 선비의 오활한 대책이라고 생각하여 경연 석상에서는 다만 문자를 해석하는 것으로 계옥(啓沃)의 책임을 때우고 있을 뿐이며, 전하 역시 반복하여 자훈(字訓)과 문의(文義)만을 자문하시고 절실한 실천의 공부에 대해서는 하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대체로 글을 읽으면서 글뜻만을 구하고 자기의 몸에 반성하여 찾지 않는 것은 곧 과거 공부를 하는 선비들이 명예를 구하고 작록을 구하는 일입니다. 속된 선비들이야 이렇게 하여 신분이 발로되어 명성이 드높고 작록이 후하게 되면 그들의 소원을 이루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전하의 소원은 요순 같은 성군이 되고 요순 시대의 백성같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인데 어찌 그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고 실질적인 것은 추구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 일입니다.

아, 전하께서 경국 제세의 자질로 중대한 왕업을 부탁받으시어 청명한 정치로 시작하셨으니 어찌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리어 백왕(百王)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싶은 뜻이 없으시겠습니까마는 여러 신하 중에 성상의 뜻을 받들어 담당할 자가 적다 보니 조정의 계책이 마땅함을 상실하였고 쓸 만한 사람은 시험해 보아도 공적을 이루지 못하며 의논이 통일되지 않아 성상의 덕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정의 대신들 사이에는 시행해 볼 만한 말들을 하고 있으나, 성상의 혜택은 대궐문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상의 마음 속에 서글픔이 감돌아 비로소 다스리지 못하겠다는 탄식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큰 일을 하시려던 뜻이 저상(沮喪)되었습니다. 성상의 뜻이 이미 저상됨에 따라 다시 다스림을 도모하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 신하들도 그런 것을 보고 마음이 누그러지고 몸이 해이해진 채 봉록 받아먹는 것만을 일삼고 있으며 사람을 위하여 관직을 가리는 등, 하는 일 없이 노닐며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관직에 오래 있게 되면 병을 핑계로 우물쭈물 세월을 보내면서 녹봉만을 축내고 있을 뿐, 온갖 일을 다스리지 않고 있으며 간혹 공무를 받들어 직임을 다하는 자가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반드시 지목을 하면서 어리석고 망령되다고 기롱하기도 하고 명예를 낚는 행위라고 풍자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일을 게을리하고 시속을 따르는 자라야 위로는 임금에게 바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아래로는 벗을 잃지 않을 수 있으므로 밖에는 비방하는 사람이 없고 안에는 친히 꾸짖는 사람이 없게 되어 하는 일 없이 좋은 음식을 먹으며 편안히 앉아서 몸을 영화롭게 하고 집을 윤택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선비들이 자기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본심이 그래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몸이 용납되고 직위가 보존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사람의 뜻을 따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아, 대부분의 사람들이야 그 누가 자기에게 이롭게 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도를 지키는 군자만이 의(義)를 중히 여기고 이(利)를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의를 중하게 여기고 이를 가볍게 여기는 자가 과연 몇 사람이나 된다고 보십니까.

세속을 따라서 관직을 구하면 자신이 영화롭게 될 수 있고, 세속을 따라 재물을 구하면 가정을 부자로 만들 수 있으므로 이롭게 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이롭게 여길 것이 없고 다만 시사(時事)가 날이 갈수록 잘못되어 수습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2백 년의 사직이 위태로와 망할 지경에 다다르고 있음을 전하의 총명하심으로 환하게 알고 계시는 것이며 전하의 능력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이제까지 손을 쓰시어 구제하시 않으십니까. 옛날 춘추 시대에는 세도(世道)가 쇠미해서 제후가 제멋대로 통제하고 대부들이 정권을 마음대로 하는 등 천하가 극도로 혼란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필부의 힘이었지만 오히려 한 세상을 구제하고자 하시어 천하를 철환(轍環)하면서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세도를 바꾸어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성인의 마음은 도가 없다고 하여 반드시 천하를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도가 떨어져 비록 춘추 시대보다도 못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열국들의 전쟁하는 환난이 없고 전하께서는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계시니 필부였던 공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아 정치를 잘 해보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가능합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어찌 도가 없다는 이유로 한 나라를 포기하셔서야 되겠습니까. 이것이 두 번째 일입니다.

아, 전하께서는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고 기개가 한 세상을 다스릴 만하지만 성상의 학문이 진보되지 않고 도량이 넓어지지 않기 때문에 선비를 가볍게 여기는 뜻을 가짐으로써 그 사람을 불신하고 그 사람의 말을 채택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위로는 대신에서 아래로는 서관(庶官)과, 가깝게는 시종(侍從)에서부터 밖으로 악목(岳牧)에 이르기까지 전하께서 마음 속으로 믿으시고 소중히 여기시어 그의 모유(謨猷)를 채택해준 자가 과연 누가 있습니까.

심지어는 이미 고인이 된 훌륭한 자로서 한 시대에 추앙받던 자까지도 전하께서는 오히려 추대하지 않으시는데 더구나 오늘날 선비이겠습니까. 선비 중에 쓸 만한 재능을 가진 자가 있으면 전하께서는 그가 일을 좋아할까 걱정하시고 곧은 말과 정쟁(廷諍)하는 자가 있으면 전하께서는 그가 명령을 어길 것이라고 여겨 싫어 하시며, 유자(儒者)의 행실을 수행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전하께서는 그가 교식(矯飾)한다고 의심하시니,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떤 도를 배우고 어떤 계책을 진달해야만 성상의 마음에 맞아 신용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쇠퇴한 세상에서는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자를 좋아하고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자를 미워하기 때문에 유자들은 미움을 받고 속된 부류들만 제세상을 만난 듯합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이런 폐단을 생각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세속의 보통 인정으로 말을 한다면 유자(儒者)는 참으로 미워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정치를 논할 적에는 옛날 당우(唐虞) 때의 정치를 인용하고, 임금에게 간할 적에는 어려운 일로 책임지우며, 벼슬로 붙들어도 머물러 있지 않고 총애를 해도 즐거워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뜻을 행하려고만 하니 참으로 등용하기가 어려운 자들입니다. 그 사이에는 과격한 자도 있으며 오활한 자도 있습니다. 또한 명예를 좋아하는 자도 그 반열에 끼어 있기도 하니 어찌 세주(世主)가 미워할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유속의 선비는 시대에 순응하고 무리의 뜻에 동조하여 거스르는 것이 없고 임금을 섬기는 데에 익숙하여 임금의 명령만을 따르고 잘못된 습속에 태연하여 교격한 것을 일삼지 않으니 이는 진실로 임금이 친절히 하고 신임하는 바입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유자는 의(義)를 좋아하고 세속의 부류들은 이(利)를 좋아하는데 이를 좋아하면서 그 임금을 사랑하는 자는 없으며 의를 좋아하면서 자기의 임금을 잊은 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루 아침에 화란(禍亂)이 일어나면 몸을 바쳐 임금을 구제하는 등 의를 취하고 삶을 버리는 자는 반드시 유자 중에서 나타나지 결코 세속의 부류 중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 의를 좋아하는 자는 국가를 위하고 이를 좋아하는 자는 자기 집을 위하기 마련인데 국가를 위하고 자기 집을 위하는 것을 분별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조정의 신하로서 하는 일 없이 세파만을 따르고 건백(建白)하는 일도 없으며 임금이 과실이 있어도 감히 규정(糾正)하지 못하는 자는 대부분 자기 집만을 위하는 자로서 그 이익을 상실할까 두려워합니다. 만약 정색하고 바른 말을 하면서도 회피하는 바가 없으며 의견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하고 재능이 있으면 반드시 최선을 다하는 자는 대체로 나라를 위하는 자로서 그 의리를 상실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임금이 명확하게 분별하지 못하면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들이 그 틈을 잘 이용하므로 집을 위하는 자들은 대부분 은총을 받아 발탁되고 국가를 위하는 자는 대부분 형벌을 받고 죽어가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중에 명예를 좋아하는 선비로 옳은 듯하여 분변하기 어려운 자가 있습니다. 임금이 만약 이치에 밝고 의리에 정밀하시기만 하면 거짓된 자 역시 그 본색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명예 좋아하는 자를 미워한다 하여 실덕(實德)이 있는 선비까지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기묘년008) 사이에 중종(中宗)께서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매우 예리하시어 여러 어진 사람들이 떼를 지어 진출하였는데 그 속에 어찌 명예를 좋아하는 자가 없었겠습니까마는 대개는 나라를 위한 자가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참소하는 자들이 끝없는 무함으로 교묘하게 꾸며가지고 마침내 사류(士類)들을 일망타진하였습니다. 조광조(趙光祖)는 죽음에 임하여 시(詩)를 짓기를 ‘임금 사랑하길 아버님 사랑하듯 저 하늘 저 태양은 이 마음 알리라[愛君如愛父 天日照丹衷].’라고 하였는데 신이 이 시구를 욀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전하의 밝으심으로 반드시 간인(奸人)들의 속임을 당하지 않으실 것이니 결코 기묘 사화(己卯士禍)같은 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전하에게 바라는 것이 어찌 사림의 화가 발생하지 않는 것뿐이겠습니까. 전하의 기개가 높고 밝으시다보니 그 누구도 신임과 존중을 받은 자가 없고 그 어느 계책도 채택(採擇)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대소 관리들이 잠자코 따르기만 하는 것이 습성이 되어 구차하게 벼슬자리에 앉아 있을 뿐, 어진 자는 감히 덕으로써 보필하지 못하고 재능이 있는 자는 감히 재능으로써 돕지 못하고 있으며, 지혜 있는 자는 그 지모를 올리는 일이 없고 용맹스런 자는 그 용단성을 사용하는 일이 없으므로 충신들은 깊이 탄식하고 있는 반면 비부(鄙夫)들은 좋아라고 치닫고 있으니 전하의 나라 일이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는 형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일입니다.

아, 전하께서 세상 일을 유념하고 계시며 백성들의 시련을 염려하고 계시지만 지금까지 정사의 폐단을 한 가지도 고치지 못하였고 백성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하께서 전규(前規)만을 굳게 지키시고 변통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제왕이 왕업을 이룩하고 법을 제정할 적에는 비록 진선진미하였다고 하더라도 시대가 바뀌고 사태가 변화되며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는 것으로 볼 때, 후세의 자손으로 선대의 사업과 뜻을 잘 계술하는 자는 반드시 편의에 따라 고쳐야 하고 옛법만 고집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서산(眞西山)009)《중용(中庸)》에서 말한 계술의 뜻에 대해 논하기를 ‘지켜야 할 것을 당하여 지키는 것이 진실로 계술이지만, 변통해야 할 때를 당하여 변통하는 것도 계술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참으로 정치의 체제를 아는 자의 말입니다. 우리 나라는 태조 대왕께서 왕업을 창건하고 법을 세우셨는데 제도의 대강만을 거론하였고 세부 절목이 갖추어지지 않았었습니다. 열성들이 계승하시어 수시로 법을 만들었고 한 규례에만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각각 그때의 사의(事宜)에 적합하게 하였으므로 《대전(大典)》을 반포할 때에는 그 법이 한두 조항 행할 수 없는 것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연산조에 와서 조종(祖宗)의 전형(典刑)을 모두 전복시켰던 것을 중종 반정으로 인하여 기강을 고칠 수 있게 되었으나, 조정 신하들 중에 시무(時務)를 아는 자가 적어서 의논이 경화(更化)하는 데 미치지 못했고 게다가 사림의 화까지 일어나서 온갖 일이 와해됨으로써 조종의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이 많이 폐지되고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권세를 잡은 대신과 일을 주관하는 관리가 그때그때 지혜를 써서 법조목을 더 설치하여 세금을 거두어 들여 백성을 병들게 하는 제도가 되었는데 시행한 지 오래되자 마침내 성법으로 만들어져 금석같이 변경할 수 없는 법으로 여기고 감히 경장(更張)할 계획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른바 지키려고 하는 것이 조종의 성헌(成憲)에 있어서는 빈 명칭만 지키고 있을 뿐 실속이 없으며, 근대의 폐법(弊法)에 대해서는 그대로 따르는 데만 힘쓸 뿐 고치지 않고 있으니 정치가 부흥되지 못하고 백성들이 곤궁하게 되는 것은 주로 이 때문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참으로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하시려고 하신다면 비록 조종조의 옛법이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시의에 맞게 변통해야 할 터인데, 더구나 권리를 잡은 간신이 백성을 병들게 한 법을 고치는 데 있어서는 당연히 불타는 것을 구제하고 물에 빠진 자를 건져내듯이 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그것을 애써 준수하여 스스로 위태롭고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십니까.

지금 의논하는 자들은 대부분 ‘법대로 정치를 하면 염려할 것이 없다. 그러나 만약 법을 고치려고 한다면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자가 아니고는 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 말이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른바, 법대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사용해도 될 만한 법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백성을 병들게 하는 법을 지키면서 백성이 다스려지기를 구한다면, 도리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면 후일에 재앙은 없다는 것만도 못합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정했던 공안(貢案)같은 것은 바로 임사홍(任士洪)이 설치한 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임사홍같은 무리가 만들어 놓은 폐법(弊法)을 반드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개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가령 오늘날 이 잘못된 전례를 고치지 않는다면 비록 성주(聖主)가 위에서 걱정하고 훌륭한 정승이 아래에서 몸이 지치도록 충성을 다한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못살게 되는 폐해를 구제할 길이 없어서 마침내는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이를 일반 가정에 비유해 보건대, 그 자손이 선인(先人)이 물려준 큰 집을 지키면서 오래도록 중수하지 않아서 들보와 기둥이 썩고 기와와 벽돌이 깨져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그 형세가 장차 무너지게 되었다면, 어찌 팔짱을 끼고 앉아서 그 쓰러져 가는 현상을 보고만 있는 자를 계술을 잘한다고 하고 반대로 깨진 기와를 바꿔 끼우고 썩은 기둥과 들보를 갈아내는 자를 잘 유지하여 지키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남의 말을 듣는 방법은 반드시 그 일을 가지고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감히 망령된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신이 번번이 경장의 말을 올리기 때문에 전하께서 매우 듣기 싫어하고 계시는 실정입니다. 지금 실제의 일을 가지고 증험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 지난 선대가 걸어온 길과 그 전례를 따르고 지켜 오신 지가 지금 10년이 지났습니다. 그것이 만약 정치의 대도에 당연한 것이었다면 의당 공이 이루어지고 제도가 안정되어 위에서는 편안하고 아래에서는 순종해야 할 것인데 그것을 유지하여 지키기를 더욱 오래될수록 온갖 병폐가 더욱더 발생하여 정사(政事)는 날이 갈수록 문란해지고 기강은 날이 갈수록 무너져 가며 백성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괴로와지고 풍속은 날이 갈수록 퇴패됩니다. 이렇듯 온 나라 기강이 무너져 마치 터져 흐르는 강물을 막아낼 수 없는 것같은 상태가 되었으니,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전하께서도 그 실상을 알고 계실 것인데 어찌하여 반복해서 생각해보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네 번째 일입니다.

위에서 말한 이 네 가지 일이 오늘날 고질적인 병폐로 그 뿌리가 깊습니다. 위로는 전하로 하여금 스스로 부족하게 여기며 퇴탁(退托)하게 하고 구습에 젖게 하여 분발 진기해서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려는 의지가 없도록 만들었고, 다음으로는 조정 신하들로 하여금 눈치나 보며 관직을 얻기 전에는 얻지 못할까 걱정하게 하고 얻고 나면 잃을까 걱정하게 할 뿐, 국가에 몸 바쳐 충성을 다하고 허물을 보완할 마음이 없도록 만들었으며, 아래로는 백성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객지에 떠돌면서 안주할 곳을 잃고 저처럼 고단한 신세가 되어 편안한 생활속에 즐겁게 일을 하면서 위로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 처자를 보육할 자본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상하와 사방에 갈 곳이 없게 된 형편이니 아, 너무나 괴로운 일입니다. 만약 이 네 가지 병폐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고요(皋陶)익(益)·직(稷) 같은 자로 하여금 조정에서 국사를 계획하게 하고 주공(周公)소공(召公) 같은 자로 하여금 외방에서 정치를 하게 하더라도 끝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소견 좁은 신하들로 성상의 조정에서 좌지우지하게 하는 경우이겠습니까.

예부터 충신으로서 임금에게 진언(進言)하는 경우 반드시 다스려진 세상을 어지러운 세상이라고 지적하기 때문에 임금이 미리 헤아리기를 ‘이 세상이 어찌 이러한 극한 상황에 이르렀는가. 신하로서 임금에게 진언하는 방법은 아마도 이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여깁니다. 지금 전하께서도 신의 말을 헤아려 보셨습니까? 오늘날이 과연 다스려진 세상인데 어리석은 신이 지나치게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날 나라의 형편과 백성들의 정황으로 볼 때 일이 없는 보통 때일지라도 진실로 이미 병이 깊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형체는 겨우 보존하고 있으나 숨이 곧 끊어져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만에 하나 불행하게도 조정 안에서는 소인들이 사림에게 화(禍)를 전가시키는 일이 발생하고 밖에서는 전쟁이 벌어질 조짐이 생겨 적이 침입해오는 일이 있게 된다면 이는 국가의 운명이 끝장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소인들이 사림들에게 화를 전가시키는 작태에 대해서는 성명이 위에 계시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만 전쟁의 경우는 어찌 반드시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지난 해에 조정에서는 양전(量田)의 일이 있어서 한산직(閑散職)에 있는 조사(朝士)로 경차관에 충당하려고 세 번 영을 하고 다섯 번 신칙을 했는데도 끝까지 선뜻 나선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양전하는 일이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조사가 시비를 모르는 무식한 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유식한 사람을 죽지 않을 땅에 보내는 일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을 보면 기강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으며 인심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강과 이러한 인심을 가지고서 만약 외적의 침략을 받게 되면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을 위하여 죽을 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전조(前朝)010)공민왕 때에 홍건적의 14만 기병(騎兵)이 얼음이 언 압록강을 건너서 침략해 오자 고려에는 그들을 막아낼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곧바로 송경(松京)011) 으로 쳐들어오자 왕은 안동(安東)으로 피해가서 군사 20만 명을 수합하여 이길 수 있었으니 이때의 병력이 오히려 오늘날의 병력보다도 우수했습니다. 만일 오늘날에 외적의 침략을 받게 된다면 비록 1만 명이 못되는 기병이 온다 하더라도 어느 사람이 감히 막아내겠습니까.

비단 외적의 침략만이 걱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고 재정은 바닥이 나서 그 형세가 반드시 도적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영남에서 진을 치고 대장과 대치한 군졸들의 일로 보더라도 이는 나라를 반역하려는 조짐입니다. 한 곳에서 진을 치고 대치했다가 다시 흩어진 정도는 전하께서 붙잡아다가 처벌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만일 곳곳에 진을 치고 대치하면서 흩어지지 않는다면 전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신의 말은 모두 실지의 사실을 근거한 것인데 이것이 과연 지나친 말이라 하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만약 아름다운 자질이 없으시어 좋은 정치를 하지 못할 임금이라면 신이 비록 간절하게 말씀을 진달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신이 애끓는 음성으로 속마음을 피력하여 여러 편의 상소와 연속적인 글을 이미 물러나서도 오히려 그만두지 못하고 올리는 것은 다만 전하의 자질이 도(道)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보고 오늘 깨닫지 못하시면 내일은 반드시 허물을 뉘우치실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신의 계책은 참으로 자신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오나 신의 정상은 참으로 슬프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보살펴주시지 않았더라면 신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들으니 때에는 비태(否泰)가 있고 일에는 기회(期會)가 있다고 합니다. 비색할 때에도 다스릴 수 있는 기미(幾微)가 있는 것이며 태평할 때에도 역시 혼란의 요소가 없을 수 없으니 임금이 이를 세밀히 살펴서 그 기회를 잘 이용해야만 합니다.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신 초기에 훌륭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으므로 온 나라의 사람들이 기대를 갖고서 훌륭한 정치를 하실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는 바로 다스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대신들은 나라를 경영해 나갈 원대한 계획이 없어 성상의 슬기로우신 뜻을 이끌어 도와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주상을 보통의 길로 인도하여서 마침내 그 기회를 잃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을해년012) 에는 성상께서 상사(喪事)013) 를 당하시어 상제(喪制)에 대한 예(禮)를 다하시고 유신(儒臣)들을 친밀히 하고 가까이 하시면서 나라 다스리는 방도를 강구하시니, 사람들의 마음이 흡족해하면서 덕치의 교화가 있을 것을 바라게 되었었습니다. 그러니 이 역시 잘 다스릴 수 있는 계기였는데 때마침 헌리(憲吏)가 잘못 궁금(宮禁)에 저촉되자 대신(臺臣)이 사실대로 대답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주상의 노여움을 격발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상의 마음이 바뀌어 반대로 유자(儒者)를 싫어하시게 되었고 결국 그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비유해 보면 봄날이 따뜻하여 초목의 새싹이 한창 돋고 있는데 무서리가 갑자기 덮쳐 다시는 자랄 수 없게 된 것과 같습니다. 지금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하노라면 심장이 떨리고 창자가 뒤틀려 스스로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전하께서 원흉(元兇)들의 은밀한 술책을 통촉하시고 인성 왕후(仁聖王后)014) 의 아름다운 뜻을 삼가 받들어 위훈(僞勳)을 삭제토록해서 국시를 정하시고 근본과 지엽을 말끔히 정리하셨습니다. 이처럼 성상의 결단이 여러 신하들의 상상을 초월하여 30년 동안 신(神)과 사람의 분한 마음을 하루아침에 시원하게 풀어주고 여한이 없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이 서로 경하를 했으며 불구자까지도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습니다. 명분을 바로잡은 이 일로 인하여 다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일고 있었으니 이것 역시 다스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전하께서 전날에 이미 그 기회를 두 번씩이나 놓치셨는데 이번에 어찌 차마 세 번까지 놓칠 수 있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몸을 수양하지 못하고 남을 다스리지 못하시는 것은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만약 이 네 가지 병폐가 해가 된다는 것을 아신다면 오늘날 마땅히 힘써야 할 일이 어찌 이 네 가지 병폐를 시급히 제거하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진실로 어느 날 시급히 개연히 분발하시어 ‘사람의 성품은 모두 선한데 나만 홀로 요순이 될 수 없단 말인가. 도(道)는 고금의 차이가 없는데 나만 홀로 지극한 다스림을 일으키지 못한단 말인가. 조종이 나에게 부탁해 주신 왕업을 어찌 차마 내가 직접 무너뜨릴 수가 있겠는가. 조종이 바른 도로 다스리던 백성들을 어찌 차마 지금 와서 버릴 수가 있겠는가. 인재는 다른 시대에서 빌려오는 것이 아닌데 우리 나라에 어찌 인재가 전혀 없겠는가. 법은 때에 따라 변통을 해야 하는 것인데 옛 규례라 하여 어찌 다 지킬 수 있단 말인가.’ 하시고, 이미 이 마음을 분발하시어 기본을 세우시고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시어 손수 애통해하시는 전교를 써서 내리시는 한편 지성으로 현능한 사람을 부르시고 지성으로 충성된 말을 구하시며 전날의 평상적인 일만을 따르던 습관을 벗어버리시고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의 희망을 북돋아 주소서. 그리하여 어진 선비가 이미 모여들고 여러 사람들의 좋은 계책이 이미 모이게 되면 또한 모름지기 뜻을 굽히시고 대책을 물으시며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리고 충성된 말을 반드시 받아들이고 훌륭한 계책을 반드시 취택하여 그것으로써 몸을 닦고 그것으로써 정치를 한다면 현자는 그 도가 행해지기를 구하고 능한 자는 그 재능이 쓰여지기를 구하여 반드시 천리의 먼 길도 멀다 하지 않고 찾아오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제왕으로서의 선무(先務)는 인재를 얻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는데 인재를 얻는 방법은 또한 몸을 닦는 데 있는 것입니다. 몸이 닦이지 않으면 마음이 바르지 못하며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지혜가 밝지 못하며 지혜가 밝지 못하면 충성과 간사함을 분변하지 못하고 착함과 악함을 분변하지 못하게 되니 어찌 인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공자는 ‘정치를 잘 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인재를 얻는 데 있으니 인재를 취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양이 있어야 하고 수양은 도로써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전하께서 옛 습관을 버리시고 성심으로 도를 향하려 하신다면 반드시 몸을 닦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닦아 인재를 취하는 데 있어 몸을 닦는 방법은 성현의 말씀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신이 전날에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지어 올렸는데 이는 신의 말이 아니고 바로 성현의 격언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유념하고 계십니까? 수신(修身)의 대요는 이 책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신이 다시 군더더기 말을 오늘날에 진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생각하건대 몸을 닦는 실지의 공은 기질을 바로잡아 다스리고 병세를 살펴 약을 투여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 뜻을 세우지 못하시고 몸을 닦지 못하시며 정사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무슨 병근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이는 전하께서 당신께 돌이켜 구하는 데 있을 따름입니다.

신이 보기에 성상께서는 스스로 믿는 데에는 중히 여기시고 남의 의사를 따르는 데에는 소홀히 하십니다. 대체로 스스로 믿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선을 택하여 중(中)을 잡고 자신을 믿는다면 참으로 항심(恆心)이 있어서 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믿는 데에만 전일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선을 취하는 데에 자료가 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권형(權衡)이 그 정당성을 잃고서 스스로 믿는다면 ‘오직 내가 하는 말에 따르고 나의 취지를 어기지 말라’ 하는 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옛날 제왕들은 마음을 비우고 선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써 덕을 키워가는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스스로 스승을 얻을 수 있는 자는 왕노릇 할 수 있고 남을 나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자는 나라를 망치며, 묻기를 좋아하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 의견이 협소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성스러운 지혜를 가지셨으니 의당 선이라면 어느 것이든지 따라야 할 터인데 오히려 지나치게 이기기를 좋아하는 병에 얽매어 계시니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전하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성학이 이미 이루어져서 남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 없다고 여기셔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에 어진 선비가 없어서 믿을 만한 자가 없다고 생각되셔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일에 마음을 쓰시느라 선을 행하는 데 겨를이 없으셔서 그러십니까? 아니면 성상의 마음이 아득하시어 시비와 선악에 대해 전혀 주관하시는 바의 생각이 없으셔서 그러십니까? 저울질을 해본 다음에 그 물건의 경중을 알 수 있고 자로 재본 다음에 그 물건의 길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저울질과 자질을 해보셨습니까?

만약 전하께서 스스로 성학이 이미 성취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옛사람이 요(堯)임금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남의 좋은 점을 따랐다.’고 하였고, 순(舜)임금에 대하여 ‘남에게 좋은 점이 있으면 그것을 취하여 그들과 함께 선(善)을 실천하기를 좋아하였다.’ 하였으며, 우(禹)임금에 대해서는 ‘훌륭한 말에 절을 했다.’ 하였고, 탕(湯)임금에 대해서는 ‘간언을 따르고 어기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요(堯)·순(舜)·우(禹)·탕(湯)과 같은 임금은 덕이 이미 지극하였고 정치가 이미 극치에 이르렀는데도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남의 선한 말을 따르면서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했습니다. 더구나 지금 전하께서는 덕이 네 분의 성인에 미치지 못하시며 정치가 삼대(三代)에 미치지 못하시는데 남의 말을 소홀히 하고 성심으로 구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만약 세상에 어진 선비가 없어서 믿을 수 없다고 하신다면 그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옛말에 ‘어리석은 자가 천 번 생각을 하면 반드시 한 가지 쓸 만한 생각이 있는 것이므로 미친 자의 말이라도 성인은 가려서 쓴다.’ 하였습니다. 옛날 제왕이 나무꾼에게도 물었던 것은 이 도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또 안연(顔淵)은 능(能)한 것이 있으면서도 없는 자에게 물었으며 많은 것을 가졌지만 부족한 자에게 묻곤 하였으니, 대체로 유여(有餘)한 것이 자기 몸에 있고 부족한 것이 남에게 있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더구나 열 집쯤 되는 작은 고을에도 반드시 충신스런 사람이 있는 것인데 천리나 되는 나라에 어찌 믿을 만한 선비가 없겠습니까. 만약 전하께서 다른 일에 마음을 쓰느라고 선을 행할 겨를이 없다고 하신다면, 임금의 병폐는 앞에서 진달한 바 여색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며 놀고 사냥하기를 좋아하고 전쟁을 좋아하는 데에 벗어나지 않는 것인데 지금 전하께서는 의당 이런 병이 없으시다면 어찌 다른 일을 주로 하시겠습니까. 만약 성상의 마음이 아득하시어 시비와 선악에 대해 전혀 주관할 생각이 없다고 하신다면 이는 곧 말세의 어둡고 용렬한 임금이 이리저리 휩쓸리고 타락되어 나라의 위태로움을 편안히 여기고 나라의 재앙을 이롭게 여기는 기상입니다. 어찌 전하의 영명(英明)하시고 뛰어나신 기질로서 이런 병이 있으시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끝내 성상의 마음이 계신 곳을 우러러 알 수가 없으니 이것이 신이 두렵고 의혹되어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마음에 돌이켜 그 까닭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십니까.

아, 한 사람의 총명은 한정이 있지만 천하의 도리는 무궁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이라도 감히 자신의 총명함만을 믿지 않고서 반드시 여러 사람의 귀를 자신의 귀처럼 여기고 여러 사람의 눈을 자신의 눈처럼 여겨야만 모든 일을 환히 듣게 되고 또 환히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는 원만해지고 덕도 갖추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제순(帝舜)이 사방 사람의 눈을 통하여 자기의 눈을 밝게 보고 사방 사람의 귀를 통하여 밝게 들었던 정치를 법으로 삼아 온 나라의 선한 말이 전하에게로 모여들게 하시고 성상의 마음속에 지니고 권도(權度)가 정밀하고 분명해서 어긋나지 않게 하시며 그 양쪽 끝을 잡아 그 중간을 사용할 수 있으시면 학문을 닦고 몸을 정성스럽게 하는 일이 여기에 근본하게 되며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하는 정치가 여기에서 근본하는 것인데 어느 덕인들 성취되지 않겠으며 어느 사업인들 닦이지 않겠으며 어떠한 천재(天災)인들 막지 못하겠으며 백성의 어떠한 고통인들 풀어주지 못하겠습니까.

아, 임금은 바로 한 나라의 근본이며 마음을 비우고 착한 말을 따르시는 것이 또한 임금이 덕을 이루고 사업을 닦아가는 근본인데 천하의 덕으로 무엇이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습니까. 임금에게 아뢰는 신하들은 대부분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남의 좋은 점을 따르라는 것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늙은 선비들이 늘 하는 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신이 드리는 말씀은 범연히 하는 말이 아니옵고 감히 전하의 몸에 핍절한 병통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말씀드리는 것이오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보통 말로 여기지 마시고 다시 깊은 생각을 더해 주소서. 우리 나라의 운명이 비색해질 것인가 태평해질 것인가 하는 기틀과, 종사(宗社)가 보존되느냐 망하느냐의 기틀과, 천명과 인심이 떠나느냐 결합되느냐 하는 기틀이 전하께서 선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의 여부에서 결판될 뿐입니다.

아, 전하께서 이미 몸을 닦는 것을 정치하는 근본으로 삼으시고 사람의 재능을 알아서 잘 맡기고 난 다음에야 정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정사에 비유해 보면 재인(梓人)은 집을 짓고 도인(陶人)은 그릇을 굽고 남자 종은 농사를 짓고 여자 종은 길쌈을 하며 수탉은 새벽을 맡고 개는 도둑을 지키는 것과 같아서 제각기 소유하고 있는 재능이 있으며 제각기 소질에 맞는 직책이 있습니다. 만약 그들의 재능에 맡지 않게 기용하거나 자주 바꾸어 전임시키지 않는다면 반드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이미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어진 사람을 가려내고 초야에 묻혀 벼슬길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어진 사람을 찾아내어 일시의 현재(賢才)들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신인(新人)과 원로(元老)를 따지지 말고 문벌의 귀천도 묻지 마시고 다만 그 사람과 기국이 서로 맞는 자를 채용하되 덕망과 국량이 있고 도의와 의리를 아는 자는 묘당에서 정치를 의논하게 하고, 경학과 학술에 통달하여 임금의 학문을 훌륭하게 계도할 수 있는 자는 경악(經幄)에 두어 학문을 논하게 하며, 조감(藻鑑)015) 이 공명(公明)한 자에게는 전형(銓衡)의 책임을 맡기고 재화를 생산할 줄을 아는 자에게는 탁지(度支)의 책임을 맡기며, 예(禮)를 강론함에 있어 어긋나지 않는 자에게는 종백(宗伯)의 직책을 제수하고, 병법을 알아서 원대한 계책을 할 수 있는 자에는 사마(司馬)의 직책을 제수해야 합니다. 또 충성스럽고 신실하며 분명하고 결단력이 있는 자에게는 형옥을 다스리는 직책을 주고, 일을 주간하되 폐단이 없이 하는 자에게는 공역(工役)을 주간하는 직책을 주며, 몸을 바르게 하고 사람들의 잘못을 규정하는 자에게는 풍헌의 중한 책무를 맡기고, 몸을 정직하게 하고 바른 말을 숨김없이 다 하는 자에게는 간쟁의 직책을 맡기며, 공무를 받드는 데 있어 백성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왕명을 받들어 교화를 베푸는 책임을 맡기소서. 이리하여 대소의 관직과 안팎의 관리들을 모두 알맞은 사람을 가려서 맡기기를 오로지 하고 그 직책에 오래 있게 하여 실적(實績)을 거두도록 하되 날짜와 달 수를 한정하지 말며, 그 직책에 있는 동안 재능이 직위보나 지나친 자에게는 직위를 승급해 주고 그 사람의 재능이 직위에 맞지 않은 자에게는 그보다 낮은 직으로 좌천시키며 재능과 직위가 서로 걸맞은 자에게는 죽을 때까지 한 직책에 있게 하더라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약 질병이 있더라도 경솔하게 체직시키지 말고 반드시 한(漢)나라 때의 법과 같이 3개월을 채운 다음에 면직시켜야 하며, 만약 한 관직에 있기가 싫어서 병을 핑계대고 사피하는 자가 있으면 대간이 나타나는 대로 논핵해서 반드시 공경과 모든 관료들로 하여금 직책을 지키는 데 성의 있고 조심스럽게 하여 한마음으로 나라를 위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폐단이 있는 법은 당연히 고쳐야 하며 새로운 제도로써 행할 만한 것은 반드시 여러 사람의 의논을 널리 채택하여 명백하게 살펴보고 정밀하게 선택해서 고치기도 하고 새로 만들기도 하여 시의에 맞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치의 하자와 백성의 폐해를 일체 제거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주(州)·현(縣)으로 하여금 부렴(賦斂)을 너그럽고 공평하게 하고 요역을 가볍고 고르게 하여 관리에게는 까다로운 정무가 없게 하고 백성들에게는 일정한 생업이 있게 한다면 하늘의 뜻을 돌릴 수 있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서 교화가 베풀어지고 예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다만 위망을 면할 뿐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진실로 이 뜻을 세우시어 덕음을 펴신다면 선정을 채 베풀기도 전에 백성들이 천리 밖에서 고무 진작될 것이니 어찌 동방 억만년의 무강한 복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기회를 잃지 마소서. 하서(夏書)에 ‘조짐이 나타나지 아니하였을 적에 도모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위망의 현상이 이미 보이는데 명철하고 성스러운 전하께서 도모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형세가 급박하고 정상이 시급하오니 조금도 늦출 수 없습니다.

아, 말을 잘하는 자라 하여 꼭 재능과 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소 부족하다 하여 그 말을 버려서는 안되며 말을 다소 잘한다고 하여 그 사람을 채용해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지금 신이 재능이 없다고 하여 신의 말까지 채용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신의 말이 이치가 있다고 하여 신에게 쓸 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셔도 역시 불가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사람이 비천하다 하여 쓸 만한 말까지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또 들으니 학교는 풍속을 교화하는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가 황폐된 지 오래되었으니 풍속의 교화가 무엇을 근거로 흥기될 수 있겠습니까. 안으로는 성균관이 학업을 흥기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밖으로는 향교가 더욱 한심한 형편입니다. 요즘 서원의 건립이 학문에 뜻을 둔 선비를 양성할 수 있는 것으로 이익됨이 적지 않은데 다만 사장(師長)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생들이 서로 모여 제멋대로 행동하며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있을 뿐, 본받을 것이 없어서 성현의 책을 읽고 학문에 힘쓰는 효과를 볼 수가 없습니다. 국가에서 서원을 설립한 본래의 뜻은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의논하는 자들 중에는 혹 서원을 헐뜯으며 없애야 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통분한 마음에서 한 말이지 정당한 논의는 아닙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큰 고을의 서원에는 중국의 제도를 따라 동주(洞主)·산장(山長)의 교원(敎員)을 설치하여 동몽 교수의 예처럼 봉록(俸祿)을 조금 주었으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하여 학문과 행실이 있어 사표(師表)가 될 만한 자와 벼슬을 쉬고 고향으로 물러가 은거하고 있는 사람을 가려서 그 직책에 있도록 하여 유생들을 인도하여 거느리는 책임을 지워준다면 그 교육의 효과는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게 될 것이고 훗날 국가가 인재를 얻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여기에서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과 같이 형편없는 자는 서울과 지방 그 어느곳에서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장구(章句)와 훈고(訓詁)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전업으로 해 왔으므로 좁은 소견만은 없지 않습니다. 그러니 만약 해주 서원(海州書院)에서 산장(山長)의 직책으로 맡아 동몽들을 가르쳐 그들의 구두를 바루어주게 하고 번거롭게 소명을 내리지 마시어 그 직분을 편안히 하도록 해 주신다면 성상의 조종에 버려지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고 어리석은 신도 하는 일 없이 먹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주관(周官)의 향대부(鄕大夫)가 백성들을 가르치던 유법(遺法)이니 전하께서 진실로 이것을 가지고 대신에게 자문하셔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신다면 또한 풍속의 교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이 이미 성상의 물음을 받들었으므로 감히 의견을 다 아뢰지 않을 수 없었고 충정에 복받쳐 말을 억제할 줄 몰랐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사랑을 내리시어 살펴 받아주소서."

하였다. 상이 충성된 바른 말을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고 답하였으나, 별로 채택하여 사용한 실상은 없었다. 정원이 다시 거두어 등용하기를 청하니, 상이 불렀다. 그러자 이이가 다시 상소하여 사양하였는데 얼마 후에 다시 대사간에 제수하였다. 【이때에 간관이 자주 갈린 것을 또한 볼 수 있다.】 상이 소명(召命)을 사양하는 이이의 상소를 보고 즉시 이이를 대사간에서 체직하라고 명하니, 정원이 아뢰기를,

"이이가 전 날의 소명만을 사양하였고, 아직 새로 제수한 간관은 사직하지 않았으니 반드시 스스로 처치하기를 기다린 다음에 체직시켜야 합니다."

하고, 간원과 홍문관이 모두 차자를 올려 논하자, 상이 이르기를,

"어찌 이이 한 사람을 위하여 오래도록 간관의 직책을 비워놓는단 말인가."

하였다. 이것은 상이 이이가 교격(矯激)하여 사직하고 물러간 것을 혐의롭게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뒤 수일 만에 다시 이조 참의에 제수하였으나 이이는 또 사직하고 오지 않았다. 【성혼이 그 상소를 읽어보고 ‘참으로 이른바 곧은 말로 극진히 간한 경국 제세의 글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2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47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과학-천기(天氣)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변란-정변(政變) / 사상-유학(儒學)

  • [註 006]
    간장(諫長) : 대사간.
  • [註 007]
    칠정(七政) : 일월(日月)과 오성(五星)을 말함.
  • [註 008]
    기묘년 : 1519 중종 14년.
  • [註 009]
    진서산(眞西山) : 송(宋)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 서산(西山)은 그의 호이다.
  • [註 010]
    전조(前朝) : 고려(高麗).
  • [註 011]
    송경(松京) : 개성(開城). 고려의 도읍지.
  • [註 012]
    을해년 : 1575 선조 8년.
  • [註 013]
    상사(喪事) : 명종비 인순 왕후(仁順王后)의 상사.
  • [註 014]
    인성 왕후(仁聖王后) : 인종의 비 박씨(朴氏)임.
  • [註 015]
    조감(藻鑑) : 인재를 알아보는 감식.

○辛亥朔/復以大司諫召李珥, 上疏辭職。 且言: "殿下若欲知臣可用與否, 當問以時事。 如其言不可用, 願勿復召。" 上答曰: "觀爾辭疏。 諫長不可久闕, 故玆遞本職。 且爾如有所懷, 可實封以聞。" 遂上疏曰:

聖批有曰: "爾有所懷, 可實封以聞。" 臣伏讀再三, 精爽飛越。 夫以臣之受恩感激, 常懷以身徇國之志, 苟罄愚衷, 有可以裨補萬一則鼎鑊斧鉞, 臣亦不避。 況聖度優容, 使之進言者乎? 臣今披肝瀝膽, 不恤觸忤。 伏惟聖明, 試求諸道焉。 嗚呼! 今玆乾道失常, 七政乖度, 妖星蔽天, 白虹貫陽, 風雹妄作, 水旱極備, 沴氣塞空, 釀成癘疫者, 殿下旣已仰觀矣。 坤軸失寧, 震動不時, 大川中竭, 名山牛吼, 禽獸騁怪, 木石呈異, 土氣散漫, 五穀不成者, 殿下亦已俯察矣。 士習偸卑, 泄泄沓沓, 後義先利, 瘠公肥私, 汚濁日盛, 忠讜日孤, 紀綱紊舛, 庶績咸隳者, 殿下旣已見而知之矣。 民生塗炭, 秉彝都喪, 父子相戕, 兄弟相害, 綱常泯絶, 盜賊興行, 災慘洪水, 俗甚蠻貊者, 殿下亦旣聞而知之矣。 天怒民窮, 國勢岌岌者, 皆殿下之所自知也, 臣何敢縷縷瀆陳乎? 臣請以反本爲說焉。 臣聞, 天下之事, 有本有末。 理其本, 則末無不治, 後本先末, 徒勞無益。 人君是一國之本, 而治亂係焉。 君得其道, 而國不能治者, 必無之理也。 今日之人心、世道, 一至於此, 則殿下之政化, 無乃未善乎? 政化係於君心, 則無乃殿下於反身之學, 誠正之功, 有所未盡乎? 殿下其亦反諸本而思之乎? 嗚呼! 道之不明、不行也久矣。 聖經、賢傳, 只資美談。 求名者借此得譽; 求祿者階此得官。 能踐其言, 能致其身者, 寥寥甚鮮。 苟非豪傑之才, 則孰能奮起百世之下, 以洗一時之陋習乎? 嗚呼! 殿下英資睿質, 出類絶群, 旣有命世之才, 作君作師, 臨御區宇, 又有治世之勢。 而至今不成允德, 不能善治者, 其故何歟? 自古人臣, 鮮能爲善者。 常人之情, 大抵好利, 而衰世未蒙爲善之利。 身正則衆忌, 道直則官躓, 職治則妬興, 言忠則恩替。 是故, 苟非志道爲己之士, 則不能爲善, 而多汨於流俗焉。 人君則不然, 道自我行, 治自我出。 作善降祥, 作惡降殃, 撫我爲后, 虐我爲讎。 天意、民心, 較然可觀。 人君非不知此, 而鮮能爲善者, 欲錮而見蔽故也。 蓋喜聲色則樂於荒淫, 而不見其鴆毒; 好貨財則務於聚斂, 而不見其民散; 好逸遊則流連無度, 而不見弊政之害; 好用兵則黷武不戢, 而不見殃民之禍。 人君之失道, 大槪不出此四者。 今殿下受氣明粹, 持身淸約, 寧有好色、好貨之病乎? 臨御一紀, 未嘗遊觀則其無盤樂之病可知; 只修武備, 不妄出師則亦無好勇之病矣。 殿下以何病, 而不能典學、誠身乎? 道非高遠, 只在日用, 而或意其至難; 或憂其力弱, 莫敢下功焉, 無乃殿下亦以爲至難而力不及耶? 殿下旣無奮發作聖之志, 故群臣皆見其然, 以正心、誠意爲厭聞之陳言; 以責難、陳善爲愚儒之迂策, 經席之上, 只以解釋文字, 塞啓沃之責, 殿下亦反覆咨問字訓、文意, 而未嘗下詢切實踐履之功。 夫讀書而只求文義, 不反之身者, 乃科業之士, 所以求名求祿者也。 俗士以此發身, 名顯祿厚, 固遂所願矣。 今殿下之所願, 在於其身; 其民則豈可求其華, 而不求其實乎? 此, 一事也。 嗚呼! 殿下以經世之才, 受付託之重, 始初淸明, 豈無平治邦域, 高出百王之志乎? 只緣群臣少有承當者, 訏謨失宜, 試可弗績, 議論多岐, 實德不著。 朝紳之間, 言語可觀, 而闕門之外, 惠澤不流。 於是, 聖心悵然, 始有不可治之嘆, 以沮大有爲之志矣。 聖志旣沮, 不復圖治, 故群臣亦見其然, 心緩體弛, 餔啜是事, 爲人擇官, 優游度日。 久於一官, 則引疾遷就, 只糜廩祿, 百務不理。 間有奉公盡職者, 則衆必指目, 或譏以愚妄; 或剌以釣名。 惟是怠事徇俗者, 乃能上不批逆; 下不喪朋, 外無人謗; 內無親譴, 美食安坐; 榮身潤屋。 今世之士不職其職者, 非其本心也。 以容身保位之術, 在於從衆故也。 嗚呼! 人情孰不欲利於己乎? 惟守道之君子, 乃能重義, 而輕利焉。 今日重義而輕利者, 有幾人乎? 徇俗而求位, 則身可貴也; 徇俗而求財, 則家可富也, 莫不遂其欲利之志矣。 惟有殿下, 了無所利, 但見時事日非, 不可收拾而已。 二百年社稷, 阽於危亡之域, 而殿下之明, 無不洞知, 殿下之力, 可以振起, 何爲至今不下手一救乎? 昔者春秋之時, 世衰道微, 諸候擅制; 大夫專政, 天下淆亂極矣。 而孔子以匹夫之力, 猶且欲救一世, 轍環四國, 而其言曰: "天下有道, 不與易也。" 蓋聖人之心, 不以無道, 必天下而棄之也。 今日世道之降, 雖下於春秋之時, 無列國戰爭之患, 而殿下居得治之位, 非孔子匹夫之比, 欲治則可治矣。 殿下豈可以無道, 必一國, 而棄之耶? 此, 二事也。 嗚呼! 殿下聰明絶人, 氣馭一世, 而聖學未進; 聖量未弘, 故未免有輕士之意, 不信其人, 不用其言。

今者上自大臣, 下至庶官, 近自侍從, 外至岳牧, 殿下心所信重, 而用其謨猷者, 不知爲誰乎。 至於已死之賢, 雖一世所宗仰者, 殿下尙無推重之意, 況今時之士乎? 士之有才可試者則殿下必憂其喜事; 直言廷諍者則殿下必厭其違拂; 欲制儒行者則殿下必疑其矯飾。 未知學何道、陳何策, 然後乃合聖衷, 而得所倚信乎。 衰世喜同惡異, 故儒者見嫉, 而流俗得志, 殿下豈可不念此弊乎? 夫以世俗常情言之, 則儒者固可惡也。 論治則遠引; 諫君則責以難事, 縻之不留; 寵之不樂, 惟在於欲行其志焉, 固是難用。 而其間或有過激者; 或有迂闊者; 亦有好名者, 或廁乎其列, 豈非世主之所可惡者乎? 流俗之士, 順時同衆, 無所忤逆, 熟於事君, 惟命是從, 安於習非, 不事矯激, 是固人君之所親信也。 雖然, 儒者好義; 流俗好利, 未有好利而愛其君者; 未有好義而忘其君者。 一朝禍亂之作, 挺身救君, 取義捨生者, 必出於儒者; 決不出於流俗矣。 嗚呼! 好義者爲國; 好利者爲家, 爲國爲家, 辨之不難。 廷臣之碌碌隨波, 無所建白, 君有過失, 不敢繩糾者, 大抵是爲家者, 恐失其利也。 若其謇諤正色, 無所回撓, 有懷必陳; 有才必盡者, 大扺是爲國者, 恐失其義也。 惟是人君辨之不明, 而讒諛善乘其隙, 故爲家者多被寵擢; 爲國者多陷刑辟, 誠可悲也。 只有好名之士, 似是而難辨。 若人君理明義精, 則虛僞者, 亦不能遁其情矣。 但不可嫉人之好名, 而遂疑實德之士也。 己卯年間, 中廟求治甚銳, 而群賢彙進, 其間豈無好名者哉? 大槪多是爲國者。 而讒人罔極, 巧成貝錦, 遂以一網打盡。 趙光祖臨死有詩曰: "愛君如愛父, 天日照丹衷。" 臣每誦此句, 未嘗不流涕也。 今以殿下之明, 必不被奸人之所罔, 則決無己卯之禍矣。 但群下之所望於殿下者, 豈止於不生士林之禍而已哉? 以殿下之高亢明爽, 無人得被信重; 無策得被採用。 故大小之官, 循默成風, 苟且居位, 賢者不敢輔以德; 能者不敢助以才, 智者無所獻其謀; 勇者無所用其斷, 忠臣竊嘆; 鄙夫馳騁, 殿下之國事, 更無可爲之勢。 此, 三事也。 嗚呼! 殿下於世務, 非不留心也; 於民瘼, 非不惻念也。 至今一政之弊未革; 一民之苦未解者, 以殿下固守前規, 不思變通故也。 自古帝王, 創業定法, 雖是盡善盡美, 而時移事變, 法久弊生, 則後世之善繼善述者, 必隨宜更化, 不膠於舊。 故眞西山《中庸》繼述之義曰: "當持守而持守者, 固繼述也; 當變通而變通者, 亦繼述也。" 此言眞知治體者也。

我朝太祖大王開基立經, 大綱雖擧, 節目未備。 列聖承繼, 隨時創法, 不拘一規, 代有新制, 各適其宜, 故《大典》頒降之時, 其法旋有一二不能行者矣。 燕山之朝, 祖宗典刑蕩然顚覆。 中廟反正, 可以改紀, 而朝臣鮮識時務, 議不及此。 加以士林禍作, 萬事瓦裂, 祖宗良法、美意, 多廢不行。 而權臣、幹吏, 隨事用智, 添設科條, 以爲聚斂病民之制者, 則行之旣久, 遂爲成法, 擬以金石之典, 莫敢出更張之計。 今之所謂持守者, 於祖宗成憲則守空名而無實; 於近代弊法則務因循而不改, 政治之不興; 生民之困瘁, 職此之由。 今殿下誠欲有爲, 則雖祖宗舊典, 尙有量宜變通者矣。 況權奸所設病民之法, 則改之當如救焚拯溺矣。 何苦而遵守, 自底危亡乎? 今之議者多曰: "緣法爲治, 則可以無患。 若欲改法, 非命世之才, 則不可能也。" 此言似矣, 而實不然。 夫所謂, 緣法爲治者, 法之可治者耳。 今守病民之法, 而求以治民, 則反不若緣木求魚之無後災矣。 且如燕山所定貢案則不過是任士洪輩所設耳。 任士洪輩所造弊法, 必待命世之才, 乃可改定者, 此何說歟? 若使今日不改謬轍, 則雖聖主憂勤於上; 賢相盡瘁於下, 亦無救於民之糜爛, 終亦必亡而已矣。 譬如家人, 子孫守先人大屋, 久不重修, 樑棟腐朽, 瓦甎破缺, 支撑不密, 勢將覆壓, 則豈可以拱手坐視者爲能繼述, 而反以改瓦易材者爲不能持守也哉? 古人曰: "聽言之道, 必以其事觀之, 則人不敢妄言。" 愚臣每進更張之說, 殿下深所厭聞也, 請以其事驗之。 殿下之循塗守轍, 今過十年。 若是治道之當然, 則宜乎功成制定, 上安下順, 而持之愈久, 百弊愈生, 政事日紊, 紀綱日頹, 民生日苦, 風俗日敗。 擧國糜潰, 若決江河, 莫敢隄防, 其故何歟? 殿下亦知其然矣, 何不反而思之乎? 此, 四事也。 惟此四事, 爲今日痼病之深源。 上之使殿下, 退托自小, 安常習故, 無奮厲振拔, 修己、治人之志; 次之使廷臣, 瞻前顧後, 患得患失, 無委質許國, 盡忠補過之心; 下之使斯民, 流離失所, 如彼棲苴, 無安生樂業, 仰事俯育之資。 上下四方, 蹙蹙靡騁, 嗚呼苦哉! 若此四病不除, 則雖使陳謨于內; 宣政於外, 終無一分之益。 況以廷臣之齪齪者, 左右聖朝者乎? 自古忠臣之進言者, 必以治世爲亂, 故人君逆料曰: "斯世也, 奚至此極? 進言之道, 當如此耳。" 今殿下亦料臣言乎? 今日果是治世, 而愚臣過言乎? 以今日之國勢、民情, 平居無事, 固已奄奄如病革之人, 形骸僅存, 而氣息就盡。 若或不幸, 內有小人嫁禍士林; 外有兵戈匪茹不恭, 則是, 國家運盡之秋也。 小人之禍, 則聖明在上, 可無虞矣, 若兵戈之難, 則安保其必無哉?

竊聞, 去年朝廷有量田之擧, 以閑散朝士, 充敬差官, 三令五申, 竟無起應者。 量田非死地也; 朝士非頑民也。 欲使有識之人, 就不死之地, 而尙不得則紀綱可知; 人心可知。 以此紀綱; 以此人心, 儻遇外寇, 則能有親上死長者乎? 昔者前朝恭愍王時, 紅巾賊十四萬騎, 氷渡鴨綠江, 東人無禦之者。 直擣松京, 王避走安東, 收合國兵二十萬, 僅能克之。 此時兵力, 猶勝於今日也。 若今日則外寇雖不滿萬騎, 人誰敢禦之乎? 不特外寇可虞也, 民窮財盡, 勢必爲賊。 嶺南結陣之卒, 是叛國之兆也。 一處結陣而復散, 則殿下得以誅之矣。 若處處結陣, 而不散則殿下將何以處之乎? 臣言皆据事實, 果是過言乎? 嗚呼! 殿下若無美質, 不可有爲, 則臣雖懇懇, 亦復何望? 今臣之仰首哀鳴, 披露赤心, 累牘連章, 旣退而猶不能止者, 只以殿下資質可以入道, 今日不能覺悟, 則明日必能悔過故也。 嗚呼! 臣計誠不自量, 而臣情誠可悲也。 雖然, 若不遇聖主之涵育, 則臣何能至此乎? 臣聞, 時有否泰; 事有期會。 時否而有治之幾; 時泰而有亂之幾, 在人主審察, 而善乘之耳。 殿下卽祚之初, 仁聞廣被, 一國人士, 擧首引領, 顒望至治, 此正可治之幾。 而當時大臣, 無經邦遠猷, 不能引翼睿旨, 反迪上以尋常塗轍, 遂失其幾焉。 及乎乙亥之歲, 聖躬遭憂, 喪制盡禮, 親近儒臣, 講求治道, 人心翕然, 更望德化, 此亦可治之幾。 而適憲吏誤觸宮禁, 臺臣對不以實, 遂激上怒。 由此, 聖心改圖, 反厭儒者, 遂失其幾焉。 當此之時, 譬如春陽盎然, 草木萌動, 而嚴霜忽零, 生意頓喪。 至今追思, 心寒腸結, 不能自遣也。 去年之冬, 殿下明燭元兇之秘術, 恭承仁聖之懿旨, 命削僞勳, 以定國是, 根本枝葉, 一切剗鋤。 斷自聖衷, 超出群臣意慮之外, 使三十年神人之憤, 一朝快洩, 無少餘憾, 國人相慶, 跛躄亦抃。 因此正名之擧, 復起有爲之望, 此亦可治之幾也。 殿下前日旣已再失其幾矣。 今者豈忍三失乎? 嗚呼! 殿下之不能修己治人者, 不爲也, 非不能也。 殿下若知四病之爲害, 則今日當務之道, 豈不在於汲汲力去四病乎? 殿下誠能一日慨然發憤曰: "人性皆善, 我獨不可爲歟? 道無古今, 我獨不能興至治歟? 祖宗付畀之業, 豈可忍壞於吾身歟? 祖宗直道之民, 豈可忍棄於吾時歟? 才不借於異代, 我國豈盡無人乎? 法因時而通變, 舊規豈盡可守乎?" 旣發此心, 以立基本, 而深陳旣往之悔, 手下哀痛之敎, 以至誠招賢; 以至誠求言, 脫去前日循常之習, 聳動一國臣民之望。 賢士旣至; 群策旣集, 則又須屈意咨詢, 虛懷樂聞, 忠言必聽; 善謀必取, 以之修身; 以之爲政, 則賢者求行其道; 能者求售其才, 必有輕千里而至焉者矣。 帝王之先務, 莫急於得人, 得人之術, 又在於修身。 身不修則心不正; 心不正則智不明; 智不明則忠邪不能分; 臧否不能辨, 安能得人? 是故, 孔子曰: "爲政在於得人, 取人以身; 修身以道。" 今殿下掃去舊習, 誠心向道, 則必勉强修身。 以身取人, 而修身之道, 聖賢之言備矣。 臣於前日, 撰進《聖學輯要》, 此非臣言也, 乃聖賢格言也。 未知殿下留心記憶否。 修身大要, 不出此書, 臣不復贅達於今日矣。 第念, 修身實功, 在於矯治氣質, 而察病加藥。 今殿下之志不立, 身不修, 政不治者, 有何病根而然歟? 此在殿下反而求之耳。 愚臣竊見, 聖明重於自信, 而短於從人。 夫自信有二焉, 擇善執中而自信, 則固可以有恒而成德矣。 然不可專於自信, 而必資於取善, 況權衡未得其正而自信則不幾於惟其言而莫予違乎? 古之帝王莫不以虛心從善爲進德之本。 故《仲虺之誥》曰: "能自得師者王, 謂人莫己若者亡, 好問則裕, 自用則小。" 今以殿下之聖智, 宜乎無善不從, 而尙不免於偏係好勝之病, 其故何歟? 無乃殿下自謂, 聖學已成, 無所資於他人乎? 抑以爲, 世無賢士, 無可取信者乎? 抑心主他事, 而不暇及於爲善歟? 抑聖心漠然, 其於是非善惡, 都無所管念乎? 權然後知輕重; 度然後知長短, 殿下其亦權度之哉? 若殿下自謂, 聖學已成, 無所資於他人則有不然者。

古人稱曰: "舍己從人。" 稱曰: "樂取諸人以爲善。" 稱曰: "拜昌言。" 稱曰: "從諫弗咈。" , 德已至矣; 治已極矣, 猶且虛心從善, 如恐不及。 況今殿下德不及四聖; 治不及三代, 而其可忽於人言, 不以誠求乎? 若以爲, 世無賢士, 無可取信則亦不然。 古語曰: "愚者千慮, 必有一得。" 故狂夫之言聖人擇焉。 古之帝王, 詢于芻蕘者, 用是道也。 顔淵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蓋不知有餘在己, 不足在人也。 況十室之邑, 必有忠信, 千里之國, 豈無可信之士乎? 若以爲, 殿下心主他事, 而不暇及於爲善則人君之病, 不出於前所陳好色、好貨、好遊畋、好用兵, 而今殿下宜無此病, 則豈主於他事乎? 若以爲, 聖心漠然, 其於是非、善惡, 都無所管念則此乃叔季昏庸之主, 委靡頹墮, 安其危、利其災之氣象也。 豈以殿下之英明超卓, 乃有此病乎? 反覆思之, 終未能仰曉聖心之所在, 此臣所以惶惑而罔測者也。 殿下何不反諸心, 而深思其所以然乎? 嗚呼! 一人之聰明有限, 天下之道理無窮。 故雖聖人, 不敢自恃其聰明, 而必以衆人之耳爲我耳; 必以衆人之目爲我目然後, 聰無不聞; 明無不見, 而智無不周; 德無不備焉。 殿下誠能以帝舜之明四目、達四聰爲法, 使一國之善言, 無不輻輳, 而聖心權度, 精明不差, 執其兩端, 而用其中, 則典學、誠身, 本諸此; 敬天、勤民, 本諸此矣, 何德之不進? 何業之不修? 何天災之不可弭? 何民隱之不可解乎? 嗚呼! 人君是一國之本, 而虛心從善, 又是君人進德修業之本, 則天下之德, 孰有加於此乎? 人臣之告君者, 多以舍己從人爲說, 故此言無異老儒常談矣。 今臣則非泛言也, 竊敢以殿下切己之病, 竭誠盡言, 伏望殿下, 勿視以恒言, 更加深念焉。 東方否泰之幾、宗社存亡之幾、天命ㆍ人心去就ㆍ離合之幾, 決於殿下從善與否而已。 嗚呼! 殿下旣以修身爲出治之本, 而又須知人善任然後, 可以成政。 譬如人家, 梓人造屋、陶人造器, 奴主耕耘、婢主織絍, 鷄能司晨、犬能吠盜, 各有其才、各當其職, 若使用違其才, 而紛更不專, 則必致敗績, 爲國何以異此? 今者誠能明明揚仄陋, 盡收一時賢才, 而不論新舊、不問門閥, 只擇其人器相稱者, 以有德量、識道理者, 居之廟堂; 通經術、善啓沃者, 置之經幄, 藻鑑公明者, 任以銓衡; 生財有道者, 任以度支; 講禮不差者, 授以宗伯; 知兵遠猷者, 授以司馬; 忠信明決者, 使治刑獄; 幹事無弊者, 使主工役; 正身糾物者, 責以風憲之重; 直己盡言者, 委以諫諍之職; 奉公愛民者, 付以承流宣化之任, 大小內外之官, 皆擇其人, 任之專, 而持之久, 期以成績, 不限日月。 其間才過於位者, 則超陞之; 才不稱位者, 則左遷之; 才位相當者, 則雖終身一職可也。 如有疾病, 亦不輕遞, 必如法, 滿三月乃免, 倘有厭居一官, 托疾辭避者, 則臺諫隨現論劾, 必使公卿、百僚, 恪謹守職, 一心爲國。 而至於弊法之當改、新制之可行者, 則必須博採群議, 明察精擇, 或革或立, 務合時宜。 政疵、民瘼, 一切掃除, 必使州縣, 賦斂寬平、徭役輕均, 吏無苛政; 民有恒産, 則天意可回; 民心可得, 而敎化可施, 禮樂可興矣, 豈特免危亡而已哉? 殿下苟立此志, 渙發德音, 則善政未及施, 而國人已鼓舞於千里之外矣, 豈非東方億萬年無疆之休乎? 伏願殿下, 無失幾會焉。 《夏書》曰: "不見是圖。" 況今危亡之象已見, 而以殿下之明聖, 莫之圖乎? 勢迫情急, 不容少緩矣。 嗚呼! 能辭說者, 不必有才德, 故不可以人而廢言, 亦不可以言而取人。 今以臣身之不才, 謂臣言無可取, 不可也; 以臣言之有理, 謂臣才有可用, 亦不可也。 伏願殿下, 無以人廢言。 抑又竊聞, 學校, 風化之本也。 今之學校荒廢久矣, 風化何由可興乎? 內之成均, 旣不足以興學, 而外之鄕校, 尤可寒心。 近來書院之建, 可養志學之士, 爲益不淺, 而但不設師長, 故儒生相聚, 放意自肆, 無所矜式, 不見藏修之效。 國家設立本意, 必不如此, 故議者或詆書院以爲可罷, 此則出於憤懟, 非正論也。 臣愚欲乞於大處書院, 依中朝之制, 設洞主、山長之員, 薄有俸祿, 如童蒙敎授之例。 擇有學行, 可爲師表者及休官退隱之人, 使居其職, 責以導率, 則其敎育之效, 必有可觀, 而他日國家之得人, 未必不資於此也。 至如臣之無狀, 於內於外, 百無所用, 但於章句、訓詁之間, 業專且久, 不無管見。 若於海州書院, 主山長之職, 敎誨童蒙, 正其句讀, 而勿煩下召, 使安其分, 則聖朝無棄物, 愚臣不徒食矣。 此乃《周官》鄕大夫敎民之遺法也。 殿下誠以此, 咨詢大臣, 創制行之, 則亦風化之一助也。 臣旣承淸問, 不敢不盡其愚, 衷情所發, 言不知裁。 伏惟聖明, 垂仁察納焉。

上答以深嘉忠讜, 而別無採用之實。 政院請更收用, 上復召之, 復上疏辭。 未幾, 復除大司諫。 【此時諫官數遞, 亦可見。】 上見辭召疏, 卽命遞大司諫。 政院啓曰: "李珥只辭前日召命, 時未辭新除諫官, 必待自處, 然後乃可遞也。" 諫院、弘文館, 皆上箚論之, 上曰: "豈爲一李珥, 久曠諫職乎?" 蓋上嫌矯激辭退而然也。 居數日, 復拜吏曹參議, 又辭不至。 【成渾讀其疏曰: "眞所謂直言極諫, 經世之文也。"】


  • 【태백산사고본】 3책 12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47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과학-천기(天氣)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변란-정변(政變)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