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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77권, 선조 37년 8월 21일 기해 3번째기사 1604년 명 만력(萬曆) 32년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휘호에 대한 윤허를 호소하다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아뢰기를,

"성비(聖批)를 받들건대, 마음을 드러내어 가리켜 보이시는 것이 통쾌하고 명백하여 한 글자 한 구절도 천리와 인정의 극치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어서 겸허하고 낮추시는 데 대한 성미(聖美)가 더욱 드러났으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신들의 구구한 뜻도 감히 어리석은 의견을 죄다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저 위에서 아래를 굽어살피는 것은 아들처럼 기르고 하늘처럼 덮고 땅처럼 용납하는 것이며 아래에서 위를 섬기는 것은 부모처럼 사랑하고 일월처럼 우러르고 천둥처럼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분의(分義)는 매우 엄하지만 정의(情義)가 유통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성상께서 성취하신 것이 한때의 공에 그치는 것이어서 신들이 더하지 않아야 할 호를 굳이 청하는 것이라면, 이토록 극진하게 사양하고 거절하시는 것이 참으로 옳겠고 신들도 순종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마는, 오늘날 청하는 데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신들이 중히 여기는 것은 그 대의요 지성인 것으로 이 의리가 없으면 사람들의 기강이 확립될 수 없고 이 정성이 없으면 하늘의 마음이 감동될 수 없는 것이니, 누가 만세의 윤리를 부식(扶植)하고 이미 함락된 강역을 정돈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들이 기필코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끝없는 후세에 밝게 보이려는 것인데 천위(天威) 아래라고 해서 말하지 않고 물러간다면, 중외(中外) 사람들이 실망하게 되는 것은 말할 것이 없음은 물론 천하 후세에 대의를 밝히지 않을 수 없고 지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세도(世道)와 인심(人心)이 마침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니, 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실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사람들의 뜻을 굽어살펴 빨리 윤허를 내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평소 심병(心病)이 있으므로 늘 눈을 감고 조용히 숨쉬어도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는 실정인데, 요즈음 계사(啓辭) 때문에 온갖 생각이 가슴속에 맺혀 낮에도 눈썹을 펴지 못하고 밤에도 눈을 붙이지 못하여 허리가 날로 가늘어져 황황하고 답답한 나머지 마치 경들에게 죄를 거듭 얻는 듯하니, 이것은 경들이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오늘은 정계(停啓)할 것인가고 여겼다가 이윽고 계사가 다시 들어오면 그때마다 두려워 실의(失意)하고 심화(心火)가 끓어오르는데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이러하니 참으로 슬프다. 백료(百僚)가 열흘 동안이나 극진히 청하고 시종(侍從)이 날마다 간절히 아뢰는 것이 모두 지성에서 나온 것인데 무엇을 꺼려서 허락하지 않은 채 기필코 면하고야 말려 하겠는가. 이것은 마음에 반드시 크게 미안한 것이 있어서 스스로를 아는 마음이 조금도 밖에서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참작하여 소요스럽게 하지 말고 백료들은 물러가서 각각 직무를 보살피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0책 177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643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大臣率百官啓曰: "伏承聖批, 披露指示, 洞快明白, 一字一句, 無非出於天理人情之極致, 沖謙挹損, 聖美益彰, 豈不盛矣哉? 抑臣等區區之意, 亦不敢不盡其愚。 夫上之臨下, 養之如子, 蓋之如天, 容之如地; 下之事上, 愛之如父母, 仰之如日月, 畏之如雷霆。 分義至嚴, 而情義不可不流通。 聖上所成就者, 若止於一時之功, 而臣等强之以不當加之號, 則辭之拒之, 至於此極, 誠是矣。 臣等亦宜將順之不暇, 今日之請, 有不然者。 臣等所重者, 大義也, 至誠也。 無此義, 則人紀不得立, 無此誠, 則天心不能動。 誰得以扶植萬世之彝倫, 整頓已陷之疆域也, 此臣等。 必欲顯揚休美, 昭示無極也。 若於天威之下, 悶默而退, 則中外缺望, 有不足言, 天下後世, 夫孰知大義之不可不明, 至誠之不可不竭, 而世道人心, 終至於不可爲矣。 臣等所懼, 實在於此。 伏願聖上, 俯察群情, 亟賜一兪。" 答曰: "素有心病, 常合眼靜息, 猶不能自持。 近因啓辭, 百慮縈懷, 晝而眉不得開, 夜而睫不得交, 腰圍日減, 遑遑悶迫, 有若重得罪於諸卿。 此諸卿, 所當矜憐處也。 每日朝起, 必曰今日停啓也歟? 俄而啓辭復入, 輒瞿然自失, 心火如沸。 今日而如是, 明日而如是, 誠可哀也。 百僚之浹旬極請, 侍從之日日懇陳, 無非悉出於至誠, 何所憚而莫之肯許, 期欲免而後已? 此其心, 必有所大不安於中情者, 而自知之天, 或不待於外求矣。 願更爲斟酌, 勿爲騷擾, 使百僚, 退而各治職事。"


  • 【태백산사고본】 100책 177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643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