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이항복이 영의정직을 세 번째 사양하다
영의정 이항복의 세 번째 차자를 입계하였다.
"신은 이름이 간당(姦黨)에 올라 성명의 시대에 욕이 될까 두려워 말을 가릴 겨를도 없이 다급히 호소하였는데, 성상의 유시는 도리어 실정에 맞지 않습니다. 어찌 신이 참으로 절박한 나머지 너무 드러내 놓고 자송(自訟)을 하느라 자신을 까맣게 잊은 채 길가는 사람처럼 의논을 함으로써 남에게 버림받기를 구하다가 도리어 실정이 아니라고 의심을 사서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는 감히 인간의 상정(常情)까지 거스르며 애써 궤변(詭辯)을 늘어 놓아 선을 스스로 끊어버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온 나라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니, 차라리 제 한 몸을 버려서라도 국체(國體)를 존숭하고자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번에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하는데도 오히려 아니라고 하고, 그 사람이 아무 말없이 순순히 받아들이는데도 오히려 아니라고 한다면 현사(賢邪)가 어느 때나 분변될 수 있겠습니까. 무릇 국옥(鞫獄)은 국가의 대사입니다. 고증(告證)이 갖추어지고 죄수들의 공술(供述)이 사실이면 옥사를 결단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지금 신에 관한 일은 고증이 갖추어지고 공술이 사실보다도 더한데, 어찌하여 오히려 덮어두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신이 폐기된 상태에서 다시 기용되는 것이 어찌 이덕형(李德馨)이 자리를 떠난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날 송순(宋諄)이 떠날 적에도 신은 참으로 마음이 아팠으며, 요사이 변양걸(邊良傑)이 폄출(貶黜)될 적에도 또한 실정보다 지나친 점에 상심하였습니다. 마침 구언(求言)하시는 때를 만나 봉장(封章)은 먼저 올렸고 옥사의 결단은 뒤에 있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지 못하게 되어 제 나름대로는 한스럽게 여겼습니다. 이점을 놓고 말한다면 이덕형은 할 말을 한 신이고 신은 참으로 할 말을 못하고 있는 이덕형이니, 마음속을 따져본다면 하나이면서 둘이고, 자취를 논한다면 둘이면서 하나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을 이덕형과 바꾸어 놓는다면 이덕형과 마찬가지로 하였을 것입니다. 죄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어찌 차마 실정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말은 쓸 데 없는 것이어서 참으로 자세히 할 것도 없고, 한마디로 포괄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간신이라고 지목하면 임금이라도 사사로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經)에 ‘대군(大君)이 천명이 있어 나라를 세울 땐 소인은 임용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 대목을 해석하는 자들이 ‘이와 같다면 소인도 때로는 쓸 수가 있지만, 오직 태평 시대에는 써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뜻이 초창기에는 다방면의 인재를 써야 하므로 닭울음 소리를 내고 개구멍으로 드나드는 도둑도 모두 수용하지 않을 수 없지만, 태평 시대에는 소인 한 사람의 폐해를 두렵게 여겨야 하기 때문에 등용하지 말도록 경계를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태평 성세에 시비를 논해 정치를 돕는 자가 상등이고, 어지러운 시기에 근력을 다해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이 그 다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태평 시대에는 전적으로 시비를 논하는 사람을 등용하고, 사세가 위급할 때에는 더러 근력을 다해 일하는 사람의 힘을 입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은 행동과 시책이 전도되어 시비를 따지지 못하였고, 설사 한 가지 의견을 내놓은 것이 있더라도 세상에 쓰이지 못하였으니, 훈부(勳府)에나 들어 공론을 엄정하게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혹시라도 위급한 때를 만날 경우 근력을 다해 전하께 보답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옛사람의 말에 ‘온전하게 해주는 것이 덕이 된다.’고 했습니다. 만일 신을 온전하게 해주려고 하신다면 우선 그대로 놓아 두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을 쓰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 무단히 내쳐서 남들 앞에 놓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게 되어 병이 없이도 죽게 될 것이고, 발가벗고 저자에 서 있는 격이 될 것이니 어떻게 그 추한 모습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도 해가 되고 국가에도 유익함이 없을 것이므로 만번 죽고 싶을 따름입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으니, 오직 성명께서 생각해 주소서. 임금께서 재결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간흉들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말하기조차 부끄러워하는 바인데, 경이 그들과 알고 지냈던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핵(自劾)하게 된 것이니 악을 미워하는 경의 심정을 잘 알겠다. 그러나 경의 잘못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니 국가의 동량(棟樑)이 되기에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굳이 사양하기만 하는가. 사직하지 말고 속히 나와 직무를 보라."
하였다. 【이항복의 세 차례 사직 차자는 한결같이 간당을 들어 자핵한 것인데, 분격해 하는 기색이 언외(言外)에 넘쳐 신하된 사람이 임금에게 진언하는 말이 아닌 듯하고, 조어도 현저하게 간신 정철을 영구(營救)하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니 지난날 필마로 서쪽 교외에 나가 술잔을 들며 작별했던 심정을 혹 잊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닐까. 또한 ‘봉장(封章)을 먼저 올렸기 때문에 미처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변양걸(邊良傑)의 일에 있어서는 과연 그렇지만, 송순(宋諄)이 떠날 적에도 봉장을 올린 뒤이었던가. 어찌 그리도 말을 늦게 한단 말인가. 그리고 신이 일찍이 듣건대, 기축년에 간신 정철이 밀계(密啓)하기를 ‘적도들의 말에 「호남의 목을 누르고 해서(海西)의 입구를 막아버리고서 의병(義兵)이 영남에서 일어나면 국가의 형세는 위태롭게 된다. 」고 하였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이런 말을 알고 있는 자는 그 모의에 참여한 것이다. 누가 한 말인가?’ 하자, 정철이 아뢰기를 ‘이항복이 한 말입니다.’라고 했었다 한다. 】
- 【태백산사고본】 98책 17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605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領議政李恒福, 三度箚子入啓, 有曰:
伏以臣, 名在姦黨, 懼辱明時。 疾呼未暇擇聲, 聖諭反不稱情, 豈臣誠迫之至, 自訟太露, 無我於己, 議若路人, 求棄於人, 反疑不情, 而有以致此歟? 此非敢拂人常情, 務爲卓詭, 自絶於善也。 不如是, 無以正告國人, 故寧欲捨一身, 而尊國體也。 今國人皆曰然矣, 猶云未也。 其人無辭而順受, 猶云未也, 則爲賢爲邪, 何時可辨? 夫鞫獄, 大事也。 告證旣具, 囚供是實, 則足爲斷讞。 今臣之事, 奚止具證而供實, 而猶欲蓋覆之耶? 抑又有一說焉。 臣之起廢, 豈不以李德馨去位歟? 前日宋諄之去, 臣固已愍然矣。 近日邊良傑之貶, 又心傷其過情也, 適承求言, 封章在先, 斷獄在後, 未及言之, 私竊恨之。 以此而言, 則德馨特, 已言之臣也, 臣固未言之德馨, 究其心, 則一而二, 論其迹, 則二而一者也。 以此易彼, 猶夫人也。 罪雖未彰, 何忍匿情? 雖然, 此則剩語, 固不足詳之。 有可以一言, 而蓋之曰: ‘名之爲姦, 雖人主, 有不得以私者矣。’ 《經》曰: "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解之者曰: "如是, 則小人亦有時而用之, 唯時平治定, 用之則否。" 其意豈不曰: ‘草昧之初, 用才多門, 雞鳴狗盜, 無不俱收, 至於治平, 則一陰之害, 有足可畏, 戒之勿用耶? 故當隆興際, 論是非, 而佐治者上也, 及搶攘之日, 輸筋力, 而服勤者次也。’ 時平則全用是非, 事急則或資筋力。 臣倒行逆施, 沒有是非, 設或一得, 非世所需。 願備勳府, 以嚴公議, 倘遇緩急, 不難以筋力報殿下也。 古人曰: "全之爲德。" 如欲全之, 姑且置之。 其置之, 所以用之也。 不此之圖, 而無端剪拂, 置在人先, 千人所指, 不病而死。 裸裎倚市, 何能掩醜? 有周於身, 無益於國。 千萬自訣, 言止是而已。 惟聖明思之。 取進止。
答曰: "姦兇姓名, 人尙羞道。 卿爲其所識, 誠爲不幸。 所以自劾, 足見疾惡。 然猶不至於數尺之朽, 不妨爲國棟樑, 何以固辭? 宜勿辭, 速出就職。" 【恒福三上辭箚, 一以姦黨自劾, 而憤憤之氣溢於言外, 似非人臣進君之言, 而措語之間, 顯有營救以奸澈之意。 昔日匹馬西郊, 把酒敍別之情, 無乃或未能忘耶? 且曰封章在先, 未及言之。 其於良傑之事, 則果爲然矣, 宋諄之去, 亦在於封章之後歟? 何其言之大晩耶? 且臣嘗聞己丑年澈也密啓曰: "賊徒日犯湖南之項, 截海西之口。 義兵從嶺南起, 則國勢殆矣。" 上曰: "知此言者, 與此謀。 何人說道?" 云則澈曰: "李恒福言之矣"云。】
- 【태백산사고본】 98책 17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605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