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판 여민화의 관소에 거둥하다
상이 통판(通判) 여민화(黎民化)의 관소에 거둥하였다. 【관량 통판(管糧通判)으로 위인이 온화하고 단아하여 다른 장수에 비하여 조금 관대하였다. 】 통판이 말하기를,
"전일에 국왕의 변무 주본(辨誣奏本)을 보니 그 뜻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리고 관왕묘(關王廟)의 신에게 울며 고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이번에 적이 물러간 일로 황상께서 매우 기뻐하고 계시는데 정(丁)·서(徐) 두 사람이 계속 사실을 날조하고 있습니다. 눈썹을 깎은 일에 있어서는 서 급사(徐給事)가 자신이 한 일인데 도리어 그 책임을 무대(撫臺)에 돌리려고 하니 이 때문에 형 군문(邢軍門)도 주본을 올려 변명하였으나 황지(皇旨)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서 급사는 이번에 돌아올 것인데 탄핵을 입었기 때문에 지금 요양(遼陽)에 머물러 병을 칭탁하고 있다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는 외번(外藩)으로 중국의 통보를 얻어볼 길이 없소이다. 저번에 상사(上司)를 만나 비로소 성상께서 공로를 포상하고 종묘에 고한 것과 정 주사(丁主事)에 대해서도 관적(官籍)을 회수하게 하셨다는 말을 들었으니, 참으로 만리 앞을 내다보시는 식견이외다. 관왕묘에 방(榜)을 걸었다는 일은 우리 나라로서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소이까."
하였다. 통판이 말하기를,
"왜자(倭子) 10명이 부산의 적진에서 나와 말하기를 ‘진 제독(陳提督)이 노량(露梁)의 전투에서 승첩을 거둘 때 왜노의 죽은 자가 1만 3천 명이고 유 제독이 죽인 것도 1천여 명이었다. 행장과 청정은 이미 본진(本鎭)으로 철수하여 돌아갔으나 평의지(平義智)는 지금 대마도에 있으면서 다시 침범할 계획을 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있는 중국군은 왕 지휘(王指揮)가 그들의 군량을 주관하는데 지금 바닥이 났다고 하니, 국왕께서는 빨리 운반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전에 왜자가 나온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간의 내막을 전혀 듣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대인께서 언급해주시니 다행함이 그지없소이다. 그들의 서계(書契)를 볼 수 있겠소이까?"
하였다. 통판이 말하기를,
"그 글은 유 대인(劉大人)의 아문에 있습니다. 그 글 속에 패만(悖慢)한 말이 많이 있는데 주로 ‘당초에 왕자와 배신을 보내겠다고 약속하고서 왜 보내지 않느냐? 다시 침범하겠다.’ 하였습니다."
하고, 통판이 다시 말하기를,
"귀국의 전선(戰船)은 그 제도가 매우 좋으니 반드시 미리 많이 제조하여 해변에 배치해 두고 몰래 와서 정탐하는 적이 있으면 낱낱이 죽여 없애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시급한 것은 군량만한 것이 없으니 빨리 운반하여 전사(戰士)가 먹을 것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의 군마는 지금 차례대로 철수할 것으로 유 독부(劉督部)에게는 이미 성지가 내려 돌아가 양응룡(楊應龍)을 정벌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양응룡은 파주(播州)의 강한 비적(匪賊)으로 전일 형 군문이 회유하여 항복을 시켰는데 이제 또 다시 배반하여 운남(雲南)과 귀주(貴州) 지방에서 살인과 노략질을 매우 심하게 한다고 합니다."
하였다. 주례가 끝나자 상이 두 번 읍하고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11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88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군사-병참(兵站)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공업(工業)
○丙戌/上幸黎通判民化館。 【管糧通判, 爲人溫雅, 比他將稍優焉。"】 通判曰: "前見國王辨本, 其意甚好。 且關王廟泣告神言, 信有之乎? 今之賊退, 皇上甚爲喜悅, 而丁、徐二人, 及覆構捏。 至於剃眉一事, 給事所自爲, 而反欲歸之於撫臺, 以此邢軍門, 亦上本辨之, 旨意時未降矣。 徐給事今當回來, 而以被參, 故方駐遼陽, 稱病云矣。" 上曰: "小國以外藩, 天朝通報, 無路得見。 頃見上司, 始聞聖上, 敍功告廟, 主事亦令回籍, 信乎明見萬里也。 關廟揭榜事, 小國安有是事?" 通判曰: "倭子十名, 出來釜營言: ‘陳提督 露梁戰捷時, 倭奴死者一萬三千, 劉提督所殺, 亦千餘矣。 行長, 淸正, 已爲撤回原鎭, 平義智方在對馬島, 有再犯之計’ 云矣。 且天兵之在釜山者, 王指揮主管糧餉, 而今方缺乏云。 願王速爲搬運。" 上曰: "曾聞倭子出來, 而其間曲折, 全未得聞, 今者大人說及之, 不勝幸甚。 其書契可以得見乎?" 通判曰: "其書在劉大人衙門。 書中多有悖慢之語。 初以王子、陪臣爲約, 而何不送之乎? 當再犯云云。" 通判曰: "貴國戰船, 其制甚好。 必須及時多造, 列置海邊, 賊有來探者, 逐一厮殺。 今之所急, 莫如糧餉, 亦須快速搬〔運〕 , 無令戰士乏食。 天朝軍馬, 今方次第撤還, 而劉督部則已有聖旨, 往征楊應龍。 應龍 播州劇賊也。 前日邢軍門誘而降之, 今又再叛, 雲南、貴州之間, 殺掠甚多云矣。" 酒訖, 上再揖而出。
- 【태백산사고본】 69책 11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88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군사-병참(兵站)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공업(工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