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응인이 이 제독이 애 주사가 배신의 곤장을 때렸다고 하자 유감을 표했다고 전하다
공조 판서 한응인(韓應寅)이 치계하였다.
"제독이 봉산(鳳山)에 있으면서 애 주사(艾主事)가 군량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배신(陪臣) 세 사람에게 곤장을 때렸다는 말을 듣고는 역관 등에게 이르기를 ‘문관이 일의 대체를 몰라 강가에 도착하자마자 이러한 거조(擧措)를 했으니 이는 실로 조종의 수치이다. 너희 나라는 비록 소국이지만 본디 예의를 알아 조종에 순종한 것이 지금 2백여 년이 되었다. 하물며 상서와 시랑(侍郞)은 곧 대관인데 주사 같은 소관으로서 어찌 감히 이같이 할 수 있겠는가? 가령 범한 죄가 아주 중하여 죽일 정도가 되더라도 곤장을 때려서는 안 된다. 너희 나라가 잔폐해진 나머지 대소인이 분주히 진력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죽일 만한 죄가 있겠는가. 이른바 상서와 시랑이란 사람들도 사체를 몰랐다. 만약 의리와 체통으로 따졌다면 주사가 어찌 손을 댈 수 있었겠는가? 지금 내가 명을 받고 이곳에 와서 모든 생살의 권한이 내 손안에 있는데도 일찍이 작은 죄로 한 사람의 조선인도 죽인 일이 없다. 주사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렇게 하였는가? 내가 나올 때에 백부께 하직을 고하고 중문 밖에 나서니, 백부가 나를 부르시고 신칙하기를, 「고려는 곧 선조께서 출생하신 곳이다. 너는 이 사실을 명심하여 절대로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 」 하셨으므로 나는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42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
○工曹判書韓應寅馳啓曰: "提督在鳳山, 聞艾主事以糧餉不繼, 棍打陪臣三員, 謂譯官等曰: ‘文官不識事體, 纔到江上, 有此擧措, 此實朝廷之羞辱。 爾國雖曰小國, 素知禮義, 敬順朝廷, 今至二百餘年。 況尙書侍郞, 卽是大官, 主事小官, 安敢如是? 假使罪犯深重可誅, 而不可杖。 爾國殘破之餘, 大小之人, 莫不奔走盡力, 安有可誅之罪? 所謂尙書侍郞, 亦不知事體。 若以義理體面爭辨, 則主事安能下手? 今我受命來此, 凡生殺之權, 在我掌中, 而未嘗以微罪, 殺一朝鮮之人。 主事何人, 敢爲此也?’ 我來時, 告辭大爺, 出中門外, 大爺招不肖, 申勑曰: ‘高麗乃祖先所出。 汝須體念, 切勿擾害。 此言, 我不能忘于心。’ 云矣。"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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