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 목사 서익이 정여립의 처신을 비판하고 이산보·박점 등의 성품을 상소하다
의주 목사(義州牧使) 서익(徐益)이 상소를 올렸다.
"신은 단지 일개의 외신(外臣)이니 내정(內庭)의 일에 관계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품은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은 신하의 큰 죄이므로 부월(鈇鉞)의 주벌을 피하지 않고 진달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참람스러움을 용서하여 주소서.
신이 생각건대 국운이 중간에 비색해져서 사론(土論)이 서로 갈라졌는데 처음에는 큰 일이 아니었는데도 점차 고질(痼疾)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논의가 날로 성하여가고 공격이 서로 잇달았는데 정(正)으로 사(邪)를 공격하는 것도 오히려 불행이라 하는 것이거든 하물며 사가 아닌데이겠습니까. 신이 계속 저보(邸報)를 보니 한두 대신이 서로 잇따라 휴가 중에 있고 몇몇 어진 재상들이 함께 기척(譏斥)당하고 있었습니다. 신은 이를 보고 한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야흐로 서로를 조화시켜 보합(保合)을 이룸으로써 사류를 안정시키려 하고 있는데 어떤 불량한 자가 있기에 다시 이 단서를 여는 것입니까.
도로에서 서로 전하는 말을 번거롭게 위에 아뢰는 것이 마땅치 않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무슨 해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삼가 듣건대, 정여립(鄭汝立)이 경연에서 이이(李珥)를 공격하고 드디어 박순(朴淳)·정철(鄭澈)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박순과 정철이 자리에 있기가 미안하여 은총을 피해 물러갔다고 하니, 그 말이 사실입니까?
이 일은 다른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어도 여립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립은 본래 이이의 문하생으로서 몸에 학사(學士)의 명함(名銜)을 띠고 조정에 들어와 천안(天彦)을 뵙게 된 것이 모두 이이의 힘이었습니다. 삼찬(三竄)을 처음 정하고 나서 이이를 소환(召還)했을 때 여립이 전주(全州)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비가 가서 만나보고 이이의 사람됨을 물었더니, 여립이 뜨락에 있는 감을 가리키면서 ‘공자(孔子)는 다 익은 감이라면 율곡(栗谷)은 반쯤 익은 감이다. 이 반쯤 익은 것이 다 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율곡은 진실로 성인(聖人)이다.’ 하였는데, 율곡은 이이의 도호(道號)입니다. 또 그가 ‘변사정(邊士貞)은 바로 천하사(天下士)이다. 삼현(三賢)050) 을 구원한 소장 하나는 마땅히 만세를 유전하여도 썩지 않을 것이다.’ 하였고, 또 ‘이발(李潑)이 항상 스승의 도리로 이이를 섬겼는데 논의가 서로 일치하다 않게 되자 드디어 공격할 마음을 품고 조정을 제멋대로 휘두르면서 옳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조정이 안정되지 못할 화환(禍患)을 빚어냈으니 이발은 큰 죄를 졌다.’ 하였습니다. 신이 그때 그 이웃에 있었는데 사인이 이 말을 신에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은 ‘학사(學士)051) 가 고전들을 읽었을 텐데 어찌 그리도 경솔한가.’ 하였습니다.
신은 그 뒤 오래지 않아 부름을 받고 서울에 왔는데, 그때 이이는 병중에 있었습니다. 저와 친한 사람이 여립이 이이에게 보낸 편지를 신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편지에 ‘삼찬(三竄)은 이미 결정되었지만 거간(巨奸)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뒷날의 근심이 오늘의 근심보다 더 심할 것이다. 빨리 그들을 도모해야 한다.’ 하였으니, 거간이란 유성룡(柳成龍)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를 보고 신이 사사로이 ‘정가(鄭哥)052) 의 기습(氣習)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아 문노공(文潞公)의 일053) 로 다른 사람을 면려하지는 못하고 도리어 연루시켜 단련함으로써 자신을 논박한 사람을 죄주게 하기를 힘쓰고 있단 말인가. 더구나 유성룡은 본래 이이를 공격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였습니다. 전에도 여립이었고 지금도 같은 여립인데 어찌하여 지금에 와서는 직접 이이를 팔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사우(師友)로 지냈으면서 우의가 생사(生死)에 따라 달라지고 언론과 풍지(風旨)를 시세에 따라 달리하면서도 ‘나는 글을 읽는 군자이다.’고 한들,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도리어 소인이라고 이름 붙일 것입니다.
삼가 듣건대, 어떤 사람이 이이의 심사(心事)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논하였다고 합니다. 아, 이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까? 군자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부모를 잊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 말을 한 자는 아마 부모도 없는가 봅니다. 언자(言者)는 이이가 심의겸과 사귄 한 가지 일만으로도 족히 의심을 받을 만하다고 합니다. 이이가 심의겸과 사귄 것이 과연 죄라면, 어째서 그때 논박하지 않고 도리어 분주하게 이이의 문하에 드나들면서 제자(弟子)의 예를 다하다가 오늘에 와서야 알고서 이를 끌어다가 그를 공격하는 자료로 삼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의 말을 듣는 자도 어쩌면 그렇게 급급(岌岌)합니까.
신이 일찍이 유성룡과 더불어 이이에 대해 논한 일이 있는데, 성룡이 ‘평탄 평이(平坦平易)한 것이 그의 장점이나 한스러운 점은 변경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아, 고금 천하에 어찌 평탄 평이한 소인이 있겠습니까. 그의 행사(行事)로 논하여 소탈(踈脫)함을 면할 수 없다고 한다면 신과 같이 이이를 존경하는 자라도 두 손으로 받들어 인정하겠지만, 만약 그의 심사(心事)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한다면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은 말로 이이를 두호할 것입니다. 박순과 정철은 모두 청명(淸名)과 아망(雅望)으로 성명의 지우를 받아 경상(卿相)의 자리에 있으면서 품은 생각은 아뢰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한 것은 따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것은 삼찬(三竄)을 방환하자고 청하는 한 가지 일 뿐입니다. 가령 이이가 죽지 않았다면 반드시 전하에게 계속 간쟁하였을 것입니다.
아, 세 신하에게 진실로 죄가 있지만 유배까지 시킨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 아니겠습니까. 송응개(宋應漑)의 말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라서 사람과 귀신이 모두 싫어하였습니다만, 그의 직이 간관(諫官)으로 이름지어졌으니 어떻게 그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고서 그 말에 죄를 줄 수가 있겠습니까. 허봉(許篈)은 유명한 아버지054) 의 아들로서 문장의 재주가 있어 약관(弱冠)에 과거에 올라 청현직을 두루 역임하여 뜻대로 된 일은 많으나 일에 대한 경험은 적으니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어찌 가혹하게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갑산(甲山)은 본디 험한 곳으로 이름이 나서 그곳에서 생장한 사람이 아니면 병들지 않는 자가 드물기 때문에 전후 귀양간 자가 살아서 돌아온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젊은 재사(才士)가 진실로 아침 이슬처럼 사라진다면 성덕(聖德)에 누가 됨이 어찌 많지 않겠습니까.
신은 허봉과 나이에 차이가 나고 승침(升沈)이 달라서 다만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한두 번 얼굴을 보았을 뿐 술잔을 들고 서로 마주해서 은근한 환담을 나누어 본 일이 없는데도 오히려 곧 죽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까 걱정하는데, 더구나 그를 친애하는 사람들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이것이 언론이 날로 일어나 중지되지 않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전하를 아침 저녁으로 가까이 모시던 신하로서 형극(荊棘)의 험난한 길을 타개하고 이매(魑魅)같은 무리들을 방어하였습니다. 신은 전하께서도 마음으로는 불안해 하셨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주청사(奏請使)가 돌아오자 큰 은사(恩赦)를 내려 마땅히 사죄에 처해야 할 죄수들까지 다 사면되었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모두 삼찬(三竄)도 사유(赦宥)받을 것이라 여겼었습니다. 그런데 해사(該司)에서 이는 국가에 관계된 일이라 하여 응당 방면해야 될 대상에 넣지 않았습니다. 이 법은 영갑(令甲)에 실려 있는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이처럼 오래 고수하면서 고치지 않는 것입니까?
신이 그때 옥당(玉堂)에 봉직하고 있으면서 동료들과 함께 차자(箚子)를 올려 진달하려고 했는데, 들리는 말에 정철이 먼저 일어나 상신(相臣)에게 말하고 전하에게 진달하여 놓아주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대신이 말하려 하니 옥당이 기필코 할 것이 없겠다.’ 하여 드디어 중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일이 오래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기에 신이 정철을 만나서 물어보니, ‘상신에게 고했으나 상신이 아직 아뢰지 않았는데 아뢰어야 하겠다.’ 하였습니다. 곧 이어 듣건대, 박순이 궐하(闕下)에서 양상(兩相)055) 에게 말했으나 의논하여 실행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정철이 강개한 말로 신에게 ‘차라리 내가 경연에서 몸소 진달해야 하겠지만 전에 이런 요청이 있었을 때 상께서 너그러이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반드시 상신을 통해야만 그 일이 무게가 있게 될 것이다. 상신들과 다시 의논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 오래지 않아 신이 은혜를 받아 외직에 보임되었으므로 그 뒤의 일은 신이 실로 모릅니다. 신이 정철을 만나 삼찬(三竄)의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잔을 멈추고 탄식을 하면서 이어 비창하게 신음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철을 모르는 자들은 서로 다투어 죄를 그에게 돌려 온갖 비방이 모두 정철의 한몸에 집중되었으니, 철의 처지로서는 다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술을 좋아한다는 비방에 대해서는 과연 그런 병통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이 듣기로는 이이가 살아 있을 때 탑전에서 진달하여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책망하게 하려 했었는데, 이이가 마침 홀연히 죽어서 겨를이 없었습니다. 정철이 술을 좋아하는 잘못을 논한 것은 한 가지이지만, 이에 대해 한 말에는 공사(公私)와 애오(愛惡)의 다름이 있으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정철이 술을 좋아하는 것은 귀중한 백옥(白玉)에 작은 흠집이 있는 격인 것으로 타산(他山)의 돌로서 색깔이 맑은 것과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산보(李山甫)와 박점(朴漸)의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은 종들까지도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 언자(言者)들이 용박(庸駁)하다고 하니 지금의 용박은 옛날의 용박과 다른 모양입니다. 지금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고 붕우(朋友)에게 신의있는 사람을 용박이라 하니, 신은 옛날의 용박은 언자들이 해당된다고 여깁니다. 전에 이이를 공격할 때 안민학(安敏學)과 이배달(李培達)이 이이의 문하에 왕래하였다는 이유로 부도(不道)라는 명목을 붙여 공격하더니, 이번에도 이 수단을 쓰고 있습니다.
안민학과 이배달의 사람됨을 신은 사실 잘 모르지만 산보와 같은 경우는 하늘이 부여한 품성을 온전히 지니고 있으며 충후(忠厚)하고 신근(愼謹)한 것이 그 집안의 법도입니다. 그의 계부(季父)인 지함(之涵)056) 도 일찍이 경외받던 사람이었으니, 이와 같은 어진 선비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말을 더듬는 병이 있어 말에 문채(文彩)가 없기 때문에 남에게 말을 듣고 있으니, 아마도 이 때문인 듯합니다. 신은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깊이 살피소서.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좌의정 노수신은 경세 제민(經世濟民)의 학술을 쌓았고 교악(喬岳) 같은 중망(衆望)을 지닌 데다가 성명의 지우를 받아 깊이 묘당(廟堂)에 올라 있으니, 사림(士林)을 합일시키고 조정을 화하게 하여 국가를 안정시키고 사직을 높이는 것이 그의 마음이요 직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하지 않고 서둘러 구차스레 사면할 마음만 품고 있으니 이 어찌 까닭이 없겠습니까. 수신(守愼)의 후덕과 중망은 처음부터 양가(兩家)057) 와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양가가 모두 자기 편을 도와주어 무게를 더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자 양가에서 모두 불평하는 뜻을 품고 이를 말과 낯빛에 드러내는 자까지 있었습니다. 수신의 입장에서는 양쪽을 모두 보존시키려면 조정에서 공격이 그치지 않게 될 것이고, 양쪽을 다 제거하자니 일을 그르치는 자가 나와서 한 나라가 텅 비게 될 것이며, 한 쪽을 보존하고 한 쪽을 제거하자니 양쪽 모두 사류(士類)인데 어떻게 제거할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양쪽을 화해시켜 보존하게 함으로써 진정시킨 다음 그 상태가 오래되면 자연 안정될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양가 사이에 근거 없는 논의가 더욱 치성해서 마치 물이 깊어지고 불이 치열해지듯이 쇠망과 위란의 재앙이 지척에 닥쳤습니다. 이것을 구제해 보자니 힘이 미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자니 배운 학문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고육계(苦肉計)를 세우고 있으니 그 실정이 애닯다고 하겠습니다. 신은 노수신의 거취에 국가의 경중이 달려 있다고 생각되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신이 삼가 듣건대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옳은 것이 있다.’고 하였으니,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기는 하나 원컨대 한 번의 옳은 것을 아뢰겠습니다. 신이 듣건대 아들이 서로 화합하지 않으면 부모가 화해시킨다고 합니다. 아비된 입장에서 자식들이 서로 불화한 경우를 당하는 것은 비상한 변고이니 비상한 변고를 당한 사람은 반드시 비상한 도리로 조처해야 합니다. 자식에 대해 편벽되게 좋아하거나 성을 내서 한쪽을 기쁘게 하거나 한쪽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되며 죄책(罪責)을 엄하게 해서 은혜와 자애를 상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에 어떤 아비 하나가 자식들이 다투는 변을 당하였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따르지 않고 화를 내면 낼수록 더욱 화합하지를 않자, 그 아비가 언어(言語)나 위노(威怒)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여기고 이에 길일(吉日)을 택하여 술을 빚어놓고 마루에 자리를 깔고 아들들에게 앉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리고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너희들은 내 소생이 아니냐?’ 하니, 여러 아들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예, 그렇습니다.’ 하였습니다. 또 ‘너희들은 동기(同氣)에서 형체를 나눈 자식이 아니냐?’ 하니, 여러 아들들이 ‘예, 그렇습니다.’ 하였습니다. 아비가 다시 ‘너희들이 이미 나에게서 나온 자식이고 동기에서 형체가 나뉜 것임을 안다면 무슨 까닭에 이처럼 사소한 사심(私心)을 품고 윤기(倫紀)를 그르쳐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리 가도(家道)를 어지럽히는가?’ 하면서 눈물을 그치지 않으니, 여러 아들들도 아비의 말에 감격하고 아비의 눈물이 뚝뚝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는 서로 자리에서 일어나 통곡하고 절하면서 ‘아버님, 저희들이 불초(不肖)했습니다. 아버님, 눈물을 멈추십시오. 아버님의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아비가 ‘아들들아, 이리 오라. 내가 너희들과 한 잔 하겠다.’ 하고, 아비가 먼저 마시고 차례로 아들들이 마시는데 모두 대작(大酌)하였습니다. 취한 뒤에는 형은 동생의 손을 잡고 동생은 형의 옷을 부추기면서 서로 노래를 부르면서 그쳤습니다. 그 뒤 제각기 자기 아들들을 모아놓고 ‘내가 오늘에야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내가 짐승으로 평생을 마칠 뻔하였다.’ 하니, 그 자식들도 각기 아비에게 절하면서 ‘저희들도 각각 어버이가 있어 사원(私怨)으로 삼고 풀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석연히 풀렸습니다.’ 하고 들어가 조부(祖父)에게 문안드렸습니다. 이 뒤로 그 형제는 서로 수족(手足)처럼 사랑하고 금슬(琴瑟)처럼 즐거워하였으므로 한 집안에 화기가 애애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형은 아우를 원수처럼 생각하고 아우도 형을 역시 원수로 여겨 형의 아들은 동생의 아들을 공격하고 동생의 아들은 형의 아들을 공격하여 장차 몇 대가 지나도록 끊어지지 않아 끝내는 그 집안이 복패(覆敗)되고 말 것입니다. 아마 오늘날의 신하들을 바야흐로 전하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을 것이고 전하께서도 신하들을 아들처럼 여기고 있을 것인데 그들을 화해시켜 주지 않는다면 신은 전하께서 한 아비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내 자신이 진실로 지성으로 한다면 금석(金石)도 꿰뚫을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금석이 아닌 사람이 어찌 감동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신이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먼저 유배한 신하들을 방환시켜 집에서 늙게 하시고, 다음에는 근시(近侍)로서 외직에 보임되어 나간 사람들을 불러 다시 좌우에 두시고, 박순과 정철을 위안하여 그 직을 회복시켜 주소서. 그리고 나서 대신과 재상 및 근시들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해서 전교하기를 ‘그대들이 나를 임금으로 대하고 아비로 대하니 내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조정에서 벼슬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인데 이와 같이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온화한 얼굴 부드러운 말로 마음을 열고, 정성을 다해 의리의 명분으로써 밝히고, 힘을 합하여 공경하는 아름다움으로써 효유한다면 마음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역말보다도 빠른 것이어서 모두가 기뻐하고 감읍(感泣)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난날 서로 좋아하지 않았던 마음이 어디에서 다시 생겨나겠습니까. 지난날 더없이 시끄럽던 분쟁은 단지 하나의 웃음거리로 될 뿐입니다. 그렇게 한 뒤에 담박한 것은 권장하고 조급한 것은 억제하며 화평하고 공정한 사람은 진출시키고 망령되고 경박한 무리들을 물리침은 물론 양가(兩家)에 혹 지난날처럼 바르지 못한 자가 있는 경우에는 이들을 징계하여 동요되지 않게 한다면 신은 한 달 사이에 조정이 안정되고 사론(士論)이 통일되어 화평한 기상을 모이게 할 수가 있게 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만약 이렇게 계책을 세우지 않고 위세와 노여움으로 안정시키려 한다면 한번 성공하고 한번 실패하는 사이에 양가의 자제들이 대대로 적이 되어, 전하의 자손 만대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신이 조정에 있을 적에 잠잠히 양가의 기색(氣色)을 살펴보니, 모두가 서로 용납하지 않는 것을 절의(節義)에 죽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혹 화평에 대한 의논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이 사람을 저편으로 본다.’ 하고 ‘나는 저 사람을 이편으로 본다.’ 하면서 좌우에서 훼방하고 비난하기를 있는 힘을 다하여 합니다. 이 때문에 전하께서 한 아비와 같은 계책을 쓴 뒤에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영세토록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여기에 유념하신다면 국가의 대계를 위해 더 없는 다행이겠습니다.
또 신이 의혹스러운 점이 있어 전하께 앙달하고자 합니다. 심의겸(沈義謙)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 신은 진실로 잘 알지 못합니다. 전하께서 의겸을 간괴(奸魁)로 여겨 그와 사귀는 자는 모두 그르다고 한다면, 의겸은 신하로서 막대한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탈없이 황금 띠를 두르고 여전히 재상의 반열에 있어 마치 죄가 없는 자와 같습니다. 과연 죄가 있다면 그 악을 헤아려 죄를 밝히고 경중을 가늠하여 율(律)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될 것이요, 벼슬을 높이고 총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죄가 없다면 신하가 비록 미천한 존재이긴 하지만 전하께서 어찌 간(奸)이란 글자를 씌울 수 있겠습니까. 또 죄가 있기는 하지만 선후(先後)의 지친(至親)이기 때문에 차마 형벌을 가할 수가 없다고 한다면, 신에게도 한마디 할 말이 있습니다.
형정(刑政)은 조종(祖宗)께서 정하신 것이요 온 나라 사람이 지켜야 하는 것이니, 죄가 진실로 크면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 죄상이 그래도 용서할 만한 것이라면 그를 한가한 자리에 두어 국정(國政)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고 성인(聖人)의 교화 속에서 노닐게 하며 녹봉이나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찌 꼭 분명히 드러내어 말할 만한 것이 없는데 갑자기 죄를 알려 그로 하여금 스스로 용납될 길이 없게 할 것이 있겠습니까.
황천(皇天)이 아래로 임하시니 무슨 물건인들 그것을 보지 못하겠습니까마는 오직 아무 말이 없어도 모든 만류(萬類)가 편안히 믿습니다. 전하는 하늘을 본받는 분이 아니십니까. 신은 글이 문장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맞지를 않으니 진실로 기롱과 비웃음만을 살 뿐 성명에 아무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구구한 한 마음은 국사(國士)로서 보답058) 하려고 합니다. 신은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사랑을 내리시어 받아들여 주소서. 신은 상이 계신 궁궐을 바라봄에 지극한 비애와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1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註 050]삼현(三賢) : 이이(李珥)·성혼(成渾)·박순(朴淳)을 말한다. 삼찬이 언관으로 있으면서 이이(李珥) 등을 공격할 때 변사정이 상소하여 그들을 공격하고 이이 등을 구원하였다.
- [註 051]
학사(學士) : 정여립을 가리킴.- [註 052]
정가(鄭哥) : 여립을 가리킴.- [註 053]
문노공(文潞公)의 일 : 일을 너무 까다롭게 밝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 문노공은 송나라 초기의 명재상인 노국공(魯國公) 문언박(文彦博)을 말한다. 당시 가창조(買昌朝)와 내시 무계융(武繼隆)이 결탁하여 사천관(司天官)을 시켜 재상이던 부필(富弼)을 모함하려 했는데, 문언박은 그 일에 배후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사천관 두 사람만을 문책하고 덮어두었다. 뒤에 그 일이 알려져 이유를 물으니 "그들을 처벌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다 드러나 중궁(中宮)까지 불안하게 된다." 하였는데, 이를 가리킨 말이다. 《송사(宋史)》 권313.- [註 054]
유명한 아버지 : 초당(草堂) 허엽(許曄)을 가리킴.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청백리(淸白吏)에 올랐던 인물이다.- [註 055]
양상(兩相) : 좌의정과 우의정.- [註 056]
지함(之涵) :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을 말함.- [註 057]
양가(兩家) : 동인과 서인임.- [註 058]
국사(國士)로서 보답 : 자신을 알아준 데 대하여 목숨을 바쳐 보답하는 것.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예양(豫讓)이 ‘지백(知伯)은 나를 국사로서 대접해 주었다. 이 때문에 나도 국사로서 그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했다." 했는데, 여기서 온 말이다.○義州牧使徐益上疏曰:
臣只一介外臣, 宜無與於內庭之事也。 然有懷不言, 臣之大罪, 不避鈇鉞之誅而陳之。 伏願聖明, 恕其狂僭焉。 臣伏以國運中否, 士論携貳, 初非大段, 轉成痼疾。 論議日盛, 攻擊相尋, 以正攻邪, 猶謂不幸, 況非邪乎? 臣續見邸報, 一二大臣, 相繼在告, 數三賢宰, 幷見譏斥。 臣長吁短嘆, 不覺淚下也。 方期調劑保合, 康濟士類, 何等無良, 復啓此端乎? 道路所傳, 未宜上瀆, 雖或失實, 然亦何傷? 臣伏聞鄭汝立於筵中進攻李珥, 遂及朴淳、鄭澈, 故朴淳、鄭澈未安其位, 走恩而退, 其言信然乎? 此事他人可也, 汝立不可也。 汝立本李珥門下士也, 身帶學士銜, 入覲淸光, 皆珥之力也。 方三竄初定, 李珥召還也, 汝立在全州舍。 士人求見, 仍問李珥之爲人, 汝立指庭中柿子曰: "孔子是盡熟的柿子, 栗谷是半熟的柿子。 半熟者, 其不爲盡熟乎? 栗谷眞聖人也。" 栗谷乃李珥道號也。 又曰: "邊士貞乃天下士也。 救三賢一章, 當流萬世而不朽矣。" 又曰: "李潑常以師道事李珥, 及論議不一, 遂生攻擊之意, 專擅朝政, 引進非人, 釀成朝家不靖之患, 潑有大罪也。" 臣時方在其隣, 士人以此言言于臣。 臣謂學士讀古書, 何其欲易而不完也? 臣未久承召入京, 珥則病矣。 所親以汝立通于珥之書言臣, 其書曰: "三竄雖定, 巨奸尙在, 他日之憂, 有甚於今日。 宜速圖之。" 巨奸指柳成龍也。 臣私謂曰: "鄭哥氣習, 未盡消磨, 不勉人以文潞公之事, 而反勉之以連緊鍛鍊, 罪論己者乎? 況成龍本非攻李珥者, 何敢乃爾也?" 前亦汝立, 今亦汝立, 安得於今日親賣李珥而不知恥也? 師友行誼, 生死異同, 言論風旨, 隨勢向背而曰: "我讀書君子。" 人誰信之? 必反之名矣。 臣伏聞, 有人論李珥心事可疑也。 嗚呼! 此言發於誰口? 君子一言一動, 不忘父母, 爲此言者, 其無父母乎? 言者謂李珥交沈義謙一事, 足以疑也。 李珥交義謙, 果有罪也, 何不於此時論之, 反奔走珥之門, 執弟子之禮而始知今日援以爲攻擊之資乎? 聽彼言者, 何其岌岌哉? 臣嘗與柳成龍, 論李珥, 成龍曰: "平坦平易, 乃珥所長也, 所恨, 喜變更耳。" 嘻! 古今天下, 安有平坦平易之小人乎? 就行事上論之, 未免踈脫云爾, 則如臣尊李珥者, 亦或雙手奉聽, 若謂心事可疑, 則擧國之人, 皆以百口保之矣。 朴淳、鄭澈, 俱以淸名雅望, 遭遇聖明, 置身卿相, 懷無不達, 言無不從。 所未及者, 請還三竄一事耳。 假使李珥不死, 必爭之殿下而不已也。 嗚呼? 三臣固有罪矣, 至於竄謫, 則無已過乎? 宋應慨之言, 悉皆誕妄, 人鬼皆厭, 然官以諫爲名, 何可以使之言, 而罪其言乎? 許篈以名父之子, 濟詞章之才, 弱冠登第, 歷揚淸顯, 得意多而經事少, 雖有過愆, 豈可深罪? 甲山素號惡土, 自非生長於斯者, 不爲受病者小, 故前後謫居者, 鮮有生還。 靑年才子, 苟先朝露, 其爲聖德之累, 不旣多乎? 臣與篈年紀差(池)〔地〕 , 升沈異路, 只於稠中, 一再見面, 而未有銜杯酒, 接(殷)〔慇〕 懃之歡, 猶恐朝暮死而不得還也, 況其親愛者乎? 此所以言論日起而不能止也。 無非殿下朝夕近侍之臣, 而開荊棘之路, 禦魑魅之鬼。 臣亦知殿下不安於懷也。 上年奏請使之還, 大沛鴻恩, 應存死囚者, 皆得疏放, 都人皆謂三竄亦嘗蒙宥矣。 該司以其關係國家, 不在應放之類。 此法非令甲所載, 何守之久而不改也? 臣於此時, 待罪玉堂, 欲與同僚上箚陳列, 聞鄭澈首起, 言于相臣, 達于殿下而放之。 臣謂: "大臣欲言, 玉堂不必爲也。" 遂停之。 日久尙無消息, 臣往見鄭澈而問之, 則曰: "告于相臣, 相臣未之行, 當啓之矣。" 旋聞朴淳於闕下, 發言于兩司, 而不克果議。 鄭澈慷慨言于臣曰: "澈寧自達於筵中, 第前有此請, 聖顔不假, 必須相臣, 其事方重, 當於諸相更議也。" 未久臣恩出補, 自後事臣實未知也。 臣嘗見鄭澈, 論及三竄事, 未嘗不停杯發嘆, 繼之以悲吟也。 不知澈者, 爭相歸罪, 萬車訾謗, 都萃於鄭澈之一身, 爲澈之計, 當復何如? 嗜酒之謗, 果其實病。 臣聞李珥在世之時, 欲達于榻前, 責之以不飮也。 珥適奄忽未遑也。 嘻! 論鄭澈嗜酒之失一也, 而所言有公私愛惡之異, 不可不察也。 澈之嗜酒, 直白玉微瑕耳。 比之於他山之色, 潔者則霄壤不侔矣。 李山甫、朴漸孝悌忠信, 奴隷所共知。 言者以爲庸駁, 今之庸駁, 與古之庸駁不同矣。 今以孝於父母, 忠於君上, 友於兄弟, 信於朋友者, 謂之庸駁, 則臣請古之庸駁, 言者當之。 前攻李珥之時, 以安敏學、李培達, 往來珥之門也, 加不道之名而攻擊之, 今番亦用此手段也。 安、李爲人, 臣實未知也, 若山甫者, 天賦全然, 而忠厚愼謹, 乃其家法矣。 季父之涵, 所嘗畏也, 如此善士, 何處得來? 但有吃病, 語言無章, 致之人言, 恐或坐此也。 臣伏願殿下深察之。 臣伏見左議政盧守愼, 蘊經濟之學, 負喬岳之望, 身値聖明, 深居廟堂, 一士林和朝廷, 安國家尊社稷, 乃其心也, 乃其職也。 今乃不然, 汲汲以(久)〔苟〕 免爲意, 豈無所以也? 守愼厚德重望, 初無與於兩家, 故兩家者咸願助己而收重焉。 旣不得焉, 兩家者皆懷不平之意, 至見於辭色者有矣。 爲守愼者, 欲兩存之, 則朝著之間, 攻擊不止, 欲去之, 則渙人者出, 而空一國矣。 欲一存而一去, 則然皆士類, 何可以去之? 不如和而保之, 靜以鎭之, 久則自爾定矣。 乃今兩家之間, 浮議益(成)〔盛〕 , 如水之深, 如火之熱, 衰亡危亂之禍, 咫尺在前。 欲救則其力不及, 欲留則非其所學, 故爲此苦計, 其情可悲也。 臣謂盧守愼去就, 國家之輕重係焉, 臣伏望殿下深思之。 臣伏聞: "愚者千慮, 必有一得。" 臣雖至愚, 願以一得獻焉。 臣聞, 子之不和, 其父解之。 爲父者, 遇子之不和, 乃非常之變也, 遇非常之變者, 必以非常之道處之。 子不可偏喜怒, 使一欣而一戚, 不可嚴罪責, 使害恩而傷慈也。 世有一父, 遇諸子之變, 愈言而愈不從, 愈怒而愈不協, 其父謂不可以言語威怒爲也, 於是卜吉日, 置釀酒, 鋪席堂中, 命諸子而坐之。 泣而告曰: "子等, 非我所出乎?" 諸子亦泣曰: "喩。" "汝等非同氣而分形者乎?" 諸子曰: "喩。" 父曰: "汝等旣知出於我, 而同氣而分形也, 何故懷些少之私, 傷倫敗紀, 疚我心懷, 亂我家道也?" 泣之不已, 諸子感父之言, 見父之淚冷冷落地, 相與離席號泣而拜曰: "父乎? 子等不肖。 父乎! 止淚, 唯父之命。" 父曰: "諸子復我酌酒, 與汝輩乎!" 父先飮, 次乃諸子, 盡同大酌。 及其醉也, 兄執弟手, 弟扶兄衣, 歌嗚嗚而止, 各拾其子而告之曰: "吾今日人矣。 微父, 吾其獸而終也。" 其子各拜其父曰: "子等各有自親, 以爲私怨, 不又解也, 今乃釋然。" 入而資祖父。 是後其兄弟愛之如手足, 樂之如琴瑟, 一堂和氣藹如也。 不然, 兄讎其弟, 弟仇其兄, 兄之子攻其弟之子, 弟之子攻其兄之子, 將數世而不絶, 終必覆其家。 殆今之諸臣, 方父殿下矣, 殿下子諸臣, 而不解其和, 則臣恐爲一父之笑也。 我苟至誠, 金石可通, 況非金石者, 安得不動? 臣伏願殿下首放竄臣, 使得自老於家, 次召由近侍, 出補于外者, 復置左右, 慰安朴淳、鄭澈, 使復其位。 乃召大臣諸宰執近侍者, 致于前而敎之曰: "爾等君乎我, 父乎我也, 其不從我之言乎? 爾等生一時, 仕一朝, 則是幸而乃如是也。" 和顔緩辭開懷, 盡誠明之以義理之分, 諭之以寅恭之美, 則心之感人, 速於置郵, 莫不和悅感泣之不暇。 向來不好心, 何從更來? 從前滿場喧爭, 只是一笑資耳。 然後將恬抑躁, 進和平公正之人, 退浮妄輕薄之輩, 兩家或有如前不正者, 治之不撓, 則臣謂期月之間, 朝廷定, 士論一, 雍容氣象可掬也。 計不出此, 而欲以威怒定之, 一成一敗, 兩家子弟, 世世爲敵, 爲殿下子孫萬世之患也。 臣在朝時默見兩家之氣色, 皆以不相容, 爲伏節死義之地。 其中或有論議和平者, 則曰: "我以此投彼也, 我以彼投此也。" 左訾右謗, 更無餘力。 以此知殿下用一父之計, 然後可感衆心, 而永世無患也。 伏願殿下留神焉, 爲國家大計, 不勝幸甚。 且臣有惑焉, 請質於殿下。 沈義謙之有罪無罪, 臣固未知之也。 殿下以義謙爲奸魁, 交之者皆非也, 則義謙有人臣莫大之罪矣。 然無恙黃金之帶, 依舊宰相之班, 則若無罪矣。 果有罪也, 則數其惡明其罪, 稱量輕重, 不失其律可也, 不可崇爵寵也。 果無罪也, 臣雖爲微, 殿下安得以奸字加之也? 若謂罪則有之, 以先后至親, 不忍加之刑也, 則臣有一說焉。 刑政者祖宗之所定也, 國人所其守, 罪固大焉, 何效赦之? 如其罪狀, 猶或可恕, 則所當置之散地, 無與國政, 優游聖化, 不絶其祿可也。 何必明無顯說, 暴揚其罪, 使人不自容也? 皇天下臨, 何物不覩, 惟其不言, 萬類安孚。 殿下非法天者乎? 臣文不成章, 言不中理, 固知只取譏笑, 無補聖明, 區區一念, 願以國士報之。 臣伏願殿下垂仁肆納焉。 臣不勝瞻天望闕, 悲惶躑躅之至, 謹昧死以聞。
-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1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註 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