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 천재로 공경을 연방하고, 경제사의 설치 등을 논의하다
상이 천재로 인하여 공경(公卿)들을 연방(延訪)하였다. 입시(入侍)한 사람은 영상 박순(朴淳), 병조 판서 유전(柳㙉), 형조 판서 강섬(姜暹), 한성부 판윤 임열(任說), 좌참찬 심수경(沈守慶), 우참찬 이문형(李文馨), 공조 판서 황임(黃琳), 예조 판서 이양원(李陽元), 이조 판서 정지연(鄭之衍), 호조 판서 이이(李珥), 도승지 이우직(李友直), 대사헌 구봉령(具鳳齡), 부제학 유성룡(柳成龍)이었다. 여러 신하들이 자리에 앉자 상이 좌우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천재가 비상하니 장차 어떻게 대응해야겠는가? 좌우의 신하들은 차례로 자기 의견을 진달하라."
하니, 이이가 아뢰기를,
"천도(天道)는 심오하여 참으로 엿보아 측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옛 역사를 놓고 보면 치란(治亂)의 형적이 이미 정해지면 별다른 재변이 없었습니다. 재변이란 반드시 장차 잘 다스려지려고 하거나 어지러워지려고 할 즈음에 일어나는 것이니 비록 어진 임금이라도 또한 재변은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재변으로 인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두려워하며 반성하고 수양해 나간다면 재변은 도리어 상서가 될 것입니다. 대체로 천심(天心)은 인자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경계하고 반성하여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만약 그에 대한 보응을 참되게 하지 않으면 나라는 이로 인해 어지러워지고 또 멸망하게 될 것이니 이런 사례는 사책(史冊)에서 역력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부터 나라를 세운 지가 오래되면 법제가 점차 폐단이 생기고 인심이 해이해지는 법인데 그때는 반드시 현명한 군주가 나와서 폐지되고 추락된 것들을 일으켜 세워 그 정사의 기강부터 개혁한 연후에 국세가 다시 진작되고 국운이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로 무너지고 넘어져서 바로잡아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니 그 상황을 알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조정이 나라를 세운 지가 거의 2백 년이 되었으니 이는 중엽의 쇠퇴기라고 할 수 있으며 권간들이 나라를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게 했던 재앙도 많이 있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마치 노인이 원기가 쇠진하여 다시 일어날 수 없는 데 이른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성상께서 나오셨으니 이는 장차 다스려지느냐 어지러워지느냐 하는 계기인 것입니다. 만약 이때에 분연히 진작한다면 동방이 억만년토록 끝이 없이 번창할 좋은 운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장차 쓰러지고 쇠진하여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신은 생각하건대 지난날 권간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날에도 오히려 지탱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으로는 전하깨서 실덕(失德)하심이 없고 밖으로는 유신(儒臣)들이 포열해 있으니 예로부터 오늘과 같은 때는 드물었습니다. 그런데도 천변이 이 지경으로 일어나고 있으니 신은 전하의 정치에 미진한 바가 있는가 두렵습니다.
대체로 임금으로서 큰 왕업을 일으킬 사람은 반드시 그 뜻을 원대하게 세우고 세속 논의에 구애없이 삼대(三代)050) 의 치업을 기약하되 반드시 실학(實學)에 힘써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체득하여 그 자신의 한 몸으로써 한 세상의 표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를 정사에 시행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도선(徒善)일 뿐입니다. 이미 이와 같이 하고 또 반드시 현능한 인재를 두루 찾아 백관(百官)에 배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각자 그 직책을 다하게 하고 또 그들의 말을 듣고 잘 따라 준 다음에야 전적으로 맡아 하게 되어 공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고 임금은 반드시 한 시대의 폐단을 안 다음에야 한 시대의 치평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니 이는 마치 의원이 반드시 병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만 증세에 맞는 약을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대소의 신료들이 다 그들의 일신만 돌아보고 유유 범범(悠悠泛泛) 세월만 보낼 뿐 한 사람도 봉공(奉公)에 뜻을 두는 자가 없으니 상께서 비록 홀로 걱정하고 부지런히 하신다 해도 서민은 그 은택을 입지 못하며, 세도(世道)가 낮아지기를 흐르는 물처럼 갈수록 내려가서, 사류가 혹 주상을 믿고 자기 할 말을 다하는 자가 있기도 하나 그 사이에는 또 공평한 마음이 없어 서로를 의심하고 저지하는 자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폐단은 참으로 낱낱이 들어 열거하기 어려우나 대체로 그 병의 근원은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에게 위임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반드시 한 시대의 인재를 잘 헤아려서 그 중에서 유능한 자를 골라 위임하고 그로 하여금 정성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정치를 잘하지 못하면서 한갓 재변이 없기만을 바란다면 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재변을 만나면 반드시 정신을 가다듬어 상례를 따라야 한다는 관념에 구애받지 마시고 공을 세워 조종(祖宗)을 빛내고 업을 이루어 후손에게 전할 것을 생각하신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폐정(弊政)을 개혁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경연관이 아뢴 것들은 애초에 심사 숙고하여 건백한 것이 아니고 우연히 진달한 것이어서 비록 간혹 채택하여 시행하더라도 끝내 실효가 없기 때문에 상께서도 더욱 함께 큰 일을 할 만한 자가 없음을 아셨을 것이니 이는 참으로 그렇습니다. 신에게 망령된 계책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대신과 상의하여 한 경제사(經濟司)를 설치하여 대신으로 하여금 통솔하게 하고 사류 가운데 시무(時務)를 잘 알고 국사에 마음을 둔 자를 택하여 선임케 하고 모든 건백한 사항은 다 그 관사에 내려서 상의 확정하여 폐정을 개혁하게 한다면 천심을 거의 돌이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설사 공자와 맹자가 곁에 있다 하더라도 재능을 발휘할 데가 없다면 무슨 보익됨이 있겠습니까. 경제사를 설치한다는 것은 우선 듣기에는 생소한 것 같습니다마는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국사를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어 점차로 비하(卑下)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제사를 설치하면 나중에 반드시 큰일이 생길 것이다. 우리 나라는 모든 공사(公事)를 육부(六部)가 나누어 관장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대사간 구봉령이 나아가 유생들이 글을 읽지 않고 부질없는 말만을 숭상하는 폐단을 아뢰니, 이이가 아뢰기를,
"유생들의 폐단은 마땅히 유생을 책망할 것이지 위에 진달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성상께서 이미 이 폐단을 아셨으니 교화시킬 방법을 생각하시고 사표(師表)가 될 만한 사람을 택하여 위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교화를 밝히려고 한다면 반드시 선현을 존중하여 후학이 존경하고 본받을 데가 있게 해야 하는데도 상께서는 항상 중난(重難)하다고만 하십니다. 최근은 현인들을 비록 다 사전(祀典)에 넣을 수는 없더라도 조광조(趙光祖)는 도학을 솔선해 밝혔고 이황(李滉)은 이굴(理窟)051) 을 깊이 연구하였으니 이 두 사람만은 진실로 종사(從祀)케 하여 뭇 선비의 선을 추향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은 할 수 없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다 아뢰고 나니, 상이 박순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여러 신하가 아뢴 말 중에서 어떤 일이 시행할 만한가?"
하니, 순이 차례로 분석하여 아뢰기를,
"경제사 설치 문제는 사유를 갖추어 아뢰지 않았기 때문에 상께서 시행하기 어렵다고 여기시는데 마땅히 이이를 다시 불러 물으셔야 합니다."
하였다. 이이가 나아가 아뢰기를,
"소신이 창졸간에 그에 대한 말을 자세하게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이 뜻을 다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갖가지로 폐단이 쌓여 군왕의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으니 반드시 시무(時務)에 마음을 둔 사람을 얻어 한 곳에 모여 서로 대책을 강구해서 시폐를 개혁하게 해야 합니다. 폐단만 다 개혁되면 또한 도로 관서를 혁파할 수도 있으며 관서를 설치하여 오래도록 보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생각에는 오활하다고 본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맡긴단 말인가? 지난날 정공 도감(正供都監)도 폐단이 있었는데 이것도 폐단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였다. 박순이 아뢰기를,
"각사의 관원을 각기 그 관사가 공궤하게 하면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이이가 아뢰기를,
"정명도(程明道)052) 가 도현당(導賢堂)을 설치하자고 청하였으니, 옛사람도 이와 같이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였다. 말이 붕당의 일에 미치니 상이 이르기를,
"요즘 조정이 불화하다고 말하는 자가 많이 있다. 조정이 불화하면 어찌 천재를 부르지 않겠는가."
하고, 박순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이는 대신의 책임이다. 신하가 감히 붕당을 만든다면 비록 멀리 귀양을 보낸다 하더라도 괜찮다. 누가 감히 붕당을 만든단 말인가?"
하니, 이이가 아뢰기를,
"선비는 동류끼리 상종함을 면치 못하는 것인데 가끔 식견의 차이로 의심하고 저지함을 면치 못하는 자가 있기는 합니다만 어찌 사적으로 서로 붕당을 만든 일이야 있겠습니까. 급작스레 벌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78면
- 【분류】재정-국용(國用) / 사법-탄핵(彈劾) / 과학-천기(天氣)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050]
○丙午/上以天災, 延訪公卿。 入侍者, 領相朴淳、兵曹判書柳㙉、刑曹判書姜暹、漢城府判尹任說、左參贊沈守慶、右參贊李文馨、工曹判書黃琳、禮曹判書李陽元、吏曹判書鄭芝衍、戶曹判書李珥、都承旨李友直、大司憲具鳳齡、副提學柳成龍。 群臣坐定, 上顧左右曰: "天災非常, 將何以應之? 左右以次各陳所懷。" 珥之言曰: "天道玄遠, 誠難窺測。 第以古史觀之, 治亂之形已定, 則別無災異。 災異必作於將治將亂之際, 雖賢君, 亦不免災。 若因災惕念, 恐懼修省, 則災反爲祥。 蓋天心仁愛, 欲使人君, 儆省興治也。 若應之不以其實, 則國因而亂且亡焉, 史冊班班可見矣。 自古立國旣久, 則法制漸弊, 人心解弛, 必有賢主作焉, 修擧廢隳, 改紀其政, 然後國勢復振, 其命維新矣。 不然, 則因循頹墮, 以至於不可匡救, 其狀不難見矣。 我朝立國幾二百年, 此是中衰之日, 而多有權奸濁亂之禍。 至於今日, 如老人元氣垂盡, 不可復振, 而幸有聖上出焉, 此是將治將亂之幾也。 若於此時奮興振作, 則爲東方億萬年無疆之休, 不然, 則將至於潰敗澌盡, 而莫之救矣。 臣念, 往時權奸用事之日, 尙能支持, 今則內而殿下無失德, 外而儒臣布列, 自古罕有如今日者也, 而天變之作, 乃至於此, 臣恐殿下於爲治, 有所未盡也。 夫人君將大有爲者, 必立心遠大, 不拘於俗論, 以三代爲期, 而必務實學, 躬行心得, 以一身爲一世表準可也。 然若不施諸政事, 則是亦徒善也。 旣能如是, 而又必旁求賢才, 列于庶位, 使之各盡其職, 而聽從其言, 然後任專而功就矣。 且人君必知一世之弊, 然後可興一代之治, 如醫者必知病根之所在, 然後可用對證之藥矣。 今者大小臣僚, 皆自私其身, 悠悠泛泛, 無一留念於奉公者。 自上雖獨憂勤, 小民不被其澤, 世道之卑, 如水益下, 士類或有仰恃聖明, 能盡其言者, 而其間亦有無平坦之心, 自相疑阻者矣。 今日之弊, 誠難枚擧, 大槪病根在於不能委任賢才之故也。 必也, 商量一時人才, 擇賢委任, 使之盡誠可也。 今不能做實治, 而徒望無災, 得乎? 殿下遇災, 必須振拔志慮, 不拘循常之念, 思所以功光祖宗, 業垂後裔, 則幸甚矣。 至於革弊一事, 凡經筵官所啓, 初非熟計深思, 而建白也。 偶然陳達, 雖或採施, 終無實效, 故自上益知無人可與有爲者, 此固然矣。 臣有妄計, 請令大臣商議, 設一經濟司, 使大臣領之, 而擇士類曉達時務, 留心國事者, 與其選, 凡有建白之言, 皆下其司, 商議定奪, 以革弊政, 則天心庶可回矣。 今設使孔孟在於左右, 若無所施設, 則何益之有? 經濟司之設, 於聞見似若生踈, 但不如是, 則國事無可爲, 而漸至於卑下矣。" 上曰: "經濟司之設, 後必生大事矣。 我國凡公事, 六部分掌, 意有在矣。" 大司憲具鳳齡進啓: "儒生不讀書, 崇尙空言之弊。" 珥曰: "儒生之弊, 當責於儒生, 非可上達之事也。 但自上旣知此弊, 須思敎化之術, 擇其可爲師表之人, 而委任之可也。 今欲明敎化, 則必須尊奬先賢, 使後學有所矜式, 而自上每以爲重難焉。 近日賢者, 雖不可悉入祀典, 如趙光祖倡明道學, 李滉沈潛理窟, 此二人誠可從祀, 以起多士向善之心。" 上曰: "此事不可爲也。" 群臣啓訖, 上顧朴淳曰: "群臣啓辭, 何事可行耶?" 淳以次辨白曰: "經濟司事, 事具由以啓, 故自上以爲難行, 當更招李珥而問之。" 珥進啓曰: "小臣倉卒, 不能詳盡其說, 故辭不達意。 今者積弊多端, 王澤不流, 必得留心時務者, 會于一處, 相與講究, 以革時弊可也。 弊苟盡革, 亦可還罷, 非欲設局久存也。" 上曰: "於予意則以爲迂闊。 且未知, 委之何等人耶? 前日正供都監, 亦有弊。 此亦安保其無弊耶?" 淳曰: "各司之官, 各使其司供饋, 則無弊矣。" 珥曰: "程明道請設導賢堂, 古人亦有如此之議矣。" 言及朋比事, 上曰: "近日多有言朝廷不和者, 朝廷不和, 則豈不召天災乎?" 顧朴淳曰: "此則大臣之責也。 人臣敢爲朋比, 則雖流放竄殛可也。 誰某敢爲朋結耶?" 珥曰: "士子不免以類相從, 而或以識見之異, 未免疑阻者則有之。 奚至於私相朋比乎? 不可遽加威怒也。"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78면
- 【분류】재정-국용(國用) / 사법-탄핵(彈劾) / 과학-천기(天氣)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