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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30권, 명종 19년 8월 30일 기해 1번째기사 1564년 명 가정(嘉靖) 43년

심의겸·권덕여·이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의겸(沈義謙)을 의정부 검상으로, 권덕여(權德輿)를 사간원 헌납으로, 이거(李蘧)를 홍문관 교리로, 이이(李珥)를 호조 좌랑(戶曹佐郞)으로 삼았다. 【이이는 사람됨이 총명 민첩하였고 박학 강기(博學强記)하였으며 글도 잘 지어 명성이 일찍부터 드러났었다. 한 해에 연이어 사마시(司馬試)와 문과(文科)의 두 시험에 장원으로 뽑히자 세상 사람들이 영광스럽게 생각하였다. 다만 소년 시절에 아버지의 첩(妾)에게 시달림을 당하여 집에서 나가 산사(山寺)를 전전하며 붙여 살다가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혹자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었다.’고 하였다. 그가 읊은 시에 ‘전신은 바로 김시습이었는데[前身定是金時習] 금세는 가도(賈島)가 되었구나[今世仍爲賈浪仙]’라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0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70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己亥/以沈義謙爲議政府檢詳, 權德轝爲司諫院獻納, 李蘧爲弘文館校理, 李珥爲戶曹佐郞。 【爲人聰敏博學强記, 善綴文辭, 早著聲名。 一年拔擢司馬、文科兩壯元, 時人榮之。 但少時, 爲父妾所困而出歸, 流寓山寺, 久而後返。 或云: "削髮爲僧。" 其自詠云: "前身定是金時習, 今世仍爲賈浪仙。】


    • 【태백산사고본】 18책 30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70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