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황제를 시해하려다 실패한 사건에 대하여 의논하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지금 천추사(千秋使)의 서장을 보니, 중원(中原)의 기별 중에 경악스런 일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별로 조처할 일은 없으나 이처럼 큰일을 집에서 의논할 수는 없으니 정부·예조 당상의 전원을 부르라. 내 마땅히 인견하리라."
하였다. 윤은보 등이 부름을 받고 합문(閤門) 밖에 이르니, 천추사의 서장을 내리며 이르기를,
"경들은 자세히 보고 들어와서 의논하라."
하였다. 상이 사정전에 나아가 은보 등을 인견하고 이르기를,
"중원의 일은 매우 경악스럽다. 별로 조처할 일은 없지만, 경들은 이에 대하여서 의논하라."
하니, 은보가 아뢰기를,
"근래 중원에 북쪽 오랑캐가 변방을 침범하는 걱정이 있으므로, 뜻하지 않는 변이 있을까 염려하였는데, 화가 도리어 궁내에서 일어났으니, 매우 놀랄 일입니다. 누른 끈으로 목을 졸라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소생하였으니, 필시 중상을 입었을 것인데 황제의 무사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하고, 홍언필은 아뢰기를,
"중국 사람은 거짓 전하는 말이 많지만, 이는 큰일이니, 필시 거짓이 아닐 것입니다. 단, 시역(弑逆)의 모사(謀事)를 어찌 궁녀 단독으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궁중에는 또한 다른 사람이 없었으니, 이 사건은 질투로 인해 일어난 것인지 원한으로 인해 꾸며진 것인지, 모두 멀리서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천하 사람이 이를 듣는다면 누군들 놀라지 않겠습니까. 단 염려되는 것은, 황제가 이 일로 인하여 좌우를 믿지 않고 ‘궁녀는 지극히 가까운 사이인데도 오히려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으니, 좌우에 몰래 숨어 있는 변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면서 혹형(酷刑)을 써서 주륙(誅戮)을 많이 행한다면 후일에는 반드시 이보다 더 큰 화(禍)가 발생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도 생각하니, 궁녀가 어찌 스스로 이런 모사를 꾸밀 수 있었겠는가. 필시 황제가 일에 정도를 잃음이 많았기 때문에 원한이 깊이 쌓여서 안팎이 상응하여 그런 짓을 했을 것이다."
하였다. 윤인경(尹仁鏡)이 아뢰기를,
"신 역시 궁녀 단독으로 모사한 것이 아니고 필시 주모자가 있었을 것이라 여깁니다. 앞으로 그 사건의 내막을 끝까지 추궁하려고 큰 옥사를 일으켜서 큰 죄를 처단하고 논공 행상(論功行賞)한다면 반드시 천하에 포고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유관은 아뢰기를,
"예로부터 임금이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을 너무 사랑하여 그 총영(寵榮)이 극에 달하게 되면 그들은 꺼림없이 방자히 굴어 외람된 짓을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혹 그것을 살펴 알고 그들을 박정하게 대한다면, 원한을 쌓고 흉모를 꾸며서 찬시(簒弑)할 자가 있을 것입니다. 듣자니 황제가 아랫사람을 강경하게 대하여 죄를 받은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혹 이로 인하여 화를 초래한 듯도 싶습니다."
하고, 권벌은 아뢰기를,
"신이 기해년 북경에 갔을 때 들으니, 황제가 전연 시조(視朝)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러할 것인데 이와 같고서야 일마다 어찌 옳은 것이 있겠습니까. 임금이 기뻐하고 성내는 것이 적중하지 못하여 화를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인의 도는 몸을 닦은 다음 집을 다스리고 집을 다스린 다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인데, 황제는 몸 닦고 집 다스리는 일은 힘쓰지 않고 줄곧 부녀자의 손에 놀아나서 기강이 완전히 무너졌으니 어떻게 무사함을 확보할 수 있겠습니까. 내변(內變)이 이와같은 데다 외우(外憂) 또한 큽니다. 이적(夷狄)이 침범하여 중국이 불안해진다면 작은 나라 또한 어떻게 홀로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나라 일처럼 보아넘겨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달자(㺚子)가 지금은 소식이 없으나 변방에서 작폐(作弊)하므로 군졸들이 많이 살략(弑掠)당했다고 한다. 다시 침범할 우려가 없지 않으니, 우리 나라의 변방 수비도 미리 조처해야 한다."
하였는데, 언필이 아뢰었다.
"신이 역대의 임금들을 살펴보건대, 진 후주(陳後主)처럼 혼미한 임금은 시해를 당한 것이 마땅하지만 황제의 경우는 기질이 강인하여 결단을 잘하므로 조정이 두려워 하는데, 궁녀의 화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은미한 변이 아니므로 큰 죄를 처단한 뒤에 반드시 조서(詔書)를 반포할 것입니다. 통사(通事)가 나온 뒤, 오는 12월 중에 다른 일로 인하여 사람을 요동에 보내서 옥사(獄事)와 다른 일을 탐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들이 9월 22일 북경에 이르러 동서각두(東西角頭)에 궁녀(宮女) 16인이 잘린 시체로 효수(梟首)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물어보니, 궁비(宮婢) 양금영(楊金英) 등 16인이 공모하여 21일 밤 황제가 취해 누워 있는 기회를 타서 누른 노끈을 가지고 힘을 합쳐서 황제의 목을 졸라 일이 매우 위급했습니다. 이때 그 모역을 눈치챈 궁인(宮人) 장부용(張芙蓉)이 방 황후(方皇后)에게 가서 고하자 황후가 달려가 구했습니다. 숨이 거의 끊어졌다가 오랜 뒤에 다시 소생하였으며, 육부 상서(六部尙書)를 명소(命召)해서 회의하여 그들의 죄를 정하였습니다. 그 일의 발단은, 대개 황제가 비록 총애하는 궁인이라 하더라도 조그마한 허물만 있으면 조금도 용서하지 않고 곧 매를 때렸으므로 이로 인해 죽은 자가 2백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 원한이 쌓이고 괴로움이 누적되어 흉모를 발하게 된 것입니다. 역비(逆婢) 등의 일족(一族) 1백여 명은 일찍이 잡혀 갇혀서 아직도 심문이 안 끝나고 있다 하는데, 궁위(宮闈)의 일은 워낙 비밀스러워서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황제는 죄인이 복주(伏誅)되자 종묘(宗廟)에 고제(告祭)하고 중외(中外)에 칙서를 내렸습니다. 신들이 예부에 묻기를 ‘조정과 13포정사(十三布政司)가 진하(進賀)하는 의식을 거행하지 않는가?’ 하니 전례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은 조정이 다사(多事)하여 편찬을 마칠 기약이 없다고 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62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36면
- 【분류】외교-명(明)
○癸亥/傳于政院曰: "今見千秋使書狀, 中原之奇, 至有駭愕。 我國雖別無可爲之事, 然是大事, 不可在家議之。 政府、禮曹堂上, 全數命召。 予當引見。" 領議政尹殷輔等, 承召詣閤門外, 以千秋使書狀, 【"臣等九月二十二日, 到北京, 見東西角頭將, 宮女十六人, 剉屍梟首。 問之, 則宮婢揚金英等十六人共謀, 二十一日夜, 乘皇帝醉臥, 以黃絨繩, 同力縊項, 事甚危急, 宮人張芙蓉, 覘知其謀, 往告方皇后, 皇后奔救, 則氣息垂絶, 良久復蘇。 命召六部尙書, 會議定罪。 蓋以皇帝雖寵宮人, 若有微過, 少不容恕, 輒加捶楚, 因此殞命者, 多至二百餘人, 蓄怨積苦, 發此凶謀。 逆婢等一族百餘人, 曾以拿囚, 時未畢推云。 宮闈事, 密不得詳知, 皇帝因罪逆伏誅, 祭告宗廟, 降勑中外。 臣等問於禮部曰: ‘朝廷與十三布政司, 無乃有進賀事乎?’ 曰: ‘無例’ 云。 《大明會典》, 則朝廷多事, 畢撰無期云。"】 下之曰: "卿等細觀入議。" 上御思政殿, 引見殷輔等曰: "中原之事, 至爲驚愕。 雖別無可爲之事, 然卿等議之。" 殷輔曰: "近來中原, 有北虜犯邊之患, 慮有不虞之變, 而禍反起於蕭墻之內, 至爲可駭。 以黃繩縊項, 絶而復蘇, 必致重傷。 帝之康寧與否, 未可知也。" 洪彦弼曰: "中國之人, 每多虛傳, 此則大事, 必不虛矣。 但弑逆之謀, 豈宮女所能獨辦, 而宮中亦無他人? 此因妬寵而起, 嫉怨而搆, 皆難遙度, 天下之人聞之, 孰不驚動? 但恐皇帝因此, 不信左右, 以謂宮女至近, 尙有如此之事, 不無潛藏陰蓄之變, 必用酷刑, 多行誅戮, 則後日之禍, 有大於此矣。" 上曰: "予亦計之, 宮女豈能自設斯謀哉? 必皇帝事多失道, 故怨深而表裏相應爲之也。" 尹仁鏡曰: "臣亦以爲, 非宮女獨謀, 必有主者。 將欲窮詰, 必起大獄。 定斷大罪, 論功行賞, 則必有布告天下之事也。" 柳灌曰: "自古人君, 昵愛宦官宮妾, 寵榮旣極, 恣行無忌, 多所猥濫, 人君或察而知之, 待之少恩, 則蓄怨搆謀, 以致簒弑者有之。 聞皇帝待下以剛, 人多被罪, 恐或因此致禍也。" 權橃曰: "臣己亥年赴京時聞之, 皇帝全不視朝, 至今猶然。 如是而事豈有可者乎? 人主喜怒不中, 以致禍患者有之。 大抵聖人之道, 修身而齊家, 齊家而治國。 皇帝不務修齊, 而長在婦人女子之手, 紀綱掃如, 安能保其無事乎? 內變如是, 而外憂亦大, 夷狄憑陵。 中國不安, 則小國亦豈得獨安哉? 不可視爲異國之事也。" 上曰: "㺚子今則雖無聲息, 但作耗邊塞, 軍卒多被殺掠云。 不無更犯之虞, 我國邊備, 亦宜預措。" 彦弼曰: "臣觀歷代之主, 如陳後主昏迷, 則見弑宜矣, 皇帝則氣剛能斷, 朝廷畏懼, 宮女之禍, 不知何由。 此非隱微之變, 定斷大罪之後, 必有頒詔之事也。 通事出來後, 來十二月間, 因他事, 送人遼東, 探問獄事及他事何如?"
- 【태백산사고본】 50책 99권 62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636면
- 【분류】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