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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88권, 중종 33년 10월 2일 임인 3번째기사 1538년 명 가정(嘉靖) 17년

정광필 등에게 전위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글로써 내렸으나 거두어 줄 것을 청하다

글을 정광필 등에게 내리기를,

"경들은 내가 쇠약하지 않은데 성급하게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나, 경들이 차마하지 못하는 심정을 내가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국조보감》에 ‘태종(太宗)이 내신에게 급히[趣] 불러오게 하여 상이 곧[卽] 대보를 전했다.’고 했는데 이른바 내신 그 누가 세자를 불러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 승지를 시켜 왕복하게 했겠는가. 아마도 중관(中官)일 것이다. 취(趣)와 즉(卽) 이 두 근자로 보건대 이러한 일을 은밀히 한다면 인심이 흉흉할 것이므로 급히 불러 한 것이니 어찌 계획한 생각이 없었겠는가.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경들이 굳이 고집할지라도 이미 조종조 고사에 따라 한번 대보를 전하면 이것은 내선(內禪)한 뒤가 되는 것이니, 신하가 어찌 다른 생각을 둘 수 있겠는가. 내선한 뒤에 다른 생각을 두었다는 것은 내 일찍이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중관을 시켜 세자를 급히 불러들여 어보를 전하였으나 세자가 울며 사양하고 받지 않으며, 경들도 굳이 고집하여 이에 이르게 되니 내 마음이 도리어 심히 미안하고 심신(心神)이 산란하여 간밤에는 한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러날 이렇게 한다면 어찌 병이 안 날 리가 있겠는가. 나는 매우 걱정되고 민망스럽다. 내가 전위하고자 함은 간절한 성심에서 나온 것이고 조금도 다른 뜻이 없다. 임금의 한몸에는 온갖 책임이 모여 있으므로 큰 실수가 없을지라도 무마하여 거느리는 데 방도(方道)가 어그러진다면 장차 위험과 화란이 이르게 될 것이니 관계가 가볍지 않은 것이다. 내가 즉위한 지가 두어 달만 지나면 34년이 되니 세종조에 비해 오히려 많은 셈이다. 그러나 큰 탈없이 오늘에 이르렀으니 어찌 우연한 것인가. 내가 덥덥하게 세월을 보내다가 혹 일이나 병이 생겨 전위하게 된다면 이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모름지기 오늘과 같이 조정이 화평하고 나라에 근심이 없을 때 세자에게 전위 하고 물러가 남은 여생을 누리게 된다면 이는 우리 나라의 큰 경사가 되는 것이다.

나의 이 생각이 하루아침 하루저녁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만 감히 가볍게 의논하지 못한 것은 간신이 【김안로.】 권세부릴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에 내가 어찌 나라의 안위(安危)를 망각하고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조야가 화평하고 나랏일을 믿을 만하니 바로 이때가 적당한 기회이다. 내가 물러가 여생을 누릴지라도 신하들을 버리고 다른 곳에 가는 것이 아니다. 온 나라의 백성들이 나의 처사가 지성에서 나온 것임을 환히 안다면 어찌 불안하게 여기겠는가. 내가 들으니 세종 말년에 세자로 하여금 공사(公事)를 출납하게 하고 심지어는 집현전(集賢殿)에 나아가 경사(經史)를 토론했다고 하니, 이는 다만 전위하지 아니했을 뿐, 세자의 어짊이 나랏일에 참여하여 의논할 만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서였다. 그러나 전위하지 않은 것은 태종이 당신 【세종.】 에게 전위하였는데 당신 또한 세자에게 미리 전위하기 곤란하였기 때문에 전위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성종조(成宗朝)께서 춘추가 한창이시고 세자가 연소하였으니 어찌 다른 계책이 있었겠는가. 잘은 모르겠으나, 이전 조종조에 상왕(上王)으로 계신 분이 한두 분이 아니었으니 어찌 어진 세자에게 전위하는 것을 잘못으로 여겼겠는가.

이같은 일이 역대와 우리 나라에 없었던 것을 내가 망령되이 생각하여 경솔히 하려는 것이라면 경들이 굳이 고집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곧 역대 및 조종조의 고사이니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 그리고 나의 나이가 노쇠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태종이 전위할 때도 와병 중은 커녕 오히려 강녕한 편이었다. 그러므로 그 후에도 교외(郊外)에 나아가 전처럼 배릉(拜陵)하였으니 어찌 노쇠한 뒤에 물러가야 하는가. 임금이 오래도록 그 위(位)에 있게 되면 생각이 착란되어 일을 그르치게 되어 나중에는 후회하게 될 것이니, 이는 내가 깊이 생각했던 일이다. 나이 젊은 임금이 하는 일은 늙은이와는 매우 다르니 이는 종묘 사직의 복인 것이다.

세자가 명년이면 곧 25세이니 무슨 일인들 잘 살피지 못하겠는가. 《국조보감》에는 세종의 나이 54세로 칭했으니 60세를 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나이 겨우 20여세에 즉위하시어 재위 33년에 수(壽)는 54세였으니 어찌 많다고 하겠는가. 나는 즉위한 지 33년에 이르렀으니 금년까지 이르면 세종보다 많다. 예부터 내선(內禪)에 조신(朝臣)이 참여하여 일을 맡아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만일 여러 신하가 명을 따른 뒤에 전위할 수 있다면 어느 때나 이루어지겠는가. 적당한 기회에 전위 할 수 없다면 나의 마음은 어느 때에 편안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노쇄하기 전에 물러앉아 1년이나마 안심할 수 있다면 경들의 충성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내 일신의 안일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나라가 길이 태평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의도인 것이다. 이 일이 오늘로 결정되어야만 어수선한 생각이 안정되겠다. 예부터 조종에서 전위할 때 아랫사람들이 명을 따르기를 기다려서 결정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고 위에서 스스로 결정하여 하였던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하기를 생각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조정과 경들을 보니 정리상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여 상하가 서로 버티게 되었다. 대사(大事)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서울 안팎에 어떠한 소문이 나돌겠는가. 나는 매우 걱정스럽다. 모름지기 오늘 결정해서 인심을 진정시키는 것이 옳다."

하니, 광필 등이 아뢰었다.

"이러한 일은 반복하여 생각하여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고금의 임금들이 누군들 이런 생각이 없었겠습니까마는 중대한 일을 감히 경솔하고 쉽사리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한(漢)나라와 당(唐)나라가 성대할 때에나 송(宋)나라 때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태종조에 와서 인심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잡사(雜事)가 없기 때문에 전위한 것이요, 세종조에는 문종(文宗)이 있었어도 오히려 전위하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하지 않으려 했겠습니까마는 사세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상께서는 병환도 없고 아무런 사유가 없는데 시급히 전위하려 하시니 일이 매우 구차하고, 임금이 대를 이어가는 일을 너무 쉽사리 한다면 어찌 후세의 의논이 없겠습니까. 평상적으로 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그리고 세자가 변고를 알고 난 뒤에 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지금 이 일로 인심이 크게 경악하고 있으니, 전국에 파급되기 전에 신들의 말을 따르소서."


  • 【태백산사고본】 45책 88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21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以書記下于鄭光弼等曰: "卿等必以予爲未至衰耗, 而遽爲如此之事。 卿等不忍之情, 予豈不計乎? 《國朝寶鑑》曰: ‘太宗令內臣趣召, 上卽以大寶授之。’ 所謂內臣等, 未知某人召世子矣, 豈得使承旨往復哉? 疑必中官也。 以趣卽二字觀之, 如此之事, 若從容爲之, 則人心洶洶, 故急召爲之。 此豈無計慮乎? 是故, 予意卿等雖牢執, 已依祖宗朝古事, 一傳大寶, 則此是內禪之後也。 下豈有他意乎? 內禪之後, 更有他意, 古所未聞也。 是故, 令中官, 趣召世子傳寶, 而世子哭泣, 累辭不受, 卿等牢執至此, 予心反甚未安, 心神錯亂, 去夜寢不能寐。 若累日至此, 則豈無生病之理乎? 予甚憂憫。 予欲傳位, 出於誠懇, 少無一毫他意。 人君一身, 百責所萃, 雖無大失, 若撫御乖方, 則將至危亂, 所關非輕。 予之卽位, 若過數朔, 則三十四年也。 比於世宗朝則猶爲加矣。 粗安至此, 豈偶然哉? 予若悠悠度歲, 或因事之端, 或因病之際, 欲傳位則此非予誠願也。 須朝廷和平, 四方無虞, 如此之時, 傳位於世子, 退享餘年, 則此東方之大慶也。 予之念此, 非一朝一夕, 而不敢輕議者, 奸臣 【金安老。】 用事之時, 予豈忘國事安危, 而何有如此之事乎? 以今觀之, 則朝野和平, 國事可信, 而機會正當也。 予雖退享餘年, 此非棄群臣歸他處也。 一國臣民, 洞知予出於至誠, 則群情豈不安乎? 予嘗聞之, 世宗末年, 令世子出納公事, 而至歸集賢殿, 討論經史, 則此特未傳位而已。 知世子之賢, 可以預謀國事, 而必不傳位者, 慮或太宗傳位於己, 【世宗。】 而又傳位於世子, 勢所難矣。 以此其不傳位, 明矣。 成宗朝, 春秋尙富, 世子年少, 豈有他計哉? 前此祖宗朝, 封上王非一二, 則未知傳位於賢世子爲非也。 此事如其歷代及我國所無, 而予以妄量率意欲爲, 則卿等牢執, 猶可也, 此乃歷代與祖宗朝故事, 豈有他意乎? 予年非不至衰老, 而太宗傳位之時, 未有臥病而尙康寧, 故其後郊外拜陵, 尙如舊時。 何必待衰老然後退處乎? 人君若久在其位, 則計慮舛錯, 事將爲誤, 而終至於有悔, 此予深遠之意也。 年少人君, 則所爲之事頓殊, 此宗社之福也。 世子明年, 則乃二十五歲, 何事不察哉? 《國朝寶鑑》, 稱世宗壽五十四歲, 則不過六十歲明矣。 年纔二十餘歲卽位, 而在位三十三年, 壽五十四歲, 則此豈爲多哉? 予卽位已三十三年, 而到今年則優於此也。 自古內禪, 未知朝臣執事參預之理也。 若必群臣從命之後, 乃可傳位, 則何可望也? 適當機會, 若不得爲之, 則予心何時可安也? 予未衰老之前, 如得退坐一年而安心, 則卿等之忠誠, 何可勝言哉? 此非予爲一身安逸, 爲國家永享大平之意也。 此事今日決定, 然後紛紜之意, 亦可自定也。 自古祖宗傳位之時, 未聞待下人從命, 而自上決定爲之, 予非不計此也。 然予於視朝廷及卿等, 情有所不忍, 故未能自斷, 而以此上下相持, 大事至此, 京外所聞, 以爲何如? 予甚憂焉。 須今日決定, 使人心大定可也。" 光弼等啓曰: "如此之事, 反覆計之, 決不可爲也。 古今人君, 孰無此心, 以其重大, 不敢輕易爲之, 故盛時、朝, 亦未有之矣。 在太宗朝, 人心小安, 似爲甫定, 而無雜事, 故傳位矣。 世宗朝, 有文宗, 而猶不傳位, 此豈不欲爲之? 勢有所不可也。 今則自上無疾病, 又無事端, 而遽欲傳位, 事甚苟且。 人君繼體, 若容易, 則豈無後議乎? 平常爲之, 則似可矣, 待世子益知變故, 然後似可爲也。 今以此事, 人心至爲駭愕。 其未傳播四方之前, 請從臣等之言。"


  • 【태백산사고본】 45책 88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21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