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에게 줄 그림과 글씨를 의논하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천사가 글씨 족자나 그림 족자를 요구한다면, 그림 족자는 해사(該司)를 시켜 그리게 하여 족자를 꾸며서 주면 될 것이다. 글씨 족자는, 내탕(內帑)297) 에 좋은 글씨가 있으나 쓴 사람의 이름을 모르겠는데, 천사가 그 글씨를 좋아하여 쓴 사람의 이름을 묻는다면 모른다고 대답해서는 안 된다. 조맹부(趙孟頫)의 글씨 같은 것은 중국 사람들도 그것을 보면 좋아하니, 그 글씨 족자를 다시 꾸며서 주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회계(回啓)하기를,
"조맹부는 고금의 글씨 잘 쓰는 사람이니 이 사람의 진필(眞筆)을 꾸며서 주는 것이 매우 좋겠으나, 전의 《등록》을 보면 동월(董越)이 떠난 뒤에 성종(成宗)께서 글씨를 잘 쓰신다는 말을 듣고 원접사에게 ‘안평 대군(安平大君)과 비교하면 누가 더 잘 쓰느냐?’고 물으므로 ‘이용(李瑢) 【안평 대군의 이름이다.】 보다 훨씬 낫다.’고 대답하니, 동월이 후회하면서 ‘미처 도성(都城)에 있을 때에 친히 그 수적(手跡)을 받아 오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합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나라의 글씨 족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조맹부의 수적은 중국에 두루 찼으므로 해외에서 구하지 않더라도 눈에 이미 익숙할 것입니다. 이번 그림 족자는 이미 우리 나라 사람을 시켜 그리게 하셨거니와, 글씨 족자도 우리 나라의 글씨를 쓰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이용(李瑢)의 글씨로 말하면 이름이 중국을 진동하거니와, 최흥효(崔興孝)·박경(朴耕) 등의 서법(書法)도 교묘하니, 중국 사람이라도 보고서는 좋아할 것입니다. 천사가 평소에 보지 못하던 글씨라면 더욱 좋아할 것입니다. 신들의 뜻은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나도 동월이 왔을 때의 《등록》을 보고 천사가 성종의 글씨를 좋아하였다는 것을 아나, 조종(祖宗)의 수적을 중국 사람에게 자랑하여서는 안 되겠으므로 성종의 글씨를 줄 수는 없다. 또 조맹부의 글씨는 중국에도 많아서 줄 수 없겠으니, 우리 나라의 이용과 최흥효·박경의 글씨를 주어야 하겠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글씨가 내탕에 있지만 나는 어느 글씨가 누군의 글씨인지 모르니, 내탕의 글씨 족자를 정원에 내보내거든 승지들이 어느 사람의 글씨인지를 가려서 아뢰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42책 83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0면
- 【분류】외교-명(明) / 예술-미술(美術)
- [註 297]내탕(內帑) : 궁중의 재화(財貨)를 간수하는 창고. 내장(內藏)·내탕고(內帑庫)·내고(內庫)라고도 한다. 또 임금이 사유(私有)한 재화라는 뜻으로 쓴다.
○乙巳/傳于政院曰: "天使若求書、畫簇, 畫簇, 可令該司畫而粧給矣, 書簇則於內帑, 亦有善筆, 而未知其所寫者之名也。 若天使好其書, 而問寫者之名, 則不可以不知答之。 如趙孟頫之筆, 中國之人, 亦喜見之。 以此書改粧而贈之何如?" 回啓曰: "趙孟頫, 古今能書者。 此人眞筆, 粧而給之固善。 見前謄錄, (蕫越)〔董越〕 回程後, 乃聞成廟善書, (聞)〔問〕 遠接使曰: ‘與安平大君孰善?’ 答曰: ‘優於鎔 【安平之名。】 遠矣。’ 越悔曰: ‘不及在都城時, 親奉手跡而來矣。’ 以此見之, 其喜我國之書簇, 亦可占也。 孟頫手跡, 遍滿於中國, 雖不求諸海外, 目已熟矣。 今者畫簇, 已令國人畫之, 書簇, 亦用我國之書似當。 如鎔之書, 名動中國, 若崔興孝、朴耕等, 書法亦妙。 雖中朝之人, 必喜見之。 大抵天使, 見平日不見之書, 則尤喜也。 臣等之意如此, 故敢啓。" 傳曰: "予亦見董越時謄錄, 知天使慕悅成廟之筆。 然而祖宗手迹, 不宜誇耀於中朝之人, 不可以成廟之筆與之。 且孟頫之書, 於中國亦賤, 而不可給, 則當以我國鎔及崔興孝、朴耕之筆而贈之。 然此等人之書, 雖在於內帑, 而予不知某書爲某人之書也。 內帑書簇, 出送於政院, 則承旨等, 當分辨某人之書以啓。"
- 【태백산사고본】 42책 83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0면
- 【분류】외교-명(明) / 예술-미술(美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