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72권, 중종 27년 3월 20일 기사 1번째기사 1532년 명 가정(嘉靖) 11년

김안로를 배척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밝힌 이종익의 옥중 상소

의금부가 아뢰기를,

"이종익을 형신(刑訊)한 공사(供辭)는 관계되는 일이 크므로 신들 만이 추문하기가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옥중 상소를 올리려 하는데 이 사람은 다른 죄수에 견줄 수가 없습니다. 상소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 공사로 보면 역시 부도(不道)한 말일 것입니다. 더구나 전일 경상도 관찰사 김인손(金麟孫)이 그의 상소를 받은 일 때문에 죄를 입었는데, 지금은 또 어떻게 조처해야 되겠습니까?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종익은 본디 모진 자이어서 죽을 각오로 있으니 옥중의 상소에는 반드시 부도한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고 발락(發落)하기는 곤란하니 그 초사(招辭)와 상소를 감봉(監封)하여 입계(入啓)하면 열람한 뒤에 발락하겠다. 그리고 경상 감사는 제 마음대로 귀양간 사람의 상소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죄준 것이다. 지금은 종익을 서울로 잡아와서 추고하려는 참이니 받아도 무방하다. 금부는 형신한 공사와 상소를 입계하라."

하였다. 공사(供辭)에,

"근래 조정에 참소하여 죄에 얽어넣는 짓이 크게 행하여 기염이 바야흐로 치성하여 나라에 다시 큰 변이 생기고 있어서 항상 통분함을 품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천 리 밖에 있으면서도 상소문을 지어 올렸던 것은 이 상소를 통하여 조정에 공론(公論)이 생기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조계상은 이제까지 한 번도 면대한 적이 없었지만, 간사를 제거하여 깊이 신하다운 체통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상소에서 그의 공적과 재능을 열거하였던 것입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이행조계상이 사류를 모함한 일을 종익은 도리어 옳다고 하면서 간사한 자들을 제거하려 했다고 하였으니 지극히 놀랍다. 곧 삼성 교좌(三省交坐)로 국문(鞫問)을 하게 하라. 대체로 평상시의 형문(刑問)은 날수를 계산하여 시행하는 것이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날수를 헤아리지 말고 추문하라. 위관(委官)은 좌의정 장순손(張順孫)으로 하고, 승지 정백붕(鄭百朋)도 참국(參鞫)하게 하라."

하였다. 이종익이 옥중에서 올린 상소는 다음과 같다.

"신은 일찍이 온 세상이 원통함이 없어 사람이나 귀신이나 성조(聖朝)를 한 마음으로 섬기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였는데, 어찌 조정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두었겠습니까. 훌륭한 선비가 있다면 천백 년 뒤에라도 오히려 살려서 보고싶어 하는 것인데, 하물며 오늘의 사인(士人)은 모두 전하의 신하이지 않습니까? 충경(忠敬)으로 일조(一助)를 못할 지언정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음해(陰害)하려는 생각을 품겠습니까. 평생에 비록 공경 거인(公卿巨人)이라도 공경하고 두려워함은 있었으나 일찍이 하늘처럼 떠받들지는 않았는데, 이미 출척(黜斥)당한 자를 복직시켜 그들의 구원을 힘입어서 조정을 탁란(濁亂)시킬 싹을 키우겠습니까. 신자의 충성은 바로 천성(天性)인데 상소문 한 장 쓰면서 타인과 몰래 내통할 리가 있겠습니까. 근래에 참구(讒構)가 크게 행하여 나랏일이 날로 그릇되므로 공경 대신(公卿大臣)도 보전(保全)하는 자가 드무니, 신이 충분(忠憤)을 이기지 못하여 소를 올린 것입니다. 신과 같은 무원의 몸으로 범함이 있고 숨김이 없었으니 죄를 헤아릴 수 없는 일이라 실로 황공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공초(供招)한 원정은 모두 본의가 아닙니다. 이러나 저러나 죽기는 마찬가지이니 신은 마땅히 소회를 모두 토로하여 감히 전하의 부자, 군신간 대변(大變)의 원인을 논하니 전하께서는 마음을 가다듬어 살피소서.

신은 삼가 생각건대 오상(五常)은 바로 천서(天敍)069) 의 법칙이며 삼강(三綱)은 곧 인도(人道)를 세우는 것이니, 제왕(帝王)이 풍화(風化)의 권병(權柄)을 잡아 명교(名敎)를 밝히는 이유가 어찌 다른 데에 있겠습니까. 모두 강상(綱常)을 부식(扶植)하여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영재를 잃지 않으려 하는 것이니, 요임금이 큰 덕을 밝힌 것과 순임금이 오상을 선양한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 《시경(詩經)》의 대아 증민편에 윤길보(尹吉甫)중산보(仲山甫)를 전송하는 시(詩)에 ‘하늘이 만백성을 낳으시매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도다. 백성이 상도(常道)를 지니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네.’ 하였고, 또 ‘내가 헤아려 보니 오직 중산보만이[德]를 가졌으니 곤직(袞職)070) 에 허물이 있으면 오직 중산보 만이 이를 도우리.’ 하였으니, 이륜(彝倫)의 덕을 가지고서 천자(天子)를 보좌(補佐)함을 아름답게 여긴 말입니다. 한당(漢唐) 이래로 부자와 군신간에 참적(讖賊)이 많아 마침내 임금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는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여 영원히 이륜의 도리를 잃어서 천고(千古)에 웃음거리가 된 경우를 어찌 이루 다 셀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근래 군부 신자(君父臣子)의 사이에서 합당한 도리가 행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까지 되게 한 자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없다고 여기십니까? 부자의 사이는 남이 말하기 어려운 것인데, 하물며 전하의 천륜(天倫)에 대하여 신하가 어찌 감히 붓끝으로 형언(形言)할 수 있겠습니까. 전일 신이 고양(高陽)에 갔을 때에 임계중(任繼重)이 신에게 이르기를 ‘세자가 고단(孤單)하여 조정에서는 김안로(金安老)를 높은 지위에 두어서 우익(羽翼)으로 삼았다.’ 하였습니다. 신은 처음 그 말을 듣고 모발(毛髮)이 곤두서고 눈이 휘둥그레 졌으나 다시 그 까닭을 묻지 않았습니다. 고단(孤單)하다고 하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신은 차마 말조차 못하겠습니다. 지난해에 세자께서 친경(親耕)에 배종(陪從)하고 돌아오는 길에 유생(儒生)들이 가요(歌謠)하는 곳에 연(輦)을 머무셨을 때, 신은 백의(白衣)의 몸으로 연 밑에 무릎꿇고 앉아 그 심원한 의도(儀度)와 용봉(龍鳳)의 높은 모습을 우러러 뵙고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전하에게 충성할 뿐만 아니라 세자를 위하여 죽으리라 스스로 맹세하였습니다. 소신(小臣)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전하의 뒤를 이을 세자이고 사직(社稷)의 중보(重寶)이며 조정과 온 나라가 길이 의지할 것이온데 무엇 때문에 고단하다 한단 말입니까. 범인(凡人)의 부자에게도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우리 군부(君父)의 사이이겠습니까.

이륜의 덕으로 보좌(補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하의 천륜(天倫)의 바름을 빼앗아 어지럽히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저(國儲)071) 가 억울하게 애통한 말을 듣게 하고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하였으니, 그 무례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통곡하면서 죽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안로(安老) 혼자서 획책한 일이겠습니까. 심언광(沈彦光)과 같은 무리가 빙산(氷山)072) 을 서로 의지하여 음모를 몰래 계획하여서 조정에 자기의 무리를 다시 배치하려는 술책입니다. 은 태사(殷太師)073) 가 말하기를 ‘곤(鯀)이 오행(五行)의 배열을 어지럽히니 이륜(彝倫)이 무너졌다.’074) 하였는데, 아! 이것이 어찌 홀로 숭백(崇伯)075) 만의 죄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인륜의 지극한 도리를 다하고자 한다면 비록 우산(羽山)에서의 죽임을 지금에 다시 실시하여도 될 것입니다. 신은 일찍이 조정에는 노성(老成)하고 사리에 밝은 신하의 보필(輔弼)이 있고 장상(將相)이 될 만한 재능과 주석(柱石)이 될 만한 덕이 있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사직의 신하 자리가 유독 아녀자의 사치를 숭상하는 안로에게로 돌아가서야 되겠습니까? 이는 상신(相臣)과 장신(將臣)에게 영구한 수치입니다. 이 말을 근거로 하여 말을 해 나가겠습니다. 그 이른바 박씨와 결탁하였다는 것이 김극핍(金克愊)·이항(李沆)·심정(沈貞)이 서로 연달아 출척당한 까닭입니다. 신이 심정의 죄를 보면 ‘몰래 박씨의 뇌물을 받았다.’ 했는데, 이것은 전하의 액정(掖庭)의 일로서 그 주고받으며 오고간 사람이 반드시 있어서 오히려 친히 보고 들으셨을 텐데도 이 같은 말을 하십니까? 신이 지난해 추문을 당할 때에 그 일이 근거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에 이것으로 복초(服招)하여 잠시 큰 화(禍)를 막으려 하였던 것인데, 신이 유형(流刑)을 받은 뒤 그 화가 더욱 심해져서 극핍은 울분(鬱憤)으로 목숨을 버리고 심정은 아들로 하여 죄를 받았으니, 이것은 신이 믿을 수 없는 일로서, 바람에 임하여 눈물 흘리며 두 귀신을 위하여 그 원통한 한(恨)을 크게 씻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 이 사람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나의 이번 일도 없었을 것이니 불인(不仁)의 재앙됨이 심하옵니다. 이 세사람은 지혜가 서로 같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위가 숭반(崇班)에 이르러 정부에 출입하였으니 지혜롭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대저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는 전하의 서자(庶子)이고 박씨는 빈잉(嬪媵)의 처지로서 모두 지친(至親)이 됩니다. 오늘 박씨의 뇌물을 받았다가 내일 전하께서 아시게 되면 이 세 사람은 모두 전하께서 천하다고 버리게 될 처지인데도 세 사람의 지혜로 이를 깨닫지 못했단 말입니까? 극개(克愷)박씨와 사돈간이고 극핍극개의 큰 형이니 극핍극개을 구하고자 하는데 어찌 박씨의 뇌물을 받으며, 또 한창 말썽이 되었을 때에 박씨는 어찌 다른 돕는 자를 버리고 극핍에게만 급급했겠습니까. 또 임금의 궁인(宮人)이 외정(外庭)에 뇌물을 주었는데도 임금이 몰랐다면, 왕실의 체통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본다면 연성위(延城尉) 김희(金禧)가 그 아비를 위하여 상언(上言)하고자 하여 먼저 심정에게 청하니 은 거짓으로 이를 승락하고 그 수의(收議)함에 있어서는 공론(公論)에 따랐습니다. 이것이 안로심정을 미워하게 된 이유입니다. 안로를 귀양보내려 할 때에 모두의 의논이 한결같았으나 호숙(浩叔) 【이항(李沆)의 자.】 만 믿었는데, 이항의 정대(庭對)가 매우 급박하였으니, 이것이 안로이항을 미워하게 된 이유입니다. 극핍은 이런 일이 없었으니, 전일에 작당(作黨)의 말로 사림(士林)을 노하게 한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의심하는 마음을 충동하여 쌓였던 분을 푸니, 이것이 술책이 쉽게 행하여진 까닭입니다.

처음에 아우로 하여 죄를 입고 마침내는 형으로 하여 출척(出斥)을 당하여 형제 두 사람이 서로 화근(禍根)이 되었으니 매우 가소롭습니다. 그러나 전하의 군신(君臣)간 천륜(天倫)이 상(傷)하여서 오늘의 큰 변이 있음은 누가 창도(唱導)한 것입니까? 반드시 그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은 태사가 이르기를 ‘이 그 오행의 배열을 어지럽혀서 이륜(彝倫)이 무너졌다.’ 하였으니, 아, 이것이 어찌 숭백(崇伯)만의 허물이겠습니까. 우리 전하께서 고굉(股肱)의 노래076) 를 일으키고자 한다면 비록 우산(羽山)의 극(殛)을 하여도 될 것입니다. ‘안로의 출척(黜斥)은 남곤이 수창(首唱)하였다.’ 하였는데 이제 ‘박씨가 뇌물로 준 비단을 남곤만이 받지 않았다.’ 하니,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무함(誣陷)에 가깝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남곤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이를 밀어서 공론(公論)으로 삼는 것이지 아직도 살아 있다면 뒤에 반드시 이행(李荇)과 같은 날 쫓겨났을 것입니다.

연성위(延城尉) 김희(金禧)양송(梁松)077) 보다도 더 간사한 인물로 죄악이 너무 심하여 하늘의 베임을 받았습니다. 전일 작서(灼鼠)의 변이 일어나자 전하와 조정이 누구의 소행임을 알지 못하여 끝까지 힐문(詰問)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많은 궁중의 사람들이 원통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는 김희가 사심(私心)을 일으켜 요사(妖邪)를 부린 소치(所致)에 불과하며,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 죄를 받은 것입니다. 저 이른바 권간(權奸)은 전한(前漢)의 애제(哀帝)·평제(平帝) 때의 여러 왕(王)이고, 후한(後漢)의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의 동탁(董卓)조조(曹操)입니다. 전하께서는 이제 소신을 위하여 한 말씀 해주소서. 6∼9년 사이에 과연 생살 여탈(生殺與奪)의 권병(權柄)을 모두 정(貞) 등의 손에 넘겨주셨습니까? 정(貞) 등이 조정을 겁제(刼制)하여 마음대로 저지른 일을 지적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신은 권간(權奸) 두 글자로 성궁(聖躬)의 덕에 누(累)가 됨을 원치 않습니다. 이는 또 안로에게 붙좇는 자가 전하를 환(桓)·영(靈)애(哀)·평(平)으로 생각하여서 속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더욱 크게 염려할 것은 세자(世子)의 타고난 덕이 명철하니, 충화 광연(沖和廣淵)의 덕으로써 그 신지(神智)를 더욱 향상시켜야만 하고 의심하고 시기하는 술수(術數)로써 세자의 이목을 동요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손을 잡아 깨우치소서. 이제 조정이 이것을 먼저 힘쓰지 않고 익명서(匿名書) 한 장에만 구구히 매달려 있습니다. 옛사람은 이르기를 ‘수서(手書)는 진 태자(晉太子)와 같아 족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제 오래도록 가까이 두고 아무에게서 나왔다고 아뢰는 사례가 있으니 조정의 기풍이 또한 너무 각박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는 또 전하를 신라 덕만(德曼)078) 의 정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이 당(黨)을 끝까지 힐문하여서 조정을 맑게 하신다면 이륜(彝倫)을 유지하고 동량(棟樑)을 발양할 수 있으며 천기(天機)가 유동(流動)하여 인도(人道)가 밝아져서 전하께서는 천재(千載)의 영명한 임금이 되고 대소 신료(臣僚)들도 마땅히 백 년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신이 아뢸 말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전에 신이 임계중과 함께 갇혀서 추문을 받았는데 계중이 신과 함께 말한 적이 없다고 공초(供招)하였으니 신은 통분(痛憤)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아, 계중이 어찌 차마 전하를 속인단 말입니까.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신 초기에 신이 계중과 함께 사마(司馬)가 되었으며, 전하께서 전에 명경과(明經科)를 베푸셨을 때에 계중은 글이 짧은 사람으로서 급제되어 현감(縣監)이 되었고, 그뒤 6년 만에 봉상시(奉常寺)에 입참(入參)하고 고양(高陽)연천(漣川)의 수령이 되었으니, 곤궁한 서생으로서는 극진한 영광을 누린 것입니다. 아, 계중이 어찌 차마 전하를 속인단 말입니까? 벗 사이에 신의(信義)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대의(大義)에 있어서 한갓 필부 필부(匹夫匹婦)의 의리만을 지킬 수 없음은 명확한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 계중을 명하여 부르시어 먼저 이 소(疏)를 보이고 다시 그 실정을 물으신다면 반드시 바르게 진술하여서 은휘함이 없을 것이니, 그런 뒤에야 그 무리를 모두 붙들어 토죄(討罪)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가 나라를 위하여 요적(妖賊)을 토죄하지는 못하나 전하께서 하문(下問)하실 때에 어찌 백일(白日)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계중이 숨기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간인(姦人)의 당이 되어 나라를 그르치려 함이 분명합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통렬히 다스려 사흉(四凶)의 수를 갖추시어 먼 변방으로 귀양보내어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게 하여야 될 것입니다.

아뢸 말이 또 있습니다. 이항이 파직 당할 때에 주세붕(周世鵬)도 죄를 받아 시골로 돌아가게 되니, 글을 배우는 어린 생도들에게 ‘너희들은 옛 글을 읽으니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지 말라. 나는 실로 죄다 없다.’ 하고 울면서 떠나갔다 합니다. 신은 본디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마는 이항의 일에 덧붙여 틈을 엿보아 거론된 것이니 세붕은 죄가 없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간곡히 더 살피소서. 충분(忠憤)의 지극한 회포를 견디지 못하여 삼가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울면서 아룁니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72권 6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364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069]
    천서(天敍) : 하늘의 질서.
  • [註 070]
    곤직(袞職) : 임금의 직무.
  • [註 071]
    국저(國儲) : 세자를 뜻함.
  • [註 072]
    빙산(氷山) : 얼음산은 더우면 곧 녹아버린다는 뜻으로 오래 믿을 수 없는 권세를 비유하는 말. 당나라 때 양국충(揚國忠)이 우상(右相)이 되어 권세가 천하를 흔드니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협군(陜郡) 출신 진사 장단(張彖)에게 "양국충을 만나보면 부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자 "그대들은 양우상을 태산처럼 의지하나 나는 얼음산으로 볼 뿐이다. 밝은 해가 뜨면 너희들이 믿을 곳을 잃지 않겠느냐?" 하고 숭산(嵩山)에 숨었다는 고사.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記).
  • [註 073]
    은 태사(殷太師) : 기자(箕子).
  • [註 074]
    ‘곤(鯀)이 오행(五行)의 배열을 어지럽히니 이륜(彝倫)이 무너졌다.’ : 《서경》 주서(周書)의 홍범(洪範)에 보임.
  • [註 075]
    숭백(崇伯) : 우(禹)의 아버지 곤(鯀)이 숭백에 봉하여짐.
  • [註 076]
    고굉(股肱)의 노래 : 순(舜)이 고요(皐陶)와 함께 원수(元首)와 고굉의 표현을 써서 군신(君臣)간의 긴밀한 관계를 노래한 것. 《서경(書經)》 우서(虞書).
  • [註 077]
    양송(梁松) :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사위로서 간사한 인물.
  • [註 078]
    덕만(德曼) : 선덕 여왕(善聖女王)의 이름.

○己巳/義禁府啓曰: "李宗翼刑問供辭, 有大關之事, 臣等獨推未安。 且欲呈獄中上疏, 此非他罪囚之比。 雖未見疏, 以其供辭見之, 亦必有不道之言也。 況前日慶尙道觀察使金麟孫, 以受其疏被罪。 今亦何以爲之敢稟。" 傳曰: "宗翼本是頑惡者, 將就死地。 獄中之疏, 必有不道之言, 然未知其事, 而發落爲難, 其招辭及上疏, 監封入啓, 則覽後當發落。 且慶尙監司, 擅受竄黜人之疏, 故罪之, 今則來京, 時方推考, 受之無妨。" 禁府以其供辭及上疏入啓。 其供辭云: "近來朝廷, 讒構大行, 氣焰方盛, 國家再生大變, 常懷痛憤, 雖在千里之外, 陳疏上送, 庶幾因此疏, 以生朝廷公論也。 曺繼商, 前後未嘗見其面貌矣, 然欲除奸邪, 深得臣子之體, 故疏列功能耳。" 傳曰: "李荇曺繼商謀陷士類之事, 宗翼反以爲是, 而云: ‘欲除奸邪, 至爲驚愕。 卽令三省交坐, 鞫問可也。’ 大抵常時刑問, 則計其日數矣, 此事不計次數而推之。 委官則以左議政張順孫爲之, 承旨鄭百朋, 亦往參鞫。" 李宗翼獄中疏曰:

臣嘗以謂, 願見一世, 解冤釋憾, 使幽明之間, 一心聖朝而已, 安有不有朝廷之心乎? 士或有一善, 雖在千百年之遠, 尙欲作而一見。 況今日士人, 皆殿下之臣子, 雖不能一助忠敬, 安有一毫陰害之念乎? 平生雖公卿巨人, 敬畏則有之矣, 未嘗有巍巍之色, 安有復其已黜, 賴其彼援, 以有濁亂之萌乎? 臣子忠義, 乃其天性, 一疏之成, 安有潛通他人之理乎? 第以近來讒構大行, 國事日非, 公卿大臣, 鮮有全者, 臣不勝忠憤, 發爲書疏。 如臣孤立, 有犯無隱, 罪或不測, 實懷惶恐。 由是原情所招, 俱非本意, 以彼以此, 其死等耳。 臣當盡吐所懷, 敢論殿下父子君臣大變之所由焉。 願殿下更加動容而察之。 臣伏以, 五常, 乃天敍之所以典, 三綱, 卽人道之所以立。 帝王所以操風化之權。 坐名敎之中, 豈有他哉? 皆所以扶植綱常, 期不失宇宙之棟樑也, 之克明, 之愼徽, 是也。 昔尹吉甫仲山甫之詩曰: "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 又曰: "我儀圖之。 維仲山甫擧之, 袞職有闕, 維仲山甫補之。" 美其以彝倫之德, 擧而輔天子之辭也。 以來, 父子君臣之際, 多行讒賊, 終至於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 永失彝倫之道, 以貽千古之笑, 何可歷數乎? 然則近來殿下, 於君父臣子之際, 自以爲得其道歟? 失其道歟? 其所以致此者, 抑有其人歟, 無其人歟, 父子之間, 人所難言。 況殿下天倫所在, 臣敢形言於筆下, 無乃不可乎? 前者, 臣往高陽時, 任繼重謂臣曰: "世子孤單, 朝廷以安老, 置高位爲羽翼。" 臣始聞之, 毛髮竪立, 睢盱而視, 不復詰其所由。 所謂孤單者, 何等語也? 臣欲形容而不忍。 昔年世子陪親耕而還, 駐輦於儒生歌謠之處。 臣以白衣, 膝於輦下, 仰觀其凝儀遠度, 龍鳳高揚, 臣不勝感激揮淚, 自誓以謂, 非獨忠於殿下, 亦欲爲世子死矣。 小臣尙然, 況殿下之家子, 社稷之重寶, 朝廷四方之所永賴, 何以謂孤單乎? 凡人父子, 尙不可以此爲稱。 況吾君父之間哉? 非徒不輔以彝倫, 反欲攬殿下天倫之正, 而欲亂之, 乃令我國儲, 枉被哀痛之語, 播落於人間, 其小腆也, 可勝道哉? 此臣所以痛哭, 而欲死者也。 然此豈安老之所自贊, 如沈彦光輩, 氷山相倚, 陰謀潛畫, 使朝廷, 將改排之術也。 殷太師乃言曰: "汨陳其五行, 乃彝倫攸斁。" 嗚呼! 此豈特崇伯之罪哉? 殿下欲盡人倫之至, 雖致羽山之殛, 可也。 臣嘗以爲, 朝廷之上, 有老成之弼, 有諳練之佐, 有才堪將相者, 德堪柱石者, 至於社稷臣, 則獨歸於兒女奢侈之安老可乎? 此相臣、將臣, 千載之恥也。 執此說以去, 其所謂恩結朴氏者, 此金克愊李沆沈貞之所以相繼而黜也。 臣觀沈貞之罪, 乃曰陰受朴氏之賂, 此殿下掖庭之事, 其受授往復之人, 必有存者, 猶自親見聞, 而爲此言乎? 臣去年被推, 昭然知其不根也。 故以此伏於招, 姑防大禍, 臣之流也, 其禍益熾, 克愊憤鬱而捐生, 沈貞以子而受罪, 此臣不信之故也。 所以臨風流涕, 爲二鬼思欲大雪者也。 嗚呼! 無此, 則亦無此矣。 甚矣, 不仁之禍也! 然則此三者, 智誠雖不相上下, 而位至崇班, 出入政府, 亦不可謂不智矣。 夫福城君 , 於殿下爲庶子也, 朴氏則嬪媵之人, 而皆爲至親也。 今日受朴氏之賂, 明日爲殿下所知, 則此三人者, 皆爲殿下之所賤棄矣。 三人者之智, 一不能及此乎? 克愷, 朴氏之婚家也, 克愊, 克愷之大兄也。 克愊欲救克愷, 何待於朴氏之賂哉? 且方其擾攘之時, 朴氏安得捨其他相, 而獨汲汲於克愊哉? 且安有王者之宮人, 行貨外庭, 而王者猶不知, 則王室不亦卑乎? 以臣愚觀之, 延城尉 金禧, 爲其父欲上言, 先請於沈貞, 佯諾之, 及其收議, 以公論處之, 是沈貞安老所不悅者矣。 方竄安老也, 詢謀僉同, 獨特恃一浩叔 【沆字。】李沆庭對甚急, 是李沆亦爲安老所不悅者矣。 克愊則無此二者矣。 豈不以前日以作倘之語, 取怒士林歟? 動其疑似, 以快宿憤, 此其術之所以樂於行也。 始也, 以弟而獲罪, 終也, 以兄而被黜, 兄弟二人, 相爲禍根, 極可笑也。 雖然傷殿下君臣之天倫, 以有今日之大變, 誰令令之? 是必有其徒矣。 殷太師乃言曰: "汨陳其五行, 乃彝倫攸斁。" 嗚呼! 此豈特崇伯之罪? 我殿下欲興肱股之歌, 雖致羽山之殛, 可也。 曰安老之黜也, 南袞首唱之, 今曰朴氏賂叚, 南袞獨不受。 然則此二人者, 不近誣矣。 曰否, 南袞已死, 故籍以爲公議也。 使其尙在, 則後必與李荇, 同日而逐矣。 延城尉 金禧, 甚於梁松者也。 罪惡已極, 爲天所殺。 前日灼鼠之變, 殿下與朝廷, 未知其爲誰, 窮詰而不得, 宮中人多被枉死者, 此不過金禧生私、作妖之所致也。 今日罪人斯得矣。 夫所謂權奸者, 之諸王, 是也。 殿下今日, 請爲小臣一言。 六七八九年之間, 果以生殺與奪之權, 盡授於等之手歟? 等所以刼制朝廷, 恣行胸臆者, 又可指事而言歟? 臣不欲以權奸二字, 累德于聖躬也。 此亦附安老者, 以, 待殿下, 而謂可欺、可罔也。 尤所大恐者, 世子天德, 自貽哲命, 方當以沖和廣淵之德, 增益其神智, 不可以疑貳忌克之術, 動搖於聞見也。 願殿下接手而喩之。 今朝廷不先務此, 而獨區區於匿名一書。 昔人謂手書, 如太子, 不足信也。 今乃(掩留)〔淹留〕 比對, 啓出某手, 朝廷之風, 不亦爲澟澟也哉? 此又導殿下以新羅 德曼之政者也。 殿下誠能窮詰此倘, 以淸朝廷, 則足以爲維持彝倫, 發輝棟樑, 天機流動, 人道昭晳, 殿下優爲千載之令主, 凡大小臣僚, 亦當百年受福矣。 臣又有一說, 前者臣與任繼重, 同囚被推, 繼重以不與臣言此爲招, 臣不勝痛憤。 嗚呼! 繼重, 豈忍欺殿下者哉? 殿下卽位之初, 臣與繼重, 同爲司馬, 及殿下前設明經科, 繼重以短文人, 得折桂焉, 縣監六年, 入參奉常, 出守高陽漣川, 窮生榮養極矣。 嗚呼! 繼重, 豈忍欺殿下者哉? 朋友之際, 信義雖不可忘, 而大義所在, 不可徒守匹夫匹婦之自諒也明矣。 願殿下, 命招繼重, 先以此疏示之, 復以其情問之, 則必直陳無隱, 然後其倘, 可盡得而討也。 臣子雖不能爲國家, 以討妖賊, 而下問之時, 安有欺白日者乎? 繼重執迷不直, 則是欲黨奸人, 以誤國也明矣。 殿下亦當痛治, 以備四凶之數, 遠竄遐裔, 沒齒不還可矣。 臣又有一說, 李沆之罷, 周世鵬被罪還鄕, 與學書少生爲言曰: "汝等讀古書, 毋爲冤枉之事。 我實無罪。" 仍涕泣而去。 臣本不知此人之面目矣。 然於李沆伺隙而發, 則世鵬非其罪也。 伏惟殿下, 曲加垂察焉。 不勝懷忠懷憤之至, 謹萬死涕泣以聞。


  • 【태백산사고본】 36책 72권 60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364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