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으로 옮기는 일, 세자의 거처와 상복, 김로·이찬·임권의 일 등에 대한 논의
삼공 및 좌참찬 조원기가 아뢰기를,
"상께서 외처(外處)에 계신 것이 미안하다는 일은 전에 이미 아뢰었습니다만, 반복하여 생각을 해보니 오래도록 외전(外殿)에 거처하셔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전(內殿)으로 환처(還處)하소서."
하고, 세자 사부(世子師傅) 【영상(領相)과 좌상(左相)임.】 및 빈객(賓客) 조계상·신공제·홍언필 등은 아뢰기를,
"신들이 듣기로는 세자도 별처(別處)에 거처하고 구거(舊居)하던 곳에 있지 않다고 하니 지극히 미안합니다. 그리고 세자의 복(服)은 상(上)의 복과 틀리오니 전대로 상처(常處)에 거처하게 하소서. 지난번 회강(會講)030) 하던 날에 아뢰려고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서 미처 아뢰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 아뢰는 것입니다."
하고, 또 삼공 및 조원기 등은 아뢰기를,
"신들이 김로·이찬·임권을 수금(囚禁)하고 형추하는 일에 대하여 들어보니 시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두 주고받는 말 사이에서 나온 일인 바 그것을 가지고 사류를 형신(刑訊)하는 일은 전부터 있지 않았는데, 만약 지금 사단(事端)을 열어놓으면 뒤에는 전례로 삼을까 두렵습니다. 모름지기 상께서는 참작해 조처하소서. 또 근래에 홍문관이 대간을 체직하라고 논박한 일에 대해서는 신들은 매우 온당치 못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김로 등을 체직시키거나 파직시키라고만 아뢰어 구차하게 그 책임을 막은 것도 온당치 못한 일이며, 대간은 논박하여 체직하게 한 것도 매우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대간이 온당치 못하게 여기는 일은 비록 재상이라도 오히려 아뢰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홍문관이겠습니까?"
하니, 전교하였다.
"내가 별처(別處)하는 일은 이미 말하였다. 옛날 성종조 때는 수문당(修文堂)에 별처했었는데 지금의 비현각(丕顯閣)이 이 당(堂)과 다를 것이 없다. 안에서 보면 곧 외처(外處)이나 밖에서 보면 곧 내처(內處)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에 거처한 것이다. 그리고 세자가 동궁(東宮)에 있지 않은 일은, 동궁이 빈전(殯殿)이 된 지 오래지 않기 때문에 대내(大內)에 들어간 것이다. 더구나 세자는 그때 길복(吉服)을 하지 않았으니 비록 별처하더라도 괜찮다. 김로와 이찬 등의 일은 과연 언어 사이에서 일어난 일인 듯하다. 대간이 아뢴 일로 보면 우연한 일이 아니요 ‘혹 종사(宗社)에 관계되고 혹 권간에 아부했다.’고 하였으므로 부득이 추고한 것이다. 더구나 그 단서가 이미 나타났는데 취복하지 않고 죄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류인 사람이 어찌 형(刑)을 받고 장(杖)을 참으려고 하겠는가. 근래 조정의 기강이 해이하여 모든 일이 이와 같으니, 인심을 진정시키지 않아서는 안 되겠다.
임권의 일도 이찬과 다를 것이 없는데 이찬만을 추고하고 임권은 추고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아울러 추고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홍문관이 긴요하지 않은 일로 번번이 대간은 논박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나도 전부터 미안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 홍문관이 논한 김로와 이찬의 일에 대해서는 잘못이라 하지 않는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70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28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030]회강(會講) : 왕세자(王世子)가 한 달에 2회씩 사부(師傅) 이하 여러 관원을 모아놓고 경사(經史)와 그 밖의 서적을 강론(講論)하는 일.
○三公及左參贊趙元紀啓曰: "自上外處未安事, 前已啓之, 反覆計之, 不可久處於外殿。 請還處於內殿。" 世子師傅 【領、左相。】 及賓客曺繼商、申公 濟、洪彦弼等啓曰: "臣等(問)〔聞〕 世子亦別處, 而不在舊居之處, 至爲未安。 且世子之服, 與上服有異, 請依舊常處。 前日會講之日, 欲啓之, 而因日暮, 未及啓之, 故今日啓之。" 又三公及趙元紀等啓曰: "臣等(問)〔聞〕 金魯、李澯、任權囚禁刑推事, 是非未詳知之, 然皆是言語間事。 以此刑訊士類, 自前未有。 若今開端, 則恐後將爲例。 須自上斟酌。 且近來弘文館駁遞臺諫事, 臣等每以爲未便。 今以金魯等只啓遞罷, 苟塞其責, 爲未便, 駁遞臺諫, 亦甚未便。 臺諫未便之事, 雖宰相, 猶不可啓之, 而況弘文館乎?" 傳曰: "予之別處事, 已言之矣。 昔在成宗朝, 別處於修文堂。 今之丕顯閣, 與此堂無異。 自內觀之, 則乃外處, 自外見之, 則乃內處, 故予處於此耳。 且世子不在東宮之事, 東宮爲殯殿未久, 故入于大內。 況世子當時, 不爲吉服, 雖別處可也。 金魯、李澯等事, 果似言語間事也, 以臺諫所啓之事見之, 非偶然事也。 或係於宗社, 或附於權奸云, 故不得已推之矣。 況其端倪已出, 不可不取服而罪之。 然士類之人, 豈欲受刑忍杖哉? 近來朝廷紀綱解弛, 凡事如此, 不可不鎭定人心也。 任權事, 無異於李澯, 不可但推李澯, 而不推任權也。 故竝推之耳。 且弘文館, 若以不緊之事, 每駁臺諫, 則予亦自前未安矣。 然今者弘文館所論金魯、李澯事, 不爲非矣。"
- 【태백산사고본】 35책 70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28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