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중추부사 손순효의 졸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손순효(孫舜孝)가 졸하였다.
순효의 자는 경보(敬甫)요, 호는 칠휴거사(七休居士)이고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경태(景泰)210) 계유년211) 에 급제, 경창부승(慶昌府丞)에 제수되고 병조 좌랑(佐郞)·형조 정랑·사헌부장령(掌令)·예문관 전한(藝文館典翰)·사헌부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신묘년212) 에 승진하여 형조 참의에 임명되고 병신년213) 에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임명되었다가 도승지로 승진되었으며, 강원도 관찰사·호조 참판·형조 판서·사헌부 대사헌·공조·병조의 판서를 지나 의정부 좌참찬(左參贊)에 임명되고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돌아와서 우찬성(右贊成)에 임명되고, 얼마 후 판중추(判中樞)로 옮겼다가, 졸하니 나이 71세였다. 시호를 문정(文貞)이라 하니 학문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했다 하여 문(文)이요, 청백하고 절도를 지켰다 하여 정(貞)이었다.
금회(襟懷)가 넓고 맑으며 마음가짐이 어질고 너그러웠으며, 항상 《중용(中庸)》·《대학(大學)》으로 후진들을 권장하며, 충성과 너그러움으로 인군을 인도하고, 충신·효자·절의의 문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절하였다. 일찍이 《대학》 중의 뜻을 따서 노래 4장을 지어 물재가(勿齋歌)라 하고 동자들로 하여금 노래부르게 하고 스스로 즐겼다. 때로는 한밤중에 북쪽 하늘을 향하여 이마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맹세코 인군을 속이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술마시기를 좋아하되 취중의 말이라도 반드시 임금을 그리워한다 하며 혹은 울기까지 하였다. 도에 관찰사로 나가 있을 때에는 항상 서울을 향하여 절하니 사람들이 혹 정상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였다. 위인은 충직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일을 하는 데는 모자라서 가는 곳마다 실적이 없으나, 그것이 경중이 될 수는 없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2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206 면
- 【분류】인물(人物)
- [註 210]경태(景泰) : 명나라 경종(景宗)의 연호.
- [註 211]
○判中樞府事孫舜孝卒。 舜孝字敬甫, 號七休居士, 平海人。 中景泰癸酉第, 授慶昌府丞。 歷兵曹佐郞, 刑曹正郞, 司憲府掌令, 藝文館典翰, 司憲府執義。 辛卯陞拜刑曹參議。 丙申拜承政院同副承旨, 轉陞都承旨。 歷江原道觀察使, 戶曹參判, 刑曹判書, 司憲府大司憲, 工曹、兵曹判書。 拜議政府左參贊, 慶尙道觀察使, 還拜右贊成, 尋遷判中樞, 卒年七十一。 謚文貞, 勤學好問文, 淸白守節貞。 襟懷沖澹, 秉心仁恕。 常以《庸》、《學》勸後進, 忠恕導君上。 過忠臣、孝子節義之門, 必下馬拜之。 嘗取《大學》中義, 作歌四章, 名曰: "勿齊歌。" 使童子歌以自樂。 時於中夜, 稽顙北辰曰: "誓不欺君。" 喜飮酒, 醉裏言必稱戀主, 或至泣下。 出使在道, 常望京而拜, 人或疑其不經。 爲人忠慤有餘, 而短於設施, 所至無績, 不能爲輕重焉。
- 【태백산사고본】 6책 22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206 면
- 【분류】인물(人物)
- [註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