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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83권, 성종 24년 10월 3일 갑자 1번째기사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일본 사신의 전별식에서 자질구레한 요청을 모두 들어 주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오늘 대내전(大內殿) 사송(使送)을 전별하는 잔치에서 원숙(元叔) 등이 소매 속에서 서계(書契)1354) 를 내어 놓았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크게 비호(庇護)하는 은혜가 멀리 미치고 화하고 밝은 교화가 치우침이 없어서 신(臣) 등이 입조(入朝)하여 관치(館置)1355)정실(庭實)1356)풍영(豊盈)1357) 하지 아니함이 없고, 특히 청한 바를 모두 너그럽게 허락함을 입었습니다. 오직 주홍(朱紅)만은 호령(號令)이 이미 나온 뒤에 두세 번 변경하였으므로 불만(不滿)한 뜻이 앙앙(怏怏)1358) 합니다. 멀리서 가지고 왔다가 헛되게 가지고 돌아가게 합니까? 이른바 「시집가기를 자랑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신 등이 부끄러움이 있는데 하물며 돌아가면 국주(國主)의 명령을 어긴 것이겠습니까? 부(富)는 하늘 아래의 것을 차지하여 돈과 비단이 창고에 넘치고 금과 은이 땅에 널렸는데, 어찌하여 그 넘치고 널린 것을 베풀어서 우리의 요구하는 바를 구제하지 아니하십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의 약속을 회복하시면 만 번 다행이겠습니다. 또 정홍(政弘)의 서계(書啓) 가운데 이른바 동전(銅錢)·목면(木綿) 등의 제급(題給)을 아직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삼가 명령을 기다립니다. 대내전(大內殿)은 귀국(貴國)과 동계(同系)이고 일본의 명장(名將)입니다. 사국 태수(四國太守)가 되어 이웃 나라가 거의 지호간(指呼間)1359) 에 속하였는데, 태평 무사(太平無事)할 때이면 어찌 이런 요구가 있겠습니까? 국주(國主)가 된 자는 창생(蒼生)을 사랑하기를 아들과 같이 하는데, 하물며 적자(嫡子)인 신개(新介)는 천리(千里)를 격하여 군루(軍壘)에 있으니, 어찌 가엾지 아니하겠습니까? 이제 의(義)를 생각하고 힘을 다하여 신개가 백전 백승(百戰百勝)하여 공훈(功勳)을 세워 세상에 뛰어났고 대내전(大內殿)은 귀국과 서로 어깨를 가지런히 하면서 영구히 대려(帶礪)1360) 의 맹약을 굳게 합니다. 엄동(嚴冬)이 가까이 닥쳐올 것이니, 방물(方物)의 값을 제급(題給)하여 빨리 귀로에 오를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번거로운 글로 존람(尊覽)을 모독하였으니, 용서해 주시면 다행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관인(副官人) 신우위문위(新右衛門尉)가 또 서계를 내었는데, 그 말에 이르기를, ‘엎드려 청하건대 성중(城中)의 귀국 사찰인 원각사(圓覺寺)를 두루 관람하기를 요구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안동로(安東路)로 내려가기를 요청하며, 통사(通事)인 첨정(僉正) 고공(高公)을 통하여 도움을 받기로 한 목면(木綿)을 그대로 요구하니, 빨리 제급(題給)해 주시면 빨리 귀국하는 닻줄을 풀 수 있겠습니다. 차사원(差使員)인 동래 현감(東萊縣監) 한공(韓公)에게 서간(書簡)을 보내어 독촉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귀국의 흰 거위[白鵝] 암수 한 쌍을 못 위에 놓고 구경하기를 소망하니,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자질구레하게 청하는 일은 모두 들어주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28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407면
  • 【분류】
    외교-왜(倭)

  • [註 1354]
    서계(書契) : 왜(倭)나 야인(野人)의 사신이 가지고 오던 신임장(信任狀). 왜 사신의 서계는 대마 도주(對馬島主) 종씨(宗氏)가 발행하였으며, 그 안에는 사신 일행의 수, 조선에서 머무르는 포구(浦口), 체류 일자 등을 명기하였고, 일본 국왕의 사신은 어소(御所)에서 발생한 것이었음.
  • [註 1355]
    관치(館置) : 관에 유치하는 일.
  • [註 1356]
    정실(庭實) : 뜰에 진열한 예물.
  • [註 1357]
    풍영(豊盈) : 풍족.
  • [註 1358]
    앙앙(怏怏) : 불평을 품고 우울해함.
  • [註 1359]
    지호간(指呼間) : 가까운 거리.
  • [註 1360]
    대려(帶礪) : 임금이 공신(功臣)의 집안을 영구히 변치 않고 대접한다는 맹세의 말. 한 고조(漢高祖)가 봉작(封爵)한 서사(誓辭)에, "황하(黃河)가 띠[帶]와 같이 작아지고 태산(泰山)이 숫돌[礪]과 같이 평지가 되도록 나라에서 영구 보존하리라[使黃河如帶 泰山如礪 國以永存]"한 데에서 나온 말로 굳은 맹세를 뜻하는 것임.

○甲子/禮曹啓曰: "今日餞宴大內殿使送元叔等, 袖出書契。 其辭曰: ‘皇庇之恩及遠, 雍熙之化無偏, 臣等入朝, 館置庭實, 靡不豐盈, 特所請悉蒙優許。 唯於朱紅, 號令旣出後, 再三變改, 不滿之意怏怏, 遠持來空持歸歟? 所謂衒嫁不(隼)〔準〕 者也, 實臣等有靦, 況又歸則違國主之命, 富有蒼蒼之下, 錢帛溢庫, 金銀流地, 何不施其溢而流者以救吾之所求也? 伏望復前約萬幸。 抑有政弘書中所謂銅錢木緜等, 未聽題給, 從謹俟命。 大內殿貴國之同係, 而日本名將也。 爲四國太守, 隣國殆屬指呼, 太平無爲之時, 豈有此求乎? 爲國主者惠蒼生如一子, 矧嫡子新介, 隔千里在軍壘, 豈不愍之耶? 今度義戮力, 新介百戰百勝, 立功勛於蓋代, 大內殿相肩於貴國, 而永固帶礪之盟, 嚴冬有近早, 方物價直題給, 速赴歸途, 本望繁詞瀆尊覽, 宓丐恕容多幸。’ 副官人新右衛門尉又出書契。 其辭曰: ‘伏請要歷覽城中貴寺舍刹殿圓覺寺, 歸路要下安東路, 通事僉正公, 要被相副一木綿, 早早題給, 急可解歸國之纜, 差使員東萊縣監韓公處, 送與書簡而促焉所望也。 貴國白鵝雌雄一雙, 所望爲池上觀, 求恩惠。’" 傳曰: "小小請事, 竝皆聽從。"


  • 【태백산사고본】 45책 28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407면
  • 【분류】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