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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77권, 성종 24년 5월 3일 병인 1번째기사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살인한 사노 만산의 처벌을 논하다

상참(常參)391) 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좌승지(左承旨) 김응기(金應箕)가 형조(刑曹)의 계본(啓本)에 따라 아뢰기를,

"순천(順天)에 사는 사노(私奴) 만산(萬山)이 사노(私奴) 성구지(性仇之)가 탄 말이 제 밭을 밟아 손상하였다 하여 서로 다투다가, 성구지가 양무릎으로 만산의 가슴을 누르니, 만산이 찼던 칼을 뽑아 성구지의 배를 찔러 죽였는데, 죄에 대한 율(律)은 투구고살인(鬪毆故殺人)392) 으로 참대시(斬待時)393) 에 해당합니다."

하니, 임금이 좌우(左右)에서 고문(顧問)하였다. 대사헌(大司憲) 이세좌(李世佐)가 대답하기를,

"찔러 죽인 것은 분명합니다마는, 그 당초의 마음은 죽이려 한 것이 아닙니다."

하고, 김응기가 말하기를,

"그 초사(招辭)394) 를 보면, 떨어지게 하려 하였을 뿐이고, 고살(故殺)395) 이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한성부(漢城部)에 의논하라."

하였다. 윤필상(尹弼商)·노공필(盧公弼)이 의논하기를,

"만산(萬山)성구지(性仇之)와 서로 싸웠으므로, 죽일 마음이 없었더라도, 이미 칼로 배를 찔렀으면 곧 해칠 마음이 있었던 것이 되니, 고살(故殺)로 논하여야 마땅합니다. 투구살(鬪毆殺)로 논하여 사유(赦宥)를 입는다면 아마도 격례(格例)가 될 것이니, 살인을 막는 뜻에 어그러집니다."

하고, 이극균(李克均)·유지(柳輊)·정숭조(鄭崇祖)·김자정(金自貞)·권정(權侹)이 의논하기를,

"신(臣)들이 삼가 《율해변의(律解辯疑)》를 살펴보니, 투구(鬪毆)한 자가 본디 죽일 마음이 없었어도 투구로 말미암아 사람을 죽인 자는 교형(絞刑)에 처하는데, 날붙이로 서로 투구하다가 칼을 썼으면 곧 해칠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 또 싸움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일이 없는데도 죽인 것을 고살(故殺)이라 하는데, 일로 말미암았더라도 병인(兵刃)396) 으로 죽인 자는 고살과 같습니다. 이제 만산(萬山)이 처음에는 죽일 마음이 없었고 또 때리며 싸운 것으로 말미암기는 하였으나, 금인(金刃)397) 을 목숨이 상할 만한 곳에 대었으면 곧 해칠 마음이 있었던 것이므로 고살임을 면하지 못하니, 율에 있어서는 참형(斬刑)에 처하여야 마땅합니다."

하고, 김여석(金礪碩)·이육(李陸)이 의논하기를,

"만산(萬山)성구지(性仇之)에게 궁박(窮迫)당하여 떨어지게 하려는 생각으로 드디어 금인(金刃)을 목숨이 상할 만한 곳에 대었으므로, 때리며 싸우다가 한 짓이기는 하나 살해(殺害)할 마음이 있었던 것이니, 안율(按律)하면 투구살(鬪毆殺)로 논하여야 하겠으나, 실정을 따지면 일이 고살(故殺)에 걸립니다."

하고, 윤효손(尹孝孫)이 의논하기를,

"이미 금인(金刃)으로 배를 찔러 죽였으므로, 이것은 고살(故殺)이니, 때리며 싸우다가 죽인 것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신종호(申從濩)·박원종(朴元宗)이 의논하기를,

"만산(萬山)성구지(性仇之)는 본디 원수지은 것이 없고 한때 싸우다가 금인(金刃)으로 살해하였으나, 《대명률(大明律)》의 투구조(鬪毆條)에, ‘무릇 투구하여 살인한 자는 손발이든 금인이든 다른 물건이든 물론하고 아울러 교형(絞刑)에 처한다.’ 하였으니, 이 율(律)로 결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사유(赦宥) 이전에 있었던 일이니, 성상께서 재단(裁斷)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살인(殺人)은 중대한 죄인데, 고살(故殺)이라면 임금이라도 마음대로 살릴 수 없으니, 투구살(鬪毆殺)인지 고살인지를 의논을 정하여 아뢰라."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정숭조(鄭崇祖)는 아뢰기를,

"금인(金刃)으로 목숨이 상할 만한 곳을 찔러 죽였으니, 이것은 고살(故殺)입니다."

하고, 나머지는 다 아뢰기를,

"투구살(鬪毆殺)로 논하여야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성구지(性仇之)는 나이가 한창이고 힘이 세며, 만산(萬山)은 나이가 적고 힘이 약하므로, 금인(金刃)으로 찌르기는 하였으나, 성구지에게 침해당하여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떨어지게 하려고 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투구살(鬪毆殺)이고 사유(赦宥) 이전에 있었던 일이니, 감사(減死)398) 하여야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277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7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왕실-의식(儀式) / 신분-천인(賤人)

  • [註 391]
    상참(常參) : 임금이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대신(大臣)과 해당 참상관(參上官:6품 이상)을 모아서 매일 열던 평상 조회. 큰 조회는 조참(朝參)이라 함.
  • [註 392]
    투구고살인(鬪毆故殺人) : 서로 싸우다가 때려서 고의로 사람을 죽임.
  • [註 393]
    참대시(斬待時) : 참형(斬刑)에 처하되 가을철 추분(秋分)까지 시기를 기다려서 집행하는 것. 사형은 만물이 쇠하는 추분(秋分) 이후 춘분(春分) 이전에 집행하는 것이 상례(常例)인데, 이때에 집행하는 것을 대시(待時)라 하고, 죄가 극악(極惡)하여 이때를 기다리지 않고 곧 집행하는 것을 부대시(不待時)라 함.
  • [註 394]
    초사(招辭) : 공초(供招)한 사연.
  • [註 395]
    고살(故殺) : 고의로 사람을 죽임.
  • [註 396]
    병인(兵刃) : 병기로 쓰는 날붙이.
  • [註 397]
    금인(金刃) : 날이 있는 쇠붙이.
  • [註 398]
    감사(減死) : 사형에 해당하는 형벌을 감하여 줌.

○丙寅/受常參, 視事。 左承旨金應箕將刑曹啓本啓: "順天居私奴萬山, 以私奴性仇之所騎馬踏損其田, 與之相詰, 性仇之以兩膝壓觸萬山胸膛, 萬山拔所佩刀, 刺性仇之腹肚殺害罪, 律該鬪歐故殺人斬待時。" 上顧問左右。 大司憲李世佐對曰: "刺殺明矣。 但其初心非欲殺之也。" 應箕曰: "觀其招辭, 只欲離却, 非故殺也。" 上曰: "議于議政府、六曹、漢城府。" 尹弼商盧公弼議: "萬山性仇之相鬪, 雖無殺害之心, 旣以刀刺腹, 卽有害心, 當論以故殺。 今若論以鬪毆殺蒙宥, 則恐成格例, 非止殺之義也。" 李克均柳輊鄭崇祖金自貞權侹議: "臣等謹按《律解辨疑》, 鬪毆者原無殺心, 因相毆殺人者絞, 以刃相毆而用刀, 卽有害心, 又非因鬪爭無事而殺, 是名故殺, 雖因事而用兵刃殺者, 與故殺同。 今萬山雖初無殺心, 又因毆鬪, 然至用金刃, 加之致命之處, 卽有害心, 未免故殺, 律當處斬。" 金礪石李陸議: "萬山性仇之所窘, 意在離却, 遂用金刃, 加致命之處, 雖因毆鬪所爲, 便有殺害之心, 按律則當論鬪殺, 原情則事涉故殺。" 尹孝孫議: "旣用金刃, 刺腹肚以殺之, 是故殺, 不可論以因毆鬪而殺。" 申從濩朴元宗議: "萬山性仇之, 本無讎怨, 因一時鬪狠, 用金刃殺害。 《大明律》鬪毆條: ‘凡鬪毆殺人者, 不問手足金刃他物竝絞。’ 斷以此律爲當。 但事在赦前, 伏惟上裁。" 傳曰: "殺人, 罪之重者也。 如其故殺, 雖人主不可擅生之也。 鬪毆殺與故殺定議以啓。" 弼商崇祖則曰: "以金刃刺殺致命處, 此故殺也" 餘皆曰: "當論以鬪毆殺矣。" 傳曰: "性仇之年壯而力强, 萬山年小而力弱, 雖以金刃刺之, 然見侵於性仇之, 不忍其苦, 要以離却耳。 然則鬪毆殺, 而事在赦前, 可減死矣。"


  • 【태백산사고본】 43책 277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7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왕실-의식(儀式) / 신분-천인(賤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