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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12권, 성종 19년 윤1월 15일 경진 2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노사신·유자광 등이 요동에 이르러 사신으로 올 동월에 관하여 치계하다

등극사(登極使) 우의정(右議政) 노사신(盧思愼), 부사(副使) 무령군(武靈君) 유자광(柳子光), 정조사(正朝使) 연원군(延原君) 이숭원(李崇元) 등이 돌아오다가 요동(遼東)에 이르러 치계(馳啓)하기를,

"신 등이 북경(北京)에 있을 적인 정월 19일에 통사(通事) 박효순(朴孝順)이 예부(禮部)에 이르자, 마침 한림 원외랑(翰林院外郞) 마태(馬泰)를 보았는데, 말하기를, ‘나는 시독관(侍讀官) 동월(董越)의 배리(陪吏)입니다. 〈동월은〉 이제 반조 정사(頒詔正使)로 차임되어 그대 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대 나라 사람을 만나 도로의 멀고 가까움을 자세히 묻고자 하니, 그대는 마땅히 가서 만나보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한다 하기에, 이튿날 신 등이 박효순으로 하여금 가서 보고 말하게 하기를, ‘본국 재상(宰相)은 등극(登極)을 하례하는 일로써 입조(入朝)하여 내일은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것인데, 대인(大人)이 조서(詔書)를 받들고 본국에 사신으로 온다는 것을 들었으니, 길을 떠나는 시일을 감히 묻겠습니다.’ 하니, 동월(董越)이 대답하기를, ‘윤정월(閏正月) 11일이나 19일 중에 길을 떠날 것이나, 다만 요새(遼塞)의 추위가 심하여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려서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라고 하고는, 인해 묻기를, ‘전하의 춘추(春秋)가 얼마입니까?’라고 하기에, 박효순이 대답하기를, ‘나는 미천(微賤)한 신하이므로 감히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도로의 원근을 묻기에, 대답하기를, ‘요동에서 의주(義州)까지 8참(站)166) 이고 의주에서 왕성(王城)까지 28참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대 나라의 참마(站馬)167) 의 좋고 나쁨과 교자(轎子)의 사정이 어떻습니까?’ 하기에, 대답하기를, ‘본국의 참로(站路)는 일체 중국과 같아서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는 것은 오직 대인의 편리한 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동월이 말하기를, ‘나는 바로 지금 황제가 동궁(東宮)으로 있을 때의 시강(侍講)입니다. 이전에는 그대 나라 사신을 모두 행인사원(行人司員)으로 차임(差任)하고 당상원(堂上員)을 차임해 보낸 적이 없었는데, 이제 조정에서 그대 나라가 사대(事大)하는 정성이 지극함으로써 특별히 나와 같은 늙은 사람을 사신으로 선발했으니, 이 뜻을 재상에게 말로 전하시오.’라고 하자, 편수관(編修官)이라고 일컫는 이가 자리에 있다가 말하기를, ‘주인(主人)168) 은 동궁의 옛 시강(侍講)으로서 당상관으로 승진되었으니, 그대의 나라에서는 마땅히 존경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212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298면
  • 【분류】
    외교-명(明) / 교통-육운(陸運)

○登極使右議政盧思愼、副使武靈君 柳子光、正朝使延原君 李崇元等還至遼東馳啓曰: "臣等在北京正月十九日, 通事朴孝順到禮部, 適見翰林院外郞馬泰, 曰: ‘我是侍讀董越陪吏。 今以頒詔正使差往汝國, 欲見汝國人, 審問道路遠近。 汝宜往見。’ 翌日臣等令孝順往見語之曰: ‘本國宰相以賀登極入朝, 明日當還。 聞大人奉詔使本國, 敢問起程日時。’ 董越答曰: ‘閏正月十一日、十九日中發程。 但塞寒甚, 欲待天氣向緩發行。’ 仍問殿下春秋幾何? 孝順答曰: ‘吾是微臣, 未敢知道。’ 且問道路遠近, 答曰: ‘自遼東義州, 八站; 自義州至王城, 十八站。’ 且問: ‘汝國站馬良否? 轎子有無?’ 答曰: ‘本國站路一如中朝, 乘馬、乘轎, 惟大人所便。’ 董越曰: ‘我是今皇帝在東宮時侍講。 前此爾國使臣, 皆以行人司員差之, 未有堂上員差往者。 今朝廷以爾國事大至誠, 特以如吾年老之人充使, 此意傳說宰相。’ 有稱編修官者在坐, 曰: ‘主人以東宮舊侍陞爲堂上, 汝國當尊敬之。"


  • 【태백산사고본】 32책 212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298면
  • 【분류】
    외교-명(明) / 교통-육운(陸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