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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78권, 성종 16년 윤4월 13일 계사 1번째기사 1485년 명 성화(成化) 21년

시강관 정성근이 임금이 사치를 경계해야 함을 아뢰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시강관(侍講官) 정성근(鄭誠謹)이 아뢰기를,

"요사이 들으니, 못[池塘]에 물을 끌어들이는 수통(水桶)을 구리를 녹여 만든다 하니, 신은 생각건대, 불가하다고 여깁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주(紂)531)상저(象箸)532) 를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배(玉杯)를 만들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록 작은 물건이지만, 그 조짐이 장차 우려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통명전(通明殿) 앞에 샘물이 있어서 뜰로 넘치기 때문에, 이것을 끌어서 못으로 들이고자 하여 동철(銅鐵)을 가지고 물을 끌어들이는 수통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견고해서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취한 것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살피지 아니하고 말하느냐?"

하였다. 장령(掌令) 박안부(朴安阜)가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이 일을 듣지 못하였으나, 지금 정성근의 말이 매우 옳습니다. 원컨대 채납(採納)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은미(隱微)한 일이 아니고, 그것을 만드는 지가 여러 날이 되었는데, 어째서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고 하느냐?"

하였다. 박안부가 아뢰기를,

"신은 실로 듣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들었다면, 신은 비록 불초(不肖)하지만, 부원(府員)이 한 사람뿐이 아닌데, 어찌 계달(啓達)하는 자가 없었겠습니까? 이것은 비록 작은 일이나, 그 조짐이 반드시 사치(奢侈)한 데에 이를 것입니다. 하물며 이것을 사필(史筆)에 쓰고 만세(萬世)에 전할 것이니, 후세(後世)에 기롱(譏弄)함이 없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사관(史官)은 마땅히 본 바를 직서(直書)해야 할 것이다. 내가 사치를 좋아함이 아니다."

하였다. 정성근이 아뢰기를,

"옛날에 이르기를, ‘검소한 덕을 삼가서 영원한 계책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만약 사치하지 않다고 하여 소홀히 한다면, 후사왕(後嗣王)533) 이 반드시 본받아 사치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무는 썩기 쉽고 돌은 공력(功力)이 더욱 많이 들기 때문에, 동(銅)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하였다. 시독관(侍讀官) 김응기(金應箕)가 아뢰기를,

"《대전(大典)》 안에 ‘판결[決折]한 당상(堂上)과 방장(房掌)534) 이 체대(遞代)된 뒤에 오결(誤決)을 정소(呈訴)하여, 3년이 경과한 것은 청리(聽理)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는데, 외방(外方)의 수령(守令)들이 《대전》의 본의(本意)를 살피지 아니하고, ‘당상과 방장이라’고 말한 것을 경관(京官)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외방(外方)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외방에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여, 비록 3년이 경과하였더라도 아울러 청리하도록 허락하므로 이로 인해 송자(訟者)가 더욱 번성(繁盛)합니다. 청컨대 중외(中外)가 한결같이 《대전》에 따르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전》의 법을 어찌 중외에서 달리 사용할 수 있겠는가? 이 뜻을 여러 도(道)에 하유(下諭)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178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10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역사-편사(編史) / 사법-법제(法制) / 건설-토목(土木)

  • [註 531]
    주(紂) : 은(殷)나라의 최후의 임금.
  • [註 532]
    상저(象箸) : 상아로 만든 젓가락.
  • [註 533]
    후사왕(後嗣王) : 뒤를 잇는 임금.
  • [註 534]
    방장(房掌) : 육방(六房)의 분장(分掌). 여기서는 형방(刑房)의 관원을 말함.

○癸巳/御經筵。 講訖, 侍講官鄭誠謹啓曰: "近聞池塘引水桶, 鑄銅爲之, 臣意以爲不可。 古人云: ‘彼爲象著, 必爲玉杯。’ 此雖微物, 其漸至可慮也。" 上曰: "通明殿前有泉水溢於庭, 欲導之納池, 以銅鐵爲引水桶, 只取其堅確可久也。 爾何不察而言之?" 掌令朴安阜啓曰: "臣未曾聞此事, 今誠謹之言, 甚是。 願採納。" 上曰: "此非隱微事, 其作之有日, 何云不曾聞耶?" 安阜曰: "臣實不聞。 若聞則臣雖不肖, 府員非一, 豈無啓達者乎? 此雖微事, 其漸必至於侈。 況書之史筆, 垂之萬世, 其無後世之譏乎?" 上曰: "史官當以所見直書之矣。 予非好侈也。" 誠謹曰: "古云: ‘愼乃儉德, 惟懷永圖。’ 今若不以爲侈而忽焉, 則後嗣王必效而爲侈。" 上曰: "以木則易朽, 以石則用功尤多, 故以銅爲之耳。" 侍讀官金應箕啓曰: "《大典》內: ‘決折堂上及房掌遞代後呈誤決過三年者, 勿聽。’ 外方守令不察《大典》本意, 以爲所謂堂上、房掌云者, 指京官言也, 非指外方也。 外方則不然, 雖過三年, 竝許聽理, 以是訟者益繁。 請中外一從《大典》。" 上曰: "《大典》之法, 豈可中外異用乎? 其將此意, 下諭諸道。"


  • 【태백산사고본】 27책 178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10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역사-편사(編史) / 사법-법제(法制) / 건설-토목(土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