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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33권, 성종 12년 9월 2일 계유 2번째기사 1481년 명 성화(成化) 17년

천추사 서장관 신종호가 북경에서 와서 바친 문견 사건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書狀官) 신종호(申從濩)가 북경[京師]으로부터 와서 문견 사건(聞見事件)을 바쳤는데, 【정사(正使) 홍귀달(洪貴達)은 어미의 상(喪)으로 인하여 먼저 돌아왔다.】 그 내용에 이르기를,

"1. 어느 날 회동관 대사령(會同館大事領)의 인부[役徒]가 옥하관(玉河館)에 와서 스스로 집안과 뜰을 청소하고, 또 따로 옷을 갈아입을 장막을 설치하여 금수(錦繡)를 화려하게 꾸며 놓으므로, 통사(通事)로 하여금 물어 보게 하였는데, 대답하기를, ‘내일 상마연(上馬宴)에 태감(太監) 왕직(汪直)이 와서 압연(押宴)688) 할 것이다.’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왕직은 나이 15세에 처음 군사(軍士)를 거느렸는데, 지금은 나이 약 27, 8세이다. 용모(容貌)가 비록 빼어나지는 못하지만, 장수로서의 재능(才能)이 있어서 여러 번 변경(邊境)의 공(功)을 세웠다. 황제(皇帝)께서 그가 상언(上言)하면 들어주고 계략을 따르고 하니, 살리고 죽이는 권한이 그의 손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레·말·복종(僕從)들이 거리를 메우는데, 한 번 돌아보면 좌우에서 모두 다리가 떨려 숨조차 쉬지 못하고,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를 못한다.’ 하였습니다.

1. 6월 보름 이후부터 장맛비가 그치지 아니하므로, 홍귀달(洪貴達)과 신이 예부 상서(禮部尙書) 주홍모(周洪謨)에게 글을 바치기를, ‘황제[皇明]께서 어지심이 천하(天下)를 덮으므로, 사해(四海)의 안팎에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오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우리 조선에서는 예전부터 술직(述職)689) 하며 대대로 충정(忠貞)을 돈독하게 하였으므로, 따라서 황제의 은혜를 입은 것이 다른 제후국(諸侯國)보다 더하였으며, 매년 조빙(朝聘)으로 왕래할 때 도중에 먹이고 재우는 데 있어서도 오래도록 변함이 없었으니, 어찌 그 은혜를 감당하겠습니까? 신 등이 천추절(千秋節)의 진하사(進賀使)로 전에 중국 조정(中國朝廷)에 올 때에도 연로(沿路)의 거마(車馬)와 음식(飮食)에 있어서 뜻에 맞지 아니함이 없었고, 겸하여 비로 인해 길이 막히는 근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리(行李)가 조금도 지체되지 아니하여 50일 만에 북경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0여일 동안 머물면서 또 황제의 은혜를 거듭 입어 먹고 마시고 편히 자니, 일찍이 나그네의 고생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먼 곳의 신하로서 일찍이 천자(天子)의 뜰을 밟지 못하였었는데, 또 어떻게 지극하신 황제의 은혜가 이에 이를 것을 알았겠습니까? 단지 듣건대 우리 나라에서 전에 중국 조정에 왔던 자가 말하기를, 「연로(沿路)의 관역(館驛)에서 왕래하는 사자(使者)를 대접하기를 하루의 아침과 저녁을 공급(共給)하는 외에 혹 병들어서이거나 혹은 장마에 길이 막혀서 머물러 지체하는 자는 비록 순월(旬月)690) 이 되어도 결단코 대접하지 아니하므로, 사자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의복(衣服)을 팔아서 위급함을 구제하니, 끝내 알몸이 되기에 이른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중국 조정의 본뜻으로 그러하였겠습니까? 생각건대 이는 반드시 외방의 관리들이 잘못 봉행(奉行)하는 소치(所致)일 것입니다. 신 등이 돌아갈 때 만약 올 때와 같다면 좋겠지만, 7, 8월 동안에는 항상 흙비가 많이 내리는데, 만약 이러한 근심이 있다면 신 등도 반드시 전철(前轍)을 밟게 될 것이니, 이 어찌 황조(皇朝)에서 먼 곳의 사람을 회유(懷柔)하고 가는 사람을 후하게 대접한다는 본뜻에 위배되지 않겠습니까? 빌건대 간절한 소망을 아뢰어 시행해 주소서.’ 하니, 상서(尙書)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므로, 마땅히 곧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부(禮部)에서 독단(獨斷)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곧 병부(兵部)에 이문(移文)하여 그 편부(便否)를 함께 의논할 것이니, 그대들이 돌아갈 때에는 반드시 이러한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13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254면
  • 【분류】
    외교-명(明)

  • [註 688]
    압연(押宴) : 잔치를 주관함.
  • [註 689]
    술직(述職) : 제후(諸侯)가 조회(朝會)하여 자기가 맡은 직무에 관하여 천자(天子)에게 아뢰는 일.
  • [註 690]
    순월(旬月) : 열흘에서 달포 가량.

○千秋使書狀官申從濩, 回自京師, 上聞見事件 【使洪貴達, 奔母喪先還。】 "一, 一日, 會同館大事領役徒, 到玉河館, 親自灑掃庭宇, 又別設幄帳更衣之所, 錦繡交錯, 令通事問之, 答曰: ‘明日上馬宴, 汪太監 , 來押宣矣。’ 因言曰: ‘年十五, 始管軍, 今年約二十七八。 貌雖不揚, 有將才, 屢立邊功。 皇上言聽計從, 殺活與奪, 皆在其手云。 及輿、馬、僕從塡街, 一有顧眄, 左右皆股栗脅息, 莫敢仰視。’ 一, 自六月望後, 霖雨不止, 洪貴達與臣, 呈文于禮部尙書周洪謨曰: ‘欽惟, 皇明仁覆天下, 薄海內外, 罔不梯航。 我朝鮮述職惟舊, 世篤忠貞, 皇恩之被, 視諸藩有加, 每於朝聘往還, 道途館穀之勤, 愈久不替, 曷勝荷戴? 臣等蒙差千秋節進賀使, 前赴朝廷, 沿路車馬飮食, 無不如意, 兼無雨水阻礙之患, 故行李未嘗少滯, 在途五十日, 得達于京師。 留四十餘日, 又蒙皇恩稠疊, 每飮食安眠, 曾不知覉旅之艱難。 遠臣之未嘗履天子之庭者, 又安知皇恩之至於此哉? 第聞我國前此來朝者, 有曰: 「沿路館驛, 待往還使者, 除一朝夕供給外, 或病患, 或阻雨水留滯者, 雖旬月之久, 斷不饋餉, 使者不勝飢羸, 盡賣衣服, 以救其急, 終至赤身而立。」 是豈朝廷之本意然哉? 意必外吏失於奉行之致耳。 臣等之還, 若如來時, 則善矣, 七八月之間, 恒多霾雨, 脫有此患, 則臣等必復蹈前轍矣, 豈不有違於皇朝柔遠厚往之本意歟? 乞將卑懇聞奏施行。’ 尙書答曰: ‘此非細事, 當立改。 然非禮部所能獨斷, 卽當移文于兵部, 共議便否, 爾等之還, 必無此弊矣。"


  • 【태백산사고본】 20책 13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254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