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 107권, 성종 10년 8월 30일 계축 4번째기사
1479년 명 성화(成化) 15년
영안도 관찰사와 절도사 등에게 삼봉도 토벌을 준비시키고 널리 알리게 하다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덕량(李德良)·남도 절도사(南道節度使) 이흠석(李欽石)·북도 절도사(北道節度使) 신주(辛鑄)에게 유시하기를,
"이제 경차관(敬差官) 신중거(辛仲琚)가 와서 말하기를, ‘본도(本道)의 인민이 차역(差役)을 도피(逃避)하여 몰래 삼봉도(三峯島)로 가서 그 수(數)가 무려 천여 명이나 된다.’고 하니,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소재(所在) 고을의 수령(守令)이 능히 무휼(撫恤)하지 못한 소치(所致)이다. 그러나 국가를 배반하고 절도(絶島)에 투신하여 갔으니, 죄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대병(大兵)을 동원하여 토벌하려고 하니, 경(卿) 등은 다 이 뜻을 알고, 초마선(哨麻船) 50척[艘]을 제조하여서 기다리라. 저들이 만약 스스로 죄과(罪過)를 알고 회오(悔悟)하여 나오면 마땅히 그 죄를 다 용서하고, 중한 상(賞)을 더할 것이며, 만일 혹 집미(執迷)548) 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무찔러 없애버리고 남음이 없게 할 것이니, 뉘우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경(卿) 등은 아울러 이 뜻을 두루 알리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07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49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군사-군기(軍器) / 호구-이동(移動)
- [註 548]집미(執迷) : 고집세고 명민(明敏)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