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지 / 전라도 / 제주목 / 대정현
◎ 대정현(大靜縣)
감(監) 1인. 【겸 감목관(兼監牧官). 】
본래 제주서도(濟州西道)이었는데, 본조 태종(太宗) 16년 병신에 비로소 현감을 두었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쪽으로 정의(旌義)에 이르기 35리, 남쪽으로 큰 바다에 이르기 10리, 서·북쪽으로 제주에 이르기 27리다.
호수가 1천 3백 57호요, 인구가 8천 5백 명이다. 군정은 마군(馬軍)이 2백 2명이요, 보군(步軍)이 4백 68명이다.
땅이 메마르며, 간전(墾田)이 2천 2백 27결이요, 【논이 85결이다. 】 토의(土宜)가 밭벼[山稻]·조·피·팥·메밀·밀보리이다. 토공(土貢)이 전복·표고·우무·미역·다시마·비자·감귤·유감(乳柑)·동정귤(洞庭橘)·청귤(靑橘)이요, 약재가 후박(厚朴)·탱자[枳實]·석골풀[石]·팔각(八角)·두충(杜沖)·끼무릇뿌리[半夏]·치자(梔子)·향부자(香附子)·푸른귤껍질[靑皮]·묵은 귤껍질[陳皮]·엄나무껍질[海東皮]·영릉향(零陵香)이다. 목장 【말이 2천 9필이다. 】
읍 석성(邑石城) 【둘레가 1천 1백 79보(步)이다. 】 봉화가 4곳이니, 현의 동쪽 구산(仇山) 【동쪽으로 거옥악(居玉岳)에 응한다. 】 ·거옥악(居玉岳) 【동쪽으로 정의(旌義)의 삼매양(三每陽)에 응한다. 】 ·현의 남쪽 저리별이(貯里別伊) 【서쪽으로 모슬포악(毛瑟浦岳)에 응한다. 】 ·모슬포악(毛瑟浦岳) 【서쪽으로 차귀악(遮歸岳)에 응한다. 】 ·차귀악(遮歸岳) 【서쪽으로 제주 판포악(板浦岳)에 응한다. 】이다.
배가 왕래하는 곳이 3이 있으니, 나주(羅州)에서 떠나면 무안(務安)의 대굴포(大堀浦)와 영암(靈巖)의 화무지(火無只)·와도(瓦島)와 해진(海珍)의 어란량(於蘭梁)을 지나서 대개 7주야 걸려 주자도(舟子島)에 이르며, 해진에서 떠나면 삼촌포(三寸浦)를 따라 거요량(巨要梁)·삼내도(三內島)를 지나고, 강진(康津)에서 떠나면 군영포(軍營浦)를 따라 고자(高子)·황이(黃伊)·노슬도(露瑟島)·삼내도(三內島)를 지나서 모두 3주야 걸려 주자도에 이른다. 위의 3곳의 배가 모두 이 섬을 지나서 사서도(斜鼠島)·대화탈도(大火脫島)·소화탈도(小火脫島)를 지나 제주 애월포(涯月浦)와 조천관(朝天館)에 이른다. 대개 화탈(火脫) 사이에는 두 줄기 해수(海水)가 섞여 흐르므로 파도가 몹시 사나와서 무릇 왕래하기가 힘들다.
- 【태백산사고본】 55책 151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67면
◎ 大靜: 縣監一人, 【兼監牧官】 本濟州西道。 本朝太宗丙申, 始置縣監。 四境, 東距旌義三十五里, 南距大海十里, 西北距濟州二十七里。 戶一千三百五十七, 口八千五百。 軍丁, 馬軍二百二名, 步軍四百六十八名。 厥土塉, 墾田二千二百二十七結。 【水田八十五結。】 土宜, 山稻、粟、稷、小豆、蕎麥、麰麥。 土貢, 全鮑、蔈膏、牛毛、藿、昆布、榧子、柑橘、乳柑、洞庭橘、靑橘。 藥材, 厚朴、枳實、石斛、八角、杜沖、半夏、梔子、香附子、靑皮、陳皮、海東皮、零陵香。 牧場。 【馬二千九匹】 邑石城。 【周回一千一百七十九步。】 烽火四處, 縣東仇山、 【東準居玉岳。】 居玉岳、 【東準旌義 三每陽。】 縣南貯里別伊、 【西準毛瑟浦岳】 毛瑟浦岳、 【西準遮歸岳。】 遮歸岳。 【西準濟州 板浦岳。】 舟子往來處有三, 發羅州則歷務安 大堀浦、靈巖 火無只 瓦島、海珍 於蘭梁, 凡七晝夜, 至舟子島; 發海珍則從三寸浦, 歷巨要梁、三內島; 發康津則從軍營浦, 歷高子、黃伊、露瑟島、三內島, 皆三晝夜, 至舟子島。 右三處舟子, 皆經此島, 過斜鼠島、大小火脫島, 至于濟州 涯月浦 朝天館。 盖火脫之間, 二水交流, 波濤洶湧, 凡往來者, 難之。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五十一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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