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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49권, 지리지 충청도 청주목 신창현

지리지 / 충청도 / 청주목 / 신창현

신창현(新昌縣)

본래 백제굴직현(屈直縣)인데, 신라에서 기량현(祁梁縣)으로 고쳐 탕정군(湯井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顯宗) 9년에 천안(天安) 임내에 붙였고, 공양왕(恭讓王) 3년 신미에 조전성(漕轉城)을 현의 서쪽 장포(獐浦)에 쌓고 비로소 만호 겸 감무(萬戶兼監務)를 두었다. 본조(本朝) 태종(太宗) 원년 임신에 만호를 폐하고 감무를 두었고, 태종 14년 갑오에 온수(溫水)에 합쳐서 온창현(溫昌縣)으로 고쳤다가, 병신188) 에 다시 갈라서 신창 현감을 두었다.

도고산(道高山) 【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온수(溫水)에 이르기 6리, 서쪽으로 천안(天安)에 이르기 13리, 남쪽으로 예산(禮山)에 이르기 14리, 북쪽으로 아산(牙山)에 이르기 7리이다.

호수가 3백 38호요, 인구가 1천 5백 55명이다.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12명이요, 진군(鎭軍)이 28명, 선군(船軍)이 63명이다.

토성(土姓)이 4이니, 표(表)·맹(孟)·방(方)·조(趙)요, 촌성(村姓)이 1이니, 노(盧)요, 창덕역(昌德驛)의 속성(續姓)이 1이니, 이(李)이다.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기후가 차다. 간전(墾田)이 3천 64결이요, 【논이 좀 적다. 】 토의(土宜)는 오곡과 조이다. 토공(土貢)은 잉어[鯉魚]·모과[木瓜]·족제비털·잡깃이요, 약재(藥材)는 속서근풀[黃芩]·백출(白朮)이다.

성황당산 석성(城隍堂山石城)은 현의 서쪽 2리에 있다. 【둘레가 2백 53보(步)이며, 〈지세가〉 험조(險阻)하다. 안에 우물이나 샘이 없다. 】 역(驛)이 1이니, 창덕(昌德)이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29면

新昌縣: 本百濟 屈直縣, 新羅改爲祁梁縣, 爲湯井郡領縣, 高麗改今名。 顯宗戊午, 屬天安任內。 恭讓王三年辛未, 築漕轉城於縣西獐浦, 始置萬戶, 兼監務。 本朝太宗元年壬申, 革萬戶, 置監務。 太宗十四年甲午, 竝於溫水, 改號溫昌縣, 丙申, 復析置新昌縣監。 道高山 【在縣南十里。】 四境, 東距溫水六里, 西距天安十三里, 南距禮山十四里, 北距牙山七里。 戶三百三十八, 口一千五百五十五。 軍丁, 侍衛軍十二, 鎭軍二十八, 船軍六十三。 土姓四, ; 村姓一, 昌德驛續姓一, 。 厥土肥塉相半, 風氣寒。 墾田三千六十四結。 【水田差少】 土宜五穀, 粟。 土貢, 鯉、木瓜、黃毛、雜羽。 藥材, 黃芩、白朮。 城隍堂山石城, 在縣西二里。 【周回二百五十三步, 險阻, 內無井泉。】 驛一, 昌德


  • 【태백산사고본】 53책 149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