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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9권, 오례 길례 의식 친제 사직의 거가 출궁

오례 / 길례 의식 / 친제 사직의 / 거가 출궁

◎ 거가 출궁(車駕出宮)

출궁(出宮)하기 전 3일에 유사(攸司)가 내외(內外)에 선포하여 각기 그 직무에 이바지하게 하고, 제사지내기 전 1일 주루(晝漏)의 상수 1각(上水一刻)에 북[鼓]을 쳐서 1엄(嚴)을 삼고, 통례문(通禮門)이 배제(陪祭)할 문무 군관(文武群官)의 자리[位]를 궐문(闕門) 밖에 설치하는데, 문관(文官)은 동쪽, 무관(武官)은 서쪽에 설치하되, 서로 대(對)해서 모두 겹줄[重行]로 하고, 북쪽을 위[上]로 한다. 배제(陪祭)할 군관(群官)은 각기 조복(朝服)을 갖춘다.

3각(刻)에 북을 쳐서 2엄을 삼고, 판통례가 꿇어앉아 중엄을 아뢴다. 배제할 군관이 모두 궐문 밖에 모이고, 【여러 제관(祭官)은 먼저 제소(祭所)로 나아간다. 】 병조(兵曹)에서 대가(大駕)의 노부(鹵簿)를 궐문 밖에 진열한다.

5각에 북을 쳐서 3엄을 삼고, 여러 위(衛)의 소속이 각기 그 대(隊)를 독려하여 전정(殿庭)에 들어가서 늘어선다. 봉례랑(奉禮郞)이 배제할 군관을 인도하여 문외위(門外位)에 나아가고, 시위(侍衛)하는 관원이 각기 그 기구와 복색[器服]을 갖추고, 총제(摠制) 이하 좌우 시신(左右侍臣)이 모두 근정전(勤政殿)의 서계(西階)로 나아가서 봉영(奉迎)한다. 판사복(判司僕)이 상로(象輅)를 근정문 앞에 내어서 남향하게 하고, 천우 장군(千牛將軍) 한 사람이 장도(長刀)를 잡고 노 앞에 북향하여 선다. 지통례(知通禮)가 판통례 앞에 있고, 통찬 사인(舍人) 두 사람이 지통례의 앞에 있다. 판통례가 꿇어앉아서 외판(外辦)을 아뢰면, 판사복이 옷을 걷고 올라가서 정립(正立)하여 고삐를 잡고, 전하(殿下)가 관포(冠袍)를 갖추고 여(輿)에 타고 나오시어 서계(西階)로 내려온다. 악부(樂部)는 달아만 놓고 연주하지 않는다. 천우 장군이 앞으로 나아가서 고삐를 잡고, 전하가 여에서 내려 노에 오르면, 판사복이 서서 수(綬)194) 를 준다. 총제 이하의 시신이 양쪽에서 모시기를 보통 때와 같이 한다. 지통례가 앞으로 나아가 노 앞에서 꿇어앉아 거가의 진발(進發)을 계청(啓請)하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서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간다. 【무릇 지통례가 계청(啓請)할 때에는 다 거가 앞에 나아가서 꿇어앉아 아뢰고, 이를 마치면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난다. 】 거가가 움직이면, 지통례와 통찬이 양쪽에서 인도하여 나오고, 천우 장군이 노를 옆에서 모시고 추창(趨蹌)한다.

거가가 궐문 밖을 나와서 시신의 상마소(上馬所)에 이르면, 지통례가 꿇어앉아서 계청(啓請)하기를,

"거가가 잠시 머물러서 문무 시신의 상마를 명하소서."

한다. 판통례가 앞으로 나아가 교지를 받고 물러와서 칭(稱)하기를,

"가하다고 명하시었다."

고 하고, 통찬·사인이 전갈(傳喝)하여, 문무 시신이 말[馬]에 오른다. 여러 시위하는 관원이 각기 그 소속을 독려하여 좌우에서 거가를 돕게 하고, 상서관(尙瑞官)이 보를 받들고 전도(前導)한다. 그리고 총제 이하 좌우 시신이 노 앞에서 양쪽에서 모신다. 문무 시신이 말에 오르기를 마치면, 지통례가 계청(啓請)하기를,

"거우(車右)195) 가 오를 것을 명하소서."

한다. 판통례가 앞으로 나아가 교지를 받고 물러와서 칭하기를,

"가하다고 명하시었다."

고 하면, 지통례는 물러나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천우 장군이 오르고 나면, 지통례가 거가의 진발(進發)을 계청하고, 물러나서 제자리로 돌아온다. 거가가 움직이는 데는 고취(鼓吹)를 울리지 아니하고, 훤화(喧嘩)할 수 없으며, 그 배제할 관원들은 현무대(玄武隊) 뒤에 있는 것이 보통 때의 의식과 같다. 거가가 장차 재궁(齋宮)에 도착하면, 문무 시신이 말에서 내려 나누어 서서 국궁(鞠躬)하고, 여러 제관들은 각기 조복을 갖추고, 알자가 인도하여 재궁 문밖에 동향하고 남쪽을 위[上]로 하여 서서, 거가를 바라보고 모두 국궁하여 봉영한다.

거가가 재궁의 남문 밖에 이르러 노를 돌려서 남향하고, 천우 장군이 내려서 노의 오른편에 선다. 지통례가 노 앞으로 나아가서 계청(啓請)하기를,

"노에서 내리소서."

하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서 돌아와 시립(侍立)하면, 전하가 노에서 내려서 여를 타고 재궁으로 들어간다. 산선(繖扇)과 화개(華蓋)의 시위는 보통 때의 의식과 같다. 통례문(通禮門)이 왕세자(王世子) 이하 행사 집사관(行事執事官)과 배제할 문무 군관을 나누어 인도하여 재궁 남쪽에 모이게 하는데, 문관은 동쪽, 무관은 서쪽이다. 사인이 교지를 받들어,

"군관은 각기 막차[次]로 나아가라."

하고, 숙위(宿衛)하기를 보통 때와 같이 한다. 교서 관원(校書館員)이 축판(祝版)을 받들어 올리면, 근신(近臣)이 전해 받들어 올리는데, 전하께서 서명하기를 끝내면, 근신이 받들고 나와서 단사(壇司)에게 준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129권 3장 B면【국편영인본】 5책 234면

  • [註 194]
    수(綬) : 수레 고삐.
  • [註 195]
    거우(車右) : 거가의 오른쪽에 타는 무사(武士).

◎ 車駕出宮

前出宮三日, 攸司宣攝內外, 各供其職。 前祭一日, 晝漏上水一刻, 槌鼓爲一嚴。 通禮門設陪祭文武群官位於闕門外, 文東武西相對, 俱重行北上。 陪祭群官, 各具朝服。 三刻槌鼓, 爲二嚴, 判通禮跪啓中嚴。 陪祭群官俱集闕門外, 【諸祭官先詣祭所。】 兵曹陳大駕鹵簿於闕門外。 五刻槌鼓, 爲三嚴。 諸衛之屬, 各督其隊入, 陳於殿庭。 奉禮郞引陪祭群官, 就門外位。 侍衛之官, 各服其器服。 摠制以下左右侍臣, 俱詣勤政殿西階奉迎。 判司僕進象輅於勤政門前南向, 千牛將軍一人執長刀立於輅前北向, 知通禮在判通禮之前, 通贊舍人二人在知通禮之前。 判通禮跪啓外辦, 判司僕攝衣而升, 正立執轡, 殿下服冠袍, 乘輿以出, 降自西階, 樂部懸而不作。 千牛將軍前執轡, 殿下降輿乘輅, 判司僕立授綏, 摠制以下侍臣夾侍如常。 知通禮進當輅前跪, 啓請車駕進發, 俛伏興退復位。 【凡知通禮啓請, 皆進駕前跪啓訖, 俛伏興。】 車駕動, 知通禮與通贊夾引以出, 千牛將軍夾輅而趨。 駕出闕門外, 至侍臣上馬所, 知通禮跪, 啓請車駕小駐, 敎文武侍臣上馬, 判通禮前承旨, 退稱曰: "敎可。" 通贊舍人傳喝, 文武侍臣上馬, 諸侍衛之官, 各督其屬, 左右翊駕。 尙瑞官捧寶前導, 摠制以下左右侍臣夾侍於輅前。 文武侍臣上馬畢, 知通禮啓請敎車右升, 判通禮前承旨, 退稱曰: "敎可。" 知通禮退復位。 千牛將軍升訖, 知通禮啓請車駕進發, 退復位。 車駕動, 不鳴鼓吹, 不得喧嘩。 其陪祭之官, 在玄武隊後如常儀。 車駕將至齋宮, 文武侍臣下馬, 分立鞠躬。 諸祭官各具朝服, 謁者引立於齋宮門外, 東向南上, 望駕皆鞠躬奉迎。 駕至齋宮南門外, 回輅南向, 千牛將軍降立於輅右。 知通禮進當輅前, 啓請降輅, 俛伏興還侍立, 殿下降輅, 乘輿入齋宮, 繖扇華蓋侍衛如常儀。 通禮門分引王世子以下行事執事官及陪祭文武群官, 集齋宮之南, 文東武西。 舍人承旨, 敎群官各就次, 宿衛如常。 校書館員以祝版捧進, 近臣傳捧以進, 殿下署訖, 近臣奉出, 附壇司。


  • 【태백산사고본】 41책 129권 3장 B면【국편영인본】 5책 2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