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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4권, 세종 1년 5월 14일 무오 1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전함을 폐지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각도와 각 포구에 비록 병선은 있으나, 그 수가 많지 않고 방어가 허술하여, 혹 뜻밖의 변을 당하면, 적에 대항하지 못하고 도리어, 변환(邊患)을 일으키게 될까 하여, 이제 전함(戰艦)을 두는 것을 폐지하고 육지만을 지키고자 한다."

하니, 판부사 이종무와 찬성사 정역(鄭易)들이 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바다에 접해 있으니, 전함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전함이 없으면, 어찌 편안히 지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지강(李之剛)이 아뢰기를,

"고려 말년에 왜적이 침노하여 경기까지 이르렀으나, 전함을 둔 후에야 국가가 편안하였고, 백성이 안도하였나이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사검이덕생 들이 병선 5척으로 적에게 포위당하고, 실었던 쌀 45석을 주었으나, 이것은 양책(良策)이 아니다. 그러나 주지 않으면 반드시 해를 입게 되니, 부득이 준 것이다."

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5척의 병선으로 38척을 가진 적에게 포위당하였으니, 싸우면 패할 것이므로, 쌀을 주어 일단 안심하게 한 뒤에 원병을 기다린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적이 만일 병선이 많이 모일 것을 알면, 병선이 오기 전에 반드시 먼저 급히 쳐 올 것이니, 이것이 실로 염려되는 바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16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기(軍器) / 역사-고사(故事)

    ○戊午/視事。 上曰: "各道各浦, 雖有兵船, 其數不多, 防禦虛疎, 或致不虞之變, 未能應敵, 以致邊患, 今欲罷戰艦爲陸守。" 判府事李從茂、贊成事鄭易等對曰: "我國濱海, 戰艦不可無也。 若無戰艦, 則何以自安?" 李之剛對曰: "高麗之季, 倭賊侵擾, 至于京畿, 及置戰艦, 而後國家奠安, 民人按堵。" 上曰: "李思儉李德生等以兵船五艘, 見圍於賊, 給所載米四十五斛, 是非良策也。 然不給, 則必見害, 不得已而應之者也。" 僉曰: "以五艘兵船, 見圍於三十八艘之賊, 戰則必敗, 故給米緩之, 以待援兵也。" 上曰: "賊若知兵船之群聚, 則當其未至之時, 必先急攻矣。 此實可慮也。"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16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기(軍器)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