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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62번째기사

태조가 서해도에 침구한 왜적을 해주에서 격퇴하다

8월, 왜적서해도(西海道)신주(信州)·문화(文化)·안악(安岳)·봉주(鳳州)를 침구(侵寇)하니 원수(元帥) 찬성(贊成) 양백익(梁伯益)·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나세(羅世)·지문하(知門下) 박보로(朴普老)·도순문사(都巡問使) 심덕부(沈德符) 등이 패전하여 장수를 보내어 조전(助戰)하기를 청하매, 우왕태조와 문하 평리(門下評理) 임견미(林堅味)·변안열(邊安烈), 밀직 부사(密直副使) 유만수(柳蔓殊)·홍징(洪徵)으로 조전(助戰)하게 하였다. 원수(元帥) 안열(安烈)·견미(堅味) 등이 해주(海州)에서 싸우다가 모두 패하여 달아났다. 태조가 장차 싸우려고 투구를 백 수십 보(步) 밖에 놓고 시험해 이를 쏘아, 싸움에 이길까 못 이길까를 점쳐 보았는데, 마침내 세 번 쏘아 모두 꿰뚫었으므로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알겠다."

하였다. 해주(海州)의 동쪽 정자(亭子)에서 싸우는데, 싸움이 한창일 때에 넓이가 한발[丈]이나 넘는 진창의 땅을 만났다. 태조의 말은 한번 뛰어서 지나갔으나, 따라간 사람은 모두 건너지 못하였다. 태조는 대우전(大羽箭)으로 적을 쏘았는데, 17번 쏘아서 모두 이들을 죽였다. 이에 군사를 놓아 이 형세를 이용하여 마침내 적군을 크게 부수었다. 이 싸움에서 태조가 처음에는 대우전(大羽箭) 20개를 가졌었는데, 싸움이 끝나매 화살 3개가 남았다. 측근의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모두 왼쪽 눈초리를 쏘았다."

하므로, 측근의 사람들이 나아가서 보니 다 맞았다. 남은 적군들이 험지(險地)에 의거하여 섶[柴]을 쌓아 스스로 튼튼하게 하였다. 태조는 말에서 내려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음악을 베풀게 하니, 중[僧] 신조(神照)가 고기를 베어 술을 올렸다. 태조는 사졸들에게 명하여 섶을 불지르게 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가득찼다. 적군이 곤경(困境)에 빠져서 죽을 힘을 내어 충돌(衝突)하였다. 화살이 자리 앞[座前]에 있는 술병에 맞았으나, 태조는 편안히 앉아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김사훈(金思訓)·노현수(魯玄受)·이만중(李萬中) 등에게 명하여 이들을 쳐서 거의 다 죽였다. 이때 왜적이 우리 나라 사람을 사로잡으면 반드시 이성계(李成桂) 만호(萬戶)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를 묻고, 감히 태조의 군사에게는 가까이 오지 못하고 반드시 틈을 엿보고서야 들어와 침구(侵寇)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7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역사(歷史) / 군사(軍事)

○八月, 西海道 信州文化安岳鳳州, 元帥贊成梁伯益、判開城府事羅世、知門下朴普老、都巡問使沈德符等敗績, 請遣將助戰。 太祖及門下評理林堅味邊安烈、密直副使柳蔓殊洪徵爲助戰。 元帥安烈堅味等戰於海州, 皆奔潰。 太祖將戰, 置兜鍪於百數十步外試射之, 以卜勝否。 遂三發皆洞貫, 曰: "今日之事, 可知", 戰於州之東亭子。 戰方酣, 遇泥濘之地丈餘, 太祖之馬一踴而過, 從者皆不得度。 太祖以大羽箭, 射賊十七, 發皆斃之, 乃縱兵乘之, 遂大破之。 是戰也, 太祖初御大羽箭二十, 及戰罷, 餘三矢。 謂左右曰: "吾皆射左目眥。" 左右就視之, 盡驗矣。 餘賊阻險, 積柴自固。 太祖下馬, 據胡床張樂, 僧神照割肉進酒, 命士卒焚柴, 烟焰漲天。 賊勢窮出, 死力衝突, 矢中座前缾。 太祖安坐不起, 命金思訓魯玄受李萬中等, 擊之幾殲。 時倭賊擄國人, 必問: " 【太祖舊諱】 萬戶, 今在何處乎?" 不敢近太祖之軍, 必伺間乃入寇。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책 7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외교(外交) / 역사(歷史)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