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군대를 거느리고 동북면의 영토를 확장하다
공민왕 19년(1370) 경술 정월, 태조는 기병 5천 명과 보병(步兵) 1만 명을 거느리고 동북면(東北面)으로부터 황초령(黃草嶺)을 넘어 6백여 리(里)를 행진하여 설한령(雪寒嶺)에 이르고, 또 7백여 리를 행진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넜다. 이날 저녁에 서울의 서북방에 자기(紫氣)가 공중에 가득차고 그림자가 모두 남쪽으로 뻗쳤는데, 서운관(書雲觀)에서 말하기를,
"용감한 장수의 기상입니다."
하니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이성계(李成桂)를 북방에 보냈으니 반드시 그 감응(感應)일 것이다."
하였다. 이때 동녕부(東寧府) 동지(同知) 이오로첩목아(李吾魯帖木兒)는 태조가 온다는 말을 듣고 우라 산성(亐羅山城)으로 옮겨 가서 지켜 대로(大路)에 웅거하여 막고자 하였다. 태조가 야둔촌(也頓村)에 이르니, 이원경(李原景) 【원경(元景)은 곧 오로첩목아(吾魯帖木兒)이다.】 이 와서 도전(挑戰)하다가 조금 후에 갑옷을 버리고 재배(再拜)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선조(先祖)는 본디 고려 사람이니, 원컨대, 신복(臣僕)이 되겠습니다."
하고, 3백여 호(戶)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그 추장(酋長) 고안위(高安慰)는 오히려 성(城)에 웅거하여 항복하지 않으므로, 우리 군사들이 그를 포위하였다. 이때 태조는 활과 살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수종(隨從)하는 사람의 활을 가져와서 편전(片箭)을 사용하여 이들에게 쏘았다. 무릇 70여 번이나 쏘았는데 모두 그 얼굴에 바로 맞으니, 성중(城中) 사람들이 겁이 나서 기운이 쑥 빠졌다. 안위(安慰)는 능히 지탱하지 못하여 처자(妻子)를 버리고 줄에 매달려 성을 내려와서 밤에 도망하였다. 이튿날 두목(頭目) 20여 명이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항복하여, 여러 산성(山城)들은 소문만 듣고 모두 항복하니, 호(戶)를 얻은 것이 무릇 만여호(萬餘戶)나 되었다. 전쟁에서 얻은 소 천여 마리와 말 수백여 필을 모두 그 주인에게 돌려주니, 북방 사람이 크게 기뻐하여 귀순(歸順)한 사람이 저자[市]와 같았다. 이에 동쪽으로는 황성(皇城)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동녕부(東寧府)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텅 비게 되었다. 황성(皇城)은 옛날 여진(女眞) 황제(皇帝)의 성(城)이다. 태조는 원(元)나라 추밀 부사(樞密副使) 배주(拜住)와 동녕부(東寧府)의 이원경(李原景)·이백안(李伯顔)·이장수(李長壽)·이천우(李天祐)·현다사(玄多士)·김아(金阿)·노정(魯丁) 등 3백여 호(戶)가 와서 〈왕에게〉 바쳤다. 태조가 우라(亐羅)에 들어갈 적에 무너진 담안에서 곡성(哭聲)이 있음을 듣고 사람을 시켜 가 보게 했더니, 한 사람이 벌거벗고 서서 울며 말하기를,
"나는 원(元)나라 조정에서 장원 급제(壯元及第)한 배주(拜住)인데, 귀국(貴國)의 이인복(李仁復)도 나와 동년(同年)입니다."
하였다. 태조는 장원(壯元)의 이름을 한번 듣고는 곧 옷을 벗어서 그를 입히고, 말을 주어서 그를 타게 하여 마침내 그와 함께 오니, 왕이 배주(拜住)에게 한복(韓復)이란 성명(姓名)을 내려 주었다. 한복이 태조를 섬기되 매우 조심성 있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면
- 【분류】인물(人物) / 가족(家族) / 왕실(王室) / 역사(歷史) / 외교(外交)
〔○〕恭愍王十九年庚戌正月, 太祖以騎兵五千、步兵一萬, 自東北面踰黃草嶺, 行六百餘里, 至雪寒嶺, 又行七百餘里, 渡鴨綠江。 是夕, 京城西北方紫氣漫空, 影皆南。 書雲觀言猛將之氣。 王喜曰: "予遣李, 【太祖舊諱。】 必其應也。" 時東寧府同知李吾魯帖木兒, 聞太祖來, 移保亏羅山城, 欲據路以拒。 太祖至也頓村, 李原景來挑戰。 【原景卽吾魯帖木兒。】 俄而棄甲再拜曰: "吾先, 本高麗人, 願爲臣僕。" 率三百餘戶來降。 其酋高安慰猶據城不降, 我師圍之。 時太祖不御弓矢, 取從者弓, 用片箭射之, 凡七十餘發, 皆正中其面, 城中奪氣。 安慰不能支, 棄妻孥, 縋城夜遁。 明日, 頭目二十餘人, 率百姓出降, 諸山城望風皆降, 得戶凡萬餘。 以所獲牛二千餘頭、馬數百餘匹, 悉還其主, 北人大悅, 歸之如市。 於是, 東至皇城, 北至東寧府, 西至海, 南至鴨綠江, 爲之一空。 皇城, 古女眞皇帝城也。 太祖以元樞密副使拜住及東寧府 李原景、李伯顔、李長壽、李天祐、玄多士、金阿、魯丁等三百餘戶來獻。 太祖之入亏羅也, 聞毁垣中有哭聲, 使人就視之, 有一人裸立而泣曰: "我元朝壯元及第拜住也。 貴國李仁復, 吾同年。" 太祖一聞壯元之名, 卽解衣衣之, 與馬騎之, 遂與俱來, 王賜拜住姓名韓復。 復事太祖甚謹。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면
- 【분류】인물(人物) / 가족(家族) / 왕실(王室) / 역사(歷史) / 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