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1권, 총서 46번째기사
태조가 동북면 원수가 되어 기철의 잔당과 북원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동녕부를 회복코자 하다
공민왕 18년(1369) 기유 【홍무(洪武) 2년.】 , 처음에 기새인첩목아(奇賽因帖木兒)는 기철(奇轍)의 아들인데, 원(元)나라를 섬겨 평장사(平章事)가 되었다. 원나라가 망하자 분사요심 관리(分司遼瀋官吏)인 평장(平章) 김백안(金伯顔) 등과 더불어 망한 원나라의 남은 무리들을 불러 모아 동녕부(東寧府)를 점거하고, 그 아버지가 참형(斬刑)을 당한 것에 원한을 품고 북쪽 변방에 쳐들어와서 반드시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왕은 명(明)나라를 섬긴 이유로써 동녕부(東寧府)026) 를 공격하여 북원(北元)과의 관계를 끊고자 하여 12월에 태조를 동북면 원수(東北面元帥)로 삼고, 지용수(池龍壽)와 양백연(楊伯淵)을 서북면 원수(西北面元帥)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王室) / 변란(變亂) / 역사(歷史) / 외교(外交)
- [註 026]동녕부(東寧府) : 원나라가 고려 서경(西京)에 두었던 관청. 고려 원종(元宗) 10년(1269)에 반신(叛臣) 최탄(崔坦)이 난을 일으켜 서경(西京)을 비롯한 북계(北界)의 54성(城)과 자비령(慈悲嶺) 이북 서해도(西海道)의 6성(城)을 들어 원나라에 항복했는데, 원종 11년에 원나라 세조(世祖)가 서경에 동녕부(東寧府)를 설치하고, 최탄으로 동녕부 총관(東寧府摠管)을 삼아 자비령 이북을 원나라의 영토로 편입했다. 후에 충렬왕(忠烈王) 16년(1290)에 고려의 요청으로 이를 폐지, 그 지역을 고려에 돌려주고 동녕부를 요동(遼東)으로 옮겼음. 여기의 동녕부는 요동의 것을 지칭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