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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권, 총서

총서

태종 공정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太宗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의 휘(諱)는 이방원(李芳遠)이요, 자(字)는 유덕(遺德)이니, 태조(太祖)의 다섯째 아들이요, 공정왕(恭靖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어머니는 신의 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이다. 원(元)나라 지정(至正) 27년,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6년 정미 5월 16일 신묘에 함흥부(咸興府) 귀주(歸州) 사제(私第)에서 탄생하였다. 한씨(韓氏)가 점치는 사람[卜者] 문성윤(文成允)에게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이 사주(四柱)는 귀하기가 말할 수 없으니, 조심하고 점장이[卜人]에게 경솔히 물어보지 마소서,"

하였다. 남은(南誾)이 매양 태종(太宗)을 보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하늘을 덮을 영기(英氣)이다."

하였다. 태종은 나서부터 신이(神異)하였고, 조금 자라매 영명(英明) 예지(睿知)하기가 출중하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학문이 날로 진보되었다. 명(明)나라 홍무(洪武) 15년 임술에 고려(高麗) 진사시(進士試)에 오르고, 이듬해 계해에 병과(丙科) 제칠인(第七人) 급제(及第)에 합격하였다. 위성(僞姓)001) 이 나라를 도둑질한 이래로 간신들이 나라의 명맥을 잡아서, 정사는 산만하여지고, 백성들은 유리(流離)하였다. 태종이 개연(慨然)히 세상을 구제할 뜻이 있어, 능히 몸을 굽히어[折節] 선비들에게 겸손하였다. 태조(太祖)께서 대접하기를 여러 아들보다 다르게 하고, 현비(顯妃) 강씨(康氏)도 또한 기이하게 여기고 사랑하니, 태종이 또한 효성을 다하였다. 태조가 높은 코[隆準]에 용의 얼굴[龍顔]이었는데, 태종의 용모가 이를 닮았다. 하윤(河崙)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와 동지(同志)의 친구이었는데, 윤(崙)이 본래 사람의 상보기를 좋아하여, 에게 말하기를,

"내가 사람을 상 본 것이 많지마는, 공(公)의 둘째 사위 같은 사람은 없었소. 내가 뵙고자 하니 공은 그 뜻을 말하여 주시오."

하였다. 제(霽)태종에게 말하기를,

"하윤이 군(君)을 보고자 한다."

하였다. 태종이 만나보니, 이 드디어 마음을 기울여 섬기였다. 경오년에 공양왕(恭讓王)이 밀직사 대언(密直司代言) 벼슬에 승진시키어 항상 근밀(近密)한 자리에 두었다. 신미년에 모후(母后)의 상사를 당하여 능(陵) 곁에서 시묘(侍墓)하였는데, 매양 태조를 뵙기 위하여 서울에 들어오면 길 위에서 눈물이 비오듯 하여 끊이지 않고, 태조의 저사(邸舍)에 이르러 느끼는 바가 있으면 문득 통곡하니, 태조의 좌우가 감창(感愴)하여 마지않는 이가 없었고, 태조께서 항상 그의 효성을 칭찬하였다. 임신년 가을 7월에 비밀히 장상(將相)들과 더불어 계책을 정하고 태조께 개국(開國)하기를 권하여 말씀 드리는데, 조준(趙浚)이 기뻐하고 경사스럽게 여기어 동렬(同列)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공(功)이 한 사람에게 있다."

하였으니, 태종을 가리킨 것이다. 갑술년 여름에 고황제(高皇帝)002) 가 친아들의 입조(入朝)를 명하므로, 태조가 곧 태종을 보내어 명령에 응하고, 작별하기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황제께서 만일 물음이 있으면, 네가 아니면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명나라에 이르매, 진술하여 아뢰는 바가 황제의 뜻에 맞았으므로, 황제가 우대하여 돌려보냈다. 기묘년 가을 9월에 태종송도(松都)추동(楸洞) 잠저(潛邸)에 있을 때, 어느날 날은 새려 하여 별은 드문드문한데, 흰 용[白龍]이 침실(寢室) 동마루 위에 나타났다. 그 크기는 서까래만 하고 비늘이 있어 광채가 찬란하고, 꼬리는 굼툴굼툴하고, 머리는 바로 태종이 있는 곳을 향하였다. 시녀(侍女) 김씨(金氏)가 처마 밑에 앉았다가 이를 보았는데, 김씨경녕군(敬寧君) 이비(李)의 어머니이다. 달려 가 집찬인(執饌人) 김소근(金小斤) 등 여덟 사람에게 알리어, 소근 등이 또한 나와서 이를 보았다. 조금 있다가 운무(雲霧)가 자옥하게 끼더니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공정왕(恭靖王)이 아들이 없고, 개국(開國) 정사(定社)의 계책이 모두 정안군(靖安君)에게서 나왔다 하여, 도승지(都承旨) 이문화(李文和)를 보내어 태조(太祖)께 사뢰고 책봉하여 왕세자(王世子)를 삼았다. 처음에 태조현비(顯妃) 강씨(康氏)의 소생인 이방석(李芳碩)을 봉하여 세자를 삼았더니, 정희계(鄭熙啓)의 아내가 현비(顯妃)에게 말하기를,

"정안군(靖安君)이 세자가 되면 심히 인망(人望)에 합할 것입니다. 지금 이방석을 세우니 필경은 반드시 좋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희계의 아내는 취산군(鷲山君) 신극례(辛克禮)의 누이이고, 현비(顯妃)의 삼촌(三寸) 질녀(姪女)였다. 겨울 11월에 공정왕(恭靖王)이 본래 풍질(風疾)이 있었으므로, 별궁(別宮)에 물러 앉고 태종에게 선위(禪位)하니, 태종이 울면서 사양하여도 되지 아니하여, 드디어 수창궁(壽昌宮)에서 즉위하였다. 태조가 기뻐하여 말하기를,

"강명(剛明)한 임금이니 권세가 반드시 아래로 옮기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영락(永樂) 16년 무술 8월에 우리 전하에게 선위(禪位)하고, 다섯 해 동안 편안히 쉬면서 이양(頤養)하였다. 임인년 5월 10일에 승하였으니, 향년(享年)이 56세요, 왕위에 있은 지 19년이었다. 명나라 황제가 시호(諡號)를 주기를 "공정(恭定)"이라 하고, 본국(本國)에서 시호를 올리기를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라 하고, 묘호(廟號)는 "태종(太宗)"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9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역사(歷史)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외교-명(明)

  • [註 001]
    위성(僞姓) : 신씨(辛氏).
  • [註 002]
    고황제(高皇帝) : 명 태조(明太祖).

太宗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芳遠, 字遺德, 太祖第五子, 恭靖王之母弟也。 妣神懿王后 韓氏, 以 至正二十七年高麗 恭愍王十六年丁未五月十六日辛卯, 誕生于咸興府 歸州私第。 韓氏問諸卜者文成允, 答曰: "此命, 貴不可言, 愼勿輕問卜人。" 南誾每見太宗, 必謂人曰: "斯人蓋天英氣。" 太宗生而神異, 稍長, 英睿絶倫, 好讀書學日進。 皇 洪武十五年壬戌, 登高麗進士試, 越明年癸亥, 中丙科第七人及第。 自僞姓竊國以來, 姦臣執命, 政散民離, 太宗慨然有濟世之志, 而能折節下士。 太祖待之異於諸子, 顯妃 康氏亦奇愛之, 太宗又盡孝誠。 太祖(隆隼)〔隆準〕龍顔, 而太宗貌類焉。 河崙驪興府院君 閔霽, 爲同志之友。 素好相人, 謂曰: "吾相人多矣, 未有如公之二甥者。 吾欲謁見, 請公道之。" 太宗曰: "河崙欲見君。" 太宗乃見之, 遂傾心事焉。 庚午, 恭讓王進官密直司代言, 常置近密。 辛未, 遭母后之喪, 廬于陵側。 每爲覲太祖入京, 於道上雨泣不絶, 至太祖邸, 遇有所感, 輒痛哭, 太祖左右莫不感愴, 太祖常稱其孝。 壬申秋七月, 密與將相定策, 勸進開國, 趙浚喜慶, 謂同列曰: "今日之事, 功在一人。" 指太宗也。 甲戌夏, 高皇帝命親男入朝, 太祖卽遣太宗應命。 臨別揮淚曰: "帝如有問, 非汝不能對。" 及其至也, 敷奏稱旨, 帝優禮遣還。 己卯秋九月, 太宗松都 楸洞潛邸, 一日, 天欲曙而星稀, 有白龍見于寢室之上, 大如椽有鱗, 光彩燦爛, 尾蜿蜒, 頭正向御在所。 侍女金氏坐簷下見之。 金氏, 敬寧君 (裶) 〔〕 之母也。 走告執饌人金小斤等八人, 小斤等亦出見之。 俄而雲霧翳塞, 不知所之。 恭靖王無嗣, 以謂開國定社之策, 皆出於靖安君, 遣都承旨李文和, 白太祖冊爲王世子。 初, 太祖顯妃 康氏芳碩爲世子, 鄭熙啓妻言於顯妃曰: "靖安君爲世子, 甚合人望。 今立芳碩, 終必不好。" 熙啓妻, 鷲山君 辛克禮之妹, 顯妃三寸姪也。 冬十一月, 恭靖王素患風疾, 退居別宮, 禪位于太宗太宗涕泣辭之不獲, 遂卽位于壽昌宮太祖喜曰: "剛明之君, 權必不下移。" 永樂十六年戊戌八月, 禪位于我殿下, 優游頤養, 至于五年。 壬寅五月十日丙寅薨, 享年五十六, 在位十有九年。 皇帝賜諡曰恭定, 本國上諡曰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 廟號太宗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9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역사(歷史)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