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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태조 3년
태조 3년 8월
태조 3년 8월 12일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8월 12일 기묘 1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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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보기
태조실록6권, 태조 3년 8월 12일 기묘
왕이 도읍터를 잡기 위해 왕사 자초를 부르다
도읍터에 관한 논의에 판삼사사 정도전이 국가 치란은 사람에 달려 있음을 역설하다
부소를 도읍으로 하자는 문하 시랑 찬성사 성석린의 논의
부소를 도읍으로 하자는 정당 문학 정총의 논의
비기로 볼 때 도읍지로 무악이 좋다는 첨서중추원사 하윤의 논의
무악이 좁기는 하나 비결에서 말한 곳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중추원 학사 이직의 논의
천도에 대한 재상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양으로 행차하다
이전
8월 11일(무인)
왕이 무악을 둘러보고 유숙하다. 천도할 장소에 대한 분분한 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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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8월 13일(경진)
왕사 자초와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다. 적성 광실원이 좋다는 의견도 나오다
민정을 징발하여 옛 서울의 성 쌓는 공사를 마치게 하다
이동
김인후(金麟厚)
성명
김인후(金麟厚)
신분
문반
자
후지(厚之)
호
하서(河西)
본관
울산(蔚山)
생년
1510
몰년
1560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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