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27권, 영조 6년 7월 1일 무진 1번째기사
1730년 청 옹정(雍正) 8년
- 영조실록27권, 영조 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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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이 엷은 구름 사이에서 나와 사라지다
- 약방의 3제조들이 의원들을 거느리고 임금을 진찰하다
- 시신을 안치하는 곳을 광명전에 옮겼다가 대렴을 하고 정오에 입관하다
- 친정 아버지는 성복을 끝낸 뒤에, 집사들은 오늘부터 각각 생기(省記)를 없애다
- 임금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의 상복을 정하다
- 궐문 밖의 각 군문 파수군과 추가로 입직하는 군병을 철수하게 하다
- 신무일을 고부사로 삼고, 홍성보를 서장관으로 삼은 뒤에 남태량으로 대신하다
- 북도의 별과와 역적 토벌 후의 정시는 졸곡 후에 연기하여 행하게 하다
- 양사에서 계하여 대행 왕대비에게 약을 올린 의관들을 국문할 것을 요청하다
- 이집·신살철·서명균·어유룡·윤유 등이 지관들을 거느리고 묘터를 잡으러 가다
- 정제두·최규서가 시골에서 올라옴에 불러서 보다. 의관들이 임금을 진찰하다
- 묘터는 의릉 아래에 정하다. 신하들이 임시 방편으로 원기를 붙들도록 청하다
- 2품 이상의 관원, 옥당, 승정원에서 식사의 회복을 청했으나 따르지 않다
- 임금의 구두 명령을 받아 김시환·심공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빈청, 옥당, 약방 등에서 평상시의 식사의 회복을 청했으나 따르지 않다
- 대신들이 대행 왕대비전의 시호, 휘호, 전호, 능호를 의논하여 정하다
-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대왕 대비전에 가서 식사를 권하여 주기를 청하다
- 옥당에서 평상시의 식사를 회복할 것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 상례를 피혐하고 급한 일이 있서도 들어올 생각이 없는 이광부를 파직하다
- 3사, 약방 등 각처에서 평상시의 식사를 회복할 것을 청하니 억지로 따르다
- 이철보를 지평으로 삼다
- 밤에 달이 남두(南斗)의 제 3성을 범하다
- 전 판서 권성의 졸기
- 한덕후를 집의로 삼다
- 고례에 따라 왕대비의 상에 대한 행록을 내전에서 제술하도록 하겠다고 하다
- 김시혁을 승지로 삼다
- 예조에서 비가 막 내리려고 함에 기우제를 우선 정지시킬 것을 계품하다
- 큰 비가 내리다
- 대행 왕대비의 인산일부터 하관하는 날까지의 택일을 하다
- 행장에 쓸 내용을 조현명과 의논하다. 조현명은 사적인 진휼의 논상을 청하다
- 홍치중은 김재로가 지은 마패의 문구 중에 불필요한 것을 빼도록 청하다
- 마패에 새겨진 명나라 연호를 둘러싼 청나라와 불화를 윤순과 의논하다
- 분의를 알지 못한 수찬 조한위와 부수찬 김상석을 변지의 수령으로 죄천시키다
- 상중에 있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위패한 판금오를 체직 후에 추고케 하다
- 조한위를 강진 현감으로, 김상석을 무안 현감으로, 조문명을 판의금부사로 삼다
- 윤순 등이 임금의 제전 참여 자제와 낮 다례의 간소화를 요청하다
- 이진망을 예조 참판으로, 정광은을 정언으로 삼다
- 김동필이 인산 전이지만 각도에 삼사 출신의 경차관을 파견할 것을 요청하다
- 사패한 평안 감사 윤혜교를 불러 보고 격려하여 보내다
- 양성규를 동지의금부사으로 삼다
- 국청을 설치하여 정업·나숭헌·정관빈·나계태·나계복 등으로부터 공초를 받다
- 의금부 도사를 보내 나홍언과 그 처자를 참형, 교수형에 각각 처하도록 하다
- 본부에 국청을 설치하여 심우명을 신문하여 공초를 받다
- 조원명을 동지의금부사로 삼다
- 공초에 나온 자는 모두 신문할 것과 심단의 관직 추증 금지를 정광은이 상소
- 나숭헌을 신문하여 사람 뼛가루의 구입과 사용처에 대해 공초를 받다
- 윤순이 여러 의관들을 거느리고 임금의 체후를 진찰하다
- 장우규를 신문하여 사람 뼛가루에 대한 나홍언의 흉모를 공초받다
- 밤 5경에 목성이 헌원성을 범하다
- 배세익을 신문하여 사람 뼛가루의 사용처에 대해 공초를 받다
김인후(金麟厚)
- 성명김인후(金麟厚)
- 신분문반
- 자후지(厚之)
- 호하서(河西)
- 본관울산(蔚山)
- 생년1510
- 몰년1560
-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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